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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설가의 방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처용별전(處容別傳)
방 영 주
신라 하대였다. 헌강왕(憲康王)이 즉위했다. 그는 경문왕(景文王)의 태자로 휘(諱)는 정(晸)이었다. 헌강왕은 총민(聰敏)하고 독서와 예술을 좋아하였다. 헌강왕은 이찬(伊湌) 위홍(魏弘)을 상대등(上大等), 그리고 대아찬(大阿湌) 예겸(乂謙)을 시중(侍中)으로 삼았다. 왕은 사형수 이하 죄인을 대사(大赦)하였다. 황룡사에서 음식을 잘 차려 승려들에게 먹였고, 설법승을 초청하여 경(經)을 강설(講設)케 했으며, 왕이 친행(親行)하여 들었다. 사신을 당에 보내어 방물(方物)을 전하였다. 헌강왕은 즉위하자, 여러 가지 일을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이미 왕권은 쇠퇴했고, 고관대작에서부터 하급관리에 이르기까지 기강은 말이 아니었다. 헌강왕 주위에는 사리사욕에 눈이 먼 간신들만 득실거렸다. 헌강왕 역시, 점점 그들과 닮아 가고 있었다. 관리들은, 지위가 높을수록 치부에 혈안이었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백성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때에 즈음하여, 각처에서 호족들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처용(處容)과 거을(巨乙), 그리고 아미(蛾眉)는 한밝산(白頭山) 삼지연 부근에 터를 잡았다. 그들은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천(天)․지(地)․인(人) 삼신(三神)께 제를 올렸다. 야산에 널린 과일, 그리고 멧돼지나 메닭 등의, 희생물을 제물로 차렸다. 과일주도 있었다. 처용들은 국태민안과 화랑의 후예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도록 기원했다. 처용은 틈틈이 심혈을 기울여 박달나무로 탈을 만들었다. 그것은 평생을 함께 할 것이었다. 박달나무에 어떤 형상을 양각하는 처용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겨드랑이가 흠뻑 젖었다. 머리 부분은 천지화(天地花;무궁화)가 덮였다. 천지화는 아주 먼 옛날 한나라 적, 우리 조상들이 나라의 꽃으로 삼아, 귀히 여긴 것이었다. 그리고 넓은 이마에 긴 눈썹을 시원스럽게 표현했다. 눈은 부드러우면서도 너그러워 보였다. 귀는 천지간의 모든 소리를 듣겠다는 듯 앞으로 기울여졌다. 코는 대지에 떠도는 모든 냄새를 맡겠다는 것처럼 우묵하였다. 곧 포효라도 할 듯 넓은 입에 악의 없는 백옥처럼 하얀 이가 인상적이었다. 얼굴색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턱은 하늘을 가까이 하려는 듯 밀어 나왔다. 처용은 바지와 저고리에 빨강, 노랑, 파랑으로 된 띠를 둘렀다. 천․지․인의 삼신을 나타낸 것이었다. 이 삼신이 인간에 있는 모든 재앙과 악귀를 쫓아 줄 터였다. 특히, 역신(疫神)을. 처용은 탈을 써 보았다. 얼굴의 일부분이라도 된 듯 딱 들어맞았다. 탈을 벗었다.
처용은 키가 크고 가슴이 넓었다. 손과 발이 컸다. 아미가 그윽한 눈초리로 처용을 보았다. 거기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처용은 아미의 맑은 눈동자 속으로 풍덩 빠지는 느낌이었다. 처용은 미동도 없이 아미의 자태를 탐닉했다. 처용은 처음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미를 가슴 한복판에 넣어 키우고 있었다. 때문에 가슴속에서, 이렇게 알 수 없는 불길이, 가금씩 불쑥 불쑥 치밀곤 하였다. 아미는 민망한지 고개를 숙이고 배시시 웃었다. 처용과 아미는 아직까지, 서로 간에 속생각을 밝힌 적은 없었지만, 피차의 마음을 꿰뚫어 알고 있었다. 거을은 속이 넓은 사람이었다. 자신도 아미에 끌렸지만 마음을 통제했다. 누가 뭐래도, 아미는 분명, 친구인 처용의 연인이었다. 거을은 곁에서 처용과 아미의 관계를 지켜 주고 싶었다. 더구나 삼각관계로 돌변하면 깨지고 말 동아리였다. 거을은 애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신선도와 화랑도를 통한 인격의 완성이었다. 한밝산 바람은 거세었다. 아미의 삼단 같이 검은머리가 허리에서 물결쳤다. 훤칠한 키에 잘록한 허리의 위아래는 푸짐하고 육감적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몸의 율동이 파도와 같았다. 처용은 아미를 다시 보았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절세가인이었다. 처용은 아미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처용은 출가하여 한동안 동경(경주)을 떠돌았다. 그러다, 남산 기슭으로 갔다. 속이 출출했다. 술이라도 한잔 걸치고 싶었다. 옆에 마침 객줏집이 있었다. 처용은 주인을 찾았다. 묘령의 여인이 나와 맞았다. 여인을 따라 안으로 드니,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과 칠성신(七星神)의 탱화가 보였고, 그 앞에는 제단이 놓여 있었다. 처용은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별스런, 술집이었다. 여인은 술상을 가져와 맞은편에 앉았다. 여인은 인간의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자태였다. 처용은 첫눈에 여인에게 끌렸다. 여인도 마찬가지였다. 알 수 없는 인력이 자신들을 끄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오랜 지기처럼 친숙했다. 사람이 상대방에게 반하고, 마음이 끌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전생에 어떤 인연의 한 자락이라도 묻어 있었던 모양이라 생각되었다. 피차간에 술잔이 몇 번 돌았다. 아미는, 석류 속 같은 입을 벌리며, 백옥 같이 흰 고른 치아를 보였다. 제 이름은 아미입니다. 나는 처용이오. 아미가 말했다. 술집치고는 분위기가 좀 이상하죠. 저는 본시 여랑(女浪)입니다. 여자 화랑이 없어지면서 여랑은 대부분 무속인(巫俗人)이 되었지요. 저는 천신과 남산 산신의 제사를 주관하는 천관녀(天官女)입니다. 처용이 받았다. 나라는 불교에 의해 완전히 잠식된 상태지요. 우리 토속 종교가 어디에서도 발붙일 곳은 없어요. 아미의 목소리는 기어들었다. 우리네의 생활이 팍팍할 수밖에 없지요. 사회적인 대우도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천인 계층으로 전락해 버렸죠. 어쩌다 술과 노래, 그리고 춤을 팔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저는, 김유신 설화에 나오는, 천관녀와 같은 신분이지요. 벼슬아치들이나 그 자제들이 찾아와 지분거리기도 합니다. 심지어 몸을 팔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있어요. 해도 너무 한다 싶어요. 이건 제가 바라던 삶이 전혀 아닙니다. 여기를 박차고 떠날 어떤 계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말씀 놓으세요. 전 한참 아래 동생뻘이 아녜요. 처용은 아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 이미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야. 아버지를 설득한 내용이기도 하고. 우리 진정한 화랑이 되어 보자고. 내일 나와 함께 떠나요. 아미의 어조에 활기가 살아났다. 그래요! 그날 밤이었다. 둘은 함께 잤다. 신선도와 화랑도에 대한 많은 대화도 나눴다. 처용은 아미의 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네에게는 어딘지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날이 밝자, 처용은 아미를 데리고, 남산을 내려왔다. 그들은 동경 시내에서 거을을 만났다. 거을은 처용과 같은 입장이었다. 거을은 양산 지방 호족의 차남이었다. 날이 갈수록 부패해 가는 부친이 싫어 집을 등진 사람이었다. 이는 처용도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둘은 즉각적으로 의기투합했다. 처용과 거을, 그리고 아미는 한 동아리가 되어 천지간을 떠돌며, 옛 화랑의 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그들은 화랑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겨 서로를 처용랑(處容浪), 거을랑(巨乙浪), 아미랑(蛾眉浪)으로 불렀다. 그들은 산수 간을 떠돌며 노래와 춤을 즐기고, 명산을 찾아 삼신께 기도를 올리며, 신선도와 화랑도를 익히기로 하였다. 민족의 영산 한밝산(白頭山)부터였다. 한밝산은 한민족의 천지창조 신화와 인류의 조상 나반(那般)과 아만(阿曼), 그리고 황궁씨(黃穹氏), 유인씨(有因氏), 환인, 환웅 등과 관련이 있는, 우리 민족의 영산이었다. 처용과 그 일행은, 살아서는 화랑도를 닦아 나라를 위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죽어서는 한밝산에 돌아와 신선이 되기를 원했다. 처용은 시선을 멀리 던져 원을 그리며 한밝산을 일별 했다.
