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ro ]
평온한 시간을 보낼 모든 사람들에게
<카모메 식당>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전하는 순간이면서 영원한 이야기
‘놓치지 않으려고, 잃지 않으려고’ 살아온 인생을
어느 날 갑자기 다 놓아버리고 여기에 왔다.
그런데 뭐지, 여기서 만난 사람들.
홀로 바람에 떠밀려 와서는 미소 지으며 살고 있다.
의심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강인함이며, 용기이다. 큰 무언가.
온종일 봄의 바다.
그렇게 동경해왔던 ‘자유’에,
문득 손이 닿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You live freely only by your readiness to die.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 About Movie ]
친환경, 유기농, 웰빙, 로하스에 이어 이제는 슬로우 라이프!
<안경>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남쪽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섯 사람의 맛있는 만남을 그린 이야기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카모메 식당>에 이어 슬로우 푸드,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상적인 삶을 잔잔하고도 재치 있게 담아냈다.
친환경, 유기농, 웰빙, 로하스로 이어지는 이 단어들은 몇 해 전부터 급속도로 관심이 높아졌고 이제는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어느 제품이건 붙여 넣기만 하면 잘 팔리는 시절도 있었듯 사람들은 이들 단어에 끌렸다. 이런 흐름에 맞춰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슬로우 라이프 무비 제1탄 <카모메 식당>은 그래서 관객들에게 더욱 관심과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두번째 움직임으로 11월 <안경>이 관객을 찾는다.
해가 뜨면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가꾼 채소로 아침을 차리고 밤이 되면 잠드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시계도 없을뿐더러 누구도 시간을 묻지 않는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끈질기게 묻지 않고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느껴지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 문득 궁금해져도 결국 그게 뭐가 중요하겠느냐며 과거를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다. 해가 뜨고 지는 일이 당연하듯,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이 당연하듯 그렇게 그들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에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안경>은 그런 태초의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자유로운 삶을 주장하는 진정한 슬로우 라이프 무비다.
지친 영혼을 위한 106분의 달콤한 여행이 시작된다!
인생에는 몇 번인가 무언가에 홀리듯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리고 도착한 그곳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 어디로 가는 게 아닌, 특별히 무엇을 하는 게 아닌, 단지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평온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영혼을 내포한 인간의 원초적 포근함이 느껴진다. 일상의 쇠사슬로부터 해방되어 되찾는 자유라는 것. 감독은 그런 달콤함과 그리움을 전작 <카모메 식당>에 이어 평화로운 그림 속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 흔한 TV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는 탁 트인 장소에서 세상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곳.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 같으면서도 꼭꼭 숨어있을 듯한 그런 곳. 하지만, 언젠가는 꼭 다다를 수 있는 그런 장소이다. <안경>은 그런 느긋한 일상을 소소하고 상큼하게 그려낸 기분 좋은 영화다.
