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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개비릿길, 꽃들의 안부
공영해
4월 마지막 날. ‘아름다운 길 걷기’에 딱 좋은, 햇살이 무척 향기로운 날씨다. 목적지는 ‘남지개비리’. 9시 20분, 집합장소인 ‘만남의 광장’ 앞에는 노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내가 타자말자 출발이다. 중간에 두어 명을 태운 버스는 곧장 남지로 내뺀다. 잠깐이다. 열흘 전만 해도 낙동강 고수부지엔 유채꽃 축제로 꽃보다 사람이 많았었는데, 축제가 끝난 뒤라 왠지 썰렁한 느낌이다. 버스가 닿은 곳은 남지읍 용산리. 개비리길 출발지인 창나리주차장이다. 낙동강쪽 고수부지엔 ‘남지수변억새전망대’가 깃발을 흔들며 길손들을 부르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낙동강은 흐르지 않고 가만히 누워 쉬고 있는가 보다. 먼 길을 달려 왔으니 함안보를 핑계 삼아 잠시 쉬어도 좋으리. 정이경 시인이 우리 창원문협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정 시인은 남지개비리길 답사를 환영하며 스스로 안내를 맡으시겠단다. 너무 고맙다. 오늘의 코스를 미리 본다. 답사 거리는 총 6.4Km이다.
주차장/화장실 → 창나루 전망대(0.36Km) → 목동이 쓴 이름들(0.83Km) → 영아지쉼터(1,4Km) → 영아지전망대(0.21Km) → 주차장/화장실(0.22Km) → 야생화쉼터(0.7Km) → 죽림쉼터(0.31Km) → 옹달샘쉼터(0.76Km) → 용산양수장(0.57Km) → 주차장/화장실(1.04Km)
오늘 행사를 같이 할 회원은 강현순, 김혜연, 김시탁, 윤재필, 옥영숙, 최재섭, 이주언, 백서연, 김효경, 공영해, 오영민(부군 송유관 님과 함께), 송영호, 최영인, 이남정, 조무구 님. 모두 16명.
출발지 앞에는 안내판이 친절하게 세워져 있다. 정 시인의 설명을 들으며 안내문을 숙지하다. “개비리길은 용산마을에서 영아지 마을 창아지 나루터까지 이르는 낙동강 가에 있는 길로 벼랑을 따라 자연적으로 조성된 길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이 길은 수십 미터 절벽 위로 아슬아슬 이어가며 낙동강이 그려주는 눈부신 풍광을 가슴에 수놓아 올 수 있는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걷는 시골 여행길이다. 또한 개비리길 주변은 임진왜란당시 곽재우장군과 의병들이 육지에서 첫 승리를 거둔 기음강 전투의 역사적 현장이며, 한국전쟁의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으로 남지철교(등록문화재 제 145호)와 함께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개비리길의 내력은 동물의 모성애에서 비롯한다. 영아지 마을에 사는 황 씨 할아버지의 개 누렁이가 새끼 열한 마리를 낳았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띄게 조그마한 조리쟁이(못나고 작아 볼품이 없다는 뜻의 지방 사투리)였다. 강아지들이 젖을 떼자 열 마리는 남지장에 내다 팔지만 조리쟁이는 집에 남겨두었는데 등 너머 시집 간 할아버지의 딸이 친정에 왔다 가면서 조리쟁이를 보고 키우겠다며 시댁인 알개실(지금의 남지읍 용산리)로 데려갔다. 며칠 후부터 딸은 알개실까지 어미개가 찾아와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폭설이 내린 날에도 여전히 누렁이는 알개실 마을에 나타났고 마을 사람들은 누렁이가 어느 길로 왔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누렁이 뒤를 따라갔는데 누렁이는 낙동강을 따라 있는 절벽면의 급경사로 인하여 눈이 쌓이지 못하고 강으로 떨어져 눈이 없는 곳을 따라다녔던 것을 확인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높은 산고개를 넘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누렁이가 다닌 비리(절벽)로 다니게 되어 ‘개비리’라는 길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안내문을 숙지한 일행은 천천히 등산로를 오른다. 아주 잘 정비된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숨을 고른다. 계단이 가파르지 않고 부드럽다. 8분 정도만 오르면 마분산 창나루전망대에 닿는다.