처용은 다시 탈을 썼다. 아미가 볼우물을 깊게 패며 처용을 보았다. 꼭 아라비아인 같네요. 거을도 거들었다. 맞아, 꼭 아라비아인이야. 처용은 아미를 보며 물었다. 아라비아인을 본 적이 있어? 말로만 들었지요. 아미랑, 난 직접 본 적이 있어. 부친은 울산 토호였어. 부친이 해상 무역을 했거든. 당나라와 일본이 주거래처였지만, 어쩌다 아라비아와도 무역을 했지. 아라비아 선원들이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머물곤 했어. 선장은 거쿨진 몸체에 얼굴이 붉었지. 곱슬머리는 덤불처럼 얹혀 있었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어.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하는 인상이었지. 내 탈은 그것을 본뜬 것이야. 처용은 탈을 벗어 아미에게 주었다. 아미가 그것을 받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아미는 낮게 탄성을 질렀다. 정말, 그렇군요! 처용의 뇌리로 출가하던 날의 정경이 흘러갔다. 오늘만큼은 함구하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그것이 좋을 터였다. 서로를 확실히 알아야, 장차 무슨 일이든, 함께 할 수 있을 거였다. 하지만 전처럼 말을 아꼈다. 오늘부터 일행과 함께 한밝산을 답사할 예정이었다. 시간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등정을 하며 풀어놓아도 될 터였다.
한밝산에 있는 수목과 짐승들 대부분이 희었다. 겨울이면 더할 거였다. 가히 백두산(白頭山)이라 불러 마땅할 터였다. 불로초라 불리는 산삼도 있었다. 처용 일행은 그것을 캐어 먹었다. 이 험산에서 몸을 지탱하려면 그래야 할 것이었다. 이깔나무들이 보였다. 나무의 가지들은 산 정상을 향해 한쪽으로만 자라고 있었다. 모진 바람을 이겨내려다 보니 그리 된 것 같았다. 처용은 미소를 지었다. 화랑도와 신선도 수행을 위해,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줄달음한 자신들과 왠지 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을은 처용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자신은, 속을 모두 털어놓았지만, 처용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중요한 부분에 가서는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뭔가 의뭉스러운 데가 있지 않은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거을은 곧, 고개를 가로 저었다. 처용은 소탈하고 거짓말을 몰랐다.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겸손함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을은 처용을 힐끔 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에 오르기 전 무엇인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처용은 말했다. 우리의 모임이 중도에서 파기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오히려 나보다도 거을랑과 아미랑이 더 열성적이었지. 이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 영원히 함께 할 친구들이라는 확신이 선 것이지. 나는 울산 토호의 일곱 번째 아들이야. 부친의 존함은 비조부(比助夫)인데, 야심이 아주 큰 사람이지. 신라 하대, 지금, 국가의 지배 체재가 귀족들의 그것으로 변했어. 거을은 자조적인 목소리였다. 맞아. 왕도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기 친족 세력의 유지와 옹호를 위한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지. 왕은 추대한 일파의 대표자에 불과해. 이제 왕위는 혈통보다는 실력에 의해 결정되지. 처용은 힘이 드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처용은 팍팍해진 다리를 주먹으로 퍽퍽, 찍으며 말했다. 신라 하대 155년간, 20왕이 교체되었고, 그 중 상당수가 내란에 희생되었어. 친족 공동체의 골품제도가 가지고 있었던 한계성이, 이때에 와서, 전면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한 셈이지. 거을도 처용의 옆에 앉으며 받았다. 골품제도가 한 사회의 운영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중앙의 진골 귀족 사이의 분열과 항쟁이 일어났어. 이렇게 격화되는 사회 모순에 대하여, 육두품(六頭品)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지식계급의 비판이 전개되었지. 처용이 받았다. 그들은 사회 모순에 민감하게 인식하고 극복 방향을 모색했으나, 지방적 기반에서 성장한 세력도 아니었고, 거기에 경제적 기반을 구축할 수도 없었어. 이로 인하여, 정계의 주동적 세력으로 나설 수는 없었지. 처용은 일어나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장난이 아니었다. 정말 힘든 등정이었다. 한밝산은 멀리서 보면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부드러운 산이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수없이 많은 암벽과 계곡이 뒤엉킨 험산이었다. 처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천지창조 신화와 관련이 있는 민족의 성산이었다. 잡인들의 접근을 막으려면 당연히 그래야 할 터였다. 처용은 일행과 함께 한밝산 곳곳을 돌아다녔다. 끝으로 어렵사리 천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처용은 일시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징담(澄潭)이 하늘을 담아 하늘처럼 떠 있었다. 호수 주위로 구절초, 분홍바늘꽃, 투구꽃, 좀이깔나무들이 보였다.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20여 개의 백두연봉들이 신비롭고 웅장한 자태로 불끈불끈 솟아 있었다. 한여름인데도 응달엔 눈이 군데군데 보였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기후가 급변하는 산이었다. 순식간에 운무가 일더니 처용 일행을 덮쳐들었다. 그들은 앞을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 처용은 어딘지 이 세상의 경관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 여기는 단순한 산이 아니었다. 마고대신과 우리의 조상들의 혼이 있는 성산이었다. 금방 구름과 안개가 걷히었다. 처용은 제일 높은 백두봉에 시선을 꽂았다. 백두봉은 천지 동남쪽에 있었다. 그것은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 천하를 굽어보고 있었다. 백두봉의 끝은 바위로 되었는데, 거대한 투구처럼 생겨 장군봉, 또는 병사봉이라고도 불렸다. 조국을 수호하는 신병(神兵)이라는 의미일 터였다. 자신이 바로 저 바위를 닮고 싶었다. 나라를 지키는.
