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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투성이 영혼」 針禪에 빠지다
-「꽃빛바느질」김혜환
성배순 (시인)
옆에 누가 있으면 봐야 할 것을 못 볼 때가 있고 순간 포착하기가 어려워 늘 혼자 다닌다. 혼자일 때 기쁨과 해방감을 느낀다. 그러 나 돌아올 때에는 누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압바스키아로스타미
삼백년을 기다려 온 춘향목이 꽃살문으로 각화하는 지금
눈발은 굵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면서 차츰 진눈깨비로 몸을 바꾸고 있었다. 안양의 수리 산 창박골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조금 긴장하면서 그녀에게 던질 질문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針供養(2월 8일, 또는 12월 8일에 여자들이 바느질을 쉬고 부러진 바늘을 모아 두부나 곤약에 꽂아 냇물에 띄우거나 神社에 보내어 제사지내는 일)이나 비슷한 의식 같은 것을 하고 있는지 가장 먼저 물어 보리라 메모했다. 바느질이라는 단어는 [해바라기를 그리고 있는 고흐]가 붓 대신 쥐고 있던 긴 바늘이 시든 해바라기와 함께 떠올랐고,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풍습 중 치마무덤이 생각 나 조금은 우울해졌다. 시체가 아닌 여자의 치마가 무덤 속에 들어간다는 것인데,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과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아내는 바늘로 남편의 등에 요즘 문신처럼 자기만 알 수 있는 표식을 했다고 한다. 이때 남편의 등에 바늘 자국을 내면서 흐르는 피를 하얀 치마에 받아놓고는 전쟁이 끝나 남편이 아무튼 전사했다는 기별이 오면 남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겠지만 시간이 많이 경과해 시신이 상했을 경우 떠나기 전의 표식을 확인했다는데 그러한 확인조차 안 될 경우 떠나기 전 남편이 흘린 피를 받아 두었던 치마로 대신 장사를 지냈다는 치마무덤. 바느질은 또 내게 저녁마다 양말을 깁던 어머니까지 불러오더니, 장미꽃의 가시까지 물어 왔다. 그녀가 바늘을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은 그 누구의 접근도 거부한다는 마음의 표현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녀의 공방이 있다는 빨간 벽돌집 이층에서, 책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민낯의 그녀가, 긴 치마를 양손으로 말아 쥐고 계단을 내려온다.
빛 가리개로 창에 걸려 있는 색동의 염색 천 구멍으로 햇빛이 투과하면 색들이 다양하게 변한다고 멀뚱멀뚱 서 있는 내게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창문틀에는 은빛의 솟대가 금방이라도 날아갈듯 눈 내리는 창밖을 향해 긴 꼬리를 날렵하게 치켜세우고 있다. 김혜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낯익은 꽃살문 문양이 한 쪽 벽을 장식하고 있다. 직접 만들었다는 도자기며 아기자기한 작품들, 방안에 있는 하나하나의 물건 모두가 다 꽃이다. 작품이다. 꽃멀미가 났다. 준비해간 질문들은 이미 까먹고 있었다.
100년에서 300년 된 춘향목을 가려 골라 3년 동안 바람에 말린 다음 4년째 창고에 보관했다가 꽃과 살을 조각하고 문틀에 끼워 맞춘 뒤 단청을 입혀 완성한다는, 꽃살문이 각화하는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그녀는 꽃살문 재현에 매달렸다고 한다. 여러 겹의 한지를 붙인 위에 천연염색한 천을 덧대어 만들었다는 꽃살문의 연, 모란, 국화, 해바라기, 백일홍들은 손톱크기만 했다. 그 속에서 엄지공주가 금방이라도 기지개를 켜며 나올 것만 같았다.
[一期 一会]라는 말이 있다.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하는 단 한번뿐인 소중한 만남이란 뜻이다. 그녀에게 있어서의 一期 一会는 문화유산답사회원으로 전국의 사찰을 돌다가 만난 꽃살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말한다.
“어린왕자처럼 스러질 뻔 했어요.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너무 좋아서……”
이름 없는 목수들이 남긴 꽃살문들은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었고 어느 날 다시 찾아간 절에서는 새로 덧칠을 해서 깊은 맛이 사라졌거나 영영 자취를 감추기도 하는걸 보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얼마 안 있어 꽃살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이런 안타까움과 불안함에 시작한 꽃살문의 재현작업은 6년이 걸렸다고 하니 그녀의 명성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색이 바래고 낡은 문양을 표현하는데 천연염색한 천으로 표현하니 제격이더라고 취재를 하러 간 것도 잊고 방안 곳곳에 진열된 작품들에 눈을 뺏기고 있는 내게, 그녀가 띄엄띄엄 설명한다.
