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
로마 식민시대의 유적 중에서 뺄 수 없는 것을 들라면 바로 원형경기장이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일정 중에 보았던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등 모든 곳에 당시의 유적이 어느 정도 원형을 보존한 채 남아 있는 것은 원형경기장이 유일하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다손 치더라도 로마 하면 원형경기장이 우선 떠오를 정도로 중요한 로마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
원형경기장의 원조격인 콜로세움을 직접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곳을 찾았던 날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파아란 하늘 아래 붉은 빛과 회색빛을 동시에 발하며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벌집 모양의 석조 건물이 한 눈에 들어왔다. 콜로세움 주변에는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노랑머리를 휘날리며 무리지어 콜로세움을 드나들고 있었다.
부서져 내린 건물이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책에서만 보았던 그림이 실물로 다가와 내 앞에 우뚝 서니 보면 볼수록 황홀함 속으로 이끌고 들어갔다. 각 층을 구성하는 아치형 문이 로마 건축의 아룸다움을 집약하고 있었다. 아치구조는 건물의 하중을 분산하는 역할을 하는 건축기법으로 사용되었지만 반원형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곡선미가 일품이다. 로마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은 바로 아치형 구조물이다. 건축물은 물론이거니와 교각이나 수로 같은 모든 곳에 아치형 구조는 빠지지 않고 나타난다. 그 다음은 도로구조이다. 성당 앞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지는 도로망은 로마의 랜드 마크 역할을 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콜로세움의 미를 세부적으로 탐구해보자.
아치형 문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보면 로마 건축사를 한 눈에 집약해서 느낄 수 있다. 1층에 해당하는 지상 층의 기둥은 도리아식으로 설계되었다. 기둥의 맨 윗부분을 장식함에 있어 사발을 올려놓은 듯 표현한 것이다. 이는 가장 큰 하중을 견디어 내야 하는 건축구조를 응용한 것일 게다. 도리아식 기둥은 남성적인 맛을 풍겨준다. 기둥의 모양이 시대를 달리해서 그 특징적인 모습을 띠고 있으나 콜로세움에서는 층별로 기둥 모양이 달리 나타난다.
2층 구조에 사용된 기둥은 이오니아식 기둥이다. 이는 여성적인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구조로 양의 귀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양쪽을 둥글게 말아서 올린 소용돌이 형식을 띠고 있다. 일층은 남성의 웅장함을, 이층은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하고 삼층으로 올라가면 코린트식으로 나타난다. 지중해 연안에 무성하게 자라는 아칸서스 식물의 잎을 건축에 도입한 것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로마유적지 석조건물에는 아칸서스 잎 모양의 조각을 많이 볼 수 있다.
사층에는 기존의 기법에서 탈피하여 필리스터 식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이는 정형화된 기법은 아니지만 마지막 층으로 덮개를 부착하기에 알맞은 형태로 구상된 것 같다. 콜로세움은 기둥과 아치가 어우러진 벽면 장식이 하나의 미술품처럼 다가오는 곳이다. 저녁이 되면 내부 전기장치를 이용하여 불을 밝혀 아주 멋진 야경을 선사한다.
의아한 것이 하나 있다. 왜 이렇게 많은 문을 만들었을까?
내부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오만 명 정도 되니 관객들이 일시에 빠져 나갈 수 있는 편의성을 고려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 유명한 폭군인 네로 황제가 사용하던 황금 별장의 인공 호수였다. 로마 황제의 사치스런 개인 별장이 새롭게 출범하는 플라비우스 왕조에 와서 공공의 영역 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플라비우스 왕가 첫 번째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 때 착공하여 아들 티투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당초에는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으로 불러지다가 네로 황제의 거상 이라는 이름의 Colossus에서 오늘날의 콜로세움으로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원형 경기장에서는 주로 검투사 경기, 맹수와의 싸움, 전차경주 등 각종 공연 등을 황제가 국민들과 함께 보는 야외극장의 기능을 하였다. 그 후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현재 드러난 지하를 파서 야생맹수와 검투사 노예들의 대기소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콜로세움은 폭군 네로 황제의 개인 영역에서 대중을 위한 공공의 영역으로 그 기능을 달리하였지만 결국 죽음의 장소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맹수가 되었든 노예검투사가 되었든지 이곳에서는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들려 나갈 수 있는 살상의 장소가 되었든 곳이다. 고대 로마 시대 절대 권력의 부패상을 콜로세움은 이미 잉태하고 있었던 것일 게다.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로마 건축미만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네로가 황제가 되기까지는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무서운 계략에서 비롯되었다. 숙부벌인 클라우디우스가 황제가 되자 그를 유혹하여 황후가 된다. 1차 목적을 달성한 후 그녀는 클라우디우스를 암살하고 네로를 황제에 앉힌다. 황제의 딸 옥타비아와 결혼시켜 16세에 명실상부한 권력자로 등극한다. 그 후 과대망상적 광기가 쌓여 생모와 부인, 의붓동생 등 친척들을 죽인다. 자신의 스승 세네카 마저도 자살을 강요하여 죽게 한다. 네로는 로마 시내에 불을 지르고 그리스도인들이 방화를 하였다고 유포하면서 대대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그리스도교가 공인되기까지 250여 년간 박해가 진행되었다. 그 박해의 현장이 바로 콜로세움이다.
잡혀온 그리스도인들을 콜로세움에 집어넣고 맹수들을 풀어 물려죽게 한 곳이 여기이니 어찌 콜로세움의 아름다움에만 취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조망이 좋은 곳에 우두커니 서서 콜로세움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리스도인들인 죽어갔던 현장을 나름대로 상상해보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섬뜩해왔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시민들이 검투나 군인들의 무술경기를 보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이곳에서 놀이의 대상이 되어 잔인한 동물들에 의해서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수많은 이들이 목이 잘렸으며 산 채로 불에 타죽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은 이곳에 끌려나오면서도 성가와 성시를 부르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으며 이는 구경꾼들을 당황하게 하거나 숙연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세계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연중 찾아오는 콜로세움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와 박해사건을 잠시라도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로마 성지 순례를 위해 이곳에 왔다. 콜로세움은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성지가 되었으며 성주간 성금요일에는 교황님께서 직접 이 곳에서 십자가의 길을 바치고 세계의 언론사들은 이를 생중계해 오고 있다. 이곳에 선 나는 당시의 박해시대로 되돌아가서 순교체험을 상상 속에서만이라도 돼 새김질하여 보았다. 나는 그 현장에서 과연 어떻게 처신했을까. 정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온통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혼란스러웠으며 망치로 얻어맞은 듯이 멍해졌다. 그사이 콜로세움은 나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갔다. (2012년 5월/ 로마를 다녀와서/ 김병철)
첫댓글 연풍님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자주자주 좋은 글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