처용의 시선을 좇던 거을이 말했다. 이야기가 다 끝난 게 아닐 텐데! 처용은 무겁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육두품의 대체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부친 같은 호족 이지. 그들은 대외무역을 통하여 경제적 기반을 구축했고, 농민들의 지배권을 강화하면서, 중앙 귀족에 대항하였어. 그들의 막대한 재부(財富)와 사병은 급기야 정권 쟁탈전으로 가고 있었지. 때문에 나라는 호족 세력의 체질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어. 부친은 대표적인 해상 세력이었지. 부친은 해상 무역에서 중요한 활동 무대를 포착한 것이야. 사적인 대외무역을 크게 함으로써 부를 축적하고, 그를 바탕으로, 점차 세력가로 대두하여 가고 있었어. 이런 사무역(私貿易)은, 지금까지 조공(朝貢) 형식을 빈 대외무역에 의존하던 중앙 귀족의 경제적인 위치를, 크게 약화시켰지. 거을은 처용의 손을 꽉 쥐었다. 내가 전에 자네에게 했던 우리 부친의 이야기와 흡사하군. 허허, 그러네. 거을랑, 진작부터, 우리는 여러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처용은 이야기의 원줄기로 돌아갔다. 부친은 당과 일본이 주 거래처였지. 어쩌다 아라비아 같이 먼 곳과도 거래를 텄어. 사두품(四頭品)이나 오두품(五頭品) 대우밖에 못 받던 부친의 세력은 날로 커지고 있었지. 거을이 받았다. 앞날의 운명은 어쩌면 자네나 나의 부친 같은 세력에 의해 결정될 지도 모르는 일이야. 반면 중앙의 귀족은 아직도 골품제도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그들은 독점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백성들에게 지나친 수탈을 하고 있지. 그로써 국가경제를 위기로 처박고 있었던 것이야. 처용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백성들, 즉 농민들은, 국가에 대한 불만이 많지. 이들과 직결되어 있던 호족들은 반항의 불길을 키우고 있었어. 이들은 골품제도의 폐기를 요구하며 수탈을 그만둘 것을 주장하였지. 거을이 침을 탁, 뱉었다. 명분이란 항상 그런 것이지. 호족들의 그런 명분 속에는, 정권을 한 손에 거머쥐겠다는 야심이, 내포되어 있을 뿐이지. 처용은 자조적으로 말했다. 야심가인 부친은 자신의 일곱 아들에게 글과 무예를 익히도록 하였어. 장차 뭔가를 도모하는데 꼭 필요한 때문이었지. 난, 거기에 항거하여 출가한 셈이야. 이번에는 거을이었다. 내 입장도 그렇지. 처용은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나 역시 자네와 마찬가지로, 망해 가는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화랑도와 신선도를 익히려 한 것이야. 아미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 이제야, 우리의 속을 피차에 확실히 알았네요. 오늘은, 여기서, 야영하며 축배를 들기로 해요.
처용 일행은, 한밝산 세 번째 높이의 계관산(鷄冠山)이라고도 불리는, 망천후에 들렸다. 처용은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천지를 감싸고 있는 백두연봉들은 볼수록 장관이었다. 신비하고 웅장한 자태로 불끈불끈 솟아 있었다. 처용들은 달문 쪽으로 갔다. 천지의 물은 그곳으로 흘러, 장백폭포를 지나고 송화강과 만나, 저 넓은 우리의 옛 땅 만주 벌판을 적실 터였다. 큰 바위 무더기로 이루어진 부천석(赴天石)도 있었다. 거기를 지나 장백폭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우측으로 하필봉․불노봉․금강봉․저주산 등이 보였다. 그들 봉우리마다 만물상을 방불케 하는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가 널려 있었다. 멀리 아래를 굽어보니, 미인송도 하늘을 향해 한껏 푸르렀다. 처용들은 얼마를 더 내려갔다. 우측 저지대에 노천 온천이 있었다. 온천 지대는 송화강의 원류가 되는 이도백하(二道白河) 주위로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물에서 유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처용과 거을은 같은 웅덩이에 들었다. 아미는 멀리 떨어진 곳에 혼자 몸을 담갔다. 숙취와 피로가 시나브로 풀려 갔다. 여기서 오늘을 보내고, 내일 아침, 묘향산으로 갈 터였다. 온천에 몸을 맡긴 채 처용은 말했다. 부친은 나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고 있었어. 거을이 받았다. 그 역시 나와 같지. ……. 처용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처용의 뇌리로 자신이 떠나던 날의 정경이 서서히 흘러가고 있었다.
처용은 모든 면에서 출중했다. 비조부는 처용을 가장 아꼈다. 자신의 뒤를 잇게 할 생각이었다. 처용은 부친의 그런 것에 반감이 들었다. 부친은 힘을 키워, 뭔가 옳지 못한 곳에, 사용하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행적에서 이미 드러나 있지 않았던가. 처용은, 화랑도와 신선도를 익히며 조국의 산하를 떠돌아,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처용은 밤새 뒤척였다. 새벽이 되었다. 처용은 간단히 행장을 갖추고 부친의 처소로 들었다. 비조부는 아직까지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처용이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 비조부의 눈길은 처용의 위아래를 쓸었다. 앉아라. 예. 그런 차림으로, 새벽부터 웬일이냐? 아버님, 저는 화랑이 되겠습니다. 비조부는 눈을 꽈리처럼 동그랗게 치뜨며 언성을 높였다. 화랑? 예! 화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않냐? 그런 것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야! 지금은 예전과 달라. 말씀 안하셔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신라가 통일을 이루자 화랑은 필요가 없어졌지요. ‘토끼를 다 잡으면 개는 삶아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화랑은 이제 향락을 위한 놀이집단으로 타락하여 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천인 계층으로 낙착되고 말겠지요. 비조부의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졌다. 잘 알면서, 웬, 화랑 타령이냐? 누군가는 우리 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민족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처용은 목소리를 점점 높여 갔다.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었는지 조금치의 막힘도 없었다.
최치원의 난낭비서(鸞郎碑序)에도 있지요, 우리나라에 본시 현묘지도(玄妙之道)가 있었는데, 이를 풍류도(風流道)라고 합니다, 달리 신선도라고도 하지요, 화랑은 바로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풍류도는 일언 하여 도․불․유(道․佛․儒)를 포함한 삼교사상(三敎思想)입니다, 교리의 핵심은 모든 생명을 가까이하여 절로 감화시키자는 것이지요, 난랑(鸞郎)이란 풍류도나 신선도에 화랑을 엮어 표현한 것입지요, 화랑은 난조(鸞鳥)와 같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난조란 중국 전설에 나오는 봉황과 비슷하다는 상상의 새로, 붉은 깃에 오채(五彩)가 섞이고, 울음소리는 오음(五音)에 해당한다잖아요, 화랑의 옷은 난조처럼 오색찬란하며, 연한 녹색의 구슬로 장식하고, 분을 곱게 발라, 산수지간을 다니면서 명상을 하고, 무예와 도의를 닦고, 풍물놀이, 그리고 노래와 춤을 즐겼지요, 겸손하여 지위가 높아도 윗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검소하여 부자이면서도 사치하지 아니하고, 인자하여 권세가 있어도 탐욕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이를 삼덕행(三德行), 삼미행(三美行)이라고 하였지요, 화랑이 오색찬란하게 구슬로 분장함은 난조의 몸체에 오색을 갖춤과 같았으며, 화랑이 춤을 즐겼음은 난조가 오음(五音)을 즐기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화랑의 삼덕행은 바로 이 난조의 모습과 유사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난낭을 신선화랑(神仙花郞)이라고도 하였지요, 저는 난조를 닮고 싶습니다.