나는 천천히 오르며 주위를 살핀다. 나를 반겨 줄 꽃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한국의 산길은 어딜 가나 비슷하다. 길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재미를 느끼려면 그 지역의 꽃들과 만나야 한다. 나는 어느 길을 가든 야생화를 만나야 한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꽃들과의 만남은 필연이다. 나는 그것을 우연이라 생각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가는 길은 단순한 걷기만의 기록이 아니라 꽃과의 만남의 길이다. 더러 나는 만나는 꽃들의 꽃말과 그 전설을 생각하며 걷다 보면 길은 금방 발에 익는다.
초입에서 나는 ‘뽀리뱅이’를 만난다. 작고 노란 앙징스러운 꽃송이가 솜털에 싸여 피고 있다. 꽃말은 ‘순박함’. ‘뽀리뱅이(리이)는 ‘뽀리’와 ‘뱅이’의 파생어. ‘뽀리’는 ‘보리’를, ‘-뱅이’는 고들빼기의 ‘빼기’처럼 앞에 붙는 말의 특성을 가진 사물이나 사람을 일컫는 접미사. (‘보리냉이’>뽀리뱅이로 보는 설도 있음). 뽀리뱅이는 ‘박조가리나물’, ‘황까치’라 ‘비둘기나물’이라고도 한다.
일행은 벌써 창나루전망대에 올라 폰카로 사진을 찍어댄다. 마분산 마루까지는 아직 길이 멀다. 아직 임기가 8개월이나 남은 김시탁 회장님이 소대장을 맡아 우렁우렁 기름 묻은 성대를 높인다. 누에 오르니 아, 장관. 남강과 낙동강이 합수하는 강의 물빛이 장히 볼 만하도다. 물소리는 들리지 많지만 그들이 만나 어우러지는 물밑의 잔치마당이 참으로 신나지 아니하겠는가. 눈치껏 얼른 사진을 찍는다. 소대장의 명에 누구도 감히 거역할 수 없다.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기대가 부풀다.
‘목동이 쓴 이름들’로 가는 길이다. 창나루전망대에서 15분이면 닿을 거리. 사행으로 기는 길이 부드럽다. 떡갈나무와 소나무가 서로 바통을 이어받으며 걷는 길을 청미래 덩굴과 찔레 덩굴이 구경 나와 옷깃을 슬쩍 잡아당기곤 한다. 바람을 품은 그늘이 시원스럽다. 비탈지되 가파르지 않은 길이지만 벌써 등에는 땀이 촉촉하다. 말씨가 다른 여인네 몇이 숲을 휘젓고 다니며 산나물 채취를 하고 있다. 독사가 많으니 함부로 다니지 말라 겁을 준다. 그때서야 놀란 듯 숲에서 후다닥 뛰쳐나와 멀어져 간다. 숨어 있던 취나물, 삽주, 등골나물 새순들이 그제야 고개를 든다. 여름이 지나면 흰 꽃이 필 산나물이다. 형제나무를 지나 ‘목동이 쓴 이름들’에 이른다. 모두 장하도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정 시인의 낮은 길안내가 일행을 모은다. 반석 두 개가 누워 있다. 목동들이 이 돌에다 가슴 속에 묻어 둔 사람의 이름을 남 몰래 새겼을까. 마모되어 희미한 이름들을 살펴본다. ‘정규화화춘순경호姬’, ‘신천황선도나무심으사박자朴東淳’ 글자의 내력을 굳이 알 바 아니지만 궁금함은 어쩔 수 없다. 잠깐만 숨을 돌리고 일어선다. 12시까지는 원위치로 되돌아가야 한다. 정해진 시간이니 처음부터 느슨할 수는 없다. 소대장이 바짝 고삐를 당기고 있다.
다음 코스는 영아지쉼터. 숲길이 좋다. 땅이 발바닥에 포근히 와 눕는다. 마분산 마루에 다다르자 이정표가 팔을 벌려 맞이한다. 이제 길은 그늘 좋은 내리막길. 여기서 나는 각시붓꽃 무더기를 만난다. 반갑다. 이렇게 식구가 많은 각시붓꽃은 처음이다. 꽃빛도 아주 건강하고 꽃잎도 아름답다. 꽃말은 ‘기별’, ‘신비한 사람’. 전설이 있다.
