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 예찬
즐겨 찾아가는 어느님의 방에서 '동동주와 연탄'이라는 산문 글을 읽고 알싸한 막걸리가 먹고 싶어지는 밤이다. 막걸리? 하면 옆으로만 걷는 온갖 바닷게를 떠 올리다가, 곧 바로 어릴적 시골 장날이 떠 오른다. 비록 장날이 아니였다해도 술에 취해 넘어질듯 넘어질듯 옆으로만 걷는 아저씨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집 누렁이와 꼬마였던 나와 하나밖에 없는 늦둥이 내 남동생이 추억속에 끼여 있어서 방그레 미소 짓게 된다.
매월 4일과 9일 날에 5일장이 열렸다. 장날 전 날 밤부터 장돌뱅이 아저씨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면 동네가 떠들썩해 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침 새벽녘부터 산속 깊숙이서 살음직한 아저씨들이 지게에 장작과 땔감나무를 산더미처럼 메고 지고 와서 우리집 넓은 마당에 부려 놓는다. 가까운 곳에 땔감은 천지지만 울 아부지는 나무 지게 지는걸 못 봤기에 나는 그 아저씨들이 대단한 나무꾼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힘센 아저씨라고 불렀다. 오전 새참경부터 북적스러운 장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우시장에선 소를 놓고 흥정하느라 북새통이고, 아침부터 평상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시골 아줌마,아저씨,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장보기가 시작된다.
장에 나온 물건들보다 장에 나온 사람들이 항상 더 많았다. 그 장날 만큼은 유일하게 하나 있었던 성냥쟁이(대장간) 아저씨 가게는 하루 종일 풀무질에 땅!땅! 쉴새 없이 쇠를 달구고 두둘기고 각종 농기구와 부엌 식칼등등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장이 파할 즈음 오후 저녁시간이 되면 각 동네마다의 술꾼 아저씨들이 옆으로 걷기 시작한다.
보폭은 앞으로 1보 옆으로 3보였다. 아무튼 장날엔 넋바우 아저씨와 술취한 아저씨들이 젤 무서웠다. ' 어~~~ 저 아저씨 자파지겠다..하나,둘,셋...' 재수 없는 아저씨는 꼬랑창에 빠져 만신창이가 되어 도로로 올라와서는 여전히 앞으로 1보 옆으로 3보로 걷는다. 캄캄해 지기전에 집에 못갈성 싶어서 걱정스레 쳐다보는 눈들이 많았다. 그 속에 내 작은 눈도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저 아저씨 재 넘어 가다가 포장귀신한테 홀려서 죽을지도 몰라 하고-.
그 중에 장날마다 나무를 지고 와서 마수를 걸었던 아저씨는 항상 챙겨가는게 있었다. 우리집 콩비지와 술 찌거미였다. 콩비지처럼 맛난게 없다하시며, 늘상 우리집에선 흑도야지 먹이였던 동동주 술 찌거미와 콩비지였는데 그분은 열일 제쳐두고라도 그걸 챙기셨다. 어린 나는 당연히 흑똥돼지 먹이로만 알았었다. 나는 이제야 그 콩비지 맛을 안다. 그 아저씨 나이가 되어서 말이다.
어느날 동네 한바퀴 달리기하며 놀다 들어온 막내딸에게 하얀 동동주에 물을 반 섞어 삭카린을 탄 달디단 막걸리를 손가락으로 휘 저으며 아버지가 내게 마시라며 주셨다. 왜 주셨는지는 묻지도 않았고 모르지만 맛이 궁금했기에 마셨다. 그런데 그맛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일단은 알싸하면서도 그 단맛이 좋았다. 그때 내 나이가 아마도 여덟살 정도였을게다. 그 모습을 보더니 엄마는 눈웃음으로 빙그레 쯧쯧쯧하시며 애한테 술을 다 먹인다며 아버지한테 눈 홀기시고 아버지는 그냥 껄껄 웃으셨다.
헌데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달리기 하며 놀다가 갈증만 나면 곧장 뛰어 들어와서 이렇게 외쳤다.
"엄마 물~ 물줘~! 아니 아니.. 엄마~ 물 말고 막걸리~줘! 막걸리~ 삭카린 타서.. 언능!"
몇번은 엄마가 받아주시더니 한번은 조용히 혼내셨다. 요즈음 아이들 탄산 음료 중독되어 안주면 울듯이 울진 않고 대신 몇번 몰래 삭카린 타서 마셨다. 그런데 엄마가 타준 맛이 아니였다. 한번 질리면 안먹는 습관대로 그 이후엔 막걸리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고 어느 동동주를 마신다해도 어릴적 그맛에 비할까?
그 다음 해 어느날, 늦둥이 막둥이 녀석에게 멀겋게 물탄 막걸리에 삭카린 타서 한 대접을 주었더니, 그 단맛에 이녀석이 꿀꺽꿀꺽 단번에 마셔 버린거다. 두돌이 채 되지 않았을때 였다. 아장아장 걷던 녀석이 마당에 걸어 가다가 좌우로 걷다가 픽 쓰러지고, 또 일어나 좌우로 걷다가 픽 쓰러지는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엄청 놀랬다. 옆집에 품앗이 일하러 간 엄마한테 달려가서 말했다. 막둥이가 픽픽 쓰러진다고....
엄마한테 매 맞은 기억이 별로 없는 나에게 잊지 못할만큼 싸리대로 매 맞고 혼난 기억이 자리 잡았던 에피소드중에 하나가 되었다. 솔직히 그땐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멍하게 매맞았으니까 더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 후 또 호기심에 발동이 걸렸다. 내 애견 애리한테도 잠자코 지키고 앉아 먹여 봤다. 그 누렁이도 흔들흔들 걷다가 볏짚에서 한잠 자는걸 엄마한테 말해주었다.
" 엄마..개도 술 취하네..? "
" 뭐시야? 개한테도 줬단말여? "
" 응..애리는 내가 먹는거 다 잘 묵는디..?"
다음 기회있으면 동동주 한잔 마셔봐야겠다.
첫댓글 ㅋㅋ 애들도 중독되면 약도 없다는데 ....옛날 시골 친구들 집에서 놀 때 어린에에게 자꾸 부추겨 술먹이고 취하게 하여 깔깔거렸던 기억이................ㅋㅋ
누구나 이런 추억은 한가지쯤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