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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영국에서 돌아와 서울 봉천동 나눔의 집으로 이르는 산동네 길을 오르다 그만 마음이 착잡해졌다.
봉천동 구석구석 서린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콘크리트 속에 묻힌 것만 같았다.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철거 용역 깡패들에게 얻어맞고 떠밀리고 쫓겨나면서도 삶의 터전을 지키려 고군분투했던 그들이 떠올랐다. 예전 사람들 대부분은 떠나고 없었다. 서울 외곽 또는 수도권 변두리로, 더 싼 지하 셋방이나 연립주택, 그나마 나은 경우 임대아파트로 흩어진 뒤였다. ‘주거’가 상품이 되고 투기 대상이 되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기적 욕망이 부풀려지는 사회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었다. 나는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 이사장직을 맡았다. 노숙인 및 위기가정 쉼터와 임시주택 운영, 주거 및 재개발 상담 등 ‘주거 복지’와 관련된 일들을 전문화시켜 하고 있는 단체다. 1990년대 ‘나레건설’의 경험이 반영된 사회적 기업 ‘나눔 하우징’도 운영되고 있다. ‘나중에’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부터’ ‘미리’ 조금씩 유산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물려주고 나눠줄 아름답고 위대한 100명의 사람들을 찾고 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린다(02-928-9064). 매 주일 서울 또는 근교의 8∼10㎞를 함께 걸은 뒤 야외의 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다. 하느님의 창조 섭리를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길, 또는 어려운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이어지는 길을 주로 걷는다. 1986년 상계동 ‘나눔의 집’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귀에 설었던 이 단어가 이제는 사회 곳곳에서 유행어처럼 쓰인다. 초기 주창자로서 우려되는 것은 ‘나눔’이 돈 걷고, 자원봉사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네트워크’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네트워킹은 풀이하면 ‘그물이 일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다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하느님 앞에 동등한 것이다. ‘나보다 못 해서, 불쌍해서’ 돕는 것이 아니라 그물 한 코 한 코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먼 길이지만 든든한 동료들이 있기에 즐겁게 걸어갈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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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2011. 5.22. 부터 6.29. 까지 28회에 걸쳐 국민일보에 연재된 송경용(레오나르도) 신부의 자전적 회고록 연재를 마칩니다.
송경용 신부님과 국민일보, 끝까지 본 연재물을 사랑해 주신 카페 회원님들께 고마움을 나눕니다.
첫댓글 신부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무문님, 정말 고맙습니다. 전화주셨는데 외국인지라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고 좋은 싸이트 만드시고 관리하시는 일 하시는데 어려움이 크실텐데 제 기사까지 신경 써 주셔서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얼굴을 뵌적이 없으니 언제 만나시거든 먼저 말씀해주십시오. 차라도 한 잔 대접해 드리겟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평안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때로 지치고 힘들기도 합니다만 격려의 말씀과 축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많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