비조부는 아들이 화랑과 난조를 들먹이며 은근히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회적으로 자신을 질책하는 거였다. 비조부는 자식의 그간 언행에서도 그런 것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해상 무역 세력으로 급부상하면서부터였다. 비조부는 무역에서 벌어들인 재화로 전답을 넓혀 갔다. 울산 지역의 반 이상을 잠식해 들었다. 그리고 관할 지역에 대한 소작료를 높게 책정했다. 처용은 농민들에 대한 착취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처용은 흉년이 들면, 자신 몰래 곡간을 열어, 헐벗고 굶주리는 소작인들에게 곡식을 퍼 주곤 하였다. 비조비는 제 살을 발라내는 아픔을 느꼈지만 방기했다. 큰일을 위해서는, 저들의 환심을 사 민심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된 때문이었다. 아무튼 처용은 자신이 바라는 곳으로 가는 자식이 아니었다. 비조부는 인상을 팍, 구기며 한 마디로 일축했다. 네 말대로, 모두 지난 일이야. 처용은 기왕에 내친김이었다. 하던 말을 계속했다.
단군 때였지요, 소도(蘇塗)를 많이 세워 천지화를 심었습니다, 소도에는 경당(扃堂)이 있어, 미혼 젊은이들에게 충성, 효도, 믿음, 용기, 어짊의 다섯 가지 바른 길과 글쓰기, 활쏘기, 말타기, 예절, 노래, 춤, 무술 등 여섯 가지 재주를 가르쳤습니다,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지요,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하였는데, 나라의 재목이 되었습니다, 국자랑이 나들이 할 때 천지화를 머리에 꽂았으니, 천지화랑이라고도 하였지요, 여랑(女郞)을 원화(源花)라 하였고, 남랑(男郞)을 화랑, 또는 천왕랑(天王郞)이라 불렀습니다, 소도는 배달나라 시대에도 있었지요, 그러니 화랑도는 이미 환웅천황(桓雄天皇)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화랑은 선인(仙人), 선랑(仙郞), 천왕랑(天王郞), 선풍(仙風)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단군왕검을 선인이라고도 하였으니, 화랑은 제사와 정치를 주관하는 무군(巫君)이기도 하였지요, 고구려에서는 조의(皁衣)를 입어 조의선인(皁衣仙人)이라 하였고, 신라에서는 미모를 취하여 화랑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화랑도는 신라에서 갑자기 창설한 것이 아니라, 배달나라와 단군조선의 소도제천의식(신선도)을 부흥시킨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단군조선이 무너지자 그 유민들이 신라를 세워, 국가 체재가 정비되면서, 화랑도가 부활되고 재조직된 것입니다, 법흥왕 때 풍월도로 다시 일어나고, 진흥왕 때 화랑도로 강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진흥왕은 미혼 자제들을 가려 뽑아서 곱게 단장시켜, 화랑이라고 하였는데, 구름처럼 모여들었지요, 그들은 도의를 연마하고, 노래와 춤을 즐기며 산수 간을 유람하였습니다, 화랑은 가보지 않은 데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 중에서 인재를 가려 뽑아 조정에 등용하였지요, 반쪽이나마 신라의 통일은 바로 이 화랑에 의해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화랑은 일언 하여 환웅천왕 때부터 내려오던 우리 종교의 혼이요, 나라 사랑의 중심이라고 할 만합니다, 화랑은 바로 우리의 전통이지요, 지금 그것이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제사와 국사를 담당하던 무소불위의 화랑은 지금 천인의 신분으로 낙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외래 종교이면서 왕권과 결탁한 불교 때문이지요, 누군가가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할 일입니다.
비조부는 자식의 박식함에 내심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도 많았다. 이런 자식이 평생 곁에 있어, 자신이 뜻을 이루는 데, 한몫 거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비조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자식이 세상에 나가 떠돌다 보면, 인간사가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을 이해할 날도 올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여섯 자식들도 처용만큼은 못하지만 글과 무예에 출중했다. 조정에 인재로 등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들은 완전한 자신의 편이었다. 비조부의 마음은 처용에게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자식도 장성하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을 터였다.
날이 밝았다. 처용 일행은 아침을 지어먹은 다음, 온천욕을 다시 즐기고, 한밝산을 내려갔다. 처용은 몸이 가뿐하고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날아갈 듯했다. 처용은 북을 치며 발걸음을 옮겼다. 처용은 갑자기 한 발을 올리고 양팔을 쳐들었다. 처용은 춤을 덩실덩실 추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처용은 하나가 되어 교감하기 시작했다. 처용은 어느 사이 신의 세계로 몰입하여 가고 있었다. 아미는 향비파(鄕琵琶)를 뜯었다. 향비파는 연주법이 복잡하여 다루기 힘든 악기였다. 그런데도 아미는 천둥소리에서 바람소리까지 자유자재였다. 거을의 대금 연주도 만만치 않았다. 처용의 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둥-! 머리에 가득 꽂은, 꽃이 무거워 기울어진 머리/탁-! 아아, 수명이 장수할 넓으신 이마/둥-! 둥-! 산 모양 비슷한 긴 눈썹/탁-! 애인을 바라보는 듯한 너그러운 눈/탁-! 바람이 잔뜩 불어 우그러진 귀/둥-! 복사꽃 같이 붉은 얼굴/탁-! 진기한 향내를 맡으시어 우묵해진 코/둥-! 둥-! 아아, 천금(千金)을 먹으시어 넓어진 잎/탁-! 탁-! 백옥 유리 같이 하얀 이빨/둥-! 둥-! 둥-! 복이 많다 칭찬 받아 밀어 나온 턱/탁-! 따르르-! 열병신(熱病神)아, 모두 물러가라!
처용 일행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주름 잡던 만주 벌판을 지나, 저 먼 배달국 치우천왕(蚩尤天王)이 개척했던 중원 땅, 깊숙이 둘러보았다. 태산(太山)에도 가 보았다. 태산이나 태백산, 증산(甑山), 시루산, 마리산, 백산(白山) 등등은, 한밝산의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한민족의 천지창조 신화와 관련된, 천국(天國)이 있다는 천산(天山) 한밝산을 그리워하여, 그렇게 명명한 것이었다. 중원 어디에나 우리 선조들의 숨결과 유적이 널려 있었다. 치우천왕 때부터 한동안 동이족의 속국이었던, 하지만 지금은 융성한 중원 땅에 살고 있는 소위 한족들은, 우리의 그런 흔적을 없애기에 혈안이었다. 우리 선조들과 관련된 사당을 불태우고, 비문을 부수고, 풍속을 자기네 쪽으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광기요, 목불인견이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환웅 배달국과 단군 조선국을 거쳐, 지금 소위 통일 신라에 살고 있는 우리네들은, 당나라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언젠가는 국권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아야 할 터였다. 자신은 그 밑거름이 되고 싶었다. 처용은 쓸쓸한 마음으로 일행과 함께 다시 고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처용은 역병을 앓는 사람의 집에 들려 굿을 하여주고 점 등을 봐주었다. 처용이 탈을 쓰고 추는 처용무는, 천연두에 특효하다는 소문이, 전국에 파다하게 퍼졌다. 살기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아무 대가 없이 굿을 해주었다. 거을과 아미는 대금을 불고 향비파를 뜯으며 조무(助巫) 역할을 했다. 그들은 곧 유명세를 탔다. 처용무를 흉내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용들은 여기에서 얻은 약간의 돈으로 노자를 삼았다. 처용들은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처용은 가는 곳마다 북을 두드리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노래로 불렀다. 거을의 대금과 아미의 향비파가 흥을 돋궜다.
