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 오래된 추억의 기록입니다. 앨범에 붙어있던 빛바랜 사진을 스캔해서 수정한 영상이라 디테일이 분명치 않습니다.
런던(London)
타워 브리지(Tower Bridge)
영국의 수도 런던, 천하를 지배하던 빛바랜 영광이 낮게 깔린 도시를 남북으로 가르며 템스(Thames)강이 흐른다. 우리가 묵은 Tower Thristle Hotel은 그 강에 걸린 가장 상징적인 다리, 타워 브리지(Tower Bridge) 바로 옆에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명소가 실제 눈앞에 있는 것이 하도 신기해 어두워진 후에도 몇 번씩 밖에 나가 인기척 없는 다리를 서성댔다. 형언할 수 없이 가슴을 적시는 여정, 런던의 밤안개가 강을 덮고 있었다. 타워 브리지라는 이름은 40m 높이로 서있는 두 개의 고딕식 탑과 근처에 위치한 런던타워로 인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중앙 60m는 큰 배가 지날 때 위로 열리는 도개교이며 양 기슭 쪽으로 각 80m가 현수교다. 두 탑 상부도 한 쌍의 보행교로 연결돼 있어 도개교를 여닫는 동안 건너다니게 했다는데 지금은 전망통로로 이용된다. 당초 1년에 6000번 개폐하던 다리는 현재 연간 500회, 하루에 한두 번 정도 열린다. 현대식 높은 다리로 고쳐 세우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지만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호텔을 떠나 다리가 들리는 모습을 못 본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894년에 개통된 교량은 바로 옆에 있는 런던타워와 잘 어울리는 경관을 이루었으며 탑의 내부는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런던타워(Tower of London)는 템스 강 북쪽 언덕에 축조된 중세의 요새다. 왕궁으로도 사용됐지만 왕족을 비롯한 고위 정치범을 유폐하거나 처형했던 감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왕관이나 왕실의 보물,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등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영국 국회의사당(Houses of Parliament)
근대 의회의 요람으로 일컬어지는 영국국회는 런던 중심부 템스강변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of Westminster)을 의사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11세기에 건설된 이 궁전에 계속 왕이 거주했으며 13세기 중반에 시작된 의회는 전통적으로 왕의 거처에서 열렸다는데 1512년의 화재로 헨리 8세가 왕궁을 옮겨간 후 남북 300m에 이르는 거대한 건물이 의사당으로 정착됐다고 한다. 장대한 규모를 가진 네오고딕 양식의 역사적 건조물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돼있다. 의사당 북쪽에 솟은 길쭉한 탑이 유명한 빅벤(Big Ben)이다. 빅벤이란 원래 시간을 알리는 무게 13.5톤의 거대한 종을 지칭했는데 현재는 시계탑, 더 나아가 의사당 자체를 뜻하는 대명사로 사용된다. 수평으로 긴 궁전 끝에 수직으로 서있는 시계탑의 격조 높은 대조는 가히 런던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손색이 없다. 높이 96.3m의 탑은 세로가 강조된 섬세한 패턴으로 이뤄졌으며 지상 55m되는 곳에 직경 7m의 큰 시계가 4면으로 설치돼있다.
시계탑 반대인 의사당 남쪽 끝에는 높이 98.5m의 빅토리아 탑(Victoria Tower)이 솟아있어 건물 전체로 균형을 이루고 안정감을 더해준다. 강 쪽에서 바라보는 사진은 오전에 찍는 것이 무난하다. 안개를 통한 원경도 런던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 나쁘지 않다. 의사당 서쪽으로는 고딕 양식의 성당인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이 인접해서 자리를 잡고 있다. 영국 국교회인 성공회 성당으로 1066년 이래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된 곳이다. 최고의 성지로서 왕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주로 이곳에서 열렸으며 역대 국왕이나 역사상 저명한 인사가 다수 매장돼있다.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빅벤에서 북쪽으로 뻗은 화이트홀은 주로 정부청사가 들어서있는 거리다. 국방부 건물이나 셜록 홈즈의 추리소설로 친숙한 구 Scotland Yard(경시청)를 두리번거리며 1Km 정도 걸으면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 다다른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붉은 색 2층 버스(Red double-decker buse)와 검은 색 택시(Black cab)가 분주히 오가는 낡고 그윽한 거리에서 어느새 런던에 녹아든 자신을 발견하고 먼 나라를 걷고 있는 노스탤지어, 그 포만감에 몸을 맡긴다. 트라팔가 광장은 런던 중심에 있는 공공 모임의 장소이자 시원한 분수로 꾸며진 시민과 관광객의 휴식처다. 북쪽으로 내셔널 갤러리와 접해있으며 광장 중앙에는 높이 46m의 대리석 기둥이 솟아있고 그 위에 삼각모(Tricorne)를 쓰고 칼을 짚은 허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의 석상이 5.5m 높이로 서있다. 나폴레옹 전쟁 중인 1805년 10월 21일 영국정복을 위해 발진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맞아 넬슨의 함대는 스페인 남서 트라팔가르 곶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둔다. 영국 해군 27척과 연합군 33척이 맞붙은 전투에서 영국은 한척의 손실도 없이 적선 22척을 격파했지만 해전을 승리로 이끈 넬슨제독은 전투 중 총격을 당해 목숨을 잃고 만다. 넬슨 최후의 말은 “Thank God I have done my duty”였다고 한다. 광장은 트라팔가르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기위하여 1841년에 완성됐다. 넬슨 기둥의 대좌 4면은 해전을 묘사한 청동 릴리프로 장식돼있고 그 주위로 네 마리의 커다란 사자 동상이 놓여있다. 전투에서 노획한 적 함대의 대포와 총포를 녹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분수를 등지고 돌기둥 위에 서있는 넬슨제독은 자신이 지켜낸 국회의사당과 함께 영국해협 너머로 멀리 프랑스를 바라보고 있다.