사람과 여행••• 그리고 산다는 것. 등장인물과 함께 느긋한 시간을 공유하는 사이 마음은 어느덧 커다란 것을 향해간다. 물론 영화는 그런 명제를 뛰어넘은 곳에서 성립하고 있다. 남국의 투명감 넘치는 햇살 속에서 생명력을 되살아나게 하는 맛있는 식사, 편안한 삶의 풍경이 그것이다. 스타일리스트, 푸드 스타일리스트, 미술 스태프들이 한마음으로 창조해낸 새로운 공간. <카모메 식당>에 이어 그려진 다양한 요리들. 연어구이, 계란프라이, 봄채소, 빙수••• 특별한 것은 없지만 “맛있겠다!!”라고 소리치고 마는 소박한 요리가 이번에도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영화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주제가 ‘안경’의 자유로운 음성과 멜로디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잔잔히 가슴에 울려퍼진다. 스크린으로부터 전해지는 삶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106분. 평온해지는 것, 그것이 여행이 가진 그리고 이 영화가 가진 진정한 묘미일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왠지 세상과 안 맞는다고 느낄 때,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에 지쳤을 때, 그 시간은 바로 평온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야 할 때이다. 맨손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훌쩍 영화관을 찾고 싶어지는 날, <안경>을 통해 결코 잊지 못할 달콤한 여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카모메 식당>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전하는 기분 좋은 삶의 풍경
<안경>의 관객을 여행에 초대하는 것은 세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이다. 한 여성이 망설이면서도 마음 가는대로 찾아간 남쪽의 바닷가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인 여행자 타에코를 연기하는 것은 고바야시 사토미. <카모메 식당>에서 보여준 청결한 모습은 그대로 간직한 채 인생의 어느 한순간 갑자기 모든 걸 멈추고 여행을 떠난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녀를 맞이하는 하마다 민박집 주인 유지 역에는 <유레카> <노리코의 식탁> <보이지 않는 물결>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실력파배우 미츠이시 켄. 숙소에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섬마을 생물 선생님 하루나 역에는 동 세대의 여성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열흘밤의 꿈>에서 열연한 이치카와 미카코가 맡았다. 또, 타에코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불현듯 나타난 청년 요모기 역에는 영화 <허니와 클로버> <스크랩 헤븐> 등을 통해 현재 가장 주목을 모은 카세 료가 연기한다. 그리고 숙소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인 빙수 아줌마 사쿠라 역에 모타이 마사코가 흐뭇한 미소와 함께 푸근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감싸 안는다. 특히 모타이 마사코는 오기가미 감독 영화에 벌써 네번째 출연으로 <요시노 이발관>에서 이발사로 <카모메 식당>에서 수수께끼 버섯 아줌마로 등장하며 개성 넘치는 표정 연기와 그녀만의 독특한 카리스마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카모메 식당>에 이어 <안경>의 등장인물들 또한 모두 베일이 쌓여 있다. 나이, 직업, 가족관계 이런 것들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유추해 보지만 그것은 어쩌면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사쿠라에 관해 묻는 타에코의 질문에 “안다고 해도 뭐 달라질 거 있나요?”라고 반문하는 하루나의 말처럼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배경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서로의 관계, 그 관계 맺음을 강조하고 있다. 혈연, 지연에 뿌리내린 혹은 이익관계가 개입된 가식적이고 표면적인 관계가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맺어지는 새로운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화려한 여행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어쩜 이 영화에 위화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 눈을 뜨고 맛있는 아침을 먹고, 해변에서 메르시 체조를 하고 해가 질 때까지 그냥 느긋하게 사색하는 것. 하지만, 특별한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를 태평하게 보내는 이들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삶의 진정한 여유를 찾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정한 느림의 미학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Production Note ]
제작진이 말하는 <안경> 그리고 우리네 삶 속의 <안경>
그곳의 공기에 녹아들도록!! 미술_토미타 마유미
미술 제작에서 특별한 컨셉이라고 말할 만한 건 없었지만, <카모메 식당>의 DVD를 보고 나서 이런 느낌으로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받고 촬영지로 향했다. 촬영 세트가 될 만한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이야기의 무대인 하마다 민박집의 부엌은 실제 있는 민박집 마당 한쪽에 만들었다. 중요한 건 심플할 것, 바람이 잘 드는 공간일 것, 식사가 맛있게 보일 것. 더는 손님을 늘이고 싶지 않다는 민박집 주방의 “그럴싸함”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조금 고민했다.
바닷가에 작은 집(빙수가게)을 세우기 위해 현지 사람이 보관하고 있던 오래된 물건들을 빌려썼다. 또, 하마다의 테이블과 마당의 의자들은 그곳 분위기와 어울리게 하고 싶어서 기성품을 현지의 재료로 가공했다. 그 밖에도 작은 상자, 이쑤시개, 세발자전거 등 섬 주민들로부터 빌린 것이 영화에 속속 등장한다.
촬영지는 특이한 공기가 흐르는 장소로, 촬영 현장도 그 속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그때의 온화한 느낌이 화면에 잘 드러나면 좋겠다.