탁-! 묘향산 진주 흩뿌린 듯한 산주폭포/탁-! 탁-! 고기비늘 모양 이뤄 흩어져 떨어진 용주폭포/탁-! 타르르-! 흰 비단 드리운 천신폭포/둥-! 둥-! 한눈에 들어오네/탁-! 눈 어질어질 황홀하다/탁-! 탁-! 만폭동 어떠한가/탁-! 타르르-! 어디에 앉아 보아 폭포/탁-! 어느 벼랑 끝 올라도 폭포네/탁-! 탁-! 일만 개 폭포 있다고 할 만큼 크고 작은 폭포 모여 있다네/탁-! 타르르-! 거기에 서곡폭포, 무릉폭포, 은선폭포, 유선폭포, 비선폭포, 구층폭포, 은하폭포 등등, 이름 현란한 폭포 여기저기 널려 있네/둥-! 둥-! 기묘하고 그윽한 향기 풍기는 아름다운 산이라네/둥-! 둥-! 둥-! 묘향산은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라네/탁-! 무릉도원이라네
둥-! 둥-! 금강산 만학천봉(萬壑千峯) 가슴 설레게 다가서는 사이/둥-! 둥-! 둥-! 전나무, 잣나무 하늘 향해 팔 쫙쫙 벌려 경배하듯 힘차게 솟아 있네/둥-! 안팎 비밀스럽게 둥지 튼 명경대, 천진봉, 연화담 수렴폭, 망군대, 은서들, 금서들이 눈길을 잡네/둥-! 둥-! 둥-! 비로봉 최고봉에 오르니 일망무제(一望無際)/둥-!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 한눈에 들어오네/둥-! 둥-! 나를 압도하는 듯한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 넋을 잃을 지경이라네/둥-! 둥-! 둥-! 이는 평생 간직할 감동 아니겠는가/탁-! 둥-! 둥-! 나는 합장하며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네
처용 일행은 송악에 도착했다. 송악도 마찬가지였다. 백성들의 생활은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올해에는 한해와 수해가 휩쓸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역질도 만연해 있었다. 자식을 팔고 사람들끼리 상식(相食)한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나돌고 있었다. 그런데도 호족이나 관리들의 가렴주구는 더욱 가혹해져 가고 있었다. 처용들은, 세력가의 집에서 처용무 등을 해주고 얻은 곡식과 돈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처용 일행의 신망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폭우가 계속되었다. 도랑물이 콸콸 소리를 내지르며 달렸다. 하늘은 송악을 아예 강이나 바다로 떠내려 보낼 심산인 모양이었다. 처용 일행은 한 사당에 꼼짝도 못하고 며칠을 죽치고 있었다. 밤이 깊었다. 관솔불이 어둠을 핥고 있었다. 처용들은 지금까지 돌아본 우리네 산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미가 말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경관이었어요. 거을이 받았다. 신비롭고 장엄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 처용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곳에서 우리 민초들은 너무 힘들게 살고 있어. 그들을 구할 누군가가 나타나야 돼. 하지만 부친은 아니야. 그릇이 너무 작아. 자신만 아는 사람이니까. 거을이 한숨을 쉬며 받았다. 그건 우리 부친도 마찬가지야. ……. 얼마 후, 비가 그쳤다. 하늘이 점점 맑게 개어 갔다. 별들이 초롱 했다. 북극성이 한 다발의 빛을 뿜어 어떤 집에 비추고 있었다. 얼마 전, 처용 일행을 초청하여 굿판을 벌린, 송악 호족 왕가네였다. 처용은 별의 운행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짚어 보았다. 처용의 입가로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 처용은 입을 열었다. 망해 가는 신라를, 아니 우리나라를 구할 사람이, 오늘 여기서 잉태되는 모양이군. 우리의 굿이 효험을 본 모양이야. 우리는 언젠가 다시 이곳에 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군. 거울이 물었다. 무슨 말인가? 아니, 아무 것도 아닐세. 곧 알게 될 거야. 거을은 한동안 처용이 뱉은 말을 음미하다 빙그레 웃었다. 처용과 거을을 보며 아미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신전심(以心傳心), 심심상인(心心相印)이었다. 문틈으로 미세한 빛이 새어들기 시작했다. 여명의 순간이었다. 처용은 벌떡 일어났다. 그만 떠나자. 이제 나머지 태백산, 마리산, 계룡산, 지리산 등을 거쳐 고향에 가야지. 어쨌든 우리를 낳아 준 부모님들이 아닌가. 근본을 찾아 우리의 결심을 말하고 여기에 다시 오자. 그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거을이 받았다. 맞아! 맞는 말이야!! 처용은 명산을 돌며 북을 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보면 양산을 거쳐, 꿈에서도 잊지 못하던, 고향 울산에 도착할 거였다.
