며칠전 구청 자료실에 갔다가 빌린 책이다. 에도시대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동경)에 막부를 건설하여 메이지유신까지 통치한 일본문화이 르네상스기이다. 그 시절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처럼 쇄국정책을 했지만 중국, 한국, 네델란드의 세 나라를 통해 문물 교류를 꾸준해 나름대로 우리보다 개방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조선중후기 엉터리 소중화주의에 빠져 점점 세계사에서 떠밀리고 관료들의 부패로 나라가 피폐해져간 우리의 상황과는 대조적인 면이 있다. 물론 조선도 문화와 학문면에서 서민 및 귀족 문화 모두 성숙하는 계기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처음에 일본인이 쓴 책인 줄 알았다. 계절별로 하이쿠와 우키요에를 절묘하게 선정하여 배치해 하이쿠의 맛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헌데 한국 사람이 지은 책이다. 좋다. 책을 보고 좋은 그림들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구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 일본어를 배워 일본 사이트라도 들어가야 하나? 그래서 더욱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헌데 칼러 도판인지라 책값이 18000원이다.
그림을 보며, 일본은 참 조형과 색감이 뛰어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속에 정지와 움직임의 적절한 배합, 그리고 섬세한 묘사의 맛은 정말 훌륭하다. 동양적 시각에서 동양과 서양의 절묘한 결합을 느끼는 듯하다. 극우적 일본은 혐오하지만 일본문화는 바로 이웃이기에 우리의 자양으로 삼기에 좋은 점이 많다. 일본 그림들을 보니 해학적인 한국 민화의 특징이 더 잘 잡히는 것 같다.
내용도 좋지만, 눈요기거리가 풍부한 책이다.
출판사 평 :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전국을 통일하고 에도(江戶, 지금의 동경)에 막부를 개설한 후 1868년 메이지 유신 전까지, 250여 년 동안 에도는 일본의 정치, 사회, 문화의 수도로 발전했다. 도쿠가와 가문이 다스리던 이 시기를 도쿠가와 시대 또는 에도 시대라고 한다. 이 시기에 일본은 안정된 정치 상황을 기반으로 역사상 전례 없는 태평의 세월을 맞이했으며, 도시와 상업이 발달하면서 새롭게 재력을 얻으며 등장한 신흥 세력(쵸닌町人)이 대중문화를 주도해나갔다. 그들이 발전시킨, 일본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오늘날에는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감상하는 인기 장르가 된 것이 바로 한 줄로 이루어진 시 하이쿠(俳句)와 다색 목판화 우키요에(浮世)다. 하이쿠는 5,7,5의 음수율을 지닌 열일곱 자로 이루어진 정형시다. 하이쿠는 세계 문학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짧은 시의 형태를 지니는데, 한 줄 시 속에 함축된 내용을 음미해가는 묘미가 대단히 매력적이다. 하이쿠 한 수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겨 있고, 그 계절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이 녹아 있다. 하이쿠는 한 줄로 표현된 우리의 삶, 우리의 세계, 우리의 우주인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인 듯싶으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진리와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이는 열일곱 자가 함축하고 있는 거대한 여백 속에서 은근히 드러나기도 하고, 날카로운 일본도(日本刀)를 우아하고 재빠르게 한 번 휘두를 때의 번뜩임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한편 대담한 구도, 선명한 색채,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표현 등으로 19세기 유럽의 인상주의자들을 놀라게 한 우키요에는 에도 시대에 목판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출판업이 성장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서적의 삽화 역할에 머무르던 우키요에가 감상을 목적으로 하는 독자적인 장르로 인기를 얻게 된 것인데, 여기에는 하이쿠 동호회의 활발한 활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에도의 하이쿠 동호회원들은 신년 축하 선물로 사용하기 위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다색 판화 달력을 주문하여 유행시켰다. 이에 우키요에 화가들은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목판화 기술, 방법 등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우키요에는 오락과 유희, 감상과 장식용으로 대중문화 속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이쿠는 그것을 읊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시가 함축하고 있는, 그 무한한 여백이 포함하고 있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의 이미지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한 점의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 하이쿠 작가들이 우키요에를 가까이 한 것이나, 요사 부손(?謝無村 1716-84)이 자신의 하이쿠에 어울리는 문인화인 하이가(俳畵)를 즐겨 그린 이유는 하이쿠의 세계와 회화의 세계가 상통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다빈치의 신간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의 기획 의도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열일곱 자 속에 압축된 의미나 감성을 머리와 가슴으로 가만히 음미하는 것이 일차적인 감상이라면, 하이쿠의 분위기와 유사한 시각적 이미지를 함께 보며 그 감흥을 배로 느끼는 것은 이차적인 감상일 것이다. 또는 단정한 우키요에가, 고즈넉한 수묵채색화가, 금빛 찬란한 병풍 그림이, 님을 생각하는 유녀(遊女)가 자아내는 분위기와 감동은 한 줄 하이쿠로 집약되고 마무리될 수 있다. 하이쿠와 우키요에가, 에도 시대 그림이 이렇게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한층 풍부한 감각과 감상의 세계를 맛볼 수 있으나, 하이쿠는 하이쿠대로, 그림들은 그림들대로 따로 떼어놓고 각각을 충분히 즐길 수도 있다. 본문에 실린 100여 수 하이쿠는 마쓰오 바쇼, 요사 부손, 잇사의 유명한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며, 일본어 원문을 함께 수록하고 음독해 놓은 것은 하이쿠를 있는 그대로 감상하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한 배려이다. 그리고 번역자는 원문에 최대한 가깝도록, 하이쿠를 읊으며 감상하는 맛을 우리말로 옮겨진 글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단어들을 선택하고 표현을 섬세하게 다듬었다. 200여 점에 가까운 에도 시대 그림들은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인 가츠시카 호쿠사이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하이쿠에 어울리는 그림들로 선정했다. 수록된 하이쿠가 대부분 서정성이 강조된 것들이어서 우키요에의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춘화(春畵)는 배제하고 에도 시대 문인화로 보충했다. 일본 문학과 미술 전문가가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서문은 하이쿠와 우키요에, 에도 시대 그림들을 처음 접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독자들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본 문화의 한 특징인 축약, 생략, 함축을 잘 보여주는 하이쿠와 우키요에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감상하다보면 일본 문화, 일본의 분위기에 듬뿍 빠져들어 그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작품에서 드러나는 일본인들의 세계관, 계절 감각 등을 우리의 것과 비교해보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추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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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 신경림(시인) 일본의 전통 시의 하나인 하이쿠는 흔히 꿀벌에 비유된다. 꿀과 침을 함께 가지고 있어 읽으면 따끔하면서도 달콤하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 있어 시의 특질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미지즘 운동에도 큰 영향을 준 이런 하이쿠를 에도 시대의 풍속화인 우키요에 등 일본의 사회와 역사를 조감할 수 있는 그림들과 함께 읽는다면 그 뜻과 맛은 배가 될 터이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