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문경 대야산에 올랐다. 문경에선 새재를 품고 있는 문경의 진산 주흘산이 지명도 면에서 가장 앞서지만 산꾼들에게 물어보면 백두대간 대야산을 으뜸으로 칠 정도로 풍광이 아주 빼어나다. 대야산에는 '버섯 전시장'이라 불러도 될 만큼 다양한 종류의 버섯이 자란다. 당시 동행한 산꾼 심만섭 씨는 버섯이 발견되면 기자를 불러 일일히 설명해 주었다.
하산 후 맛본 능이버섯 싸리버섯 밤버섯 솔버섯 가지버섯 등 대야산에서 자생하는 버섯을 넣은 전골은 지금도 떠올리면 입에 침이 고일 정도로 별미였다. 산지에서 자생하는 버섯 고유의 향이 이렇게 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다음 카페 '부산맛집기행' 조성화 회장으로부터 이번 주 소개할 집이 버섯전문점이라는 얘길 듣고 잠시 떠올린 기억속의 한 대목이다.
더덕구이.
'속리산 버섯집'. 조 회장은 "아마도 부산서는 가장 오래된 버섯요리 전문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위치는 중구 부평동 부평동시장, 흔히 말하는 사거리시장 안에 위치해 있다. 부산의 대표적 먹을거리인 어묵가게 골목에서 불과 30~40m쯤 떨어져 있다고 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까.
재래시장 내에 있지만 뜻밖에도 간판이랑 식당 내부가 깔끔하다. 사장 겸 주방장인 김갑임(54) 씨는 "지난해 세밑 이 시장에 화재가 발생, 새로 공사를 할 때 우리 가게도 덩달아 리모델링을 했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점이 또 눈에 띄었다. 출입문에 송이를 의미하는 '마사다께'라는 히라가나가 보인다. 김 사장은 "한곳에서 24년쯤 버섯요리 전문점을 하다 보니 제법 유명세를 타 가을이면 우리집 송이요리를 맛보기 위해 부산을 찾는 일본인들이 제법 있다"고 덧붙였다.
울릉도 취나물
일행은 조 회장과 부평동에서 의료기상사를 운영하며 이 집을 자주 찾는 '부산맛집기행' 회원 최명호 씨 등 3명. 최 씨의 안내로 더덕구이 중간 크기(1만 원)와 버섯전골 작은 것(1만 원)을 주문했다. 전골은 밥과 함께 나온다. 메뉴판에는 자연산송이 전골, 구이 등이 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와 관련 김 사장은 "송이의 경우 고향인 산청과 그 주변인 함양 거창 등 지리산 권역에서 채취한 것을 사용한다"며 "요즘엔 냉동보관기술이 발달해 향이 잘 살아 있다"고 말했다.
돌판에 나온 더덕구이는 약간 매웠고 돼지고기가 들어 있다. "원래 버섯과 닭고기가 궁합이 좋은데 닭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바꿔봤더니 반응이 좋아요."
물김치
취나물 무침, 고추장아찌, 물김치, 김치전, 김치, 마늘장아찌, 고등어구이가 나오는 밑반찬도 하나같이 깔끔하다. 시원한 맛에 먹는 물김치는 입안에 향이 돌면서 감칠 맛이 나고 울릉도산 취나물은 단골손님들이 가장 좋아한다. 무 배추는 하동의 밭에서 직접 키워 아예 거기서 김치를 담가오고, 마늘은 지인이 농사를 지어 직접 장아찌를 담아 보낸다. 고추는 영양 것만 사용하며 고등어구이는 매일 아침 공동어시장에서 직접 사와 아주 싱싱하다. 쌀은 하동, 흑미는 남해산이다. 식당 벽에 붙어 있는 '우리 업소는 국내산 쌀 배추 김치 돼지고기 쇠고기만 취급합니다'라는 문구가 빈말이 아니다.
버섯전골과 밥이 함께 나왔다. 표고 양송이 새송이 백일송이 목이 느타리버섯이 주재료이다. 밥은 공기밥이 아니라 약간 더 큰 그릇이다. 육고기가 아니라 버섯이다 보니 밥을 많이 담는데도 밥을 남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버섯전골은 모순 같지만 얼큰하면서도 시원하다. 재차 맛을 봐도 그렇다. 맛깔스런 반찬과 기름진 밥 그리고 기가 막힌 버섯전골은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금세 한 그룻 뚝딱 비운다. 지난해 문경 대야산에서 맛본 자연산 버섯전골에 버금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버섯으로 만든 술도 있다. 더덕 영지 송이로 만든 버섯주(3000원), 자연산송이주(5000원)가 그것이다. 식사 후 영지버섯을 달인 영지차도 원할 경우 제공된다. 커피 또한 멜라민이 검출되지 않은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 김 사장은 "단지 몇천 원 차이일 뿐"이라고 말한다.
초행이라면 찾기가 어렵다.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1호선 자갈치역 3번 출구로 나와 옛 삼보예식장을 지나 부평동 사거리로 가는 도중 우리은행 맞은편 BYC 가게로 들어오든지, 옛 미문화원 쪽 큰 도로에선 부산은행 부평동 지점에서 부평동시장 쪽으로 내려오면 만난다.
우리은행 인근에 주차장도 있다. 시간 제한없이 무료. (051)245-0464
◆ 주인장 한마디
- "손님들 절반 이상인 단골들 입맛 대부분 기억해"
배드민턴 동호인인 김갑임(사진) 사장은 배포가 큰 여장부였다. 이 불경기에 식재료와 심지어 커피까지 최고급으로 사용하는 데다 가격까지 현실적으로 받고 있어 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려울수록 나눠 먹어야죠"라며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불황이라 지금까지 써 오던 것을 한 단계 낮은 등급으로 낮추면 단골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도 말했다.
김 사장의 단골들에 대한 배려는 아주 깊었다. 찾아오는 손님들의 절반이 단골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단골들의 입맛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했다. 오늘 기자와 합석한 최 사장의 경우 평소 약간 싱겁게 드신다고 말했다. 물어보니 정말이었다.
거의 매일 찾는 단골들을 위해선 버섯의 종류를 약간 달리하고 곁들이는 양념 또한 변화를 준다. 똑같은 맛을 내는 요리는 산해진미라도 물리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요즘에는 기억력이 점차 줄어 단골들의 취향과 입맛을 기억하기 어렵다고 한다. 단골들을 위한 맞춤식 식단도 기억력 감퇴로 이제 오락가락한다는 것. 메모라도 해야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 사장만큼 손님들을 배려하는 식당은 아마도 없을 듯싶다.
"버섯만큼 가격에 비해 맛이 있고 영양가가 풍부한 재료가 없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최고의 웰빙 식품이 아닙니까."
단골들 중 알 만한 유명 인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걸작이었다.
"거 있잖아요, 대학교수 유도 선수(하형주였다), 개그맨 이경규 김영철, 지금은 말해도 되나요 전경환 씨요." 약간 머쓱했던지 한마디 더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