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장 안, ‘오늘’을 사는 사람들 - 강화 유성고무, 유은덕씨
아침 7시면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여는 이가 있다. 중앙시장 A동 1층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유은덕(67세)이다.
이른 아침부터 신발이 팔릴까 싶지만은, 모르는 소리다. 이른 아침에 신발을 사가는 사람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배를 타는 어부, 그리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들이다. 일찍 일을 시작하는 그들의 시간에 맞추다 보니 유은덕씨는 시장 내에서 가장 먼저 가게 문을 여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아휴, 농사철이 시작될 때는 더 일찍 열어요. 아침 5시 반이면 문을 열어야 하는걸요.”
농사철에 가장 많이 팔리는 신발은 장화다. 장화 사러 왔다가 우비도 덤으로 사간다며, “우린 장화 팔아서 밥 먹어요.” 라며 환하게 웃는다.
웃는 모습이 예쁜 유은덕씨가 중앙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한지는 25년째이다.
중앙시장이 얼마나 장사가 잘되었는지, 그리고 또 지금은 얼마나 장사가 안 되는지를 몸소 겪은, 지금은 몇 남지 않은 중앙시장의 터줏대감인 셈이다.
중앙시장A동에 있는 상가는 3층의 학원을 빼더라도 1,2층을 합쳐 120호가 된다. 지하의 슈퍼와 생선가게, 음식점까지 합치면 거의 200호에 이른다. 200호가 넘는 가게 중에서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는 곳은 절반이 조금 넘는다. 옛날에 성업을 이루던 그릇가게나 건어물, 그리고 지하의 슈퍼와 생선가게들은 이미 문을 닫거나 현재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장사가 안 된다. 그렇다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오래된 옷을 리폼 하는 ‘수선집‘과 할머니들을 상대로 하는 미용실, 신발을 파는 유씨네 가게와 이불가게, 금은방은 장사가 잘되는 편에 속한다. A동에만 해도 미용실이 4개나 될 정도로 미용실은 성업 중이다.
“여기 터미널이 있던 때는 상가 앞에 있는 이 길이 미어져라 사람들이 다녔어요. 그때는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우리 가게 신발을 신고 다녔지. 아휴, 얘들 학교 졸업식에 가서 만나는 사람이 모두 우리 가게 손님이었는걸요.”
살면서 가장 좋았던 때는 장사가 잘되던 바로 그때였다고 유씨는 씁쓸해한다.
중앙시장의 상인들은 변해가는 강화를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여기 강화가 좁잖아요. 그래서 여기에 시장이 더 생기겠냐. 시장은 여기 하나다, 라고 그땐 사람들이 그렇게들 말했어요. 사람은 뻔한데, 풍물시장을 지어서 시장을 반으로 갈라놓더니 지금은 상가며 편의점이 너무 많이 생기잖아요. 군에서 허가를 좀 덜 내줘야 한다고 상인들이 군청을 원망하고 있어요.”
사실 유은덕씨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요즘 자고 일어나면 늘어나는 것이 편의점들이다. 중앙시장의 상인들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던 일들이 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영세상인법 운운하지 않더라도 강화와 같은 소읍 규모의 시장에서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는 쇼핑센터나 편의점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규제는 필요한 것이 또한 현실이다.
나태주 시인은 <시장길>이라는 시에서 ’비로소 살아 있는 사람들의 냄새와 소리들/ 별로 살 물건이 없는 날도/ 그 소리와 냄새 좋아 시장길을 기웃댄다‘ 라고 했다.
오래된 재래시장에는 모든 것들이 갖춰진 대규모의 쇼핑센터에서 보여 지는 세련미나 깔끔한 맛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재래시장을 잊지 못하고 찾는 이유는 거기에는 ‘사람냄새’ 나는 향수와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단순하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재래시장 중 하나가 아니다. 새로 만든 것에는 역사가 없다, 하지만 오래된 것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것이다.
재래시장의 기능이 물건을 팔고 사는 곳에서 관광 상품으로까지 대접받는 까닭은 바로 오랜 시간을 거쳐 형성된 삶의 기억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것이면서도 현재의 우리 모습을 담은, 그래서 나름대로의 독특한 정서와 문화를 엿보게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풍물시장에서 강화문화의 일단을 엿보는 것처럼 중앙시장에서도 그럴 수는 없을까. 그런 점에서 빛깔을 잃어버린 중앙시장의 활성화는 어쩌면 ‘사람냄새’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는 군의 정책과 함께 상인들 스스로가 젊은 상인들을 영입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유성고무 : 933-1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