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소함이 품은 달콤 쌉싸름의 비범함
-임정숙 수필집 『사소함도 꽃이다』의 경우-
김 혜 식
▱ 프롤로그
▪ 사소함이 어우러진 인생의 강물
평범한 일상사가 어우러져 엮이면 인생이라는 서사시가 된다. 한 편의 작품 속에는 작가의 정서와 사상이 녹아서 담긴다. 작가의 주관적 견해가 강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소화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높고 낮은 작품일지라도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가 씨줄과 날줄로 엮이어 있는 게 수필의 특성이기도 하다.
『나는 글을 이렇게 쓴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윤재천 수필가가 엮은 책이다. 이 책 속에서 ‘문학은 신, 자연 그리고 물질로부터 인간성을 회복하고 발견하는 작업’이라고 쓴 이는 강석호 수필가이다. 내용이 가슴에 와 닿아 인용해 봤다.
수필이 개인의 체험적 삶에서 길어 올린 독백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작가 자신 만의 전유물로 전락해선 아니 된다. 자아도취에 의한 카타르시스에 머문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문학작품일 수 없다.
모든 존재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인문학적 존재론에서 수필문학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1인칭 문학이다. 니체의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체험하는데 불과하다” 라는 말은 수필문학을 두고 정의한 주장이라고 치부해도 좋다. 수필집 『사소함도 꽃이다』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1. 한 편의 수필 속에는 생활에서 분화된 한 조각 편린이 담긴다.
‘수필 문학은 정서를 본질로 하는 인간화, 사상화에 있다. 그러므로 수필의 문장은 정서를 사상화 해야 한다. 여기서 사상화는 어디까지나 자기감정의 순화요, 승화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사상화의 작업이 여의치 못할 때는 자기 몰입이나 흥분에 사로잡혀 관념이나 추상에 머물기 십상이다. 그런 경우 자칫 화자의 넋두리가 되거나 감상 일변도의 잡문이 되기 싶다.’ 한상렬 평론가의『수필 문학의 성 쌓기』에서를 인용해 본다.
요약하면 수필 창작이 수의수제隨意隨題의 글이라 할지라도 허투루 짓지 말라는 주문이다.
2. 아름다운 관조 탁월한 변별력
임정숙의 수필집『사소함도 꽃이다』의 감상법은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관조의 세계와 자아성찰 그리고 존재론 파악이다. 누구나 겪음직한 일이오, 그리고 조우할 수 있는 사물들이 제재가 된다. 프레드릭 램브리지 말처럼 임정숙의 수필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타인은 무심히 혹은 하찮게 여길 수 있는 사물을 임정숙 만은 남다른 심연의 창을 통하여 바라보아 밤하늘의 별 같이 아름답게 빛난다.
-소원해진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함께 산다는 것은 함께 먹는 것이다. 서로 용서할 수 있는 관계일 때 유대가 맺어진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위대한 사랑은 ‘밥'일지도 모른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 누군가에게 따뜻한 밥상을 내놓는다는 것, "밥은 먹었니?"라고 물어주는 것,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밥 먹는 사이」 중에서
인생을 달관한 표현이다. 세상을 살아보면 대인관계가 그렇게 어렵다. 자신의 잇속 따라 인간관계도 맺는 표리부동은 관계의 진정성을 배제시키기 일쑤여서 더욱 그렇다.
윗글에서 경험철학이 담긴 잔잔한 묘사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지금은 2인 가족을 넘어 1인 가족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가족 세대의 풍경은 삼국시대 모습으로 비친다. 하루의 일상이 밥상머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논리를 펴기 위한 공시적 개념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루의 일과는 교자상이 아닌 8각상에 둘러앉는 일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들 밥상머리 교육이 자연스레 이뤄지는 우리 백의민족의 가정사였다. 가장 따로, 학생, 아이 따로, 주부 따로 식탁을 차려야 하는 세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을진대 따르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조상들은 집에 온 손님을 위해 밥상을 차려 대접을 했다. 그냥 보내면 죄인이나 된 것처럼 미안스러워 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누구네 집에 가서 밥 대접 받는 것을 외려 실례로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식사를 하였느냐? 고 묻는 것이 인사말이었던 시절의 인정은 간 데가 없어졌다. 밥 한 끼 나누는 자리에서도 서정적 의미가 배어나고, 삶의 가치가 깃든 임정숙의 수필엔 한국적 미가 한껏 되살아난다.
‘코밑 진상’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의 모임 분위기가 그렇다. 집행부는 모임의 주최일 뿐 주동은 언제나 밥값을 내는 물주가 되기도 한다.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젊은이들이 부모에게 의지해 독립적인 삶을 포기하는 경향은 아무래도 입시경쟁 탓으로 돌려야 될 것 같다. 무조건 이겨야 내가 산다는 결투 의식이 부모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당위적 사고를 유발한다는 생각이다. 교과학습만이 학문의 전부는 아니다. 결핍으로 얻어진 내핍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한 편의 수필 속에서 부모 세대의 자화상을 찾아본다는 보람도 제공하고 있어 임정숙의 수필은 도덕경이기도 하다.
