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미친 여자의 변사체’로 보고를 올렸으니 그 다음은 위에서 조치를 취할 것이었다. 물에 떠다녀 시신도 부분적으로 훼손된 데다 ‘미친 여자’라고까지 했으니 조사를 위해 그 사람들이 섬까지 들어오지는 않으리라. ‘미친 여자의 변사체’에 그렇게 지극정성을 들일 만한 경찰도 대한민국에는 없고, 또 ‘미친 여자 변사체’에 그런 관심을 쏟을 만큼 대한민국 경찰이 한가하지도 못하다. ‘단순 사고사’로 처리하랄 게 뻔했다.
그런데 문제가 좀 복잡해질 성 부르다. 고승수와 몇 달 동거를 했다지만 두 사람이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 것이다. 두 사람 같은 경우는, 사랑보다는 필요에 의해 만나진 관계이니, 그저 남남은 아닌 남자와 여자로 그작저작 살다가, 다행히 애라도 한둘 생기고, 그 애들이 국민학교나 갈 때가 돼야 부랴사랴 면사무소에 가는 게 일반적이다. 안그러면 그 사이에 여자가 도망쳐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분명히 두 사람은 서류상 부부가 아닐 것이니 고승수는 법적으로 연고자가 될 수 없다.
결국 여자의 가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몇 달 동안 미친 상태로 동네를 떠돌아도 아무도 안 나타나는 걸 보면 가족에게 쉽게 연락이 닿을 듯 싶지도 않고, 어찌어찌 연락이 닿았다손쳐도 그 가족이 미친 여자의 시신을 인수하려고 섬까지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돼 공동묘지에 묻히게 될 것이었다. 시신 처리는 지서의 업무가 아니고 면사무소의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박 순경은 고승수를 불러보기로 한다. 섬의 일이라는 게 이리저리 정확히 따져 업무가 갈라지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따져 갈랐다 해도 일이 꼭 그렇게 갈무리되는 것도 아니었다. 면직원이고 경찰이고 너 할 일 내 할 일 구별 않고 두루뭉술 엮어져 돌아가는 게 섬 업무의 특징이었다.
방위병을 세 번이나 보내서야 고승수는 지서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순사라면 지긋지긋해서 어지간해서는 지서에 안 오는 사람인데 말이야.”
머리가 벗어진 탓인지, 서른다섯밖에 안됐는데도 나이가 좀 들어보인다. 국민학교를 중도에 작파하고 내내 바다로만 떠다닌 인생인지라 짜디짠 해풍이 세월의 탄력을 오글쪼글 절인 탓도 있을 것이다. 구릿빛 얼굴에 자글자글 생겨나 있는 주름이 그 흔적이다.
“이렇게 나오시라 해서 죄송합니다.”
박 순경의 말이 조금 조심스럽다.
“무사 나 불러샤?”
제주를 떠난 지 스물 해가 훨씬 넘었는데도 고승수의 말에는 아직 제주의 억양이 많이 남아 있다. 옆엣사람들이 못 알아먹겠다고 타박해도 아랑곳않는다.
주임은 자리를 비웠고 없다. 평소에 어울리던 고승수와의 어색한 만남을 피해 일부러 자리를 피한지도 모르겠다.
“저, 다름이 아니고…….”
박 순경이 바로 말을 못 꺼내고 여짓거린다.
“행여 죽은 김양을 나하고 연결짓지 말라이. 그 말 허커랑 아예 말도 꺼내지 말라이.”
의자에 앉자마자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고승수가 반지빠르게 오금을 박는다.
“안그래도 요즘 이것저것 더멩이(머리) 아픈 일이 많은디.”
고승수는 이리저리 고개를 슬밋대더니, 피울 데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담배를 거꾸로 들어 책상에 톡톡댄다.
“혹시 연고지를 아시는가 해서요.”
박 순경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내가 섬에 데리고 온 것도 아닌디 그걸 어떻게 알아. 정마담이 데려 와신디, 그거 물어봅써. 나는 내 돈 들여 그 애기 빼준 것밲이 어수다. 그 이상은 나도 모른다.”
고승수는 새퉁스럽다는 표정으로 계속해서 담배를 톡톡, 책상에 두드려댄다.
“연고지를 파악할 수 없으니 어떡합니까? 주민등록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장님이 좀 책임져 주셔야겠습니다.”
박 순경도 지지 않겠다는 듯 단호하게 밀고나간다.
“이제 보니 박 순경도 참 곱곱허우다(갑갑하다). 내 그 애기 머리를 틀어줬나, 호적에 올리기를 했나? 근디 내가 왜 송장을 처리해야 됩니까?”
고승수가 목소리를 켠다.
“그래도 얼마 동안 선장님과 동거했잖습니까?”
박 순경은 지금 따지고 있는 내용이 자신의 영역 밖이라는 걸 잊고 있다.
“돌아 불겠네. 그 애기 미쳐 돌아 댕긴 게 멫 달인지 알아지쿠광? 갯껏으로 산으로 돌아다니는 애, 집에다 잡어다 논 것이 몇 번인지 알암수광?”
고승수가 박 순경을 향해 눈을 부라린다.
