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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체질적 층위*
-黃眞伊와 松伊 시조의 체질적 상상력 고찰-
이형우**
차 례
1. 푸는 말
2. 상상력과 체질
3. 황진이와 송이 시조의 상상력 구조
4. 맺는 말
□ 참고문헌
<국문초록>
이 글은 문학 작품에 내재해 있는 체질적 상상력과 이를 언어화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다.
체질은 유형적 경향성[typological tendency]이다. 그것은 ‘우주-사회-가문-개인’을 지향하는 층위[時空]다. 이 중의 특정한 시공을 지향하는 주체를 각각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이라 한다. 태양인은 우주적 상상력, 소양인은 사회적 상상력, 태음인은 가문적 상상력, 소음인은 개체적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런 성향은 폐비간신(肺脾肝腎)의 대소(大小)에서 결정된다. 폐비간신은 세상을 인식하는 틀[frame]이다. 이것은 공사(公私)의 분기점이고, idealism과 realism으로 구체화 된다.
음인은 수신제가(修身齊家)를, 양인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중시한다. 상상력은 ‘修↔不修’, ‘齊↔不齊’, ‘治↔不治’, ‘平↔不平’의 국면에서 생겨난다. 체질은 이러한 특정 방향을 선호한 결과다. 그로 인해 항상성을 유지한다. 어제의 그를 오늘의 그로 인식하고, 내일의 그를 예측하게 한다.
우리 내부에는 모든 체질이 내재해 있다. 상황에 따라, 사건에 따라 출몰한다. 우리 삶이 다양성을 지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주체[체질]에 의해 영향을 받고, 가려져 있을 뿐이다.
이리 보면 우연도 필연[체질]의 소산이다. 상상력은 이러한 몸의 질서를 바탕으로 현상과 그 너머를 그리거나 심연을 헤아리는 능력이다. 그것은 이목비구(耳目鼻口)로 구체화 된다. 이목비구(耳目鼻口)는 감관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외물을 잇는 몸의 통로이자 이를 포착하는 렌즈다.
원관념[Tenor]은 macro와 micro다. 이들은 폐비간신(肺脾肝腎)의 강도(强度)에 따라 피사체의 크기와 위치가 달라진다. 같이 보더라도[시선] 포착하는 지점[응시]이 각각이다. 체질적 사유는 프레임과 초점을 유형화 한다. 여기서 나온 이미지는 응시의 산물이다. 체질은 일률(一律)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질적 상상력은 개성인 동시에 타성이다. 그 자체에 동일성 사고와 비동일성 사고가 혼재해 있다. 삶과 문학은 이 모순율 위에 남은 흔적이다.
이러한 논지를 황진이와 송이의 시조에 적용한다. 두 사람이 산 시대는 달랐다. 하지만 신분이 같고, 전하는 작품도 많고, 수준도 뛰어나며, 원작 시비도 있다. 체질적 상상력으로 이들의 작품이 어떻게 비슷하고 다르며, 또 같은 작가의 작품끼리도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를 살핀다.
주제어: 체질시학, 체질, 상상력, 우주, 시간, 공간, 시조, 황진이, 송이
* 이 논문은 2012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 하였음. [NRF-2012S1A5B5A07036264]
** 한양대학교
1. 푸는 말
이 글은 작가의 (문학적)체질1)과 상상력과의 상관성을 살핀다. 그 이론적 근거를 이제마의『東醫壽世保元』2)에 둔다. 여기에 적합한 text로 황진이 (黃眞伊)와 송이(松伊)의 시조를 택했다.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모두 기생으로 사대부 중심 시대에, ‘합리성이 창의성을 억누르는 지점에서’ ‘즐거
운 반역’3)을 일으켰다. 생몰년을 모른다. 현전하는 작품도 가장 많다. 원작자에 대한 시비가 엇갈린다. 원전 확정이 어려워 ‘정확한 자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4)가 크다. 그러나 차이점도 적지 않다.
황진이는 16세기 전반에, 송이는 18세기 중반에 살았다고 추정한다. 황진이에 대한 기록은 약간 전해오긴 해도5) 송이는 전혀 없다. 황진이에 대한 연구는 이어져 오지만 송이는 전무한 상태다.6) 그렇다면 출처도 불분명하고 의견도 분분한 작품을 어떻게 그 작가와 연관 지을 수 있는가? 그것은 전해 오는 작가의 삶과, 작가의 확실한 작품에 근거해서 유사성을 찾는 길밖에 없다.
작품의 DNA를 밝혀 주는 단서가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자유분방한 듯해도 그렇지 않다. 상상력은 ‘고도로 조직화 되어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7) 몸과 마음의 성향에 따라 작동한다. 그것이 체질이다. 체질은 상상력의 근원이다. 체질은 폐비간신(肺脾肝腎)의 대소(大小)에 따라 나눠진다. 이들의 대소가 특정 공간의 위치 에너지를 강화하거나 약화시킨다. 폐비(肺脾)는 ‘이상주의[idealism]와 공유(公有)’의 은유이고 간신(肝腎)은 ‘현실주의[realism]와 사유(私有)’의 은유다. 이목비구(耳目鼻口)는 이것을 구체화 한다. 이것도 인식 범위를 나타내는 은유다. 이목비구(耳目鼻口)는 모두 동일한 기능을 한다. 하지만 폐비간신의 영향력에 비례하여 이를 비추는 범위와 초점이 다르다.
체질은 어떤 상황이든 대상이든 비슷한 방향으로 파악하려 한다. 또, 체질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 원하는 방식대로 보려 한다. 늘 익숙한 곳으로 향하려 하고 미숙한 곳은 피하려 한다. 이것이 혼돈[Chaos]에 질서[Cosmos]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그것은 대상과의 동일성을 찾으려는 사유다. 그래서 체질에서 파생되는 상상력은 한계가 있다. 다양하고 폭넓은 듯해도 의외로 그렇지 못하다. 작품 하나 하나를 놓고 보면 모두가 개성적이지만 종합해 보면 千篇을 제어하는 一律이 있다. 창조적 글쓰기는 체질적 사유를 극대화 하고 타성을 극복한 결과물이다. 이런 잣대로 황진이와 송이의 시조를 살핀다. 부분과 전체의 역학 관계에서 이들 작품은 각각 어떤 특성을 지니는지를 알아본다.
1) 이 글에서 언급하는 체질은 작가와 화자[작품]의 체질을 총칭한다. 체질시학은 작품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거쳐 나온 이상 그 작가와 당대의 생물학적 의타기성(依他起性)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래서 물리학적 사고인 자율성 [자기원인(自己原因)]을 부정한다. 인간이 순간순간 다른 모습으로 살아야 하듯이 작가는 작품의 화자를 다양하게 등장시킨다. 또, 아무리 다르게 살려고 해도 그 방식을 못
버리는 것처럼 아무리 다양한 화자가 등장해도 작가의 문학관을 뒤엎는 화자는 드물다. 그래서 작가의 체질과 작품의 체질을 별개로 두지 않는다.
2) 李濟馬, 『詳校懸吐 東醫壽世保元』, 昭和十六(1931), 以文社
3) 진중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휴머니스트, 2008), 362면.