-혹한의 겨울에도 한 시간여 거리를 한결같이 걸어서 출퇴근한 의지도 대견했다. 왕성한 혈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지만, 편함에 길들여진 요즘 세대로는 쉽지 않은 인내였다.
어느 날 사무실에 쌓인 이면지를 좀 가져가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공부할 때 연습장으로 쓰면 좋겠단다. 기특하여 한껏 넣어준 불룩해진 종이 가방을 메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은 무엇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뚝심이 전해졌다.
하루는 저녁에 가족들과 외식 약속이 있다는 내 말을 듣고 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인가? 의아한 눈빛에 ‘저는요, 언젠가 결혼하면 아이들과 여행을 자주 다닐 거예요. 가는 곳마다 특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는 추억 많은 아빠가 되는 게 꿈이에요.’라고 한다.-「너의 결핍을 위하여」중에서
물질적 풍요만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국가에선 금력이 권력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은 작가의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혹한에도 걸어 다니며 가난한 집안의 가계를 돕는 청년이다. 청년의 소박한 바람은 가족끼리 오붓한 외식 한 번 하는 데 있다. 수필도 한 편의 시처럼 함축미를 갖췄을 때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윗글 중 ‘어느 날 사무실에 쌓인 이면지를 좀 가져가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공부할 때 연습장으로 쓰면 좋겠단다. 기특하여 한껏 넣어준 불룩해진 종이 가방을 메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은 무엇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뚝심이 전해졌다.’에서 청년의 성실함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쉽사리 굴하지 않는 청년의 굳은 의지가 여실히 표현된 게 그것이다.
글의 제목은 과일의 꼭지와 같이 중요하다. 꼭지를 어디에 붙이느냐에 따라 반듯하게 세워 놓은 과일이 되기도 하고, 거꾸로 매달린 과일이 되기고 하고, 옆으로 누워 있는 과일이 되기도 한다. 제목 달기가 쉽지 않다는 소리다. 화가 파울 클레(1879-1940)은 자신의 작품에 제목 붙이는 일을 세례에 비유했다.
「네 속을 보여 줘」는 독자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할 수 있는 제목이다. 제목이 지닌 호감도 못지않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내용은 독자의 마음을 때린다. 수필문학만이 선사할 수 있는 감흥이 아닌가 싶다.
-대장 내시경 검사에 앞서 당일 새벽부터 약물로 장세척을 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화장실을 분주하게 들락거리며, 메슥거리는 약냄새가 목안에서 다시 올라오는 불쾌함은 고역이었다. 내 안의 것들을 욕심 없이 깨끗하게 비운다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행이다.- 「네 속을 보여줘」 중에서
장, 단문長短文이 적당히 배합되어 있어 글의 격이 한층 돋보이고 매력적이다. 단문은 언제 읽어도 박력이 있어 좋다. 그리고 의미전달이 명확하여 독서하기에 지루하지 않다. 괜한 내용을 이리저리 질질 끌면서 장문長文을 즐겨 쓰는 작가를 만난다. 게다가 문장력 없는 주제에 쓴 복문複文은 어법에 맞지 않아 의미 파악이 모호할 때가 있다.
‘내 안의 것들을 욕심 없이 깨끗하게 비운다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행이다’ 이 부분의 문학성을 높이 사 예문으로 들고자한다. 비운다는 것, 이 명제에 주석을 달기란 참으로 어렵다. 너무나 많은 현인들이 ‘비운다’를 즐겨 화두로 삼고 있으니 그렇다.
-간혹 가깝던 사람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대부분 감춰졌던 부분은 기쁨보다는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때가 더 많다. 사람은 불완전한 개체라 하듯 모든 걸 충족할 순 없다. 그러나 가면은 배반이다. -앞글 중에서-
신뢰하던 사람의 이중적 면모를 발견할 땐 상대방에 대한 실망감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배신에 대한 상대적 충격이다. 믿음이란 한 점의 의심 없이 타인을 자신의 마음처럼 믿는 일이다. 타인에 대한 미더움은 사회를 밝게 이끈다. 반면 믿었던 사람이 드러내는 이중성은 불신을 조장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의 배신 무기 집행을 보면 소름이 돋는다. 임정숙은 인간 내면에 감춰졌던 상대방의 또 다른 모습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을 고뇌하는 작가다.
파스칼은 신과 악마의 중간자를 인간이라고 했다. 진실과 위선이란 두 개의 언어 사이에 끼인 중간자가 인간이라면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지칭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남을 배려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일은 하느님이나 부처님만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요즘은 남에게 덕 쌓기도 주저되는 세상이다. 남이 베푼 친절, 배려 따위는 당연한 일로 여기기 십상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면 ‘네 덕 언제 봤느냐’ 등돌리기도 한다. 상대방이 베푼 친절이나 배려에 감사함을 모르는 뻔뻔함과 은혜를 저버리는 배은망덕이 판을 치고 있다. 하긴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의 하늘 같은 은혜도 저버린 채 물질 때문에 부모에게 칼끝을 들이대는 세상이니 더 말해 무엇할까.
