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간이 좀 있다.
토요일에 제법 덩치 큰 일본제 기계 하나를 인천 남동공단 모 공장에 팔고
설치 및 시운전, 작동법 교육을 해주고 왔다.
음악생활을 떠난 서른부터 3년전까지 근20년을 제조업을 하다 접고
지금은 시화공단에서 전세계 중고 공작기계를 수입해 와
완전 분해해 정비해 판매 및 수리,작동 교육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제조업을 접은 사연을 말하면 한때 이 땅 한강 이남 캬바레 올갠의 황제로 군림한
지금 흐르는 연주와 노래의 주인공 백승태씨처름 애잔한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언제가 됄지 모르지만 제조업을 접으며 공장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진 눈물을 이야기 할 날이 있을련지 모르겠지만......
아마 영원히 이 카페에서는 못하지 싶다.
다음 월요일부터 또 덩치가 제법 큰 한 50톤짜리 태평양 건너 내 고향 부산항에서
이곳 경기도로 경부선을 타고 트레일러 몇대에 나눠져 실려온 기계를 조립해 가동시켜 보아야 한다.
대형기계는 콘테이너에 실을 수 없어 분해해 들어오기 때문이며
영국에서 가동하던 기계라 하는데 그건 돌려 보아야 알며 여러가지 결점이 나온다.
물론 그것을 감안해 기계를 구입하지만.
일이 시작되면 마음의 각오를 해야한다.
하다보면 기계부의 노화는 물론 전기부 이상이나 유공압부에 골을 싸메야 한다.
유럽제 기계는 연식이 오래된 것은 부품을 입수하기 상당히 곤란해
왕왕 그 부분을 다 들어내고 개조해 버리는 것이 더 경비가 적게 들때가 많기에 위험부담이 많다.
그 분야에 초고수가 아니면 아예 손 안대는 것이 상책이며.
담배도 떨어지고 추억을 찾으러 갈 시간이 가까워 오기에 빨리 이 글 끝을 맺으야 겠다.
인덕원 무도장으로 해서 안양 구 액스포인 대명.
지금도 상호가 대명인가 모르겠지만 이 목소리의 주인공인 백승태 선배가
현재 그 집에서 올갠연주 하는 것으로 소식을 들어 알고있다.
인덕원 무도장은 한 7년 전 개업할 당시
내가 활동하던 모 춤카페에서 처음으로 무리를 지어 일부러 가 준 곳이다.
옆에 막강한 동경이 있었는데 장사가 될련지 내심 걱정도 해주었는데
댓년전에 춤을 끊고부터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
그리고 액스포도 추억이 제법있는 곳인데 그 집은 전통적으로 음악이 참 좋았다.
이 백승태씨의 테잎은 80년 초반 것으로 그 당시 그가 소유한 이 소리의
초일급 뺀드가 아니고는 가격때문에 엄두도 못냈으며
그 당시 강남의 24평 아파트를 한체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지금 그 아파트가 평당 5000만원을 하니 계산을 해보면.
이 올갠은 야마하 FX시리즈로 풍금처름 생겼다 하여 박스올갠이라 하며
지금도 추억의 명기로 꼽는데 요새도 현장에서 마스터 올갠(여러대의 올갠중에서 주가돼는 올갠)으로 사용한다.
사람이나 기계나 아무리 좋아도 세월이 흐르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 꿈의 올갠이.......
백승태씨도 올갠연주로 번 돈 나이트 두 번이나 했다 다 털어먹고
육십이 됀 나이에 이젠 한물간 캬바레란 곳에서 일을하고 있으니
일생의 목표가 정주영씨 10분의 1이라도 돼는 공장을 하는게 꿈이었으며
그것을 눈물로 접은 나처름 추억이 그래도 아름답다고나 해야할까 뭐라 해야할까.
그래도 백승태씨는 이렇게 소리라도 남겼는데.
추억의 그곳들을 찾아 이제 나서야 겠다.
며칠후면 기름 작업복에 스패너와 전기 테스터를 들고
앞으로 빨라야 두달이 돼어야 그 육중한 놈과의 싸움이 끝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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