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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들의 창작 소설집!
전태일 사거死去 50주기 추념 공동 출판 프로젝트!
‘너는 나다’라는 주제로 열한 개 출판사가 공동으로 전태일 사거 50주기를 추념하는 프로젝트를 꾸렸습니다. 갈마바람, 리얼부커스, 나름북스, 비글스쿨, 철수와영희, 학교도서관저널, 산지니, 한티재, 북치는소년, 아이들은자연이다, 보리가 그들입니다. [JTI 팬덤 클럽]은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하는 열한 권의 책 중 아홉 번째입니다.
[JTI 팬덤 클럽]은 무엇을 담았는가?
이 소설집은 역대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들 여섯 명의 창작 작품집입니다. 한국 문학에서 리얼리즘 명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들이 전태일의 분신으로 얼마나 치열하게 소설을 썼는지 목도할 수 있습니다. 전태일에 환호하며 모인 팬덤 클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를 소환하는 역사의 광장에서 미래의 영원한 청년 전태일(JTI)을 떠올리며 모두 다 같이 소리 질러 외치는 함성입니다.
여기 모은 여섯 편의 소설들은 서럽고 억울했던 기억들이 혼불처럼 모여 모닥불이 되었습니다. 대출 상환 독촉장(김인철/네 번의 짧은 노크)도, 살아남은 자의 고통(김주욱/클럽 팬텀)도, 악의 평범함(이종하/두 번째 서른 살)도, 지켜지지 않는 근로기준법도(최경주/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도, 쫓겨나 밀려난 삶(최용탁/수진리 고개)도, 속죄양(홍명진/미조)도 타는 모닥불입니다. 모두 모여 불 쬐며 수런수런 이야기 나누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김인철/네 번의 짧은 노크
김인철의 [네 번의 짧은 노크]는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를 떠올리게 합니다. 죽음을 선택한 두 계층의 상반된 이유를 통해 우리 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행의 방문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가련하지만 그 불행에도 차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욕망과 생존 사이에서 죽음에 이르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가난증명과 부자증명이 필요한 사회’임을 섬뜩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김주욱/클럽 팬텀
김주욱의 [클럽 팬텀]은 세월호 참극을 소재로 누가 누구를 치료할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합니다. 살아가기 위해 웃는 연습을 해야 하는 우리들의 초상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더불어 눈물이 없는 불구의 인간들에 대해 연민을 넘어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눈물 자극제, 눈물 치료제’가 필요합니다. 이 소설은 국수 면발처럼 퉁퉁 불어 버린 우리 삶을 다독이는 불씨와 같습니다.
이종하/두 번째 서른 살
이종하의 [두 번째 서른 살]은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쪽에서는 자본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살아가는 군상들이 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그 평범한 삶의 지류에서 버젓이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 할 수 없을 만큼 모두 구차스런 삶 속에서 작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지 않는가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오리무중입니다.
최경주/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최경주의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는 전태일의 삶을 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저지른 짐까지 기꺼이 질 수 있는 사람들, 비로소 참회할 시간을 맞이한 사람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두고 온 날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하는 경험’으로 돌아가라 외칩니다. 그 곳은 ‘한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 같은 곳’인데도.
최용탁/수진리 고개
최용탁의 [수진리 고개]는 빈 공간을 채우는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지난날 산업화 군사독재 치하에서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던 비어 버린 시간이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소환하여 그 시간을 오늘의 삶 속에 가져다 놓습니다. 청계천 변 사람들이 경기도 광주 대단지로 이주하며 겪었던 인간적 수모와 굴욕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 전태일과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나 돌아보게 합니다.
홍명진/미조
홍명진의 [미조]는 모두가 한때는 청춘이었던 1970년대 여공들의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노동운동이 싹텄던 시절입니다. 그때 함께 먹던 음식을 떠올리며 다시 그 시공간으로 돌아갑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가는 길목에 속죄양이 있습니다. 지울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부채의식이나 죄의식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사람 사는 세상인지 작가는 묻습니다.
[작가의 말]
김인철
모든 존재는 각자의 언어를 갖는다. 내 안에 숱한 언어들이 있었지만 들어줄 귀와 눈이었다. 나의 생각과 언어가 단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자유를 소망했다. 현실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풍요함, 부유한 나라, 선진국의 조건은 무엇일까? 중학생 시절부터 품었던 작은 물음표 하나를 이야기로 풀어 세상에 내놓는다. 이해와 소구력은 독자의 몫이다. 올해가 전태일 사거死去 50주기다.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전태일을 만난 건 기쁘면서도 가혹한 운명이었다. 전태일은 내게 가장 큰 존재이면서 가장 무거운 언어다. 그 뜨거운 횃불이자 무거운 언어는 우리를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얼마 전 서쪽 하늘에서 유난히 빛나는 별을 발견했다. 샛별, 개밥바라기별이다. 새로이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님을.
