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창세 3, 1-24
복음: 루가 14, 15-24
아담은 핑계를 대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여자에게 물으셨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여자도 핑계를 대었다.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습니다." (창세 3, 12-13)
우리 수도회가 운영하는 진주 하대동 프란치스코의 집 어느 화장실 안쪽 문에 "네 덕 내 탓"이라 새겨진 방향제 주머니가 걸려 있다. 그것을 볼 적마다 "그래, 저걸 많이 만들어서 선물용으로 보급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우리 인류 역사는 한 마디로 핑게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시작된 이 핑계는 원죄의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도 모든 인류가 죄에 허덕이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떤 신앙인은 그래서 사람을 "핑계하는 동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담은 자신의 탓을 인정하기보다는 뱀에게 그 탓을 돌린다. 만약 아담이 "다 제 탓입니다"라고 고백하고, 하와가 "모두 제 잘못입니다"라고 고백하였더라면 어땠을까? 인류는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한다. 이렇게 핑계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이 핑계가 바로 원죄의 발단이었다면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우리 또한 나의 삶의 행불행, 또는 영성생활의 성장여부를 내 탓이 아니라 남의 탓으로, 그것도 아니면 외부환경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실 우리 모두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무수한 결점과 약점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그걸 부정하고 싶고 숨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수많은 실수도 하게 된다. 문제는 실수하고 나서 네 탓이라고 하면 그것이 죄를 낳게 된다. 실수하고 나서 오히려 내 탓이라고 겸손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그 때문에 하느님의 도우심과 축복을 받게 된다.
아담과 하와가 내 탓을 인정하지 않고 네 탓이라고 핑계를 대는 바람에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겸손하게 인정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람이 된 경우가 많다. 노아는 술꾼이었고 아브라함은 너무 늙었었고 이사악은 공상가였고 야곱은 거짓말쟁이였고 레아는 못난이였고 요셉은 꿈쟁이였고 모세는 말이 어눌한 사람이었다. 기드온은 겁이 많은 사람이었고 삼손은 긴 머리에 바람둥이였고 라합은 기생이었고 예레미야와 다니엘은 너무 어렸었고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였고 제자들은 기도하다 잠이 들었고 막달라마리아는 일곱 마귀 들린 여자였고 사마리아 여인은 몇 번이나 이혼한 여자였고 자태오는 왜소한 키 때문에 고민이었다. 이러한 수많은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는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필요조건이 된다. 그러니 무슨 핑계가 더 필요하겠는가! 그냥 내 탓이라고 겸손하게 고백하고 인정하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무슨 핑계를 대고 있는가! 나의 약점과 한계를 핑계삼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나 외부환경을 핑계삼고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구체적으로 묵상하며 정리해 보면 어떨까?
핑계와 관련하여 또 다른 관점을 묵상해보자.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새인 닭도 오래 전에는 날 수 있는 동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길들여지면서 점점 날개가 퇴화해 이제는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다. 처음에는 끼니 걱정 안 해도 되니까,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니까 편하다는 핑계로 사람들에게 길들여졌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닭이 되고 말았다. 편하다는 핑계로 자신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도 저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는 닭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상에 매번 불평하면서도 이미 그 상황에 적응해,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자리에 주저앉아 핑계만 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내 모습도 괜찮다는 핑계로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핑계를 버리면 닭도 날 수 있다! 하물며 사람도 자신이 버릇처럼 하는 핑계를 버리면 하늘 높이 날 수 있다!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간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까운 사람에게 전화 한통도 하지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와 미사도 못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어려움 중에 이"ㅆ는 이웃을 위해 작은 봉사도 하지 못한다. 또한 사람들은 '나는 할 수 없다는 핑계'로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간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용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끈기, 다른 사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등은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연기처럼 사라져버려 어떤 일이든 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핑계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는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덫이자, 실패의 길로 이끄는 함정이다. 인생에서 핑계를 버리지 못한다면, 자신이 바라고 있는 꿈에 다가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는 안 돼' 보다, '그럼에도 나는 해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라는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런 바쁘다는 핑계 그리고 나는 할 수 없다는 핑계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도대체 뭐가 그리 바쁜가? 그리고 내가 진짜로 못할 것은 무엇인가? 진솔하게 되물어보자.
복음에서 핑계와 관련된 예수님의 말씀은 크게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바리사이들을 나무라시는 내용으로 이들이 율법을 핑계 삼아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하느님나라의 잔치에 초대받고도 오기를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을 나무라시는 내용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옆에 함께 있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많다. 가족들이나 이웃들의 여러가지 결점 때문에 그를 사랑하지 못하고, 주님으로 알아보지 못하며 살아가는 때가 많다. 우리 또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저런 핑계로 주님의 부르심과 초대에 응답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분은 끊임없이 나를 초대하고 부르시고 계시는데도 사실 내가 딴 짓을 하고 있느라, 내 관심이 딴 데 있어 하느님나라를 체험하지 못하고 영적 충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핑계를 버리고 날아오를 때이다. 자신이 날아오르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인 '핑계'와 그 핑계를 넘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상황과 실패한 사실을 합리화하는 핑계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인간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내 탓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체험한 많은 이들처럼 자신의 인생을 무겁게 하고 있는 핑계를 내려놓고 멋지게 하늘을 날아보자! 이 달은 '네 덕, 내 탓'을 맘에 품고 살아보면 어떨까?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 형제회
레지오마리애 월보 2월 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