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백제의 무왕은 왕이 되기 전, 홀어머니를 모시고
마를 캐서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를 캐는 아이라는 뜻으로 서동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신라에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며,
"선화공주는 밤마다 서동을 만난다"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게 합니다.
선화공주의 아버지 진평왕은 진노하여 딸을 쫓아냈는데
기다리고 있던 서동이 선화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돌아와 부부가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왕이 된 무왕은 선화공주의 부탁으로
전북 익산에 미륵사라는 절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미륵사는 가운데에 높이가 60미터에 달하는 목탑이 있었고
양쪽에 9층 석탑이 한 기씩 세워졌는데
그 중에 한 기만 남았습니다.
그마저도 일제 시대 때 벼락을 맞아
파손되어 겨우 6층만 남게 되지요.
그런데 2009년 1월 이 석탑을 수리하기 위해
해체를 했는데 사리를 모신 사리호와
이 탑을 세운 내력을 적은 사리봉안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사리봉안기에는 미륵사를 세운 사람이
'백제 왕후 좌평 사택덕적의 딸"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즉, 백제 왕후는 사택가문이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삼국유사를 통해 알아오던 선화공주의
염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거죠.
삼국사기에는 진평왕에게 두 딸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명은 나중에 왕이 되는 선덕여왕 그리고 천명공주 이지요.
선화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답니다.
그래서 선화공주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합니다.
사택가문이 아닌 또 다른 익산의 세력가 집안의 딸이었을 수도 있고,
왕족이나 다른 귀족의 딸이었을 수 도 있고요. 재밌는 이야기로
꾸며져 내려오는 동안 신라의 공주로 바뀌었을 수 도 있구요.
이런 식으로 역사는 새로운 기록이 발견되면
고쳐서 다시 씌여져아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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