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씨 깐다”라는 이야기
“호박씨 깐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호박에 얽힌 여러 이야기 중 사람들에게 가장 씨가 잘 먹히고 오랜 세월동안 우리말로 전해오는 익숙한 상말에 속하는 말이라 하겠다. 우선 호박에 관련된 상말 한 두 가지를 먼저 음미해 보자. “호박씨를 까는지 수박씨를 까는지? 이 말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통 모를 일이다라던가 속이 의뭉하다고, 미덥지 않아 되뇌는 말이고,“호박에 줄 잘 친다고 수박 되냐?” 이 는 제아무리 눈속임 치장을 해도 바탕은 별 할 수 없는 말을 빗대어 하는 상말이라 하겠다.
이 글의 주제인 “호박씨 깐다”라는 말은 간단히 말해서 앞에선 안 그런척하면서 뒤에선 모사를 꾸미거나 남몰래 재미를 본다는 소리다.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얘기다. 어리석은 체하면서 엉큼한 짓을 하는 짓을 한 경우를 가리켜 ‘호박씨 깠다’거나 ‘뒷구멍으로 호박씨 깠다’고 표현한다. 좀더 부연하면 입에 발린 칭찬을 하면서 돌아서서는 비방하고 욕을 하는 사람을 흔히 ‘호박씨 까는 놈’이라고도 한다.
모든 말엔 그 사연과 어원이 된 동기가 있겠지만 이 “호박씨 깐다”라는 말엔 가슴 아픈 사연이 전해져 온다. 오랜 옛날 어느 고을에 찢어지게 가난한 한 쌍의 선비부부가 살고 있었다. 선비인 남편은 오직 글공부에만 매달리고 살림은 아내가 도맡아 꾸려갔다. 부부는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훗날을 바라보며 어려움을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가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방문을 열자 아내가 뭔가를 입에 넣으려다 황급히 등 뒤로 감추는 것을 봤다. 남편은 아내가 자기 모르게 음식을 감추고 혼자 먹는 것으로 알고 불쾌하게 여기며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당황한 아내는 울상이 돼 아무 말도 못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방바닥에 호박씨 하나가 떨어져 있어 그것이라도 먹으려고 집어서 입에 넣었는데 빈 쭉정이더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다. 얘기를 들은 남편은 가슴이 미어졌다. 둘은 결국 껴안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가난을 한탄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날의 일이 우연히 고을에 알려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만 “호박씨 깐다”는 말이 나쁜 뜻으로 변했다. 선비부부의 애달픈 사연과는 전혀 다르게 남모르게 제 배만 채우려드는 행동을 꼬집는 말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남 몰래 엉뚱한 짓을 하는 것을 일러 “호박씨 깐다”가 말하기 시작했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은 더욱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뒷구멍은 항문을 일컫는 말로 더러운 것, 못된 짓의 상징어가 돼버렸다.
그런데 “호박씨 깐다”라는 말과 비슷한 뜻의 ‘뒤 담화’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서로 통하는 유사의미의 말이다. 우리말의 뒤(後)와 한자의 담화(談話)가 합쳐진 말로 남을 헐뜯거나 돌아서서 수군대는 것을 가리킨다. 얼마 전 뉴스에 ‘뒤 담화’라는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을 들었는데 바 이 말을 전제로 한 영화제목을 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듣기 좋게 꾸며 말한 뒤 안 보이는 데선 비난한다는 얘기이다. ‘뒤 담화’는 ‘뒤다마’로 발음되기도 한다. 우리말의 재미를 찾으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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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북소리 죽비소리 철부지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청암/정일상
첫댓글 속담유래도 모르고 그동안 써먹었는데 이제야 알게되었네요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