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천과 병영 지역사 단상
작천에 살다보니 아무래도 작천이 속한 한들평야를 중심에 두고 역사의 그림을 그리게 된다.
강진엔 이상하게 마한 유적이 별로 없다. 작은 옹관묘와 집터 정도가 전부다. 없을 곳이 아닌데 그렇다.
인근 해남과 영암, 나주와 비교하면. 영암과 해남이 서로 연결되며 소의 내장처럼 굽이굽이 내만이 접힌 지중해의 모양이면서 동서남북 해상무역의 중계지 이점을 있다. 강진은 바로 옆이지만 살짝 비낀 듯하다. 그래도 작천, 병영의 한들평야가 청동기시대부터의 벼농사 곡창지대인 것을 보면 분명 읍락국가였던 마한의 중견국은 있지 않았을까?
작천과 병영에는 고인돌 군락이 많지만 특히 선돌이 많다. 아무래도 벼농사가 가능했던 읍락의 몇 곳 충적토가 발달한 북사면에 열을 지어 흩어져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한들평야는 중생대 쥐라기 화강암이 기반암으로 오랜 풍화와 침식으로 구릉과 골짜기가 발달한 할아버지 산이다. 좌우 수암산과 수인산은 백악기 응회암이 쌓여 키가 크고 험한 청년 산이다. 백악기 화강암인 월출산도 그렇다. 한창 풍화와 침식이 진행 중인 청년 산이다.
주변 산의 풍부한 물과 모래공급을 생각하면 한들평야는 완전한 내륙분지로 거대한 수조다. 바닥엔 퇴적 모래층이 잘 발달하였을 테고, 주변부에는 화강암이 풍화된 점토가 발달하였다. 그래서 골짜기 상부에 저수지를 조성해 중앙의 논지대의 부족한 물을 공급하였을 것이다. 청동기시대부터 나타난 취락들은 평야와 골짜기들 사이에 위치하고 골짜기를 저수지로 바꿔 활용했을 가능성이 많다. 선돌은 그 경계로 취락마다 세웠을 것이다.
지금의 금강천은 보를 많이 만들어 놓고 댐과 저수지가 많아 유량이 많이 줄었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배가 들어올 수 있었던 강이다. 병영성 옆 하고재의 예 이름이 배가 드나드는 나루터라는 뜻의 배진강이었다. 이곳에 조선 초기 병영성을 쌓으며 보를 쌓고 방죽을 높이 쌓아 넓은 저수지를 만들고 홍련을 심어 지금의 연방죽이 만들어졌다. 이건 거의 확실할 것이다.
성전 금당마을의 백련지와 대조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비들은 단아한 취향을 반영해 집과 마을에 백련지를 가꾸었다. 반면 읍성저수지에는 국가경영의 차원에서 생명의 번성과 윤택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아 홍련지를 조성하였다. 연방죽은 이렇게 배진강을 막아 저수지를 조성하고 연을 심어 만들어진 이름이다.
병영성 이전 고려시대에는 도강현이 있었다. 생각컨대 도강현 치소는 중고마을과 하고마을을 중심으로 한 중가마을을 범위로 중고재 골짜기를 끼고 고성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동서의 구릉를 활용하면서 남쪽 평야를 내려보는 좋은 위치다. 6세기 초 백제가 마한을 복속시키며 군현제도를 마련했던 도무현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고려 말 200여년 왜구의 침략으로 도강현의 위상은 점점 초라해지고 오히려 이때 보강한 거대한 포곡산성 수인산성을 완비하여 갔다. 수인산성의 애초 의도는 인근 강진, 장흥, 보성, 영암의 백성들이 왜구를 피해 피난할 입보산성의 기능이었다. 조선 초 수인산성이 먼저 확보된 바탕 위에 한들평야의 풍부한 군량미와 보은산의 은폐를 고려해 병영성의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병영성이 새로 조성되면서 도강현 치소의 쇄락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렇다면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마한시대로 이동해보자. 마한의 기록과 유적이 발견되는 것은 2~3세기부터이다. 5~6세기 읍락국가들의 연맹이 전성기를 보내고 6세기 초 백제에 복속하게 된다. 바로 전성기였던 5세기 나주의 반남고분군과 같은 대형옹관묘들이 만들어지고, 해남의 장고분이나 옥천의 대형묘 등이 만들어진다. 50이 넘는 읍락국가들은 저마다 번성하였다. 금강으로 배가 들어올 수 있었던 작천과 병영에도 마한이 없을 수 없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곳은 두 곳이다. 작천의 용동제와 삼열리 성뫼산을 공유하는 구상마을이 첫째다. 구상마을 앞 냇가 옆엔 황대중 장군의 애마무덤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애마총이라는 큰 무덤이 있다. 성뫼산에 140미터 높이에 테뫼식 산성이 있다. 전형적인 마한식 읍락국가 산성이고 무덤이며 위치다. 전설에 따른 역사왜곡 때문에 아직 고증되고 있지 않지만 나는 이곳이 마한의 읍락국가 자리라고 100% 확신한다.
두 번째는 바로 도무현 치소자리인 중고마을과 하고마을이다. 이곳이 작천 성뫼산보다 더 큰 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백제와 통일신라, 고려로 이어지며 치소로 사용된 탓에 많은 변형을 겪어 무덤 자리와 성곽길을 유심히 살펴야 할 과제가 있다. 내 추측으로는 한들평야를 중심으로 5~6세기 2~3기의 마한 무덤이 더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질도와 1918년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지도를 대조하며 물길과 평야를 고려해 살펴보면 마한의 읍락국가 이름은 아니더라도 위치 비정이 어느 정도 가능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