김주욱
또 끄적이려고 책상에 앉으면 모니터는 시커먼 거울로 변했습니다.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언제부터 모니터가 볼록 거울이었는지 아니면 내 눈이 금붕어 눈처럼 튀어
나온 것인지 얼굴을 더듬어 가며 일그러진 모습을 감상했습니다. 온종일 점점 파괴되어 가는 내 모습을 관찰하는 게 낙이었습니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내가 친구가 되어 서로 따라 하는 놀이를 하다 보면 진짜 나는 거울 속에 있고 거울 밖의 내가 거울에 비친 허상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울로 변한 모니터를 보지 않으려고 다짐해도 나는 어느새 거울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머지않아 내 안에 모든 것이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을 것 같았습니다. 인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출판사로부터 전태일 사거死去 50주기 추념 소설집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나를 추천해 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날의 폭력과 참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가 참여하는 작품집이 나오기를 기원합니다.
이종하
전태일을 알게 된 이십 대(1980년대) 문턱에서 내가 초라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고, 살아 있는 동안 부끄럽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내가 전태일일 수는 없지만, 그가 불구덩이에서 외친 외마디가 헛되지 않도록 초라하지 않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문학의 세계로 들어서게 했다. 나는 그렇게 삼십 년을 살았다. 꼭 쓰고 싶었던 소설(전태일 문학상 수상작인 [사람의 얼굴]은 아직 미완성인 채 발표된 것임)은 시작만 해놓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있다. 이제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이야기를 다 쓸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등단 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무거움을 나는 버텨내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면 나는 아마도 내가 쓰고자 했던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살아 있는 것에 항복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더라도 나는 내 몸뚱이보다 먼저 포기 선언은 하지 않겠다.
최경주
시장에서 싹튼 노동의 뿌리 저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느끼고 새 삶으로 돋아나는 노동의 열망을 받아 온몸으로 전하는 그런 소설을 쓰려고 했다. 세상의 부당한 일들은 힘찬 노동을 왜곡시킨다. 그런데도 역사의 거친 마디가 될 사건을 피하지 않고 얼굴 앞에서 펼쳐지는 아픈 신음을 소설로 처절하게 느끼고자 했다. 먼지 속에서 함께 밥을 먹고, 서로 격려하고 고통을 안아 주며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그런, 공장 한 귀퉁이 동료의 부르는 따뜻한 목소리 같은, 미싱 소리 가득한 복도 꺾어져 가는 시다 아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사랑한 한 사람의 삶을 쓰고자 했다.
최용탁
소설을 쓰다가 생각이 막힐 때면 나는 충주에서 청풍으로 이어지는 호반 길을 달리곤 한다. 봄이면 찬란하도록 희게 부서지는 벚꽃의 터널을 지나고 늦가을이면 진경산수가 병풍처럼 따라오는 길, 그 정겨운 구비 길을 시속 30킬로 정도로 느릿느릿 돌아서 찾는 곳은 늘 월악산 송계 계곡 민박집이다. 민박집 주인은 말없이 너그럽고, 하루 한 번 직접 콩을 갈아 만드는 두부 냄새가 고소하게 감돈다. 방금 누른 두부 한 접시 들고 너럭바위 앉으니 흐르는 물소리에 홀로 술 한 잔을 기울이다보면 문득, 세상사가 바람 속의 티끌 같다. 무엇을 바라고 이 몽매의 어둠 속을 헤매는 것인지. 하룻밤 자는 동안 밤새 물은 지저귀며 내 안으로 스며들어 흥건해졌다. 나는 또 한 계절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후회와 부끄러움이 결국 내가 산 한생이었다.