4) 이화형, 「時調를 통한 松伊와 黃眞伊의 同異性 비교 고찰」, 『時調學論叢』 제35집(韓國時調學會, 2011), 190면.
5) 장시광은 황진이에 관한 각 문헌의 기록을 정리하여 자료집으로 발표했다. 장시광, 황진이 관련자료, 『東方學』제3집(한서대학교 동양고전연구소, 1997), 387~417면.
6) 황진이와 송이를 동등하게 비교 연구한 글은 이화형이 유일하다. 여기서는 기녀라는 한계로 인해 직면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를 밝히고 있다. (이화형, 위의 글, 167~193면.) 이영태는 기녀 시인들의 작품을 주제별로 나누어 도표화했다. 여기서 황진이의 시조는 대남성적 감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 5수[상사4, 수작1], 탈대남성적 작품 1수로 분류했다. 송이는 대남성적 감성 10수[상사7, 자기확인3]로 나누고 있다. 이영태, 「조선 후기 수작ㆍ기지 시조의 행방」, 『時調學論叢』제28집(韓國時調學會, 2008), 268면.
7)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이상원 역,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에코의 서재, 2012),44면.
2. 상상력과 체질
지금까지의 상상력 연구는 정의와 역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의로 보는 상상력은 과거의 단순한 기억과 다르고, 현실성이 없는 공상과도 다르며, 있지도 않는 것을 현실로 생각해 내는 妄想이나 幻覺과도 다르다. 나아가, 그것은 이미지를 획득하거나 창조하는 능력이다. ‘맥락을 넘어서거나 옮기는 은유의 능력’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상징하는 힘’ 8)이고 보이는 것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것을 풀어9)내는 유추의 힘이다.
또 상상력은 근원적인 욕구 표출 기제’10)여서 각 나라만의 독특한 소재에 나타나거나11) 그 나라의 언어로도 나타난다.12)
상상력의 역할 연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상상력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자신에게 상징적 재현’13)하거나, 미적 관조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독특하고 다양한 사고14)를 가능하게 한다. ‘끊임없이 드러내고 감추는 세계의 변화를 포착할 수 있고, 모호한 느낌을 선명하게,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각인’15)하게 한다. 상상의 세계 속으로 도피함으로써 주어진 상황 속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현실을 정복16)하게 한다.
나아가 상상력은 소통과 조화에 무게17)를 두어야 하고, 이성을 넘어서는 방편18)이기에 교육이 필요19)하다. 상상력은 창조 대상20)이며, 복잡해져 가는 세상을 맺어주는 일관된 맥이나 원리가 되어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균형감각을 회복21)하는 대안일 수 있다.
8) 강동수ㆍ김재철, 「근대의 상상력 이론: 상상력의 기능과 근원」,『哲學論叢』제45집(새한철학회, 2006), 5~23면.
9) 구연상, 「서술과 상상력」, 『하이데거 연구』제21집(한국하이데거학회, 2010), 225~231면.
10) 김지선은 동아시아 상상력의 근원을 ‘怪’, ‘異’, ‘神’에서 찾아 ‘怪力亂神’을 ‘유교 시대의 인간들이 지닌 욕구 표출 기제로 본다. 김지선, 「동아시아 상상력의 조건과 토대」, 『인문학연구』제40집(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7), 84면.
11) 김정숙은 이와 궤를 같이 하여 조선 시대의 귀신, 요괴, 지옥은 조선만 특유의 상상력 특징이 있다고 본다. 김정숙, 「조선시대 비일상적 상상력」,『漢文學論集』제35집(근역한문학회 2012), 95~115면.
12) 구본관은 언어적 상상력을 ‘①개인과 공동체, ②구어와 문어, ③과거와 현재, ④담화ㆍ문장ㆍ어휘 단위’로 나누어 고찰한다. 구본관, 「한국어에 나타나는 언어적 상상력」,『국어국문학』제146집(국어국문학회, 2007), 55~89면.
13) 홍명희, 「이미지와 상상력의 존재론적 위상」, 『한국프랑스학논집』 제49집(한국프랑스학회, 2005), 98면.
14) 김춘일은 상상력의 인식 기능으로 ‘①자의적 기능, ②지향적 기능, ③통찰적 기능, ④창조적 기능, ⑤통합적 기능’을 들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나치게 당연시했던 삶의 태도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김춘일, 「상상력의 인식 기능: 온전한 삶과 관련한 하나의 현상학적 시각」,『造形敎育』제26집(한국조형교육학회, 2005) 89~116면.
15) 김혜영, 「문학교육과 언어적 상상력」, 『국어교육』제128집(한국어교육학회, 2009),577~604면.
16) 지영래, 「사르트르의 상상력 이론과 도피로서의 문학」, 『프랑스어문교육』제39집(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2012), 544면.
17) 진형준, 「상상력과 학문의 상호 연계성」,『인문학연구』, 제40집(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7), 125~126면.
18) 이도흠은 이미지와 상상력이 이성을 넘어서는 방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도흠, 「상상력의 열림과 닫힘: 그 생성 원리 및 양상」, 『국어국문학』제146집(국어국문학회,2007), 115~146면.
19) 김현자는 보편적인 공감을 만들어 내며,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김현자, 「현대문학과 상상력의 총체성」, 『국어국문학』제146집(국어국문학회, 2007), 37~145면.
20) 홍성욱은 ‘상상력과 이성 개념 모두를 포괄하는 인간의 창의적이고 강력한 지적 능력을 지칭하는 새로운 개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홍성욱, 「상상력의 과학, 과학의 상상력」,『독일어 문화권 연구』제18집(서울대학교 독일어문화권연구소,2009), 280면.
21) 진형준은 상상력을 사분(四分)한다. 첫째, 상상력이 원초적 인식이며 둘째, 일정한 구조를 지니고 있고 셋째,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넷째, 인류학과 새로운 인식을 낳는다고 본다. 진형준, 「상상력 연구 방법론 Ⅰ-상상력과 예술적 창의성」,『불어문화권연구』제 11집(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소, 2001), 113~120면.
정의는 본질에 관한 질문이고 역할은 책임에 관한 고민이다. 이는 상상력을 바람직한 현실 만들기[至於至善]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지선(至善)은 개인적 노력[明明德]과 제도적 장치[親民] 위에서 가능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수신(修身)이다. 수신은 내면적으로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이라는 축덕(畜德) 과정을, 사회적으로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라는 전개 절차를 밟는다. 안팎이 모두 수신(修身)으로 연결된다.22) 상상력은 수신(修身)의 개인적ㆍ사회적 속성이다. 달리 말하면 상상력은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과 답이다. 그를 통해 개인과 사회는 자유와 자율을 확보한다.
이 글에서는 상상력을 장기(臟器)의 특성에서 나온 산물로 본다. 그것은 유형화 해 있고, 유형은 틀 안[논리]에서의 사유다. 그 틀은 공간이고 동시에 시간이다. 그래서 상상력은 몸이 시공을 인식하는 사차원(四次元)이다. 몸[체질]이라는 기표가 지닌 네 가지 기의다.
양인은 지어지선(至於至善)하는 기준이 바깥[객관]에 있다. 음인은 안[주관]에 있다. 그 다음은 ‘밖에서 밖’으로[태양인] 향하거나, ‘밖에서 안으로’[소양인] 향한다.
