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은 원큰댁 세일사(歲一祀)를 봉행하는 날이었다. 강릉시 유산동(섬돌) 선영에서 거행하는 행사인 만큼 날씨가 큰 변수였는데, 다행히 쾌청한 하늘 아래 160여 년 전 돌아가신 선조를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세일사(歲一事)라는 표현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법에 밝은 전남표 종보편집국장에게 질문하니, “1년에 한 번 지내는 행사”라는 뜻에서 세일사(歲一事)라 부른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며칠 전 옥천전씨 판서공파 전명호 족장과 통화하는 과정에서, ‘歲一事’보다는 ‘歲一祀’가 본래의 취지에 더욱 부합하는 표현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세일사(歲一祀)는
“5대 이상의 먼 조상 산소에 가서 지내는 제사”로 풀이되어 있었으며, 시사(時祀)·시제(時祭)·시향(時享)·시향제(時享祭)·묘사(墓祀)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었다.
우리 강릉지방에서는 흔히 ‘전사’라고 부르는데, 세일사·시사·시제·시향·시향제·묘사 등 여러 명칭으로 전승되어 왔다. 표준적인 표기는 세일사(歲一祀)가 적절하고, 관용적으로는 세일사(歲一事) 또한 함께 사용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명칭은 서로 달라도, 160여 년 전 선조를 해마다 한 번씩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은 소중한 미풍양속이라 생각한다. 다만 오늘날에는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거나 생략하는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을 고려하여, 제수(祭需) 역시 술과 과일 세 가지, 포, 잔기지떡 정도로 간소화함으로써 준비 과정의 부담은 줄이고 조상을 기리는 본래의 뜻은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비문에는 공(公)께서 문필에 재능이 있었고 지방 향시에 급제하였으며, ‘학고처사(鶴皐處士)’로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참석자들은 이를 보며, 공께서 1850년경 비교적 넉넉한 가세 속에서 학문에 힘쓴 선비였을 것으로 함께 짐작해 보았다.
이날 세일사는 홀기에 따라 여법하게 봉행하였다.
초헌관은 전찬진, 아헌관은 전찬윤, 종헌관은 전호웅, 집례는 전과웅, 대축은 전찬균이 맡아 복무하였다.
참석자는 전성표 내외, 전찬진 내외, 전찬익 내외, 전찬득, 전찬균, 전호웅, 전과웅, 전찬윤, 전찬기, 전찬수, 전찬준, 전성문, 그리고 고모였다.
歲一祀 → 표준적·전통 예학 용어
歲一事 → 관용적 표기 또는 지역적 사용
전사 → 강릉 지역 방언·통용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