“박 순경도 두 눈으로 뻔히 봐놓고 그런 소리 햄수광? 괜히 미친년 데려다가 애조진(속썩인) 거 생각허문 안그래도 속에서 천불이 나는디. 정마담이 여기 데려 와시난 그 집 가서 알앙헙써.”
고승수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섬에 팔려와 술집에서 일년 가까이 살고, 고승수에게 넘어가 또 일년 가까이 산 것이 김양에 대해 알 수 있는 전부다. 아무래도 연고지 파악이 힘들 것 같아 동거했던 고승수에게 넘겨 보려는 것인데, 예상은 했지만 역시 씨알이 안먹힌다.
“그래도 같이 살았던 입장에서 도의적인 책임은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박 순경은 끝까지 고승수를 물고 늘어져 본다.
“허어, 진짜 사람 돌겠네.”
어이없다는 듯 고승수가 천장을 보며 헛웃음을 뿜어낸다.
“내가 왜 도의적으로 그 애를 책임진단 말이꽝. 정식으로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아까 고랐주만(말했지만) 호적에 올린 것도 아니고. 난 단지 그 애가 불쌍해서 생돈 주고 빼준 것 뿐이우다. 그런 나한테 무슨 책임이 있단 말이우꽝!”
말을 마친 고승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린다. 그러고는 박 순경에게 한마디를 남긴다.
“더 하고픈 말이 있주마는 내 입이 더러지고, 동네 시끄러질 것 같어 참암수다. 개 쌍녀러새끼들. 한다하는 놈들 중에 사람 새끼 아닌 것들이 여럿이여. 여기 지서에도 한 놈 이서.”
누구를 두고 하는,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승수는 이를 갈며 말을 뱉고는 돌아선다.
“저, 저…….”
박 순경이 따라 일어서지만 고승수는 모르는 척 그냥 빈지문을 밀고 나가버린다. 박 순경도 고승수를 따라 밖으로 나선다. 고승수는 마당을 지나 계단을 내려서고 있다. 잡아 나설 생각이 없는지 박 순경은 마당에 선 채 담배를 빼어 문다. 박 순경이 몸을 옆으로 틀며 손후리를 만들며 성냥을 긋는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따 헹님, 소설은 소설이라께 어채 그라요. 혹시 헹님, 그 당시 주임하고 면장 찾은 거 아니요? 그라믄 큰일나요이. 우리집 쫓아와서 뒤께베믄 인자 울아부 소설 쓰지 마라그라요이. 안그래도 울아부 똑바로 안 쓴다고 맨날 나말해싼데라우.
잘읽고갑니데이
어디좀 가베지 마시요야. 내 머리 쓰다듬어 주고 발도 주물러 준 따땃한 나비님아, 꾼감재 껍질 벗겨 호호 불어 주고 재핀 사람아. 핑 갔다가 핑 오고 그라라께 ^^~^^
아니, 본새 그라고 말이 짧으요. 키는 이상 크단한 것 탁든마. 남자는 코가 크믄 콧구멍이 크단데, 여자가 키가 크믄 뭐가 크까? 발이 크까, 옷이 크까?
저저금 삶이 있을 터인데 누구는 술집으로 흘러들어
뭇 남정네 물받이로 살다가 장터의 미친녀가 되고 결국 바다에 주검으로
끝이나 주검도 서로 돌아보지 않는 삶이라니... 이땅에는 저렇게 살다가 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애처롭다.
허허, 이녁 입에서 '물받이'라니. 사람이 이상 베레가구마이. 그런 말은 내 입에서나 나와야는데. 이녁이 인제까지 그라믄 호박씨를 깠으까.
@너빠퉁 헉! 우리 형아가 태찌 물드네라.
눈이 펑펑 내리니 이야기가 더 맛나다요. 속리산 내려 오던 날 덜커덩 버스에서 내내 말했던 아픈 야그가 새삼 생각난다요. 그래, 삐딱하게 봐야 바로 보이는 것들을 오늘 밤 눈이 하얗게 덮을 것 같네. 삐딱쟁이 이싸람아!
술 채서 나가 그날 뭔 말 하디냐? 본새 삐딱한 놈이라 누구처럼 빤듯하게는 못 산다. 그게 울아부한테 물려받은 성정인데 어차것냐? 생각은 한다마는 본새 타고난 피가 그라께 할 수 없다. 자네가 이해하소.
아녀 .세상을 삐딱하게 볼 수 있어야 글을 올케 쓰제. 비판적 시각으로다가ㅎ^^. 이해할 일 엄따요.
오늘밤 눈은 푹푹 나리고 나타샤는 나를 향해 오고 있을지도 ㅋㅋ^^ 더원의 '썸데이' 가 어울리는 밤이당^^
너빠둥님 글은 새콤 달콤 얼큰한 삼치회무침이요, 향우님들 뒷풀이는 퐁마꼴 구수한 군고구마 이더이다 긴`겨울밤이 짧소야
두루두루 감사 합니다. '퐁마꼴' 수정 합니다,
우리는 '퐁마꼴'이라 했는데 누가 '풍마꼴' 또는 '풍막골'이라 합디여? 어뜬 인간들이 또 한자로 바꾼 거 탁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