탁-! 태백산 철쭉 선혈처럼 붉게 물들었네/탁-! 탁-! 철쭉은 붉은 놀이 되어 혈맥처럼 동해로 힘차게 뻗어나간다네/탁-! 탁-! 탁-! 힘차게 뻗어나간다네/ 탁-! 타르르-! 놀은 바다와 하나가 된다네/탁-! 하나가 된다네
둥-! 둥-! 마리산은 머리산/둥-! 둥-! 머리산은 두산(頭山)/탁-! 타르-! 두산은 한밝산/둥-! 둥-! 둥-! 마리산은 한밝산 하늘못(天池)과 백록담 중간 지점에 있네/한반도 배꼽이라네/둥-! 둥-! 맨 위 참성단 있어/둥-! 둥-! 단군왕검의 명받아 천부삼인(天符三印) 증표로 원형, 사각형, 삼각형 형식으로 축조해 놓았네/둥-! 둥-! 둥-! 단군왕검과 우리 역대 제왕이 직접 제천행사하던 곳이었다네
탁-! 계룡산 기이한 형상/탁타르-! 닭벼슬 한 용이 한반도 중심에 힘차게 용트림하고 있네/둥-! 민족의 영(靈)을 품고 웅비 위해 잠시 쉬는 모습이라네/탁-! 아,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할 산하가 아니던가/둥-! 둥-! 탁-! 산하가 아니던가/둥-! 둥-! 계룡산 돌아 지리산 밟고 나니/둥-! 둥-! 탁-! 양산땅이 저기 보이네
처용 일행은 먼저 양산 거을의 집으로 갔다. 거기서 거을의 부모에게 인사를 하고, 처용무 등 연회를 베푼 다음, 울산 처용의 집에 가기 위해 동경으로 갔다. 동경은 외관상으로 활기와 호화로움이 넘쳐 났다. 동경의 생활은 갈수록 사치스러웠다. 처용이 떠날 때보다 더했다. 기와집이 어깨를 마주하며 늘어서 있었고, 하루 종일 굴뚝에서 연기가 나지 않았다. 비싼 숯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거리는 술과 노래로 흥청거렸다. 그 속에서 어딘지 썩어 가는 냄새가 났다. 뭔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도 들렸다. 나라는 기형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무엇이든 많이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부익부 빈익빈이었다. 민족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있는 사람들의 노래 속에는 없는 자들의 한숨 소리가 섞여 있었다. 동경은 부자들의 천국(?)이 되어 있었다. 민심이란 천심이라 하지 않았는가. 민심을 잃었다는 것은 나라를 지탱할 뿌리가 뽑혔다는 뜻이었다. 향락에 빠진 사회 지도층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들의 영화가 계속 될 줄로만 알았다. 그 속에서 처용의 부친 비조부 같은 사람들이 힘을 키우고 있었다. 그들 속에는 진심으로 백성을 걱정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결심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머지않아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터였다. 처용은 지난 3년을 돌아보았다. 그 동안 참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괜한 다리품을 판 것은 아니었다. 젊어서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잖은가. 처용은 근골이 꽉 잡히고 어깨가 넓어졌다. 헌헌장부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세상을 구할 어떤 생각으로 가득했다. 처용들은 울산을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처용은 일행과 함께 집에 당도했다. 식구들이 나와 맞았다. 부친 비조부도 있었다. 부친은 떠날 때의 모습과 달랐다. 파삭 늙어 버렸다. 눈에 가끔씩 번뜩이던 광기는 가셔 있었다. 거기에 열망이나 야망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알맹이는 모두 어디론가 빠져나가고 허물만 남은 모습이었다. 가세도 형편없이 기울어 있었다. 모든 것이 예전과 달랐다. 처용은 알 수 없는 비애감이 코를 찔렀다. 모친이 말했다. 금성이 달을 범한 날부터였어. 괴질이 마을을 휩쓸기 시작했지. 주민 반수가 죽어 나갔어. 네 아버지도 죽다가 살아나셨지. 고열로 신음하며 너만 찾았어. ……. 어느 날, 밤이었지. 네가 꿈에 나타나 처용무라면서 어떤 춤을 추더라는 거야. 그날부터 병이 호전되어 갔어. 아버지는 그것을 네 덕으로 알고 있지. 이번에는 첫째 형이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네가 평소에 주장하던 바를 실천에 옮겼어. 뺏은 땅을 돌려주고, 소작료를 내렸으며, 곡간을 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어. 비조부가 흐흐, 웃었다. 내가 저승 문턱에 다가서자 망령이 든 모양이군. 처용은 비조부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아버님, 잘하셨어요.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지요. 비조부는 하늘을 보았다. 나도 내년이면 고희(古稀)군. 허허, 남들보다 더 살았다는 이야기지. 비조부는 처용과 함께 온 일행을 둘러보았다. 저들은 누구인가? 처용은 거을과 아미에게 다가 오라는 손짓을 했다. 거을과 아미는 비조부 앞에 가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처용이 그들을 소개했다. 저와 함께 화랑도와 신선도를 익히며, 이 나라와 저 중원 땅을 떠돈, 거을랑과 아미랑입니다. 거을랑은 양산 토호의 자제이고, 아미랑은 천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천관녀입니다. 다시 말해, 무당입죠. 비조부는 절색인 아미를 지그시 보며 물었다. 그래, 무엇을 보고 배웠는고? 아미가 비조부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무너져 가는 나라를 보았고, 그것을 구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처용과 거을도 비조부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비조부는 처용들을 얼싸 안았다. 그래야지. 나는 이제 너무 늙었어. 이제 모두 젊은 너희들의 몫이지. ……. 비조부는 갑자기 목소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우리 모처럼 한 가족이 다 모였군. 내일, 어디 바다 근처에 나가, 잔치라도 베풀자꾸나. 처용이 반색했다. 예, 아버님, 그래요. 저희들이 그 동안 갈고 닦은 춤과 노래로 아버님을 즐겁게 하여 드리겠습니다. 비조부의 안면은 웃음으로 물결쳤다. 난, 너에게 배운 바가 많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 하지 않았느냐. 너로 인하여 세상을 다시 사는 기분이야. 남에게 뭔가 베푼다는 일이 이렇게 좋은 것인지 정말 몰랐다. 무조건 움켜쥐어야만 되는 줄 알았지. 아버님, 그만 하세요. 전, 쥐구멍을 찾아야 할 판이군요. 비조부는 주위를 쓱, 둘러보며 말했다. 허허, 그런가?! 자식 자랑하는 놈을 팔불출이라 하지. 비조부는 즉시, 아래 사람들을 불러 잔치 준비를 시켰다.
헌강왕은 역모가 끊이질 앉자 안절부절못하였다. 올해에도 일길찬(一吉湌) 신홍(信弘)이 반역을 꾀하려다가 복주(伏誅)되었다. 그럴수록 당에 밀착해 들 수밖에 없었다. 헌강왕은 즉시 당에 사신을 보내 나라의 사정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 당나라에서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 중지시켰다. 황소의 난은 곧 평정되었다. 헌강왕은 사신들에게 많은 방물을 수레에 실어 당에 보냈다. 황소의 난을 평정시킨 것에 대해 위로와 치하를 했다. 그리고 신라의 왕권을 지켜 달라고 빌었다. 헌강왕은 일본과도 가까이 했다. 왕은 친히 조원전(朝元殿)에서 일본국 사신을 접견하였다. 헌강왕은 꺼져 가는 왕권을 지키기 위해 친족 세력과 외세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그것은 헌강왕을 등에 업고 설쳐대는 왕족의 뜻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백성에게 등을 돌린 지 이미 오래였다. 백성이 어떻게 살든 관심 밖이었다. 어쨌든, 한동안, 왕의 친족만을 위한 태평성대가 계속되었다. 헌강왕은 자신의 측근에 있는 친족 세력을 위해 연회를 자주 베풀었다. 헌강왕은 오늘, 삼랑사(三郞寺)에 거동하여 측근들에게 시를 짓게 하며 즐겁게 보냈다. 친족들과 함께 준례문(遵禮文)에 가 궁사(弓射)도 관상하였다. 임해전(臨海殿)에서는 주연이 무르익자, 헌강왕이 손수 금(琴)을 타고 측근들에게 각각 가사(歌詞)를 지어 바치게 하여, 한껏 흥겹게 놀다가 파하였다. 내일은 측근들을 대동하여 동해의 한 바닷가에서 연회를 베풀기로 하였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었다. 위에서부터 그러니, 아래는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사이로, 백성들의 신음 소리만 높아 갔다.