마찬가지로 음인은 ‘안에서 밖으로’[태음인] 향하거나, ‘안에서 안으로’[소음인] 향한다.
태양인은 천시[우주의 흐름]를 잘 읽고 사무에 뛰어나다. 세상에 대한 관심은 소양인과 태음인의 공통 분모지만 소양인은 세회[공적인 시스템]와 초계파적 모임인 교우를 중시하고, 태음인은 연줄[人倫]에 의거한 무리짓기[黨與]를 우선하는 점이 다르다. 소음인은 생태계[지방]를 보는 능력이 뛰어나며 거처를 최선으로 여긴다. 상상력은 각 체질의 이러한 특성이 구체화 해 있다. 그래서 같이 눈, 코, 귀, 입을 가졌지만 투영되는 결과는 다르다.
"이제마의 사상론이 인류역사에 의미하는 가장 위대한 공헌은 서구의 근세적 인간관이 주로 시각(visual feeling)에 기초해 있는데 반하여, 서구인들이 무시하고 경멸해온 복감(腹感)(visceral feeling)의 몸각을 경험에 체계적으로 적용시켰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화이트 헤드가 서양 철학자들을 복감을 통해서 얻어지는 우주에 대한 정보를 경멸하고 오로지 시각에만 관심을 집중시켰다는 一 針見血의 명언을 한발자국 더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23)"
김용옥은 서구인들의 사유가 인간을 몸 전체의 유기적 통합 구조로 보지않고 특정한 감각 기관의 특정한 활동으로 파악하는 점을 비판한다. 특정 감각이란 五官[眼ㆍ耳ㆍ鼻ㆍ舌ㆍ身]이다. 같은 어족[인도유러피안어군]의 언어적 상상력[사고유형]에 의해 불교의 五境[色ㆍ聲ㆍ香ㆍ味ㆍ觸]이 설정된 것도 같은 이치로 본다.
그는 동양 고유의 사고로 구멍[竅]을 든다. 여기에는 九竅와 七竅가 있다. 이것은 표면적 현상이지 어떤 감각 기관으로서 의 독립된 실체가 아니다.24) 체질 시학 상상력은 사관(四官)을 중심으로 한다. 그것은 이목비구(耳目鼻口)로써 인식 범위를 지칭하는 은유다. 서양의 이목비구(耳目鼻口)와는 개념이 다르다. 넓을수록 보편적이고 좁을수록 특수하다. 귀는 가장 넓고 입은 가장 좁다. 같이 보되, 태양인은 우주를, 소양인은 사회를, 태음인은 가문[조직]을, 소음인은 개체[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이 초점은 폐비간신(肺脾肝腎)의 특성에 따른 현상이다. 그래서 상상력은 폐기(肺氣), 비기(脾氣), 간기(肝氣), 신기(腎氣)가 작동한다. 그것을 일러 우주적 상상력, 역사적 상상력, 가문적 상상력, 개체적 상상력이라 한다. 체질은 특정 분야의 상상력을 가장 드러내는 선천적 능력이다. 이제마는 그런 특성을 제대로 살려 천만인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즐겁게 해야 한다25)고 했다. 이를 도표화 하면 아래와 같다.
<표 1> 체질적 특성과 상상력
<표 1>은『東醫壽世保元』에 근거한 체질적 사고의 특성이다.26) 상상력은 반드시 발상 지점[人事]과 확산 차원[天機]이 있다. 발상 지점이란 시를 쓰게 되는 동기고 확산 차원이란 그것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표 1>로 보면 체질적 사고는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수평으로 1: 1 대응하는 모양새를 지닌다. 상상력이 결코 자유분방한 사고가 아님을 말해 준다. 이는 또 모순성 즉, 강약(强弱)의 성향을 띠고 있음을 나타낸다.
강약은 기울기고 기울기는 편향성이다. 강함은 익숙한데서 오는 동일성의 사유를, 약함은 미숙함ㆍ생소함에서 오는 비동일성의 사유를 낳는다. 체질적 상상력은 이런 특성이 잘 나타난다.
태양인의 귀는 천시에 밝아 사무[公務]에 능해도 코는 조직력은 약하다.
소양인의 눈은 사회[世會]를 잘 살피지만 입은 터전[地方]에 대해선 잘 모른다.
태음인의 코는 사조직이나 가문[人倫]은 잘 다스려도 귀는 천시에 어둡다.
소음인의 입은 자신을 잘 헤아리지만 눈은 사회를 제대로 모른다.27)
그래서 태양인의 코는 사람을 잘 사귀나 간은 강력한 리더십이 부족하다.
소양인의 폐는 사무에 민첩하고 노련하지만 신(腎)은 현실성이 부족하다.
태음인의 신(腎)은 늘 안정된 현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폐는 공정하지 못하다.
소음인의 간은 조직을 잘 이끌지만 비(脾)는 두루 사귐이 취약하다.28)
체질은 가장 많은 빈도수를 일컬음이고, 다음에도 그러한 방향을 선택할 확률이다.
그러나 작가는 매순간 변신한다. <표 1>의 도식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다. 그것이 아래의 체질시학 상상력 구조표다.
<표 2> 체질시학(體質詩學) 상상력 구조표
22) 김용옥, 『대학ㆍ학기 한글역주』(통나무, 2009), 205면.
23) 김용옥, 『아름다움과 추함』(통나무, 1987), 59면.
24) 김용옥, 위의 책, 58면.
25) 이제마식으로 보면 상상력은 哀怒喜樂으로 언어화 된다. 哀怒喜樂은 느긋하거나[性]촉급하게[情] 나타난다. 삶과 예술 모두가 哀怒喜樂의 발현이다. 감정 조절이 바람직하지만 한번 나타낼 때는 그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술책을 지니라 한다.
‘태양인의 노함은 한 사람이 천만인을 노하게 해야 하는데 그 노함에 천만인을 노하게 할 술책이 없으면 천만인을 감당하기 어렵다.
소음인의 기쁨은 한 사람의 그것으로 천만인을 즐겁게 해야 한다. 그럴 방책이 없으면 틀림없이 천만인을 감당하기 어렵다.
소양인의 슬픔은 한 사람의 슬픔으로 천만인을 슬프게 해야 한다. 그것이 천만인을 움직일 수 있는 방책이 없으면 틀림없이 천만인을 감당할 수가 없다.
태음인의 즐거움은 한 사람의 즐거움으로 천만인을 즐겁게 해야 한다. 그것이 천만인을 즐겁게 할 수 없으면 틀림없이 천만인을 감당하기 어렵다.’
(太陽人怒 以一人之怒而怒千萬人其怒 無術於千萬人則必難堪千萬人也
少陰人喜 以一人之喜而喜千萬人 其喜 無術於千萬人則必難堪千萬人也
少陽人哀 以一人之哀而哀千萬人 其哀 無術於千萬人則必難堪千萬人也
太陰人樂 以一人之樂而 樂千萬人 其樂 無術於千萬人則必難堪千萬人也.
李濟馬, 「四端論」, 『東醫壽世保元』, 7면.
