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능소화
박 치 옥
꽃은 미(美)의 원천(源泉)이며 인간은 그 누구나 꽃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꽃 선물이 첫째요, 음식 대접은 둘째라는 말도 있다. 어떤 청년이 장미꽃 백송이를 들고 집에 찾아가서 구혼했더니 그 자리에서 오케이 승낙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활 속에서는 꽃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생활수준과 문화 수준이 높아지면서 꽃의 활용도도 상승일로를 달리고 있어 꽃 무역이 상상외로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이제는 가히 선진국 수준을 넘볼만한 생활수준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꽃은 사람처럼 각각 이름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이름에 따라 독특한 의미도 지니고 있다. 장미는 모두가 다 알고 있듯이 사랑과 열정이요, 진달래는 첫사랑, 물망초는 잊지 마시오 라고 의미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능소화에도 여러 가지 꽃말이 있다.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사(御使)꽃과 양반 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통 꽃과는 격이 다르다는 뜻인데 역시 능소화의 전설이 그것을 입증하는 것 같다.
옛날 어떤 왕궁에 능(能)씨 성을 가진 소화(宵花)라는 궁녀가 있었는데 얼굴이 예쁘고 마음씨 또한 남달리 고와서 임금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후궁으로 간택되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궁궐이라는 곳은 예로부터 온갖 시기 질투가 범람하는 곳이라, 능소화한테는 모든 궁녀들이 의기투합(意氣投合)하여 끈질긴 모략중상을 한 까닭에 궁 밖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궁궐에서 쫓겨난 소화는 담장 위에 올라가서 매일 임금님이 있는 궁궐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특히 까치발 돋움으로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면 볼 수 있을까 하고 무진 애를 태우다가 끝내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시신은 소화의 유언에 따라 궁궐을 바라보기 위해 올라갔던 그 담장 밑에 묻어주었다.
그런데 소화의 무덤에는 여름 내내 한 떨기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능소화>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 애달픈 사연을 듣게 된 사람들은 그 꽃을 보면서 애잔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 울타리를 타고 오른 능소화 넝쿨이 무섭게 뻗어 나가 옆집 울타리를 넘어가는 바람에 바삐 서둘러 가지를 치고 줄기를 우리 담 쪽으로 돌려놓았다. 내년에는 정원 조경사의 도움을 받아 좀 더 아름답고 품위 있게 가꾸어야 하겠다.
첫댓글 능소화의 전설이 그럴 듯하군요.
여름철 나팔꽃처럼 모양새을 지닌 큰 꽃, 주황색에 가까운 곳이 정말로 많이 화려하게 피지요.
시원시원하게... 어사꽃, 양반꽃으로 부르나요?
저처럼 촌늙은이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군요.
서해안 갯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집 울안에도 수십 년 된 능소화가 있지요.
무더운 여름철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데... 올해에는 그 능소화는
일전 시골집에 다녀왔지요.
앞마당 화단 속의 능소화는 벌써 다 져서... 잎사귀조차도 떨어졌대요.
빈 집이라서 그랬을까요? 능소화가 다 졌대요.
능소화 가지 하나(실뿌리가 돋아났기에) 톱으로 잘라서 윗밭에 묻었지요.
내년에 새 순 나왔으면 싶네요.
능소화꽃 색깔도 여러 종류.
내년 봄에는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 나가서 색깔이 다른 품종 하나를 사다가 심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