서양의 넬슨을 거론할 때 항상 대비되는 동양의 명장이 우리의 이순신장군이다. 임진왜란 중 여러 해전에서 승리를 걷었지만 특히 1597년의 명량대첩에서 장군은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적군과 싸워 31척을 부수는 큰 전과를 올렸다. 동서 두 영웅의 운명은 여러모로 유사하다. 1598년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도 적탄에 쓰러져 최후를 맞는다.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내가 죽은 것을 알리지 말라” 그가 눈을 감으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광장 북쪽에 있는 내셔널 갤러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의 하나로 정문 입구 계단에 많은 관광객이 걸터앉아 쉬고 있다. 갤러리의 입장료는 무료이나 바로 영국박물관의 관람이 계획돼 있어 구경을 생략한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
영국 박물관은 런던 블룸즈베리, 라셀거리에 있는 세계최초의 공공박물관이다. 1753년 설립되어 1759년 일반에 공개됐으며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네오클래식의 현재 건물은 1852년에 완성됐다. 동서고금의 미술품과 서적을 비롯하여 인류 역사와 문명의 유산 약 800만점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최대급의 박물관으로서 그 중 15만점이 상설 전시되며 연간 입장객이 700만을 넘는다. 대영제국의 영광이 찬란했던 시절 국력을 배경으로 세계각지에서 맘대로 가져온 역사적 문화재가 적지 않아 도둑박물관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문화재의 원 소유 국 입장에서 국가질서가 어지럽던 시절 영국에 의해 강탈당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실제로 국가차원의 반환청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영국 정부에서는 자기들이 보호한 덕에 전란이나 파괴를 면할 수 있었으며 인류 공동의 자산인 만큼 우수한 시설에서 관리하여 많은 관광객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어떤 면 일리가 없지도 않으나 문화재 보존에 관한 인식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 시점에서 원래 있던 곳에 돌려주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 아닌가 생각한다.
소장품이 너무 방대하고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고대 이집트의 미라, 로제타스톤(Rosetta Stone), 파르테논(Parthenon)신전의 조각 등 이 박물관 3대 유물로 일컬어지는 전시품에 초점을 맞춰 돌아보기로 한다. 박물관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중정을 통해 고대 이집트 코너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있는 로제타스톤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1799년 나폴레옹 원정군에 의해 이집트 로제타에서 발굴된 검은 화강암의 이 비석은 상형문자 해독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하여 고대 이집트 역사상 최대의 발견으로 평가받는다. 비문은 3단으로 돼 있고 위로부터 이집트 상형문자인 히에로글리프(hieroglyph), 민중문자인 데모티크(Demotic) 그리고 고대 그리스 문자 순으로 조각돼있다. 세 종류의 문자로 기록된 글이 같은 내용일 것이라는 추정아래 많은 학자의 연구가 시작됐으나 영국의 토머스 영에 의해 고유명사 일부가 판명됐을 뿐, 비석 전문의 해독은 1822년 프랑스 언어학자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ois Champollion)에 의해 실현되기까지 오랜 시일을 기다려야 했다. 샹폴리옹은 아홉 살 때 라틴말을 시작으로 20세 까지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히브리어, 페르시아어, 중국어 기타, 10여 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던 언어학의 천재였다. 17세에 상형문자 해독을 결심하여 15년의 각고 끝에 히에로글리프에 묻혀있던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해독의 과정은 퍼즐을 풀어가듯 무척 흥미롭다. 오래 전에 전기를 읽으면서 미국작가 에드거 앨런 포의 추리소설 “황금 풍뎅이”의 암호해독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생각이 난다. 이 밖에도 이집트 유물, 특히 많은 수의 미라가 몇 개 방에 전시돼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BC3400년 선왕조시대(Predynastic)에 살았던 이집트인의 유해다. 박테리아가 없는 건조한 사막 속 모래에 묻혀 자연스럽게 미라가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귀 부근에 붉은 머리털이 남아있어 Ginger Mummy라고도 불리는데 피부나 손톱 등 5천 년 전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하다. 습지에서 들새사냥(Fowling in the marshes)을 하는 BC1500년 벽화는 네바문이라는 관리의 무덤에서 출토된 그림 11점 중의 하나다. 부메랑을 들고 파피루스 쪽배에 서있는 네바문이 한쪽 손으로 왜가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이다. 도굴 품을 매입한 것이라는데 관련자가 모두 사망하여 무덤의 위치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 19왕조 제3대 파라오인 위대한 람세스 2세의 흉상도 인기 있는 전시품이다.