새벽이었다. 헌강왕은 말에 올라, 측근과 시자(侍者)들을 데리고, 울산으로 향했다. 처용은 부모와 형제들, 거울과 아미, 그리고 친척들과 함께 울산 청량의 한 바닷가에 터를 잡았다. 처용은 탈을 쓰고 북을 치며 처용무를 추었다. 향가도 불렀다. 언제나처럼 거을은 대금을 연주했고, 아미는 향비파를 뜯었다. 비조부는 용의 탈을 쓰고 아들과 함께 흥겹게 놀았다.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바야흐로 흥을 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구름이 해를 가리었다. 바다 한가운데서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일며 해수를 하늘 높이 끌어 올렸다. 마치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형상이었다. 헌강왕은 막 바닷가에 당도하며 그 모습을 보았다. 헌강왕 일행의 눈에는 분명 용으로 보였다. 장관이었다. 헌강왕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헌강왕은 그 자리에 우뚝 서 용의 모습을 황홀하게 지켜보았다. 일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해무(海霧)가 사방에서 우욱우욱, 끼쳐 왔다. 곧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비조부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처용은 한 바위(處容岩)에 걸터앉았다. 비조부는 불안해하며 바위 주위에서 서성였다. 헌강왕은 일관(日官)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조화더냐? 일관이 아뢰었다. 안개 속에 갇힌 용의 조화로 사료되옵니다. 저 용을 위해 마땅히 좋은 일을 하여 풀어야 하옵니다. 헌강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왕은 마침 동행한 건축 담당 관리인 유사(有司)에게 명했다. 여기 영취산(靈鷲山) 기슭의 좋은 땅을 가려 용을 위해 망해사(望海寺)를 짓도록 하라. 유사가 허리를 굽혔다. 명 받들어 거행하겠나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헌강왕이 명령을 내리자마자 일식과 안개가 걷혀 가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그 지역을 개운포(開雲浦)라 명명했다. 해가 보였다. 주위의 사물이 제 자태를 드러냈다. 헌강왕은 사위를 둘러봤다. 멀리 사람들이 보였다. 두 사람은 탈을 쓰고 있었다. 하나는 용의 탈이었다. 헌강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승천하던 용이 사람으로 변신하여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게 아닌가 싶었다. 헌강왕은 말에서 내려 그쪽으로 걸었다. 동행한 사람들도 왕의 뒤를 쫓았다. 비조부는 깜짝 놀랐다. 국왕이 자신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비조부는 탈을 벗고 무릎을 꿇었다. 나머지 사람도 비조부를 따라 했다. 헌강왕이 다가 서 비조부에게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비조부는 머리를 조아렸다. 신, 울산 토호, 비조부이옵니다. 헌강왕이 받았다. 울산 토호라, 동해의 소룡(小龍)이구먼. 비조부는 처용를 보며 말했다. 제 자식, 처용이 출가했다 돌아와, 잔치를 베푸는 중이었사옵니다. 처용은 처용무라는 춤을 아주 잘 춥니다. 노래도 잘하고요. 외람된 말씀이오나, 자식 놈의 춤과 노래로, 대왕마마를 기쁘게 하여 드리고 싶사옵니다. 헌강왕은 처용을 자세히 뜯어봤다. 거쿨진 몸에 이목구비가 수려했다. 한눈에 끌리는 인상이었다. 헌강왕은 비조부의 제의를 수락했다. 처용의 처용무가 끝나자 비조부는 다시 용의 탈을 썼다. 그리고 거을과 아미의 연주에 맞춰 흥겹게 놀았다. 헌강왕과 왕의 측근들도 그랬다. 헌강왕은 흡족한 마음으로 말했다. 처용을 궁에 데려 가고 싶네. 비조부는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처용을 볼모로 잡겠다는 뜻이었다. 호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비조부는 이제 힘이 없었다. 그것이 있다 하여도, 일종의 관행처럼 되어 온 왕명을, 어떻게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비조부는 헌강왕에게 절을 하였다.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연회가 파하였다. 처용은 바로 부모와 가족, 그리고 거을과 아미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헌강왕을 따라 동경으로 갔다. 헌강왕은 처용에게 음악 관청의 장인 음서서장(音聲署長)을 맡겼다. 처용은 음악과 무용에 능했고, 무엇보다 그런 한직을 주어, 호족 세력과의 연계를 끊기 위한 조치였다. 대신 처용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 빼어난 미녀를 아내로 삼도록 조치했다. 은비(銀非)였다.
은비는, 버들가지처럼 하늘거리는 몸에, 얼굴은 달걀처럼 갸름했다. 칠흑 같은 머리가 허리를 휘감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아름다웠지만 어딘지 천상이었다. 행동거지나 마음 씀씀이도 헤펐다. 동경의 여자들 대다수가 그랬다. 세기말적 한 풍조가 아닌가 싶었다.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몸매를 잘 다듬어, 외관상 보기 좋았지만, 머리는 텅 비어 있었다. 은비를 포함한 그네들에게서 아미와 같이 고상한 품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용의 마음은 아미에게만 가 있었다. 아미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혼인은 왕명을 거역할 수 없어 치른 형식상의 일이었다. 처용은 아직까지 은비와 몸을 섞지 않고 있었다. 밤마다 은비가 집적거렸지만, 처용은 자극을 받은 조개처럼, 몸을 열지 않았다. 은비는 혼자 베개를 끌어안고 용을 쓰다 제풀에 꺾여 잠들기 일쑤였다. 둘 사이에는 커다란 틈이 생겨 갔다. 은비는 밖으로 나돌았다. 처용은 은비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어떤 남자와 비틀거리는 모습을 직접 목도하기도 하였다. 어쩌다 집에 놀러 오는 사내도 있었다. 처용은 어쨌든, 자존심이 상했다. 남 보기에도 부끄러웠다. 참을 수 없어 한 마디 했다. 유부녀가 술에 취해 외간남자와 벌건 대낮에 해롱거리고, 집으로 불러 노닥거려도 돼. 은비의 혀는 이미 술에 굽어 있었다. 야, 처용, 내가 유부녀야? 처녀지! 그리고, 네가 내 남편이야? 마음은 딴 년, 그래 아미 년에, 가 있으면서! 처용은 입을 다물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처용은 거을과 아미를 동경으로 불렀다. 관청의 일이 파하거나 휴일이면 주로 그들과 어울렸다. 함께 놀거나 가난한 집을 돌며 굿을 놀기도 하였다. 처용은 거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적당한 시기가 오면, 거을과 아미를 데리고, 송악으로 갈 셈이었다.
헌강왕은 근신과 더불어 월상루(月上樓)에 놀러 갔다. 음악을 담당한 처용도 함께였다. 헌강왕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동경의 민가는 즐비하게 늘어섰고, 가락(歌樂)의 소리는 끊임없이 일어났다. 왕이 시중(侍中) 민공(敏恭)을 돌아보고 말했다. 내 들으니, 지금 민간(民間)에서는 집을 기와로 덮고, 짚으로 잇지 아니하며, 밥을 숯으로 하고, 나무로써 않는다 하니, 사실인가? 민공이 답했다. 신도 또한 그와 같이 들었습니다. 상(上)이 즉위하신 이래로, 음양(陰陽)이 고르고 풍우(風雨)가 순조로워, 해마다 풍년이 들어 백성들은 먹을 것이 넉넉하고, 변경(邊境)이 안온(安穩)하며 시정(市井)이 환락(歡樂)하니, 이는 상의 성덕(聖德) 소치이옵니다. 헌강왕은 안면에 깊은 고랑을 일구며 하하, 웃었다. 이는 모두 경(卿)들의 보좌(補佐)한 힘일 것이다. 내 무슨 덕이 있겠소. 황공하옵니다. 처용은 속으로 픽, 웃었다. (놀고들 있네!!) 헌강왕이 월상루에서 내려 올 때였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탈을 쓰고 어가(御駕) 앞에 나타났다. 그들은 가무(歌舞)를 하였는데, 노래가 괴이하고, 춤의 모양도 기이했다. 노래와 춤을 마친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처용은 빙그레 웃었다. 그들이 거을과 아미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때문이다. 처용은 왕에게 그것을 발설하지 않았다.