26) 『東醫壽世保元』에서는 대우주[天機]와 소우주[人事]를 각각 사분(四分)한다. 대우주[天機]는 하늘의 질서에 배속되어 있고 소우주[人事]는 인간의 삶에 속해 있다. 천기는 과학적, 절대적 시공이고 인사는 개인적, 상대적 시공이다. 천기가 ‘天時, 世會, 人倫,地方’로 나눠지듯 인사도 ‘事務, 交遇, 黨與, 居處’로 나눠진다.
事務는 天時와 연결되는 객관적 업무가 지배하는 시공이고 交遇는 世會와 이어져 국가적 차원의 공무가 전개
되는 시공이다. 黨與는 人倫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동아리]적 얽힘이 펼쳐지는 시공이고, 居處는 地方에서 일어나는 개별적 존재 양태가 널려있는 시공이다. ‘천시-사무, 세회-교우, 인륜-당여, 지방-거처’는 선천적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배우지 않아도 특정방면으로의 능력이나 상상력을 타고 난다.
표1의 상상력 명칭은『東醫壽世保元』에 나오지 않는다.
27) 太陽之耳能廣博於天時而太陽之鼻不能廣博於人倫.
少陽之目能廣博於世會而少陽之口不能廣博於地方.
太陰之鼻能廣博於人倫而太陰之耳不能廣博於天時.
少陰之口能廣博於地方而少陰之目不能廣博於世會. 李濟馬, 같은 책, 8면.
28) 太陽之脾能勇統於交遇而太陽之肝不能雅立於黨與.
少陽之肺能敏達於事務而少陽之腎不能恒定於居處.
太陰之腎能恒定於居處而太陰之肺不能敏達於事務.
少陰之肝能雅立於黨與而少陰之脾不能勇統於交遇. 李濟馬, 같은 책, 8면.
3. 황진이와 송이 시조의 상상력 구조
여기서는 <표 2>의 분류법을 바탕으로 황진이와 송이의 시조에 나타난 상상력을 살핀다. 두 사람의 상상력이 어떤 체질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를 밝힌다. 또, 비슷한 생각을 어떻게 달리 표현하는가도 알아본다. 화자는 일정한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대상[기호]들과 관계한다.29)
양인(陽人)은 기준점을 밖에서 찾으려 하고, 음인(陰人)은 안에서 찾는다. 밖을 기준으로 하면 전체와 부분의 대비가 명확해지고, 안을 기준으로 하면 구조나 속성이 자세히 드러난다.
황진이와 송이는 모두 인연[黨與]을 노래한다. 그런 점에서 <표 2>의 당여(黨與) 항목의 활용 방식이 나타난다. 이를 아래와 같이 수정하여 적용한다.
두 사람 모두 사사로움[인연]을 노래하되 대부분 잣대를 외부에 둔다. 황진이는 바깥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태양인적 상상력이, 송이는 바깥에서 안을비추는 소양인적 상상력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황진이 시조의 화자들은 천지인(天地人)과의 조화를 문제 삼고, 송이 시조의 화자들은 세상의 모순에 부대낀다.
왼편(아래)의 표에 적용하면 황진이의 화자는 우리[黨與] 문제를 천시[우주] 차원에, 송이는 세회[사회]에 견주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글은 양인(陽人)들이 드러내는 사사로움의 한 특성일 수 있다.
29) 아드리안 프루티거, 정신영 역,『인간과 기호』(홍디자인, 2007), 29면.
3.1. 바깥에서 바깥 보기
靑山裡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一到 滄海면 다시 오기 어려오니
明月이 滿空山니 쉬여 간들 엇더리 [4018]30)
위 시는 ‘우리’[黨與] 문제를 말한다. 그러나 화자는 훈수 두듯 ‘상대방 문제’ [밖]로 객관화 한다. 그 다음 ‘우주의 질서’[밖]에 기댄다. 청산에서 창해(滄海), 가까이서 멀리, 부분에서 전체로 확장한다.
님과 화자도 벽계수와 명월로 대칭(代稱)되어 그 일부를 이룬다. 청산은 세속의 유희 공간, 창해는 그와 상반
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청산은 청자의 집 밖, 창해는 집으로 읽을 수도 있다.
‘다시 못 오니’가 아니라 ‘다시 오기 어려오니’라고 한 점으로 보아 그런 해석도 가능하다. 님은 한 번 가면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런 집은 기생들에겐 창해와 다른 바 없다. 종합하면, 각 시어들은 화자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환경[地方]인 동시에 우주[天時]의 구성 요소다. 이를 재배열하면 아래와 같다.
화자는 청자를 설득하기 위해 상상력 공간을 확장한다. 청산은 넓지만[무한] 멀리서 보면 산 하나[유한]에 불과하다. 벽계수는 가까이 가야 보이지만 조금만 물러나도 잎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또, 청산에서의 즐거움은 바다에선 무상함이다. 청산은 청자의 의지가 통하지만 창해는 그와 무관하다. ‘수이감’은 이를 재촉하는 행위다. 그런데도 청자는 낮밖에 모르고, 청산에 묻혀있는 줄도 모르고, 내일이 어떻게 될지 관심 두지 않는다.
또 시간 변화를 통해 상상력을 강화한다. 벽계수는 창해(滄海)로 가는 시간이다. 낮은 바삐 흐르는 시간이다. 반면 창해(滄海)는 영원한 시간,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다시 오기 어려’운 시간이다. 하지만 창해만으로는 효과가 불투명하다. 그래서 명월로 보충한다.
해는 불변, 보름달은 변하는 시간이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과 같지만 보름달은 이 순간이다. 놓쳐선 안 되는 시간이다. 호기(好機)는 아무 때나 오지 않는다. 벽계수가 ‘쉬여’ 가야하는 분명한 이유다. 그렇지만 명월은 밤의 여왕답게 품위 유지를 위해 최대한 에두르는 화법을 구사한다. 푸르고 검고, 차고 비고, 오고 가고, 차고 기우는 이치를 들러리 세운다.
「靑山裡 碧溪水야」의 상상력 구조
30) 황진이의 시조, 박을수, 『시조대사전』下, 을유문화사, 1992, 1105면.
31) 황진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569면.
山은 녯 山이로 물은 녯 물 아니로다
晝夜에 흐르거든 녯 물이 이실소냐
人傑도 물과 도다 가고 안이 오노라 [2048]31)
靑山은 내 이요 綠水 님의 情이
綠水 흘너 간들 靑山이야 變손가
綠水도 靑山을 못 니져 우러 예어 가고 [4027]32)
[2048]에서도 화자는 바깥 현상에서 시의 물꼬를 튼다. 화자의 시선은 ‘산’[밖]-‘물’[밖]-‘人傑’[밖]로 이동한다. 옛과 같은 산[밖]에서 그렇지 않은 물[밖]로, 인걸[밖]로 옮아간다. 주야(晝夜)라는 시간은 그 대상들을 ‘옛것[산]과 새것[물]’, ‘같음과 다름’, ‘멈춤과 흐름’, ‘있음과 없음’, ‘감과 아니 옴’ 이라는 대립소로 만든다.
그 속의 인걸은 화자가 그리워하는 님33)일 수도, 한 시대를 풍미한 인재일 수도 있다.