나는 누구인가? 난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
누가 시간을 두고 그렇게 말했던가?
10대에는 10km로, 20대에는 20km, 30대에는 30km, 40대에는 40km……로 달린다고.
김혜환, 그녀는 나이가 들수록, 가속도가 붙어서 달리는 시간에 두려움이 엄습했다고 한다. 언어공학도인 남편은 벤처기업을 창업해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잘 나가는데, 나는 뭐지? 그림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의 꿈은 어디로 사라진 거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이 둘을 키우면서, 전업주부로 늙어가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이 싫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막내 딸아이가 세 살 이었을 때 국립현대미술관 아카데미에 판화를 배우러 가는 것을 시작으로, 데생, 도예, 아동문학, 그림책, 퀼트, 스텐실, 전통복식, 원예치료등의 교실에서 해찰하다가 천연염색과 바느질이라는 항구에 닻을 내렸다고. 아이의 울음소리가 귀에 맴돌았지만 그보다 더 절박하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고.
색계에 들다
우리말을 보면 녹색을 녹(綠)이라 하지 않고 청송(靑松), 청초(靑草), 청태(靑苔), 청매(靑梅), 청림(靑林)등으로 표현한다. 식물이 어릴 때는 누런색을 띈 녹색(유록색)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푸른 잎을 띈 짙은 녹색이 된다. 옛사람들은, 가장 아름답다는 빈(彬)의 글자를 4~5월의 숲을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봄 숲 활엽수의 청과 침엽수의 청이 어우러져 가장 아름다운 색 빈(彬)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얀 눈송이들이 내리고 있는 수라산의 나무들을 보니 영락없는 빈의 모습이다. 수풀림 속에 삐치듯이 사선으로 내리고 있는 눈송이들이 빈의 글자가 아닌가!
꼭두서니, 구름버섯, 뽀리뱅이, 가시항추, 밤송이, 양파껍질, 귤껍질, 도토리껍질, 커피찌꺼기, 황토, 카레, 검정콩, 개갓냉이, 오배자, 석류나무 잎, 쥐똥나무 잎, 소나무껍질, 대나무 잎, 진달래나무 숯, 후박나무 껍질, 향나무 껍질, 회양목 잎, 은행나무 껍질, 쪽, 비수리, 황새냉이……등은 그녀가 자연으로부터 빌려오는 염색 재료들이다. 우리 선조들은, 건강을 위하여 보약을 달여 먹는 것과 같은 이치로, 물들인 천으로 이불을 만들고 옷을 해 입고 상처를 싸맸다고 한다.
“처음 꽃살문을 표현하기 위해 천연 염색방법을 알아보았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전문서적이 없었어요. 해서 규합총서등 옛 문헌을 뒤져가며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식으로 혼자서 염색법을 익혔조”
그녀는 염색을 할 때 들어가는 매염제도 녹슨 쇠못이나 동전으로 만든 환경 친화적인 철매염, 동매염제를 쓴다고 한다. 천연염색은 매염제에 따라, 횟수에 따라, 교차 염색법에 따라, 은근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색을 낸다고 한다. 그녀는 어느 날 생명주를 소목(콩과의 작은 상록교목)으로 염색했더니 이 세상에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신비한색, 마치 개똥벌레에서 나오는 듯한 형광검담요색(?)같은 색을 얻었다고.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은 분홍할미꽃이다. 동강 바위틈에 고개를 약간 숙이고 혼자서 고즈넉하게 피어 있는, 유유 자족한 모습에 반해 그 이름을 빌려 왔다고 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그녀는,
누구에게나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빛이 있다고.
영감을 얻듯 살다가 문득 빛을 얻을 때가 있다고.
그것이 하늘의 말, 나무와 꽃들의 말.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간 어느 한 영혼의 말들이라고.
빛을 만난 그들의 이야기를 색으로, 바느질로 들려주고 싶다고.
색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본래 있던 색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그녀가 내뿜는 색에 어떤 이름을 붙이면 어울릴까?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일부러 술에 취해 있었다는 고흐의 해바라기빛?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사진에 나오는 흑백의 흙길빛?