시간을 형상화하는 어른들만의 뜨개질! 뜨개질_타카모리 토모코
타에코의 편물에 대해 주문받은 것은 ‘선녀의 깃옷’처럼 나부끼는 이미지. 처음에 연한 색이 떠올랐는데 결국은 빨간색이 되었다. 거기다 하늘하늘한 느낌을 내려고 얇고 복슬복슬한 털실을 쓰기로 했다. 뜨는 법은 보통의 짧은 뜨기. 얇은 실은 통상 얇은 바늘로 뜨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굵은 바늘, 그것도 제일 두꺼운 바늘을 사용해 떠보니 그 늘어지는 정도에 따라 팔랑거리며 바람이 통하는 목도리로 완성되었다. 대사에 나오는 “공기를 같이 뜬다”라고 하는 꼭 그런 느낌으로 떠진 것이다.
뜨개질을 보면 성격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기분이나 마음 상태도 드러난다. 처음에 타에코의 편물이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어 가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스태프와 이야기하고 난 뒤 그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타에코는 특별히 변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즉, 변하지 않게 변화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어른의 영화구나 하고 느꼈다.
목적도 없이, 단지 그 시간을 평온하게 지내고자 뜨개질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어른만의 뜨개질이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맛을 섞지 않고 그냥 정말 맛있게. 요리_이이지마 나미
여관의 아침식사는 종류가 꽤 많다. 그래서 하마다에서 먹는 아침식사는 일단 먹고 싶은 것만을 내는 야단스럽지 않고 불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하고 싶었다. 연어, 말린 음식, 계란이라는 메인 요리와 그것에 맞춰 만든 간단한 반찬을 곁들여 봄 채소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고 싶어서 뜨거운 채소나 샐러드를 대접에 푸짐하게 담았다. ‘하루의 부적’인 매실 장아찌는 먹는 횟수가 많아서 너무 짜지 않은 걸로 골랐다. 빙수에 넣는 팥은 남국에 어울리는 사탕수수를 섞어 영화의 대사 그대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끓였다. 그리고 빙수 위에 뿌린 것은 실제로 시럽이 아닌 하얀 벌꿀로 진득하고 부드러운 빙수가 완성되었다.
<안경>에 나오는 요리는 촬영용이긴 하지만 맛있게 보이기보다는 진정한 맛을 우선했다. 두툼하게 굽기보다는 프라이팬으로 재빠르게 구워낸 계란프라이. 십(十)자 모양의 칼집을 넣어 구운 두꺼운 식빵. 단순하지만 모든 게 다 먹고 싶어지는 그런 요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사쿠라가 싹둑 칼로 자른 황다랑어는 어쩜 한 마리에 500엔. 촬영 후, 주방 스태프의 손에 의해 조리되어 모두의 점심이 되었다.
기분 좋은 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체조_이토 치에(별난 버섯 무용단)
감독으로부터 “특별히 구애되지 않아도 돼요”라고 들었지만 ‘메르시 체조’라는 건 일단 그 이름부터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타이 씨가 맡은 사쿠라가 생각해낸 체조이기 때문에 ‘사쿠라스러운 체조’라는 것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처음에는 네 박자로 생각했지만 그러면 너무 딱딱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서 바닷가나 작품의 분위기에 맞춰 느긋한 세 박자로 변경했다. 그 탓에, 아무리 봐도 체조라기보다는 유니크한 무언가가 된 게 아닌가 싶다.
손발을 흔들흔들 흔드는 편안한 움직임이나 반대로 쭉 뻗는 모빌 같은 자세.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서 만들었지만, 촬영 모습은 예상보다 더 멋졌다. 이런 느긋한 움직임은 배우도 어린이도 개성이 잘 표현된다. 보면서 정말 재미있었다.
중요한 건 과하지 않는 것이랄까…(웃음) 보기보다 근력을 쓰기 때문에 전력을 다하면 꽤 힘들다. 적당히 힘을 빼고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오는 기분 좋은 곳에서 흔들흔들 움직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