[4027]에서도 구조가 유사하지만 다르다. ‘靑山’은 화자의 뜻이, ‘綠水’는 님의 정이 투영된 대리물이다. 상상력의 폭이 현저히 줄어들어 있다. 그래서 앞의 시들에 비해 울림이 약하다.
이동연은 황진이의 자연관이 보편적 철학을 결여했다고 본다. 특히 이 작품에서 산과 물을 나와 님의 관계를 투사해서 자기 중심적 입장에서 하소연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34)고 한다.
아래의 상상력 표는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상상력의 폭이 가족과 개체에 한정해 있다. 綠水와 靑山의 개체적 관계에만 집착한 결과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황진이의 자연관은 일관성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합류하지] 못하는 현실 인식이다. 산은 흐르고 싶어도 흐를 수 없고 물은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다. 이런 처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님의 뒷 모습을 지켜보는 일뿐이다. 님이 ‘우러예어 가’ 주기를 바랄 뿐이다.
「山은 녯 山이로」의 상상력 구조표
「靑山은 내 이요」의 상상력 구조표
32) 황진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下, 110면.
33) 조세형은 인걸이 가지는 의미를 ‘변화’의 속성을 지닌 일반 인간이지만, 특히 가고 아니오는 정인(情人)이라고 본다. 조세형, 「한국 애정시가의 전통과 시공간적 상상력」, 『국어국문학』제147집(국어국문학회, 2007), 67면.
34) 이동연은 기녀들의 자연관을 통틀어서 그렇게 보고 있다. 이동연, 「여성 고전시가 작가들의 의식 세계」,『한국 고전 여성문학의 세계(I)』(이화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연구소,1998), 33면.
一笑 百媚生이 大眞의 麗質이라
明皇도 이러므로 萬里 幸蜀 시도다
馬嵬에 馬前死니 그를 슬허 노라. [3434]35)
송이의 화자도 인연[黨與]을 바깥 문제로 말한다. 바깥에서 바깥을 향한다. ‘슬허 ’는 ‘그’는 양귀비다.
그와 관련된 역사의 장면들을 떠올린다.
‘①궁궐[화자의 외부]→ ②도피처[화자의 외부]→ ③죽음[화자의 외부]’으로 이어지는 행적을 열거하여 양귀비의 행복과 불행을 노래한다. 또, 시[외부]와 그림[외부]까지 인용한다.
이를 <표 2>에서 선택하여 시어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위의 상상력 지향도는 직선이다. 특수어를 사용하여 현학적인 과시를 하고 있다.
‘一笑 百媚生’은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에 나오는 시구다. ‘大眞의 麗質’은 양귀비다.
시 속의 그녀는 ‘고개 돌려 한 번 웃으니 온갖 교태 일어나서(回眸一笑百媚生) 육궁의 단장미녀 창백하(六宮粉黓無顔色)게’ 만들었다. 또, ‘幸蜀’은 사랑하는 여인을 따라 ‘행복한 촉나라 피난 길’을 간 현종의 행적이다.
이 역시 ‘明皇幸蜀’이라는 그림에서 따 왔다. 화자의 초점은 양귀비에만 있지 않다. 마지막 힘이 닿을 때까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정인(情人)도 병치한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在天願作比翼鳥)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在地願爲連理枝)’ 비는 두 사람의 사랑은 시(詩) 속의 일이라 해도 부럽다. 그것은 어떤 고난 길이라도 행복하다. 그래서 그 길은 ‘幸蜀’ 이다.
양귀비는 화자의 결여를 충족시킨 대리인이다. 그러나 그런 부러움은 양귀비의 비참한 죽음 뒤로 숨겨 버린다. 이렇게 바깥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은 드러난 바깥 사건과 숨어 있는 내면적 욕망이 상충한다. 동일 공간으
로 이어지는 상상력은 같은 애틋함도 더 비장하게 만든다.
35)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940면.
銀河에 물이 지니 烏鵲橋 단 말가
쇼 잇근 仙郞이 못 건너 오단 말가
織女의 寸만 肝腸이 봄 눈 스 듯여라 [3201]36)
[3201]도 인연을 밖의 문제로 푼다. 수평적 발상법은 [3434]와 같다. 겉으로는 하늘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설화적 상상력을 펼친다. 그러나 실상은 세속이다. 설화의 시공은 ‘銀河에 물’이 져야 ‘烏鵲橋’가 뜬다. 仙郞이 ‘못 건너’ 가는 것은 仙郞[밖]의 의지와 무관하다. 직녀의 기다림 역시 마찬가지다.
‘봄 눈 스 듯’이 문제다. 이 말의 관습적인 용법은 긍정적인 상황에 사용된다. 하나 여기서는 반대다. ‘봄 눈 스 듯’ 녹는 직녀의 ‘肝腸’[밖]은 반어적 상황을 극대화한다. 그 현미경적 시선이 하늘 공간의 환상성을 깨뜨린다. 그곳도 체체의 구속을 받는 이승과 마찬가지다. 결국 구조적 모순을 노래한 사회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36)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881면.
玉 튼 漢宮女도 胡地에 塵土 되고
解語花 楊貴妃도 驛路에 렷니
閣氏 一時花容을 앗겨 무 리오 [2965]37)
「玉 튼 漢宮女도」의 상상력 구조
위의 작품도 [3434]와 비슷하다. 다만, 인연을 세상일[世會]과 이웃일[人倫]로 내려 놓아, 상상력의 층위가 인접하게 이동한다는 점이 다르다.
현재 우리 삶 밖에 있는 ‘玉 튼 漢宮女’[왕소군], ‘解語花’[楊貴妃]의 비극을 통해 ‘閣氏’ 이야기를 한다. ‘閣氏’는 이웃이니 역시 화자의 바깥이다. 모두가 ‘一時花容’을 지닌 존재라는 점에서 같다.
‘앗겨 무 리 오’는 옛 일을 거울 삼아 오늘을 살라는 명령이다. 동시에 화자의 마음이기에 청유다.
밖에서 밖으로 향하는 시선은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객관성이 다양한 시공[상상력]을 확보하면 해석이 풍요로워 지고, 직선으로 이어지면 비장감이 강화됨을 알 수가 있다.
황진이는 거의가 세상을 우주의 축소판으로 본다. 상상력의 폭을 天地人 만큼 넓게 전개하여 의미를 중첩시킨다. 그래서 시어가 빚어내는 울림이 크다.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도 중의적[간접적]이다.
반면, 송이는 역사화 한 세상을 단적[직선]으로 추적한다. 화자를 드러내는 방식도 3인칭이지만 감정 이입이 강하다. 둘 다 슬픔과 분노가 바탕이다. 그러나 그것을 각각 우주와 역사라는 틀에 비추었다. 그리하여 개인 문제를 통사적 관점에서 바라 보게 한다.
37)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815면.
3.2. 바깥에서 안[內] 보기
곳 보고 춤추는 나뷔와 나뷔 보고 당싯 웃 곳과
져 둘의 랑은 節節이 오건마
엇더타 우리의 랑은 가고 아니 오니 [284]38)
솔이 솔이라 니 무 솔만 너기다
千尋 絶壁에 落落長松 내 긔로다
길 아 樵童의 졉낫시야 걸어볼 줄 이시랴 [2395]39)
바깥에서 안을 보는 관점은 송이의 시에서만 나타난다. 이는 무엇으로, 어느 지점, 어느 각도에서, 어떻게 비추느냐에 따라 대상이 달리 보인다. 위의 두 시도 ‘인연’[黨與]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서는 가족적 상상력과 개체적 상상력의 층위만 존재한다.