박물관의 수많은 수집품 중에서 귀중하게 평가되는 또 다른 작품이 엘긴마블(Elgin Marbles)이라고 불리는 그리스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의 대리석 조각들이다. 1799년 터키주재 영국공사로 부임한 엘긴 T.브루스는 신전을 장식하고 있던 조각에 매료된 나머지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 터키의 허가를 얻어 동서 박공(Pediment)조각 17개, 메토프(Metope) 15면 그리고 약 75m의 프리즈 (Freize)를 떼어내 런던으로 가져왔다. 이 문화유산의 강탈행위는 식민주의가 만연하던 영국에서조차 심한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의회 결의로 정부에서 일괄 매입하게 된다. 엘긴의 조각들은 1816년 영국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 두빈 갤러리(Duveen Gallery)에 전시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Acropolis)의 에레크테이온(Erechtheion)신전을 받치고 있던 여인모습의 기둥, 카리아티드(Caryatid) 한 개도 함께 옮겨져 이 박물관에 전시돼있다. 전체 여섯 개 있는 기둥 중의 하나다. 가냘픈 머리로 천만 근 신전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여인 모습이 애처로워 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버킹엄궁전(Buckingham Palace)
런던이라고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영상이 버킹엄궁전에서 벌어지는 위병 교대식이다. 행사가 시작되는 11시 30분에 늦지 않도록 한 시간 쯤 일찍 갔는데 이미 많은 관광객이 북새통을 이루며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길 너머로 보이는 궁전 정문 쇠창살에는 금색으로 반짝이는 커다란 문장이 걸려있다. 잉글랜드의 상징인 사자와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일각수가 방패를 받치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문장이다. 정문 앞에서는 여자 기마경관이 혼잡한 관광객을 정리하고 있다. 런던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버킹엄궁전은 1837년 빅토리아 여왕 때부터 사용된 영국 국왕의 거주지이자 공식적인 사무실이다.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의 왕궁 치고는 예상외로 수수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붕 중앙에 붉고 노란 왕실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니 여왕이 재택중인 모양이다. 궁을 비었을 때는 영국 국기가 게양된다고 한다.
시간이 되자 쿵작소리가 들리며 위병 교대의 퍼레이드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마경관이 지나가더니 군악대를 선두로 어께에 총을 멘 정장의 보병부대가 위풍당당하게 행진해 온다. 근위병의 상징인 검고 긴 곰 가죽(Bearskin) 모자를 쓰고 새빨간 상의와 검은 바지를 차려입은 선명한 모습이 그림책의 장난감 병정 그대로다. 정문 앞에서 질서 있게 돌아 궁전 안으로 들어간다. 대열을 넓혔다 좁혔다 하더니 구령과 함께 무릎을 크게 높이는 영국군 특유의 동작으로 정지한다. 부동자세로 서있던 위병과의 임무교대는 궁전 앞뜰에서 15분 정도 진행된다. 시작할 때 기대와는 달리 행사의 마감은 어처구니없이 허무하다. 임무를 끝낸 부대는 눈앞을 지나 순식간에 사라진다. 온 세계에서 모여들었던 군중도 어느새 뿔뿔이 흩어졌다. 영국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구경거리라는 평도 있다던데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단 어디까지나 보고난 다음의 배부른 감상이다. 궁전 앞 광장에는 정문을 마주보며 황금천사가 조각된 빅토리아여왕의 기념비가 있다. 1837년 즉위하여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이념으로 영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여왕시대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1914년에 완공된 것이다. 버킹엄궁전에서 서쪽으로 녹지대를 걸어가면 런던 최대의 공원인 하이드 파크(Hyde Park)로 들어서게 된다. 서펜타인(Serpentine) 호수를 경계로 서쪽으로 연결되는 켄싱턴(Kensington)가든과 합하면 면적이 253헥타르에 이르는 광대한 시민의 휴식처다. 북동 모서리에 있는 스피커즈 코너는 1872년 이래 자유토론이 이뤄지는 장소로 이름이 나있다. 켄싱턴 가든 남쪽에는 앨버트 기념비(Albert Memorial)가 있다. 빅토리아 여왕이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앨버트 공을 기리기 위해 1872년에 세운 네오고딕식 첨탑으로 중앙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앨버트 공의 좌상이 있다. 남쪽으로 기념비와 마주보고 있는 커다란 원형 건물이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이다. 원래 앨버트공의 구상으로 시작된 문화센터였으나 그가 사망한 후인 1871년 공공 콘서트 홀로 완성된 것이다. 개관 이후 클래식을 비롯한 문화 공연 뿐 아니라 각종 경기나 전시회 등을 개최하여 ‘영국 문화의 심장’으로 불리고 있다. 주변에 남아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자취를 이곳저곳 둘러본 후 켄싱턴가든 풀밭에 앉아 초가을 런던의 오후를 한가하게 즐긴다. |
출처: 스위스 동유럽 북유럽 남미 부부 자유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skk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