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고생 단체 위문편지⌟
월산 윤 항 중
육군 대위시절 파월 맹호부대의 소총 중대장으로 해안선을 낀 1번 국도변에 위치한 송카우 지방 153고지에서 독립중대장으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연일 계속되는 수색, 매복, 공중기동 작전, 도로정찰 등 중대한 작전에 임하고 있었는데 그리운 고향 산천, 사랑하는 부모형제 곁을 떠나 이역만리 타국땅, 언제 죽을런지도 모르는 얼굴 없는 전선에서, 불안과 긴장, 공포와 두려움, 초조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대원들의 지치고 초췌한 얼굴을 대할 때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무언가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
피를 말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예측불가한 전선에서 한두 끼 식사는 굶을 수 있어도, 하루이틀 잠을 못 자는 고통은 참고 견딜 수 있어도 ‘자기 이름이 쓰여진 편지’를 받지못하는 고통이야말로 가장 참기 어렵고 서러운 고통이오니 부디 귀여운 여고생들의 위문편지를 보내주십사 하는 내용으로 당시 이화여고 정희경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었다.
‘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잠언 25장 25절)’(A good news from far away is like cold water to the thirsty)라는 성서의 구절로부터 비롯된 발상이었다.
전 중대원의 인적사항을 소대별로 묶어 단체위문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을 띄우고 나니 문득 육사 생도 4학년 여름, 축구선수 합숙훈련 기간중에 있었던 냉수 한 대접에 얽힌 웃지못할 추억이 하필 이런때 떠오른단 말인가? 그날은 몹시 더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운동연습에 워낙 많은 땀을 흘린 탓으로 심한 갈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늘 그랬듯이 경수, 완곤, 나 이렇게 우리 4학년 선수 셋은 운동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관사지구 콘세트 매점을 향해 줄달음쳤다. 펌프로 뽑아올린 우물물이 얼마나 차갑고 시원했던지 그물만 마시면 순식간에 모든 피로가 확 풀릴 것만 같았다. 해서 커다란 양푼에 냉수를 가득부어 뉴슈가(설탕이 귀하던 시절 설탕대용으로 사용되던 사카린으로 만든 감미료)를 두봉사서 털어넣고 휘휘 저은후 양은대접에 공평하게 나누어 부었다.
“하나! 두울! 시이작!” 나의 신호로 세사람의 냉수 먼저마시기 시합이 시작된 것이었다.
“벌컥! 벌컥! 벌컥!” 열심히 마시던 세사람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래진 채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거의 동시에 물 마시던 동작이 중단되었다. “어라? 무슨 맛이 이러냐?” 물을 마시다 말고 땅바닥에 버려진 뉴슈가 봉지를 주워 자세히 보았더니 어렵쇼! 이게 웬일? 그건 뉴슈가인줄 알고 타 넣었던 미원봉지가 아니었던가! 우리 셋은 정말 아연실색 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미원 두봉지를 물에 타서 누가 질세라고 앞다투어 배불리 마셨던 것이다. 그 밍밍하고 느끼한 맛이라니...
단체 위문편지를 보내달라는 사연을 띄운지 한 달 만에 이화여고생들의 위문편지가 속속들이 닥치기 시작했다.
정희경 교장 선생님의 간단한 답신이 이렇게 쓰여있었다.
“중대장의 편지를 받아보고 교무회의를 거쳐서 소대별 명단을 학급별로 할당하였으니 편지가 도착 되는대로 병사들에게 나누어줄 것과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아무쪼록 잘 싸우고 무사히 귀국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이화여고생들의 정성을 한데모아 병사들 앞으로 보내준 위문편지를 받아보고 느꼈던 감동은 일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운 것이었다.
처음엔 영문도 모른채 제각기 낯선 편지를 받아읽고 좋아 날뛰던 병사들의 환희에 찬 모습이 장관이었고, 이를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나역시 한없이 기쁘고 고마웠다. 그중에서도 잊지못할 장면이 가슴뭉클한 사연으로 오래동안 잊혀지질 않는 것이다.
“들어가도 좋습니까?”“응 들어와!.”
“맹호! 2소대 자동소총수 상병 안 0일 중대장님께 용무있어 왔습니다.”어느새 그의 흥분된 목소리는 몹시도 고조되어 있었고 두볼운 빨갛게 상기되어 있음을 꿰뚫을 수 있었다.
“ 안상병이 웬일인가? 편지봉투를 손에들고...”
“네! 중대장님! 이화여고생이 저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이겁니다.”
나는 시치미를 딱 잡아떼고 반문했다.
“이화여고생이 안상병한테 위문편지를 보내왔어? 어디 중대장 앞에서 그거 한번 읽어봐!”입대전 서울 신촌에서 연탄 배달업을 했다던 그는 유감스럽게도 글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
잠시 얼굴을 붉히는가 싶더니 뒷머리를 게면쩍게 긁더니만 드디어 결심을 한듯, “잠시만요. 야! 김상병, 0훈아! 빨리와 이편지 중대장님앞에서 한번 읽어봐! 네가 아까 나한테 읽어줬잖아”그럴줄 미리 알고 문밖에 대기중이던 김상병이 읽어내려간 위문편지에 안 상병이 신촌에서 연탄대리점을 운영했었다는 대목에 이르자 은근히 어깨를 으쓱해하는 것이 보기에 흐뭇했다.
그를 보내고나니 그가 문맹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었다.
이윽고 하사관을 포함한 사병들만 편지를 받아보게되니 몇 안되는 장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기에 다시금 제2차 작전에 돌입하게 되었으니 이번엔 이화여대 기숙사로 편지를 보내보았었다.(기숙사 진관 실장 님 귀하)얼마 지나서 반가운 회신을 받았는데,
“ 맹호 맹호! 나오라 오바!”로 시작된 실장(4학년)의 편지내용은 이러했었다.
중대장으로부터 받은 5명의 장교 명단을 놓고 심지를 뽑은결과 3소대장 이 0석 중위가 탈락되었다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처녀와 총각사이엔 무언가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던지 족집게가 따로 없었다. 고국에 약혼녀가 기다리고있던 이 중위가 아쉽긴 했으나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이화여고생들의 정성어린 단체위문편지 덕분에 나의 중대 장병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했으며 나역시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의 환희를 느꼈던 것이다. 이런 때 ‘목마른자에게 냉수와 같으니라’던 ‘편지의 위력’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세월이 지나서 전역 후 삼성동 I 호텔에서 개최되던 가나안 농군학교 일가 김용기 장로 기념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뜻밖에도 청강학원 정희경 이사장님을 뵙게되어 공개적으로 그 옛날 상황을 설명드리고 거듭 감사함을 전할 수 있어 흐뭇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