「곳 보고 춤추는 나뷔와」의 상상력 구조
「솔이 솔이라 니」의 상상력 구조
[284]의 바깥 프레임은 화기애애(和氣靄靄)다. 안쪽 프레임은 독수공방(獨守空房)이다. 바깥으로 안쪽을 겹치니 한숨이 나온다. ‘곳 보고 춤추는 나뷔’[밖] 간에 ‘節節이 오’는 ‘저 둘의 랑’[밖]과 ‘우리 랑’[안]을 견준다. ‘節節이 오’는 모습은 화자의 소원이다. 서로 보고 ‘춤추’고 ‘당싯 웃’는 삶은 누리고 싶다.
반면, [2395]의 외부 앵글은 십벌지목(十伐之木)을 외치는 조무래기들이다. 내부 앵글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을 강화하는 화자다. 외부를 내부에 겹치니 분노만 치솟는다. 화자는 스스로를 범접하기 힘든 ‘千尋 絶壁’ 꼭대기의 ‘落落長松’으로 여긴다.
하지만 ‘길 아 ’ 미천한 것들[樵童]은 화자를 그들과 동일시한다. 그래서 ‘솔이 솔이’로 부르며 아무[무] 솔에게나 하는 ‘졉낛’을 걸려 한다. 여기서는 일방적 삶의 단면이 나타난다. 그래서 위와 아래, 크고 작음이 상대적이고, 외부와 내부의 단절이 심각하다.
두 작품은 因緣의 상대성을 말한다. 신분상으로 보면 [284]의 화자는 樵童과 다름없다. 그렇지만 화자는 높은 상대에겐 나약하다. 하나, [2395]에서는 처지가 바뀌어 있다. 여기의 화자는 단호하고 냉정하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면모가 나타난다.40) 화자에게 사랑은 문이다. 이 문을 열고 닫는 데는 열쇠가 필요 없다.
코드가 맞으면 절로 열리고 그것이 다르면 절로 닫힌다. 열리면 가족이고 그렇지 않으면 남이다. 그것이 가족적 상상력과 개체적 상상력의 차이로 나타난다.
밖에서 안 보기는 송이의 상상력 공간이 더 축소해 있다.
38)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89면.
39)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663면.
40) 이화형은 이 시조가 ‘사랑의 진실과 인간적 존엄에 대한 강렬한 주장’이라고 한다. 이화형, 앞의 글, 172면. 반면, 이동연은 ‘낙락장송에 투사된 고고함의 정체는 아무에게나 베어지지 않기 위’함이라 한다. 이는 사람의 관계를 전제로 한 것으로써, 신분이 높은[천암절벽] 누군가에게는 베어질 수 있다는, 자기 중심적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이동연, 앞의 글, 31~32면.
3.3. 안에서 바깥 보기
‘안에서 바깥보기’는 ‘바깥’을 기준으로 안팎을 볼 때보다 화자의 목소리가 크다. 황진이의 작법에 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송이는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冬至ㅅ 기나 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 니불 아 서리 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 구뷔 펴리라 [1286]41)
화자는 기다림을 우주적 차원에서 푼다. 어휘가 내포한 의미도 함축적이다. 발상 동기는 외로움이고 기준점도 화자의 내면이다. 그 다음 방안의 일[외로움]을 방 밖의 시공과 연결한다. 독수공방에서 인식하는 창 밖은 ‘冬至ㅅ’이고 ‘기나 긴 밤’이다. 그것은 계절 특성이라는 절대적 질서[天時]인 동시에 화자의 현실적 환경[地方]이다. 그래서 2차 지향은 우주적 차원과 개체적 차원이다.
다음은 그 대상으로 방 안[개체-地方]을 비춘다. 화자의 차디찬 ‘니불’이 보인다. 독수 공방의 겨울은 더 춥고 지루하다. 화자는 그런 시공에 반기를 든다. 기발한 생각으로 외로움을 극복한다.
밤이라는 시간을 몸[허리]으로 본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내친김에 종이나 옷감으로 바꾸어 버린다. 가위질하고 풀칠하는 대상이다. 우주의 질서가 잘리고 붙는 개벽이 일어난다. 고통과 외로움을 규방의 일상으로 반전시켜 버린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고 장엄하게 외친 陸史식 겨울나기와는 전혀 다르다. 화자는 그날 위해 차근차근[서리서리] 준비하여 조근조근[구뷔구뷔] 즐기려[펴려]한다. 오늘의 동짓달 긴 밤보다 님 오신 그날의 짧은 밤을 더 걱정한다.
41) 황진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361면.
내 언제 無信여 님을 언 속엿관
月沈 三更에 온 이 전혀 업
秋風에 지 닙 소야 낸들 어이 리오 [817]42)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던가
이시라 더면 가랴마난 제 구야
보고 그리 情은 나도 몰라 노라 [2792]43)
[817]의 화자는 방안에서 ‘月沈 三更’인 바깥을 본다. 늦가을 ‘三更’이니 창은 닫혀있다. 그렇지만 예민한 청각은 ‘秋風에 지 닙 소’를 발걸음 소리로 착각하게 한다. 다시 창을 여니 허연 달빛만 쏟아진다.
‘낸들 어이 리오’ 는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푸념이다. 외부는 달빛[月沈]과 바람소리로 화자의 기대치를 높이고, 깊은 어둠[三更]으로 절망감을 깊게 한다. 방안에서 이동하는 상상력의 폭은 ‘天時의 시공[月沈 三更ㆍ秋風] → 인연[黨與]의 시공[님의 부재] → 내면[居處] 세계[체념] → 내면[居處] 세계[기다림]’로 漸降한다.
[2792]의 ‘그리 情’은 시선을 안에서 바깥을 향하는 구조임을 알려 준다.
다만 외향하는 구체적 대상들이 없을 뿐이다. 오직 님과의 재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논리적으로는 ‘제 구 야’ 보냈으면 님도 ‘제 구 야’ 화답하며 와야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계산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화자는 ‘제 구 야’보낸 의연함을 뒷감당 못 한다. ‘제 구 야’ 보냈으면 혼자서도 잘 지내야 하건만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바깥 상황은 화자를 ‘내 일’을 내가 ‘모로’고, 겉과 속이 다른 주체로 일그러뜨려 놓았다.
위의 두 작품은 ‘낸들 어이 리오’와 ‘나도 몰라 노라’로 같은 맥락이다.
자포자기형 진술은 여유있고 의연했던 앞의 작품들과 다르다. 특히 [1286]에서 나타났던 슬기롭고 당찬 화자와는 딴판이다. 그래도 [817]은 시어 사용이 비슷하지만 [2792]은 전혀 다르다. 진솔한 목소리는 황진이 특유의 여유로움을 덮어 버렸고 상상력을 구동하는 차원이 다르기에 해석의 폭 역시 좁아졌다. 체질적 상상력으로 보면 작품 [2792]44)는 異質的이다. 작가 속의 다른 작가적 특성은 작품의 다양성이기도 하고 원작시비에 말려 들 위험도 있다.