삼국시대가 끝날 무렵 신라와 백제의 황산벌 전투에서 죽은 화랑인 관창에게 무용이라는 정혼자가 있었다. 그녀는 관창이 죽었음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고 죽은 자와 영혼 결혼을 하고 관창의 무덤에서 슬프게 나날을 보내다 홀연히 세상을 떠나고 만다. 사람들은 관창의 무덤 옆에다 그녀를 묻어 주었는데, 그 이듬해 보랏빛 꽃이 그녀의 무덤에서 피어났다. 피어난 꽃은 각시의 모습을 닮았고, 함께 피어난 잎은 관창의 칼처럼 생겼다 해서 각시붓꽃이라고 한다는….
잠시 뒤 땅비싸리 꽃도 뛰어나와 붉은 잇몸을 드러낸 채 웃는다. 땅비싸리의 꽃말은 ‘생각’, ‘사색’. 꽃빛은 엷은 자홍색. 땅나리, 땅빈대, 땅귀이개처럼 식물명 앞에 접두사 ‘땅-’이 붙으면 키가 작다는 뜻. ‘땅비싸리’는 ‘싸리나무를 닮은 키 작은 나무’라는 뜻이겠다.
숲길을 벗어나자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는 시멘트 길이다. 길옆으로는 꽃들을 심어 놓고 있다. 감국과 개미취, 천인국이다. 여름부터 꽃길이 아름답겠다. 우측 바위서리에서 보랏빛 한 줄기가 눈길을 끈다. 아, 쑥부쟁이꽃이구나. 벌써? 아직 쑥부쟁이철이 아닌데 무엇이 그리 급하던가. 꽃말은 ‘기다림’, ‘그리움’이다. 비극적 전설이 있다.
옛날 아주 깊은 산골 마을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고 있었다. 대장장이의 큰딸은 병든 어머니와 11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며 쑥을 캐러 다녔기에 마을 사람들은 ‘쑥 캐러 다니는 불쟁이 딸’이란 뜻으로 큰딸을 ‘쑥부쟁이’라 불렀다. 쑥부쟁이는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상심하다가 어느 날 그만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고 마는데…. 쑥부쟁이가 죽은 그 자리에서 나물이 무성하게 자랐고, 보랏빛 꽃잎에 노란 꽃술을 문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죽어서도 배고픈 동생들이 나물을 뜯어먹을 수 있게 나물로 다시 태어나, 아직도 그 청년을 기다리듯 해마다 꽃대를 길게 빼고 곱게 피어난다는 그 쑥부쟁이를 나는 말없이 다가가 안아 준다.
쑥부쟁이 옆에 돌나물과 기린초도 나와서 인사를 한다. 이들도 멀지 않아 노랑꽃 무더기를 여기저기 뿌려 놓을 것이다. 일행은 앞서서 가고 있다. 걸음을 빨리하다. 햇볕이 사양하지 않고 길 위에 와서 눕는다. 길이 멀지만 내리막길이어서 금방이다. 10여분이면 족한 거리.
영아지 쉼터는 그냥 거치기로 한다. 주차장까지는 10분이면 족하다. 낮은 언덕을 지나자 영아지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낙동강은 펄럭이는 모시두루마기 같다. 시원스럽게 상류로 내뻗은 모습이 장관이다. 그러나 저 휘어지는 어귀의 한 자락인 박진나루는 피의 역사를 지금도 잊지 못하리라. 오래 머물 수 없다. 영아지 전망대도 그냥 지나친다. 주차장까지는 목재계단이다. 경사가 급하다. 이달균 시인을 여기서 만나다. 반갑다. 나중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다. 영아주차장에 이르자 산딸기꽃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손을 내밀고 있다. 꽃말은 ‘애정’. 빨갛게 익은 딸기를 생각하자 입안에 침이 괸다. 그러고 보니 여태 물을 마시지 않았던가. 물병을 흔들어 마시자 목이 확 트인다. 좋은 정기를 받았으니 몸이 어찌 가볍지 않으랴. 산딸기꽃을 뒤로 하자 물내가 확 광목처럼 펄럭이며 끼쳐온다. 서늘한 물비린내다. 강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일행을 마중 나온 물의 몸내다. 주차장 너머는 낙동강. ‘개비리길입구’까지는 100여 미터. 그토록 다가가고 싶던 낙동강물이 저 너머 있다. 걸음이 빨라진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포크레인 한 대가 강에 무릎을 묻은 채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강의 풍경이다.
