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달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희은 '한계령', 작사·작곡 하덕규
그때 동행이었던 친구가 워크맨으로 양희은이 부른 이 노래를 들려주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 한계령 내리막길에서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온통 회색으로 가득한 차창 밖에 조근조근 속삭이듯 양희은이 부르는 한계령이 떠돌았다. 충격적이었다. 멜로디보다 가사가 먼저 와 닿았다. 노래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나는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노래를 만든 이가 가수 하덕규 임에 놀랐고 이 가사의 원작시를 정덕수 시인이 19세의 나이에 쓴 것임을 알고 나서 한 번 더 놀랐다.
하덕규! 갓 스물을 넘긴 나는 그의 노래들로 황홀했었다. 세련되고 섬세한 비둘기, 고양이, 푸른돛, 가시나무 새는 우리에게 나른한 노래의 여백을 듣게 했다. 대중보다 반 발자국 앞서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그의 노래는 대중적이지만 통속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한계령을 만들었으리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1871-1945)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