오늘은 휴일이었다. 처용은 거을 아미와 함께 동경 시내를 벗어나, 마마신을 앓는 집에 가 자청하여 자정을 넘기며, 무료로 굿을 놀았다. 처용은 동경에서 일행과 헤어졌다. 처용은 탈을 쓴 채,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처용은 여명의 시간에 귀가했다. 방문 앞에 웬 낯선 남자의 신이 한 켤레 놓여 있었다. 의아한 생각으로 방문을 벌컥, 열었다. 밤꽃 냄새가 코를 후볐다. 까만 두 물체가 벌떡 일어났다. 처용은 방문을 소리 나게 쾅, 닫았다. 처용은 북채를 들었다.
둥-! 둥-! 동경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닐다가/둥-! 둥-! 둥-!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둥-! 둥-! 둥-! 둥-!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가/둥-! 둥-! 탁-!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
처용은 감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일어나야 할 일이 눈앞에 나타난 것뿐이었다. 이 간통 사건은 자신이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 확정적인 역할을 할 터였다. 이미 신물이 난 동경 생활이었다. 은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방금 부른 노래는 일종의 풍자가였다. 사내가 벌거벗은 채, 방에서 나와, 처용의 앞에 꿇어앉았다. 시중의 차남이었다. 사내가 말했다. 제가 공의 처를 탐내어 범했는데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실로 감탄스럽고 아름답게 생각됩니다. 오늘 이후로, 문 앞에 공의 탈을 그린 모습만 보아도, 거기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처용이 말했다. 내 모두 관심 없는 일이오. 알아서 좋을 대로 하시오. 처용은 북을 둥둥, 울리며 휘적휘적 걸었다. 처용은 날이 밝자 등청하여 사직서를 냈다. 처용은 바로 거을과 아미에게로 갔다.
헌강왕은 포석정(鮑石亭)에 놀러 갔다. 세 사람이 나타나 탈을 쓰고 춤췄다. 탈에는 천(天)․지(地)․인(人) 세 자가 쓰여 있었다. 천신(天神)․지신(地神)․인신(人神)을 나타냄이었다. 이들은 물론 처용과 거을, 그리고 아미였다. 처용은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노래하였다. 거을과 아미도 대금과 향비파로 거들었다. 헌강왕이 월상루에서 내려올 때 거을과 아미가 나타나 부른 노래였다. (둥-! 둥-! 지리다도파/둥-! 둥-! 둥-! 지리다도파) 처용 일행은 춤과 노래를 마치고 홀연히 사라졌다. 헌강왕은 좌우 근신을 둘러보았다. 왕은 술잔을 내리고 물었다. ‘지리다도파’가 무슨 뜻인가? 시중 민공이 읍을 했다. 대왕마마의 성덕을 칭송하며 천수를 다 누리라는 뜻이옵니다. 그리고 대왕의 나라가 영원무궁하기를 비는 뜻이옵지요. 민공은 속뜻도 정확히 헤아리지 않고 듣기 좋은 말로 흥을 돋구었다. 헌강왕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런가?! 내 상금이라도 내려 줄 것을!! 민공은 말했다. 그들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습니다. 헌강왕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군. 헌강왕은 술잔을 높이 쳐들었다. 자, 건배! 바야흐로 금잔미주가 좋은 안주와 함께, 헌강왕과 그의 측근들 입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런데 처용이 노래한 ‘지리다도파’의 한문은 ‘智理多都波’였다. 이는 지혜(智)로써 나라를 다스리는(理) 사람은, 사태를 미리 알아채고 모두(多) 달아나, 도읍(都)이 곧 파괴된다(波)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망해 갈 나라를 위한, 축배를 들고 있었던 셈이다.
처용은 거을, 아미와 함께 울산으로 향했다. 작별 인사를 위해서였다. 비조부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다. 처용이 사직서를 냈을 때, 헌강왕이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수락한 것은 그 때문일 터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관내 농민들에게 나눠준, 게다가 늙고 병든 자가, 무슨 욕심을 낼 것인가. 헌강왕은 그런 비조부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다. 관리가 토호들의 동태를 파악하여 분기별로 보고서를 올린 때문이었다. 처용은 얼더듬었다. 아버님, 저 관직을 내놓았습니다. 비조부는 힘없이 받았다. 이미 들었다. 괜히 나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맡았으니, 무척이나 갑갑했을 거야. 다시 세상을 떠돌 생각이군. 처용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송악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거기에 가면 나라를 위해, 무슨 일인가 할 일이, 꼭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헌데, 병든 아버님을 두고 떠나기가 너무 죄스러워서……. 비조부는 처용의 손을 꽉 잡았다. 내 걱정은 말고 훨훨 날아 다녀라. 너는 어렸을 적부터 역맛살이 있었어. 널 곁에 붙잡아 놓으면 좋지 않아. 제 명에 못 죽지. 내 걱정은 말고 어서들 가 봐라. 처용은 부친의 손에 힘을 주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이제 떠나겠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저희들이 절을 올리겠습니다. 받으세요. 처용과 거을, 그리고 아미는 누워 있는 비조부에게 절을 했다. 비조부는 부인의 도움을 받아 힘겹게 앉아 받았다.
처용은 걷다가 몇 번이고 집을 돌아보았다. 부친의 얼굴에서 언뜻 죽음의 그림자를 읽었다. 이제 가면 못 볼 거였다. 불효막심한 자식이라는 자책이 들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처용은, 손등으로 눈가를 문지르며, 걸음을 빨리 했다. 처용 일행은 양산 거을의 부친에게 가 하직 인사를 올렸다. 보름밤이었다. 처용들은 북으로 향했다. 달은 구름에 가려 있었다. 북극성에서 멀리 서북쪽으로, 한 줄기 빛이 원통 모양이 되어, 내리 꽂히고 있었다. 처용은 즉시 손가락을 꼽아 보았다. 송악의 왕 씨 집안에, 그것이 내리는 것을 본 지, 꼭 10달이었다. 처용은 북극성을 향해 손을 펴 가리켰다. 처용의 음성은 얼마간 들떠 있었다. 저 빛이 닿는 곳은 송악이 틀림없어. 걸음을 빨리 하자. 지금 세상에 나오는 저 생명의 스승이 되던, 책사가 되던, 우리가 거기에 가면 무엇이든 나라를 위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거을과 아미는 처용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구름을 벗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처용 일행의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
[처용별전(處容別傳)] 신라시대 공간의 설화를 문화사적으로 접근하고 있어 의욕적이다. 처용을 민족적 주체세력으로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단군신화나 삼국신화는 물론 단군시대부터 내려왔다는 화랑과 원화에 대한 조예가 깊어 진지하게 실험적으로 다루었다.
- 이명재(평론가, 중앙대 명예교수)의 월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