떫은 감이 오랜 숙성 끝에 내는 투명한 장아찌빛?
노린재나무열매에서 발견한 스모그를 쓴 푸른 하늘빛?
분홍빛을 띤 빨강의 꼭두서니빛?
동백나무의 토끼눈 분홍꽃빛?
단청의 석간주 바랜빛?
청가시 덩굴열매의 검은 초록빛?
비목열매의 투명한 빨간빛?
갓 움트는 새싹빛?
서리 맞은 홍시의 말랑말랑한 다홍빛?
선명하게 일치하는 색이 없다.
그녀는 진하지 않은 파스텔 톤으로 은은하다.
「흠투성이 영혼」 針禪에 빠지다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있어서 세 번째 딸인 그녀의 탄생은 그리 환영받지 못한 듯싶다. 게다가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적극적이었던 언니들과는 달리 그녀의 붙임성 없는 성격은 그녀로 하여금 아버지를 기피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했던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합기도 유단자였다는 그녀의 아버지는 미대를 꿈꾸는 그녀에게, 실용성 있는 도장파기나 명찰달기 같은 기술을 배울 것을 강요한다. 실제로 그녀는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도복에 마크나 명찰을 달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협력 없이 미대를 간다는 것은 어렵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미대를 포기하고 국문학과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어쩌면 바꾼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잘 찾은 건지도 모르겠다. 강원도 삼척의 시골에서 [문학사상]을 구독할 정도의 문학소녀였으니 말이다. 대학에 진학한 그녀는 그때 당시 유행했던 랭보의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라는 시구에 빠져 [흠투성이 영혼]이라는, 크레파스로 그리는 그림동아리를 만들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린 그림을 예쁘게 포장해서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을 즐긴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이 선물한 그림이 마치 쓰레기처럼 내팽개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후 그녀는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려서 모으게 된다. 글을 못 써서 그림을 그리려 했고, 그림이 안돼서 숲에 들어가 바느질을 한 것이었는데 숲에서 나온 자신을 보니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바느질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안양의 기인 1호라는 털보아저씨네 카페에서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헝클어진 실은 실마리를 찾아야 잘 풀 수 있고 그때그때 매듭을 짓지 않으면 바느질한 것이 다 풀어져 버리잖아요. 세상살이도 어쩜 그렇게 바느질과 닮았는지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매듭을 질 필요가 있을 때는 과감하게 매듭을 지으려고 노력하는데 모질어서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여림을 잘 아니까 지레 겁먹고 도망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자연에서 빌려온 재료를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 주는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는 그녀는, 나뭇가지와 가지사이, 풀 위, 바위 위, 혹은 구름이나 햇살에 매달려서, 어느 장소에서든 자연스럽게 하나의 자연이 되어 빛날 것 같다.
“바느질로 표현하는 세계는 무궁무진하죠. 바느질에 무엇을 더하면 그 세계는 더욱 넓고 깊어져요. 이렇게 저렇게 몸에서 미끄러져 나오려는 작품을 생각하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죠”
한 줄도 길다. 바늘로 쓴 詩
미국 시카고, 워싱턴, 로스엔젤레스 등 해외에서도 전시회를 가져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독창적 기법과 이미지’ ‘바늘로 쓴 詩’ 라는 호평을 받았다는 그녀는 1990년 그림동화 작가 강우현이 기획한 [엄마가 쓰고 그린 그림책]에서 [뛰떼와 또또]로 데뷔, 1999년 조각보 숫자 그림책 [한 조각 두 조각 세 조각]출간, 2000년 [담고 싶은 그릇전], 2003년 [김혜환 조각보전](그림책 정원 초방), 2004년 5월 [꽃살문] 김혜환 천연염색 바느질전(서호갤러리), 2004년 7월 [김혜환의 꽃집바느질 초대전](남이섬 안데르센홀 본관)……등 화려하다. 외국의 잡지 기사 중 일본의 대표적인 한류잡지 [スッカラ]에 흥미로운 내용이 있어 부분 인용해본다.