여기가 개비릿길의 출발점. 화장실과 쉼터가 기다리고 있다. ‘멧돼지 퇴치 방법’을 기분 좋게 건성으로 읽는다. 현재 시각 11시 5분.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다시 걸어야 한다. 산길을 걸었으니 강을 끼고 걷는 벼랑길은 또 다른 느낌이리. 반갑다, 강아.
“강은 흐르는 게 아니라 서서 걷고 있다”는 김시탁 시인의 시 <강>을 생각한다. “종일 서서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고 쉬지 않고 걷고 있다”는, “강도 지쳐 때로는 쉬지고 싶거나 몸살로 온몸이 아파 눕고 싶을 때가 있”다는. 철벅거리며 강이 아파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허옇게 물안개를 흩뿌리지 않아도 우리는 강물과 함께 아픔을 느껴야 한다.
출발이다. 소대장이 앞장선다. 이제부터 진짜 개비릿길 체험이다. 수십 길 절벽 아래가 강이다. 길은 벼랑을 안고 감과 함께 흐르고 있다. 강쪽 벼랑은 나이 많은 상수리나무와 느릎나무가 벼랑에 뿌리를 내린 채 길 위로 솟구쳐 터널 그늘을 만들어 놓고 있다. 터널 숲은 강바람을 데려와 따라오며 부채질을 해댔다. 왼쪽 벼랑은 마삭 덩굴이 바위를 온통 덮고 있다. 꽃봉오리를 맺고 있으니 5월도 중순이면 마삭꽃 향기로 낙동강은 갈 길을 잃게 될 것이요, 길손들은 그 치자꽃 향보다 더 은은한 향기로 온통 목욕을 하게 되리라. 그 희고 예쁜 바람개비 꽃벼랑을 다시 와서 걷고 싶다. 길 가에는 ‘추락위험 - 이곳은 낭떠러지입니다’라는 경고판이 수시로 나타나 친절히 손을 잡아주고 있다.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는 좁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기에는 알맞은 길이다. 야생화 쉼터까지는 금방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낙동강에 혹하여 강을 배경으로 한 컷씩 사진이라도 담을라치면 가는 길은 더디게 마련이다. 어미개가 조리쟁이를 생각하며 뚫은 이 길이 이제는 누구나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으니 어미개의 모성애가 참으로 아름답도다. 강물은 억년을 쉼 없이 이 벼랑으로 와서 굽이치며 으르렁으르렁 어깨를 부딪쳐 상처를 내어가며 의연히 하구로 흘러갔으리.
야생화쉼터에서 야생화를 찾지 말아야 한다. 아직 꽃 필 때가 이른 벌개미취가 때로 몰려 있다. 공을 들여 쉼터를 가꾸어야겠다. 야생화 쉼터라 하여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 나는 기대 밖이라 아쉽다. 그러나 이곳의 명물은 포토죤. 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 장쯤은 남겨야 할 것 같다. 단체 사진을 남긴다. 지금 시각 11시 20분.
이제 하이라이트가 남았다. 죽림쉼터이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 마실 동안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이 길에선 마삭덩굴의 마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길이 험하고 굽이치는 감물이 장히 위협적이다. 어미개도 이 길에서만은 오금이 저렸으리라. 모롱이를 돌자 죽림이다. 열 길이 훨씬 넘을 팔뚝만 한 왕대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더니 와락 다가와 안긴다. 밑둥킈 굵기로 보아 죽림의 기운이 참으로 장쾌함을 알겠도다. 대통을 끊어 매단 악기가 눈길을 끈다. 바람이 불면 매달린 대통이 저희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대숲을 가득 메운다고 한다. 어떤 소리를 내는 것일까. 그 소리를 아무나 함부로 들을 수야 있겠는가. 죽림쉼터는 정자이다. 여기도 하트모양의 포토 죤이 있다. 이것은 아이비 덩굴이 감고 오르고 있으니 여름이면 푸른 하트 모양의 명물이 되리라. 길은 대나무를 깔아 지압을 하도록 해 놓았다. 예전엔 이곳에 초가집이 있었다는데, 누가 살았을까. 집 주인은 아마 적소를 떠도는 선비가 아니었을까. 아니면 강에 몸을 맡긴 가난한 어부였으리. 집 앞에 채마밭 한 뙈기를 일구어 놓고 종일 강물과 마주하였을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여기에 사람이 살았다면 필경 용산 창나루에서 내왕하였으리라. 죽림쉼터에서 시간이 좀 풀어진다. 이 좋은 경관을 금방 눈요기하고 떠나기 참 미안한일이다. 실제 개비릿길은 창아지나루에서 여기까지가 된다. 죽림쉼터는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 지금 시각 11시 40분.