도덕과 윤리, 의와 정이 땅에 떨어진 삐뚤어진 사회 풍토, 비인간적인 태도는 인간의 양심을 말살시키고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을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 한다. 이탓에 눈앞에 사람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어도 ‘나몰라라’ 하는 이기적인 세태가 요즘 현실이다.
-지면 불리한 세상인가. 예전보다 내 성격이 좀 급해진 것 같다. 자판기 커피 눌러놓고 손 넣고 기다리다 튀는 커피 방울에 손을 데기도 한다. 언제부턴지 조급하게 앞만 보고 뛰다가 아차 싶은 나를 발견한다.- 「못생긴 나무」중에서
빨리 빨리 정신이 몸에 밴 한국인의 현대판 사고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표현이다.
무슨 일이든 남보다 앞서야 하고 남을 이겨야 하는 무한 경쟁 속에서 저자 자신 또한 그 대열에 자신도 모르게 합류한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면모가 담겨있는 글이다.
이렇듯 한 편의 수필 속엔 진정한 교감을 위해 작가 자신의 나약함, 모순, 부조리한 면모가 숨김없이 보일 때 독자로 하여금 감동을 유발 한다. 그래서 수필은 스스로의 온전한 모습을 죄다 허물어 보이는 문학이라고 했다.
-기본과 원칙에만 충실하기엔 꼼수를 부리는 이들 앞에선, 허탈한 의욕에 지나지 않는다. 번번이 씁쓸하다. 그러니 우선 말이 빨라지고 복잡하지 않으려고 먼저 단호해진다. 세상이 나의 간절함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수시로 얻어맞듯 깨지면서도 까칠함을 고수할 때가 있다.- 앞글 중에서
수필도 시처럼 명징한 언어, 존재의 심연 표현이 절실한 장르이다. 원칙과 기본이 무너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작가의 확고한 자기 방어 의식이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기에 매우 인상적이다.
▱ 에필로그
▪ 사유의 밑거름, 객관적 외연의 확장
신변적인 소재를 잡아 그것을 언어미학을 통해 형상화 하는 작업이 수필문학이다. 하찮은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여 심상의 촉수로 사유의 날을 갈고 닦는 게 수필가의 자세이다.
하다못해 발밑에 밟히는 개미 한 마리의 비명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문학작품이 갖는 참다운 역할일 수 있다. 미미한 현상과 사물일지라도 작가는 그것에 온기를 불어넣어 남다른 관점으로 수혈을 하여 맥을 돌게 하고 혼을 불어넣어 새 생명을 잉태 시키는 작업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사 정지해 있는 것, 살아있되 부패하여 본연의 모습을 잃은 것, 이 모두를 펜의 힘으로 부활시킬 때 문학은 인간구원의 제3동력이 될 것이다.
수필집『사소함도 꽃이다』에 담긴 임정숙 글에는 번뜩이는 예지와 지혜가 깃들어 있다. 독자의 가슴을 강렬하게 흔들어놓는 인간사의 예리한 지적은 날 선 무기로 변장하여 독자를 긴장시킨다. 때문에 이 수필집을 손에 들면 끝까지 읽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묘한 흡인력을 느낄 것이다.
한 권의 수필집을 통하여 광활한 우주를 엿보고, 한 편의 수필 속에서 삶의 진선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작품으로서 사명감을 다하는 것이다.
이름 없이 피어난 한 송이 들꽃, 청아하게 우짖는 한 마리의 새, 그리고 하늘의 별, 이 모두는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동반자임을 일깨워 주는 교과서다. 그러기에 임정숙의 수필집『사소함도 꽃이다』의 일독을 자신 있게 주위에 권한다.
※참고 문헌
윤재천 엮음『나는 글을 이렇게 쓴다』
한상렬 지음『수필 문학의 성 쌓기』
▲ 사진은 종전 그대로 사용하십시오.
약력:
한국문인협회
청주문인협회 회원
하정아카데미 원장
현, 독서신문 고정 필진.
드림 도서관장 역임.
『 월간 문학』 수필 월평 집필
저서:
수필집 『내안의 무늬가 꿈틀 거렸다』
독서에세이 『예술의 옷을 입다』
테마에세이 『조강지처 그 존재의 서글픔』
칼럼집 『굼벵이에게 보내는 갈채』
평론집 『예술의 옷을 벗기다.』
수상:
아시아 작가상 수필부문대상.
제 11회 청주문학상
제 1회 피천득 연고 문학상 수상
제 5회 연암 박지원 문학상
청주예총 예술 공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