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과 살균, 더 강력한 멸균까지
소독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단어로 ‘살균’과 ‘멸균’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강한 의미는 멸균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없애서 무균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살균은 멸균보다는 뜻이 약하다. 물리적·화학적 방법을 동원해 미생물을 제거하지만, 유익한 것은 되도록 남긴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우유를 62~65℃에서 30분 동안 가열하는 저온 살균 처리하면 우리 몸에 해로운 세균은 대부분 죽지만, 유산균은 살아남는다.
소독은 병원균의 감염력을 없애는 데 초점이 있다. 주로 물체의 표면에서 병원균의 수를 줄이는 행동을 소독이라고 부른다. 많은 경우 병원균을 완벽하게 죽이지 않아도 수를 충분히 줄이는 것만으로도 효과적이다. 우리 몸은 방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세균의 수가 적으면 즉시 물리칠 수 있다.
침구처럼 부피가 큰 물건은 소독하기 어렵다. 이때는 햇빛에 널어서 일광소독을 하면 좋다. 햇빛 속에는 자외선이라는 에너지가 강한 빛이 포함돼 있는데, 이 자외선이 세균을 죽인다. 이때 햇빛을 직접 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자외선 차단 필름을 씌운 창문 안에서 건조대에 이불을 널면 소독 효과가 없다. 물론 햇빛 속에 포함된 자외선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이불 속까지 소독하지는 못한다.
최근에는 침구·소파 등에 자외선을 쪼여 소독하는 전자제품도 나왔다. 이를 사용하면 사용자가 자외선의 강도와 쪼이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서 더 효과적이다. 자외선은 이불 외에 컵이나 식기 등을 소독할 때도 쓴다. 여럿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구들은 자외선 소독기에 넣어두면 쉽고 빠르게 소독할 수 있어 간편하다.
더 강력한 살균, 더 나아가서 멸균하려면 자외선 대신 방사선을 쓴다. 식품이나 의약품에 방사선을 쪼이면 세균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 방사선은 자외선보다 침투력이 높아서 음식물 안쪽에 있는 세균까지 죽인다. 또 이렇게 처리한 감자 등은 싹이 나지 않아서 오래 보관할 수 있어 좋다. 음식에 방사선이 남아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빛(방사선)을 쪼인 것이지, 방사성 물질을 뿌린 것이 아니므로 식품에 남지 않는다.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을 소독할 때는 약품을 사용한다. 병원에서 쓰는 에탄올이나 크레솔 등이 대표적이다. 의사의 손, 환자의 수술 부위 등을 닦아 소독한다. 또 기구 중에서 열을 가해 소독할 수 없는 고무·플라스틱 기구들도 화학약품으로 소독한다. 넓은 공간은 산화에틸렌(EO)이라는 가스를 사용해서 소독한다. 여름철 모기를 잡기 위해 살충제를 뿌리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화학약품은 소독한 물건에 남을 위험이 있다. 특히 널리 쓰이는 EO 가스의 경우, 독성이 높아서 안전 장비를 51착용하고 사용하는 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화학약품 소독은 다른 방법으로 소독할 수 없을 때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다.
최근에는 열에 약하고, 날카롭거나 예민해서 소독하기 까다로운 기구들은 아예 일회용으로 만든다. 한 번만 쓰고 버리는 기구로는 주사기, 바늘, 수술용 칼 등이 대표적이다. 이때 치료가 끝난 뒤 나오는 일회용품들을 잘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이 다른 곳에 묻거나 하면 병원균을 퍼뜨릴 위험이 있다.
다양한 소독법이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장 보편적인 소독은 열을 가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도 수저 등은 종종 끓여서 소독한다. 갓 태어난 아이가 쓸 수건, 기저귀 등도 끓는 물에 삶아서 쓴다. 수건이나 속옷도 삶으면 세균을 죽일 뿐만 아니라, 옷감에 베인 찌든 때도 함께 빼낼 수 있어 좋다.
멸균 상태로 만들려면 그냥 끓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균 중에서 포자를 만드는 것은 100℃에서도 살아남는다. 이때 쓰는 기기가 고압멸균기이다. 물의 끓는점은 100℃이지만, 압력이 높으면 120℃까지 끓는점이 올라간다. 120℃ 이상의 수증기로 10분 이상 가열하면 포자를 만드는 세균까지 죽일 수 있다. 완벽한 무균상태가 필요한 생물학 실험실에서 주로 쓰는 방법이다.
소독이 필요한 곳은 처음부터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 병원균이 퍼진 뒤에는 아무리 소독을 잘해도 무균상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심한 경우, 수술실이나 실험실을 폐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최근에는 일반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해서 철저한 소독 관리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출처 : 안전보건공단 안젤이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