42) 황진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241면.
43) 황진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769면.
44) 김용덕은 이 시를 황진이가 시조의 문형을 구성하는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고 본다. ‘제구ㅌ여’를 중장에 붙여도 종장으로 내려도 독특한 운율과 의미 구조를 생성한다고 본다.
그리되면 ‘가랴마난’과 ‘보 고’ 다 대칭적으로 살아나고, 통사구조의 기교가 唱으로 극대화 된다고 한다. (김용덕, 「黃眞伊時調論」, 『人文論叢』제4집(한양대학교 인문화학대학, 1982), 33~35면.)
또, 안지영은 기생들의 애정시가의 사례로 이 시를 든다.
‘복잡 미묘한 심경을 입체적으로 표현해주는 경지’에 다다랐다고 한다. (안지영, 「기녀시조의 시조사적 의미」, 『時調學論叢』제17집(한국시조학회, 2001), 240면.)
닭아 우지 마라 일 우노라 랑 마라
半夜 奏關에 孟嘗君 아니로다
오은 님 오신 날이니 아니 우다 엇더리 [1118]45)
위 시의 화자는 방 안의 시간과 방 밖의 시간을 견준다. 방 안의 시간은 주관적이고 절대적이지만 밖의 시간은 객관적이고 상대적이다. 이 틈새로 상상력이 작동하여 ‘방’[내부] → ‘계명구도(鷄鳴狗盜)’[외부: 먼 시간] → ‘닭’[외부: 가까운 시간]으로 펼쳐진다. 여기서도 송이 특유의 사회ㆍ역사적 상상력이 나타난다.
화자는 님과 함께 행복한 밤을 보내고 있다. 방 밖은 어둠이 지속돼야 하는데 새벽이 오려한다. 닭이 ‘일 우노라’[일찍 우노라] 두렵다. 그 강박이 계명구도(鷄鳴狗盜) 고사를 떠 올린다. 먼 역사 속, 함곡관(函谷關)에 퍼진 가짜 닭울음 소리는 진짜 닭들을 같이 울게 만들었다. 그래서 명재경각의 맹상군(孟嘗君)을 살렸다.
그러나, 오늘은 밤이 조금이라도 더 길어야 한다. 그래서 일찍 울면 안 된다. 더디 울면 좋고 ‘아니’ 울면 더 좋다. 님에게 해야 할 하소연을 닭에게 돌려 한다. 앞의 시에서 보여주었던 한 성깔은 온데 간 데 없다. 역사적 상상력은 이렇게 ‘닭소리’ 앞에 웅혼해지고 초라해 지는 상황을 재치있고 절묘하게 대비시켜 놓는다.
45)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315면. 이화형은 이 작품을 ‘한량 박준한과 만나 만단정회를 풀고 사랑의 희열에 젖어’ 부른 노래라 한다. 이화형, 「時調에 나타난 기녀들의 존재의식 탐구」, 『韓國言語文學』제46집(한국언어문학회, 2001), 3면.
남은 밤에 내 혼 니러안쟈
輾轉反側야 님 둔님 그리고
리 내 몬져 츼여셔 제 그리게 리라 [737]46)
이리 야 날 속이고 져리 야 날 속이니
怨讐 이 님을 니 졈즉 다마는
前前에 言約이 重니 못 니즐가 노라 [3246]47)
내 思郞 주지 말고 의 思郞 貪치 마소
우리 두 思郞에 雜思郞 幸혀 섯길세라
一生에 이 思郞 가지고 괴야 녀 노라 [802]48)
위의 시들은 앞에서 거론한 작품들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체질적 특성은 사라지고 없다. 어느 작가의 이름을 붙여도 차이가 없을 화법들이다. 각각 내부와 외부의 부조화를 분노([737])와 실망([3246])과 의지([802])로 나타낸다.
[737]의 화자는 잠 못 들어 뒤척이다 일어난다. 밖은 어둡고 밤은 깊어 고요하다. 안과 밖의 경계는 ‘님 둔님’과 화자의 갈림이다. 고요는 숙면이고 뒤척임은 불면이다. ‘님 둔님’은 깊은 잠에 들었지만 ‘님 둔님’을 그리는 화자는 전전반측(輾轉反側)한다. 그런 공간을 순식간에 오가다 내면을 주시한다. 거기에는 죽어서라도[‘츼여셔’] 이 고통을 님[제]에게 주고 싶은 독한 화자가 있다.
[3246]에는 맨날 속는 화자[내부]와 맨날 속이는 님[외부]이 있다. 매번 ‘이리’ 속고 ‘저리’ 속기에 님을 당장 잊고 싶다. 하지만 ‘前前에 言約’ 때문에 잊을 수 없다고 합리화한다. 님이 무심하여 ‘重’한 줄 몰라도 자신만은 신의있게 살겠다 다짐한다.49) [802]도 비슷하다.
화자에게 사랑은 ‘一生’ 지녀야 할 가치다. 그런데 바깥을 보니 사랑이 물건이다. 주고 받고, 뺏고 빼앗긴다.
기다림과 절망은 아픔과 원한으로 사무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무엇, 그것이 사랑이고 그리움이다. 그것으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한다. 어쨌든 송이의 시조는 거의 인간 관계에서 빚어지는 불협화음을 형상화 한다. 자기 중심이 분명하여 시비가 확실하고, 부대끼는 모습이 선연하다. 작품의 편차가 큰 사실은 작가가 다혈질임을 말해준다. 역시 원작 시비의 빌미도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시는 자신만을 세계를 노래한 ‘안에서 안[內] 보기’는 없다.
46)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219면.『樂學拾零』에서는 이정보의 작품이라 적혀있다.
47)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892면.
48) 송이의 시조, 박을수, 앞의 책 上, 236면.
49) 기생들이 이러는 데는 양란(兩亂) 이후에 부각된 ‘열녀(烈女)’ 열풍의 영향으로 보는 연구자들이 많다. 그러나, 남녀 간의 사랑은 소유욕이 기본이다. 누구든 사랑하는 그 사람만을 원하는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잊지 못한다. 사랑의 숭고함은 여기에 있다. 그리 보면 기생이라고 해서 한 사람만을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뭇 남성을 접해야 하기에 더 간절할 수도 있다. 또, 작품 속의 진술은 그 순간의 상황이다. 문학적 진실은 글 안에서 유효하다.
4. 맺는 말
문학 체질 연구는 작가의 실제 체질 파악과 무관하다. 체질 규명은 문학 연구의 본류일 수 없다. 오히려 문학의 다양성을 폄훼하여 단순화 오류에 빠지게 할 우려가 크다. 뿐만아니라, 선천적인 체질과 후천적인 기질과의 관계 규명이 어려워 설득력이 미흡하다. 작품에서 체질을 연구하는 목표는 글쓰기 방식 파악이다. 그를 통해 그 작품의 개별적ㆍ종합적 의미를 살피기 위함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다양하고 어떻게 도식적인지를 밝혀 내고, 유사한 성향을 지닌 작가들과는 또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가도 찾기 위해서다. 이런 취지로 기녀 시인이었던 황진이와 송이의 문학 체질과 상상력의 관계를 알아 보았다. 상상력이 어떤 근거로 생겨나고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살폈다.
