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7일, 서구 석남동의 한 골목에 낯선 공간 하나가 문을 열었다. 원목으로 단정하게 치장한 외벽, 그리고 근사한 집기들이 들여다보이는 환한 쇼윈도는 오래된 주택과 나지막한 상가들이 즐비한 골목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쇼윈도 위로는 아기자기한 서체로 만든 ‘우리 동네 사랑방’이라는 문구가 소박하지만 세련된 감각을 뽐내며 행인을 반겼다. 그리고 입구 오른쪽에는 ‘서구 민중의 집’이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 조병하 서구 민중의 집 대표를 만나 개소까지의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사진1] 서구 민중의 집 전경
풀뿌리 민중운동의 중심
인천에 민중의 집이 들어선 것은 서구가 처음이다. 서울에는 마포와 구로, 중랑, 그리고 전라남도 광주에는 이미 민중의 집이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민중의 집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유래가 100년을 넘는다. 2012년에 출간된 『민중의 집』(정경섭, 레디앙)이라는 책에서는 민중의 집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럽 전역에서 시작된 “풀뿌리 민중운동의 산물”이자 “진보주의자들이 들불처럼 펼쳤던 지역운동의 결정체”라고 설명한다.
당시 민중의 집의 핵심적인 주체는 진보정치운동과 노동자운동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와인이나 빵과 같은 생필품을 주민들에게 값싸게 공급하는 역할을 하거나, 병원이나 약국과 같은 의료시설을 대신하기도 했으며, 각종 공연과 문화 활동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이렇게 민중의 집은 주민 또는 민중으로서의 노동자들의 생활과 정치, 경제, 사회적 활동이 복합적으로 연결되는 공간이었고, 노조와 정당 등이 조직되는 곳이기도 했다.
민중의 집의 대표적인 사례는 스웨덴이다. 스웨덴 전국에는 민중의 집이 약 500개가 넘게 있고, 연간 스웨덴 인구의 5배가 넘는 5천만 명이 이곳을 이용한다. 그리고 스웨덴 국민의 70%가 민중의 집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노동자교육협회를 통해 시민교육이나 강의에 참여한다. 이뿐만 아니라, 스웨덴에는 지역별로 ‘민중공원’을 조성해 놓고 있다.
새로운 노동주체를 위한 하방
현재 민중의 집을 실험적으로 펼치고 있는 주축은 ‘진보신당’이다. 진보신당 내에서 정치를 쇄신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중의 집에 대한 논의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은 2011년 무렵부터라고 한다. 당시. 진보신당은 타당과의 통합을 놓고 내부 분열을 겪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2012년 4월, 진보신당은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 1.13%를 얻어 정당 등록이 취소되는 상황을 겪게 되었다.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총 유효투표수의 2% 이상을 얻지 못할 경우 등록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제44조 1항 3호).
총선 직후,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는 시대의 모순과 근본에 맞서자며 ‘하방(下放)’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하방이란 1957년 중국정부가 관료화를 막기 위해 간부들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관료주의나 종파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실시했던 운동이지만, 풀뿌리 민중운동으로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홍 전 대표는 당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하방은 달아나는 길이 아니라 근원에 이르는 길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라며 “무엇보다 정치부문에서도 배제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조직화, 정치화할 것인가의 물음이 우리가 가는 길의 과정이며 행선지이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서구 민중의 집’
서구 민중의 집을 만들기 위해 초동모임이 꾸려진 것은 2012년 4월 총선을 전후한 무렵이었다고 한다. 지역의 여러 활동가들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초동모임 운영이 원만하지 못해 결국에는 진보신당 당원들만으로 꾸려지게 되었다. 이들은 지역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지역의 노동조합과 공동으로 텃밭을 경작했다. 그리고 1년여 시간이 지나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 700포기로 담근 김장을 한 부모 가정에 직접 전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지역 주민들과 깊은 소통을 나눌 수 있었던 계기는 ‘금요 술상’이었다고 한다. 타 지역 민중의 집에서는 주로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들 간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렇다 할 공간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 금요 술상은 지역의 주민들과 술자리에서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며 민중의 집을 구상하는 탄탄한 밑거름이 되었다. 조병하 대표는 ‘술상’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지역적 특성을 들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 동료들이나 조합원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서로의 애환을 달랠 기회가 많지만,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퇴근 후에 주로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 잠자리에 듭니다. 이곳에는 그런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금요 술상이 차려져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기니 그 분들이 무척 좋아했죠. 이외에, 이주민들이나 철거민들과도 쌍용차 다큐멘터리나 영화 ‘파업전야’를 보며 술잔을 나누었습니다. 그야말로 금요일은 갈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한 ‘불금’의 장이 만들어졌죠. 무엇보다도 금요 술상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러자 점점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노무법인 ‘현장’과는 무료 노동상담을 실시했다. 서구지역의 노동조합과는 함께 공동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6강에 걸쳐 진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민중의 집 초동모임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민중의 집 건설이 추진되기 시작해 올해 4월에 개소식을 가졌다.
생활과 노동, 정치가 하나로
현재 서구 민중의 집에는 금요 밥상을 비롯해 텃밭공동체, 민중산악회, 노동상담, 민생상담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앞으로 장애인 가족을 위한 심리상담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마련될 것이라고도 한다.
조병하 대표는 올해 민중의 집 주력사업으로 ▲숨 쉬는 도서관과 ▲저소득층·맞벌이 가정을 위한 토요 체험교실, ▲ 금요 밥상을 꼽았다. ‘숨 쉬는 도서관’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것처럼 사람을 읽는(대화하는) 사람책 도서관을 말한다. 토요 체험교실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질 예정이며, ‘금요 밥상’은 여자와 아이들 등 다양한 주민의 참여를 위해 ‘술상’을 ‘밥상’으로 바꾸어 운영된다. 조 대표는 민중의 집 운영 방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주민과 노동조합, 각종 단체나 활동가들을 자원으로 활용해 서로 호혜적인 교류를 만들어 감으로써 비자본적인 생활양식을 창조해나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지역 주민과 노동자를 조직하고 세력화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서구 민중의 집은 오는 6월 13일(목) 저녁 7시 창립총회를 개최해 공식적인 운영체계를 꾸릴 계획이라고 한다.
[사진2] 민중의 집 내부에 마련된 도서관. 이곳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상담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도 한다.
[그림3] 민중의 집 카페. 민중의 집에 마련된 공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림4] 서구 민중의 집 조병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