そもそも 韓國の人々は 自然に對する思いがとても深い民族だ。例えば韓國の手工藝を代表するポジャギなどの柄を見ても、自然をモチーフに したものが 壓倒的に目立つ。それ以外の藝術や文學でも、自然への憧れや恩惠に感謝する內容はとても多い。今回取材したキ厶․ヘファンさんは、そんな昔からの、そもそも韓國人が本來持っていた生き方を實踐しているアーティストだ。工藝家である彼女は『花と光の針仕事』という本も出版するほど、自然というものを大テーマに揚げ、作家活動をしている。
(대체로 한국인들은 자연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은 민족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수공예를 대표하는 보자기 등의 무늬를 보아도, 자연을 모티브로 한 것들이 압도적으로 눈에 띈다. 그것 이외의 예술이나 문학에도, 자연에의 동경이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은 매우 많다. 이번에 취재한 김혜환씨는, 그런 오랜 전부터의, 대체로 한국인이 본래 가지고 있던 살아가는 방식을 실천하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공예가인 그녀는 [꽃빛바느질]이라고 하는 책도 출판할 정도로, 자연이라고 하는 것을 커다란 테마로 고양, 작가활동을 하고 있다.)
普通、初めて合う人を取材するとき、いささかの緊張感を伴うが常だ。お互いに相手のことを知らないがために、慣れない間はどことなくギクシャクする。そういう一種の驅け引きみたいなものが、一瞬ではあったとしても存在することは確だ。なのに今回は、そういう一瞬を感じることが 全くなかったのだ。
(보통 처음 만나는 사람을 취재할 때에는 약간의 긴장감을 동반하는 것이 당연하다. 서로 간에 상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는 질문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기 마련이다. 그런 일종의 흥정 같은 것이, 한순간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런 일순간을 느꼈다는 것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ポツリポツリと話し出すヘファンさん。言葉數が少なく、話すテンポの遲い韓國人は、私にとっては初めて。「元々は繪本作家になりたかったの。でも結婚して子供が生まれ、專業主婦, ずっとやっていたからプロになろうとは考えていなかった。手作りすることは好きだし、繪を描くことも好きだから、子供たちと何か一緖に作れたらいいなあ、と思い、カルチャースクールに繪本作りを習いに通ったの。そして子供たちと作った繪本がきっかけで、イラストの仕事を少しずつするようになったのよ」と語る。
その最初に作った繪本は、彼女の二人の子供たちが主人公。天國で暮していた二羽の仲良し兄妹鳥は、いたずらして 兄鳥だけ人間としてこの世に落とされた。でも二人がお互いを大切に思い續けた結果、妹もまた人の子としてこの世に生を受け、また兄妹になった、というお話。兄妹いつまでも仲良く、というお母さんならではの氣持が込められている。
(느릿느릿 말을 하는 안씨. 말수는 적고, 말하는 템포가 느린 한국인은, 나에게는 처음이다. 「처음에는 그림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고, 전업주부로써 계속 생활하다보니 전문가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은 엄두를 못 냈죠. 수공예를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니까,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문화센터에 그림을 그리러 다니기 시작했죠.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이 계기가 되어, 일러스트레이터로써의 일을 조금씩 하게 됐어요.」라고 말한다.
처음으로 만든 그림책은, 그녀의 두 아이들이 주인공. 천국에서 생활하고 있던 두 마리의 사이좋은 남매 새는, 장난이 심한 오빠 새만 인간으로써 세상에 떨어지게 된다. 그래도 둘이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그치지 않은 결과, 누이 또한 사람의 아이가 되어 인간 세상에서의 생을 부여 받아, 또다시 남매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다. 남매는 언제까지나 사이가 좋았다고 하는, 엄마라면 가질 수 있는 마음을 담고 있다.)
聲高に文化遺産保護を訴えるのではなく、作品を通して、人々にその價値を傳えられればいい。彼女はきっとそう考えているのだと思う。そういうことをメッセージとして口にする人ではないけれど。
(목소리를 높여서 문화유산 보호를 호소하고 있지 않고, 작품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전해주면 좋다. 그녀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것을 메시지로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일본의 대표적 한류잡지「スッカラ」중에서
작업을 하다가 바늘이 부러질 때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는 그녀는, 무덤을 만들어 주듯 세요각시를 소중하게 잘 싸서 버린다는 그녀는, 매일같이 공방으로 출근해서 12시가 돼야 집으로 돌아간다는 그녀는, 때로는 공방에서 밤을 보내기도 한다는 그녀는,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수리산 층층나무아래, 혹은 잣 숲 안, 혹은 너럭바위 위에서 지금 針禪중이다.
(2008년 詩로여는세상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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