상상력은 몸이 현실을 대하는 최적ㆍ최고의 대응 방식이다. 무엇을 보든 어떤 상황에 놓이든 유사하다. 그것은 또 익숙한 대로 보고 느끼려는 습성에 기인한다. 이것이 체질적 사고, 체질적 상상력이다. 체질은 지어지선(至於至善)을 설정하는 방향이다. 범인류적 관심, 사회ㆍ역사적 교훈, 연줄 강화, 자기 완성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같은 시공을 공유하고 같은 대상을 보면서도 인지하는 결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같은 체질끼리는 비슷하다.
체질은 비슷하면서도 다름이다. 우리가 다양한 사유를 하는 듯해도 몇 번 들어보면 그 말이 그 말이다. 세월이 가도 그 사람은 그 사람이다. 문학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체질적 상상력은 이런 장점을 얼마나 잘 살리고 단점을 잘 극복했는가를 보여준다. 개성과 타성 사이에서 어떻게 수신(修身)하여 존재이유를 밝히는가를 알게 해 준다.
황진이와 송이는 작품으로 귀납하면 두 사람은 양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황진이의 (문학적)체질은 태양인이고 송이는 소양인이다. 이런 특징은 ‘바깥에서 바깥보기’에서 잘 나타난다. 여기서는 개인의 사랑 노래도 대우주적 대사회적 코드에 맞추고 있다. 이들의 질문은 우주와 역사[사회] 속의 삶과 사랑은 무엇인가였다. 그러나 ‘바깥에서 안’을 보거나, ‘안에서 바깥’을 보는 경우는 절제력이 떨어진다. 절제력은 작품 수준이다. 수준차가 심한 이유는 체질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 했음을 알려준다. 동시에 원작자를 의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황진이의 상상력은 시공을 동시 다발로 겹치게 하여 폭넓은 해석의 길을 열어 주었고, 송이는 시공을 고정하여 주제를 강렬하고 명확하게 밝혀 주었다. 황진이는 사회ㆍ역사적 상상력이 거의 없었고 송이는 사회적 상상력이 지배적이었다. 황진이는 세상[사회]을 빼고 세상 이야기를 하고 송이는 주로 古今의 역사에 견주어 현실을 토로했다. 황진이는 天地人의 경계를 아우르며 무아지경(無我之境)을 추구했고 송이는 사회의 트라우마에 갇혀 유아지경(有我之境)을 강화했다. 황진이는 우주의 질서[天時]에 인연[黨與]을 겹쳐 읽었다. 그래서 늘 전체와 부분을 조망하는 시선이 있다. 송이는 역사[사회]의 비극에 자신을 견주었다. 그래서 항상 슬픔과 분노가 팽배해 있다. 작품으로 보는 황진이의 성품은 느긋하고 송이는 급박하다.
글쓰기 방식으로 봐도 황진이는 황진이답고50), 송이는 송이답다. 황진이의 시어는 평범하고 송이의 시어는 특별하다. 황진이는 일상어를 살려 썼고 송이는 관념어를 애용했다. 황진이의 글은 깔끔하고 송이의 글은 까칠하다.
황진이의 언어 구사력은 여유롭고 송이는 긴박하다. 이런 기류들이 전혀 다른 문학적 울림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황진이는 발상법과 어휘구사력이 판에 박은 듯 비슷하다. 한 편 한 편으로는 명작이지만 모으면 반감된다. 송이도 협소한 공간 활용이 비슷하다. 극심한 작품의 편차는 어휘의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문학 작품에서 상상력은 실생활과 언어 세계의 연결 고리다. 실생활은 현실이고 언어세계는 가상이다. 상상력은 이 두 세계를 결합하여 조화나 부조화, 그것을 넘어 선 세계를 보여준다. 상상력은 자유롭고 우연한 산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작가의 체질[관성]이 작동한다. 체질은 익숙한[강한] 것을 익숙한 방법으로 강화하려는 동일성 사유와, 미숙한[약한] 것과 접목하려는 비동일성 사유가 공존한다.
오늘의 개성을 내일의 타성으로 만든다. 창의적 상상력이란 체질이 지닌 동일성ㆍ비동일성의 사유를 극대화하고 이를 초극하려는 ‘자기 싸움’[修身]의 산물이다.
50) 임주탁은 황진이다움을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心眼]’이라고 한다. 이는 상대방의 처지까지 깊이 헤아릴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이라고 푼다. 임주탁, 「이야기 문맥을 고려한 황진이 시조의 새로운 해석」, 우리말글 제38집(우리말글학회, 2007), 226~2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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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투고일 : 2013. 3. 31 심사 완료일 : 2013. 5. 3 게재 확정일 : 2013. 5. 12
Abstract
Constitution and imagination
Lee, Hyeong-woo
The object of this article is to clarify the imagination is a product of the ‘Constitution.’ The constitution is a typological tendency. It is a dimension directed toward ‘Universe–Society–Family–Individual.’ Among these, a particular directional subjects are called Taeyang-in(person), Soyang-in, Taeum-in and Soyang-in. Taeyang-in regards Universal imagination important and Soyang-in regards Social imagination important where as Taeyang-in values Family imagination and Soyang-in values Individual imagination. This tendency is determined by the size of lung, liver, pancreas and kidneys. These organs are metaphors of frames that recognize the world. The frames create the line between public and private. That can be categorized as idealism and realism. Um-in[陰人]'s tendency toward ‘self-enriching’ and ‘harmonizing the family’ (private/realism) is differ from Yang-in[陽人]'s tendency toward ‘govern the society ‘ and ‘delivering the peace’ (public/idealism). Imagination is a byproduct of interaction between self-enriching and none self-enriching, harmony of family and none harmony of family, govern and none govern, peace and none peace. The Constitution is a habit that prefers a particular frame above. Therefore maintains continuity of the body. The fact we can recognize a person of yesterday as person of today and let us guessing the person of tomorrow is an effect of Constitutional thinking.
However, within each of us exist all type of Constitution. It dictates itself according to a situation and an event. That is the reason for our lives to have many variables. The only fact is that it is most affected by the most frequent type of subject (Constitution) and hidden. In this point of view, coincident is a product of incident (Constitution). The imagination is an ability that is based upon order of the Physical Constitution to go beyond reality. This becomes concrete with ears, eyes, nose and mouth. Ears, eyes nose and mouth is not words for senses but passages and lenses that connect outer world. The tenor equals macro and micro. According to the strength of each lung, pancreas, liver and kidneys, the object's position and focus is changed. The Constitutional thinking patternizes frames and focus. The image that is reflected is a product of gazing. It not only has its own characteristics but also has similarities. It is the same among people with the same Constitution. It is because the constitution strengthens a rule. Therefore, the Constitution is individual-ness at the same time otherness. Within it, coexists similarity and none-similarity. The life and literature is a remaining mark of this contradiction.
I am applying this observation to poetry of Whang Jin-i and Song-i. Two authors were from different eras but they were the same class and left abundant body of quality work. With Constitutional thinking, this article examines above matters.
Keywords
Constitutional poetics. Imagination. Universe. Time. Space. Sijo. Whang Jin-i. So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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