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것만이 구원받는 길이 아닌 것을 우리는 알고,
맹신(盲神), 광신(狂神), 미신(迷神)이
사도(邪道)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종교의 올바른 신리(神理)로부터,
마음을 멀어지게 한 것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
신불의 자식으로서, 우리가 아버지인 신(神)을 믿는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이며,
신리를 깨닫지 않고 맹신, 광신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게 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다운 생활을 잊고, 부조화한 고락(苦樂) 양극단의 인생을 보내고,
정도(正道)의 마음을 무시한 것에는 신앙의 의미가 없다.
지도자가 하라는 대로 하거나,
구심(求心)의 방향을 그저 기도하는 방향만으로 둔다고 하는 것은 맹신(盲信)이다.
이미 신의 이름 아래, 의문을 갖는 것도 없이, 자신의 마음을 잃었다.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도 없이,
기도에 의지한 인생의 도피에로 달리는 결과로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빨리 자기의 마음(양심)을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지도자는 "종이"를 신으로서 기도시킨다.
" 당신 집의 불행은, 몇 대 전의 조상이 승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도로 공양하세요."
라든가.
" 당신의 병의 원인은,
집안의 수호신인 용신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숭상 해야 하니까,
사당을 짓고, 용서를 빌어라."
고 말하고, 모두 제사를 지내게 시킨다.
이것이 그들이 늘 하는 방법이다.
오래된 집일수록, 제사 지내는 '신님'이라고 칭하는 "종이"가 많다.
" 당신의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은,
이나리대명신에게 제사 지내지 않기 때문이다.
1일과 15일에 제사를 지내는 것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
따위를 듣게 되면, 사리사욕의 마음이 합쳐져 우상을 제사 지내고 만다, 고하는 모양새이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신앙은,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마음이 부조화되어,
불행한 인생을 보내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사 지낼 당시는 일심(一心)으로 기도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도 열심히 하니까,
장사는 번성, 돈도 번다.
그러나 돈도 여유가 생기면, 제사 지내는 것에는 무관심이 되어,
형식적인 근행 신앙이 되어 간다.
번성한 것에의 감사의 마음도 잊어버린다.
낭비를 시작한다.
욕망의 만족만을 생각한다.
언젠가 그러한 마음의 마(魔)에 이기지 못하고,
마음은 어두운 상념으로 뒤덮여, 평안도 없어지고,
가정생활을 파괴하여, 동물령에 지배되어, 몰락으로의 길을 더듬어 가게 된다.
불행을 스스로 선택하여 가는 것이다.
" 건드리지 않는 신(神)에 동티나지 않는다." (=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
라는 속담은 신리이다.
신불을 건드리지 말고, 부탁하지 말고,
신리에 딱 들어맞는 생활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쌓아 가는 것이 신불의 마음에 통하는 것이다.
인간다운 생활에의 최선의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마음에 평화로운 안심을 주고, 신불의 자비가 약속되는 것이다.
인간다운 생활이란,
신리에 맞는 " 팔정도"의 실천에 의해,
조화된 바른 상념과 행위,
신불의 자식이라는 자각을 갖고 의식주에 족함을 안 생활,
거기에 있다.
한없는 욕망은,
족함을 잊어버리게 하고 괴로움을 만들어 내 갈 뿐이다.
우리의 환경 속에서,
방해를 일으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빙의령이나 지박령은,
신(神)도 아니고 불(佛)도 아니다.
그들에게 빙의되는 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상념과 행위에 대해서 우선 반성할 것.
이것이 선결(先決)인 것이다.
반성도 없이, 다가오는 영(靈)을 모두 제사 지내고 마는 것은,
그들을 교만하게 하고, 게다가 재앙을 후세에 미치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마음을 올바르게 하고,
그들에게 정법의 길을 공양하고,
인류에게 미혹이나 괴로움을 주지 않도록 그 잘못을 말하여,
그들이 거주할 세계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올바른 법이며,
제사 지내주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다.
악마를 제사 지내라'라고 하는 행자나 교조가 있다면,
그것은 참된 법력이 없는 사람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법력이 있으면, 그들 악령의 잘못을 지적해서 올바른 길로 귀의시키는 것이 가능할 터이다.
동시에 그러한 종교적 환경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서도,
“왜 괴로워하고 있는가"
라고 원인을 가르쳐,
올바른 마음의 자세랑 생활의 태도에 대해서도 인도하는 것이 가능할 터이다.
여우를 숭배한다, 뱀을 숭배한다, 조상을 숭배한다고 해서
신으로 받들어 모시게 하는 신앙은,
자기 자신이 신불의 자식이라는 자각을 잊고 있는 것이다.
"냄새나는 것에는 뚜껑을 덮어라."
는 식의 신앙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우리의 행복을 얻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형식적인 신앙에 미혹됨에 띠라서,
생활도 불안정하게 되고, 점점 평안을 잃어간다.
헤매어서는 안 된다.
아편의 중독으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에게 강하게 되어,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큰 마음을 갖고,
인생에 자신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불행한 현상에 대해서는,
자기 자신과 그 환경에 대해서 그 원인을 잘 탐구하여,
악(惡)의 것을 제거하고,
보다 좋은 인생으로 진보하기 위한 노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신불은 그 노력에 대해서,
평화와 안심의 빛을 내려준다,
우리들에게 이다.
인간의 마음을 장님으로 하여,
기도하는 것에 의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고 가르치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은 잘못을 범하고 있다.
신불은,
인류가 이 현상계에 육체를 갖고
혼의 수행이 가능한 환경의 일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태양의 열 빛의 에너지에 의해,
식물, 동물, 광물 상호의 관계가 생기고 있다.
이 모습이야말로,
사랑이 아니고, 자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