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진우석의 우리산 기행 <33> 무주 덕유산
<덕유산(德裕山)은 덕이 넉넉하다는 이름처럼 품이 넓은 산이다.
전북 ‘무진장’ 고을의 무주와 장수, 경남의 첩첩 산마을인 거창과 함양에 걸쳐 있다.
지리적으로 금강의 본류와 가까워 겨울철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 게다가 날이 추워지면 습한 대기가
산을 넘다가 그대로 얼어버려 나뭇가지마다 환상적인 상고대(얼음꽃)가 피어난다.
그래서 겨울 덕유산은 눈꽃 얼음꽃 가득한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진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4번째로 높은 1천614m의 고도와 험준한 산세 때문에 일반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산꾼들 사이에서는
지리산 종주보다 덕유산 종주가 더 힘들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산세가 지리산보다 역동적이고 산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주리조트의 스키 곤돌라가 덕유산 최고봉인 향적봉 턱밑까지 파고들면서 산꾼은 물론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곤돌라를 이용해 향적봉만 찍고 내려오는 것은 눈앞에 보물을 두고 돌아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향적봉에서 부드럽게
이어진 중봉까지 갔다가 오수자굴을 거쳐 구천동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아보자. 이 길은 걷기에도 좋고 덕유산 최고의
보물인 덕유평전과 구천동계곡을 둘러볼 수 있는 환상적인 산길이다. 거리는 약 10㎞ 4시간쯤 걸린다.
산행 준비물로는 아이젠과 스패츠, 강한 바람에 대비한 방풍복이 필수다. 중심 잡기 좋고 무게를 분산할 수 있는 스틱이 있으면
더욱 좋다.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10분쯤 오르면 설원이 펼쳐진 설천봉(1천530m)에 닿는다. 워낙 고도가 높은 탓에
설천봉은 구름 속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몽환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구름 속에서 스키와 스노보드를 탄 사람들이 마치
유령처럼 나타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설천봉을 상징하는 팔각형 건물 상제루(레스토랑) 아래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된다. 뽀드득 소리 내며 걷는 눈길은 언제나 싱그럽다. 여기서 향적봉까지는 쉬엄쉬엄 가도 2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등산로 양옆으로 빽빽이 늘어선 나무들이 마치 사슴 뿔처럼 보이는 가지를 드리우고 연출하는 눈꽃터널을 지나는 맛이 각별
하다. 이윽고 멀리 향적봉이 눈에 들어온다. 눈꽃터널을 벗어나면서 강풍이 몰아치자 정신이 번쩍 든다. 향적봉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온 이나 구천동계곡에서 걸어온 산꾼들이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이다. 덕유산은 남한
산줄기들의 중심에 놓인 만큼 탁월한 조망을 보여준다.
남쪽의 지리산, 동쪽의 가야산, 서쪽의 대둔산 등의 고산준령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특히 거창의 첩첩 산줄기 뒤로 소머리처럼 솟은 가야산에서 떠오르는 일출은 산악사진가들 사이에서 소문난 명장면이다.
향적봉에서 지척인 대피소 건물로 내려가니 박봉진 산장지기가 반갑게 맞아준다. 그는 덕유산이 좋아 1997년부터 구천동에
들어와 살다가 2000년에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덕유산에 조난자가 생기면 구조대보다 항상 그가 먼저 달려간다고 한다.
산에서 살면서 산을 닮아가는 탓일까. 덕유산의 너른 품처럼 마음씨가 넉넉하고 따듯하다. 대피소에서 언 몸을 녹였으면
중봉(1천594m)으로 향한다. 이 길에는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의 가지마다 새 생명처럼 싱그러운 눈꽃이 가득
하다. 중봉은 덕유연봉이 기막히게 보이는 최고 전망대다. 발아래 펼쳐진 평평한 땅이 덕유평전인데, 봄여름가을 야생화가
그득하고 겨울이면 눈꽃으로 은세계를 이루는 곳이다. 덕유평전에서 미끄러져 삼각뿔처럼 치솟은 무룡산(1천492m)과
삿갓봉(1천264m)을 넘어 남덕유산(1천507mㆍ봉황산)으로 흘러가는 산세는 백두대간 능선 중에서 가장 역동적이다.
거기에다 무룡산 왼쪽 멀리 허공에 일필휘지로 피어난 지리산 능선에 입이 떡 벌어진다. 하산은 중봉에서 오수자굴 방향을
잡는다. 내려오다 뒤돌아보면 주목으로 가득 찬 향적봉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가파른 길이 끝나는 지점에 거대한 오수자굴이
웅크리고 있다. 오수자굴 안은 각양각색의 얼음 기둥 전시장이다.
굴 안 낙숫물이 얼어붙으면서 얼음 종유석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수자굴에서 백련사까지는 참으로 호젓한 길이 이어진다.
길섶에 푸른 산죽들이 눈을 맞은 모습은 태초의 시간처럼 고요하다. 백련사 입구에 도착하면서 구천동계곡과 합류한다.
구천동의 원명은 구천둔(九千屯). 예전에 이 골짜기에서 성불공자(成佛功者) 9천 명이 살아서 그와 같이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길은 널찍이 비포장도로가 나 있어 걷기에 수월하다. 이어 금포탄, 사자담, 인월담 등의 명소를 지나게 된다.
겨울이라 계곡의 빼어난 맛은 없지만 눈과 어우러진 풍경은 심신을 포근하게 정화한다.
▨주변 명소
무주리조트 = 1990년 무주구천동의 절경을 끼고 세워진 무주리조트는 중부권의 산악형 종합휴양지다.
스키장 시설로는 6.2km의 실크로드 슬로프를 포함해 30여 면의 슬로프를 보유하고 있다.
1997년에는 이곳에서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열리기도 했다.
리조트 안에는 나무와 자연 색상으로 디자인한 가족호텔(13개동 950실),
단체 방문객과 일반인을 위한 신세대 취향의 국민호텔(1개동 418실),
알프스풍의 호텔 티롤(118실) 등 일일 6천618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다.
이밖에 키드랜드ㆍ워터파크 등의 놀이시설과 컨벤션센터,
한방요양원, 피트니스센터 등 다양한 부대시설이 있다. 무주리조트 063-322-9000.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88고속도로 거창 나들목으로 나와 무주리조트를 찾아간다. 버스는 대전을 경유해야 한다.
무주리조트의 곤돌라는 오전 9시~오후 4시까지 다닌다.
향적봉 대피소(063-322-1614). 금강이 굽이쳐 도는 무주 지역에는 민물고기 요리가 유명하다.
동자개 등 민물 잡어로 죽을 쑨 어죽, 쏘가리매운탕 등을 맛볼 수 있다.
읍내 금강식당(063-322-0979)과 내도리의 큰손식당(063-322-3605)이 잘한다.
<사진 설명>중봉 근처 설경을 즐기는 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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