홍명진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시대에 항거했던 게 벌써 반백 년 전 일이다. 그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꼬마에 불과했던 나는 이제 반백 년 이상을 살아왔다. 시간은 참 요령부득의 ‘물건’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만질 수도, 색깔을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물건. 그 시간 속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더 이상 보지도 만지지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나의 부모님이 그렇고, 형제자매들도 그렇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던 이들 중의 누군가도 ‘영원한’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라는 물건은 애초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없는 것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철학적인 사유랄 것도 없이 존재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인 죽음이든 사회적인 타살이든 죽음이 깃들 수 있는 시간이란 물건은 한편으론 살아 있는 우리들에겐 보이지 않는 끈 같은 것이 아닐까. 보이지 않지만 놓치면 안 되는 어떤 것의 총체. 그 속에 내가, 혹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수많은 죽음들이 있고, 그 거대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전태일 열사다. [미조]를 작업하면서 나는 줄곧 그 하나의 끈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오래된 시간의 파편을 꺼내 틀을 만들고 속을 채워 가는 동안 묵은 울음이 출렁거려 몸이 무거웠다. 미조가 영원히 우리 곁에 살고 있듯 전태일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
“전태일이 분신 항거하며 세상을 바꾸는 촛불이 된 지 50년,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지고 그때의 시다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 넘쳐나고,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는 외침은 지금도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다시 전태일을 부르고 전태일과 손잡고 우리 모두 전태일이 되자고 나서고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노동자들도 나섰습니다. 뜻을 모은 열한 개 출판사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전태일과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50년 전 전태일의 그 마음으로 이 시대의 촛불이 되어 어두운 사회를 밝히고 힘든 사람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전태일이 처음 들었던 그 촛불이 천 배 만 배 더 크게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수호 / 전태일재단 이사장
책을 내며
김인철•네 번의 짧은 노크
김주욱•클럽 팬텀
이종하•두 번째 서른 살
최경주•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최용탁•수진리 고개
홍명진•미조
김인철 [저]
2005년 제14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
2004년 『월간스토리문학』 신인상 당선
제3회 민들레 문학상(2008) 수상
현재 전태일 문학상 운영 위원
모든 존재는 각자의 언어를 갖는다. 내 안에 숱한 언어들이 있었지만 들어줄 귀와 눈이었다. 나의 생각과 언어가 단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살면서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자유를 소망했다. 현실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할 때가 더 많았다. 풍요함, 부유한 나라, 선진국의 조건은 무엇일까? 중학생 시절부터 품었던 작은 물음표 하나를 이야기로 풀어 세상에 내놓는다. 이해와 소구력은 독자의 몫이다. 올해가 전태일 사거死去 50주기다.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전태일을 만난 건 기쁘면서도 가혹한 운명이었다. 전태일은 내게 가장 큰 존재이면서 가장 무거운 언어다. 그 뜨거운 횃불이자 무거운 언어는 우리를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얼마 전 서쪽 하늘에서 유난히 빛나는 별을 발견했다. 샛별, 개밥바라기별이다. 새로이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님을.
김주욱 [저]
1967년 서울출생
2008년 제15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보드게임]
2013년 제5회 천강문학상 소설 대상 단편소설 [미노타우로스]
2014년 장편소설[표절]나남출판사
2015년 봄호 문학나무 신인작품상 단편소설 [방충망 속으로]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수상
제23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 [발광생물]
이종하(이종득) [저]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1998년 중편소설 『바람의 끝은 어디인가』로 문학사상 소설신인상 수상
2008년 장편소설 『길, 그 위에 서서』 출간
2013년 제21회 장편소설 『사람의 얼굴』로 전태일문학상 수상
최경주 [저]
1997년 제7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
연작 소설 『사막의 모래바람』
산문집 『닥트공 최씨 이야기』
시장에서 싹튼 노동의 뿌리 저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기운을 느끼고 새 삶으로 돋아나는 노동의 열망을 받아 온몸으로 전하는 그런 소설을 쓰려고 했다. 세상의 부당한 일들은 힘찬 노동을 왜곡시킨다. 그런데도 역사의 거친 마디가 될 사건을 피하지 않고 얼굴 앞에서 펼쳐지는 아픈 신음을 소설로 처절하게 느끼고자 했다. 먼지 속에서 함께 밥을 먹고, 서로 격려하고 고통을 안아 주며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그런, 공장 한 귀퉁이 동료의 부르는 따뜻한 목소리 같은, 미싱 소리 가득한 복도 꺾어져 가는 시다 아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사랑한 한 사람의 삶을 쓰고자 했다.
최용탁 [저]
저 [남북이 봉인한 이름 이주하]
홍명진 [저]
2001년 제10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
200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제10회 사계절 문학상(2012), 제5회 백신애 문학상(2012), 우현 예술상(2013),
김용익 소설 문학상(2018) 수상
장편 소설 『숨비소리』, 『우주비행』, 『타임캡슐1 985』, 『앨리스의 소보로빵』
단편집 『터틀넥 스웨터』, 『당신의 비밀』
앤솔러지 『벌레들』, 『콤플렉스의 밀도』 외 다수
전태일 열사가 죽음으로 시대에 항거했던 게 벌써 반백 년 전 일이다. 그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꼬마에 불과했던 나는 이제 반백 년 이상을 살아왔다. 시간은 참 요령부득의 ‘물건’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만질 수도, 색깔을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물건. 그 시간 속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더 이상 보지도 만지지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나의 부모님이 그렇고, 형제자매들도 그렇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던 이들 중의 누군가도 ‘영원한’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라는 물건은 애초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없는 것이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철학적인 사유랄 것도 없이 존재의 행방이 묘연해지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개인적인 죽음이든 사회적인 타살이든 죽음이 깃들 수 있는 시간이란 물건은 한편으론 살아 있는 우리들에겐 보이지 않는 끈 같은 것이 아닐까. 보이지 않지만 놓치면 안 되는 어떤 것의 총체. 그 속에 내가, 혹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수많은 죽음들이 있고, 그 거대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전태일 열사다. 「미조」
를 작업하면서 나는 줄곧 그 하나의 끈을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안에 잠재해 있던 오래된 시간의 파편을 꺼내 틀을 만들고 속을 채워 가는 동안 묵은 울음이 출렁거려 몸이 무거웠다. 미조가 영원히 우리 곁에 살고 있듯 전태일도 우리 곁에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