옹달샘쉼터까지는 길이 멀다. 이 길에서 다시 마삭 덩굴의 환영을 받는다. 길이 넓고 호젓하다. 옹달샘쉼터는 얼핏 보기에 아기자기 꾸며져 있지만 옹달샘이 없어 속은 듯한 느낌이다. 목 마른 길손에게 목을 축일 물 한 모금을 퍼 줄 옹달샘은 없다. 잔뜩 기대를 하고 가는 길이었으니 실망도 크다. 지금껏 즐겁던 걷기가 여기서 발을 헛디딘 기분이다. 길손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이미 아기자기한 ‘옹달샘쉼터’를 꾸며 놓았으니 지하수를 파든가, 수도관을 끌어와 옹달샘을 만들어 놓으면 얼마나 멋진 길이 될까.
용산양수장을 거쳐 용산 주차장까지는 먼 길이다. 20여분 정도면 충분하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이다. 이 길에서 나는 많은 야생화를 만나며 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노라 길이 더디어진다. 졸방제비꽃, 애기똥풀, 아카시아꽃, 소리쟁이, 지칭개다. 하나같이 귀엽고 예뻐 사랑받는 우리꽃들이 아닌가. 졸방제비꽃의 꽃말은 ‘순진무구한 사랑’. 애기똥물의 꽃말은 ‘엄마의 지극한 사랑’ 또는 ‘몰래주는 사랑’이다. 애기똥풀은 가지나 잎을 꺾을 때 노란 즙이 나오는데 이 즙의 색이 애기똥색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아카시아 꽃의 꽃말은 ‘비밀스러운 사랑’. 소리쟁이의 꽃말은 ‘친근한 정’, 지칭개는 ‘고독한 사랑’, ‘독립’이다. 양수장에서 주차장까지 오는 길은 멀고 뜨겁다. 흙먼지길을 타박대며 걸어 차에 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버스는 출발한다. 정이경 시인이 준비해 온 오이 맛보다 더 시원한 맛을 나는 지금껏 본 일이 없다.
낙동강을 금방 건너 식당 ‘낙동강칠백리’ 마당에 들어선다. 나는 거기서 칼퀴나물의 꽃을 만난다. 남보랏빛 꽃숭어리가 잔치판을 벌이고 있다. 꽃말은 ‘용사의 투구’. 온 주위가 갈퀴나물꽃밭이다. ‘낙동강칠백리’에선 오리불고기와 이달균 시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적당한 운동 후에 먹는 식사란 꿀맛이다. 이런 꿀맛은 금강산을 안 가도 맛 볼 수 있는가 보다. 회장님이 식전에 슬그머니 나갔다가 들어와 분위기를 돋운다. 식사 후엔 보물찾기가 기다린다는 것이다. 나는 보물을 찾지 못한다. 아직까지 보물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좀처럼 보물은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동심으로 돌아가 주책없이 남들 뒤만 뒤지다가 마는데 누군가 내 손에 슬쩍 무엇을 쥐어 준다. 놀라 돌아보니 보물 티켓이다. 이 귀한 보물을? 티켓 두 개를 찾은 백서연 시인의 인심이다. ㅎㅎㅎ. 예쁘게 사진을 찍어 주어야겠다. 보물은 접이 양산이다. 보물이 신기할 따름이다. 난센스 퀴즈와 게임을 즐기노라 낙동강칠백리가 웃음으로 가득하다.
자, 이제 집으로 떠나야 한다. 다음 약속이 기다린다. 수고한 우리 소대장님은 오늘 막차까지 타야 한다. 즐거운 하루가 꽃처럼 피었다 지고 있다. 오는 가을이 기다려진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