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호피석(錦江虎皮石)을 말한다.
(金 鍾 宇 - 강바람돌)
Ⅰ.시작말
Ⅱ.몸통말
1. 금강호피석의 암석(巖石)적 분류
2. 금강호피석의 분포지역
3. 금강호피석의 특징
4. 금강호피석의 주요 산지
Ⅲ.맺음말
Ⅰ. 시작 말
돌을 하는 수석인에게 있어서 자신이 갈망하는 좋은 돌을 한다는 것은 필생(畢生)의 업이요 큰 가치라 하겠으나 그 어려움은 경륜이 깊어갈수록 지난(至難)해, 오죽했으면 일생일석(一生一石)이라는 말과 함께 “원하는 돌을 한번 보고 죽으면 여한(餘恨)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러나 돌이라는 것은 참으로 다양하여서 점촌이나 남한강 돌과 같이 어느 정도 식견 있는 수석인이면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품척도(名品尺度)로써의 산지와 돌이 있는 반면 아직은 지역적인 특징으로 평가절하(平價切下)되는 산지의 돌도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수석계의 현실이다.
나 또한 점촌에서 애석생활의 첫 걸음을 시작한 만큼 한동안 그 그늘을 벗어나기 어려웠고 지금 역시도 가슴에 남아 살아 있음을 부인(否認)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점촌 돌의 무상미(無想美) 넘치는 자유로움과 강렬함 그리고 거역할 수 없는 감동적 힘을 통한 존재의 무거움.
그러나 내 자신을 돌아본다면 바로 금강(錦江)옆에서 태어나 금강을 보고 자랐고 금강 물을 먹으며 산 금강의 아들이요 가장 많이 서 본 돌밭이 금강의 줄기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 장수읍(長水邑) 원수면 북동계곡에서 발원하여 서해의 군산만(群山灣)으로 유입되는 한국 6대 하천의 하나인 금강. 유역면적 9,885㎢이고 유로연장 401㎞로 남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3번째 큰 어머니의 강.
겨울이 지나 갈수기(渴水期)에 돌밭이 들어나는 옥천군 안남면 지수리 동락정 언저리에서부터 영동군, 금산군, 무주군과 진안군까지 20여 년 간 금강줄기를 헤매고 살면서 수없이 많은 돌을 보았고 오만가지의 사연을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 만행(萬行)과 같은 시간들은 금강의 청석(靑石)과 목화석(木花石) 그리고 금강호피를 찾아가는 시간이었으며 한마디로 축약(縮約)한다면 바로 “귀신(鬼神)을 쫒는 상서(祥瑞)로운 돌”이라는 금강 호피에게로 한걸음 더 다가가는 시간이었다.
호피석에 대한 글을 처음 썼던 16년 전과 비교해 지금은 금강 호피가 그 품격을 상당부분 인정받아 전국구(全國區)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현실에 감사를 표하며 금강 호피에 대한 내용을 새롭게 전개해 보고자 한다.
Ⅱ. 몸통 말
1. 금강호피석의 암석(巖石)적 분류
금강호피의 석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호피의 어머니 산인 덕유산(德裕山)에 대하여 알아볼 필요가 있다. 덕유산은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무주군(茂朱郡),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함양군(咸陽郡)에 걸쳐있는 소백산맥 중의 고산(高山)으로써 북 덕유산(제2덕유산)이 1594m, 남 덕유산(제1덕유산)이 1503m이다. 최근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계곡이 이곳에 있다. 또한 황강과 남강 및 금강 상류를 이루는 여러 하천이 발원하여 낙동강 수계와 금강 수계의 분수령을 이루며, 울창한 수목과 백련사(白蓮寺)·안국사(安國寺)·구천폭포(九千瀑布)·적상산성(赤裳山城) 등의 명승고적지가 많아 무주군을 중심으로 그 일대가 1975년 2월 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럼 덕유산의 지질구조는 어떠할까? 덕유산의 고산부(高山部)를 이루는 지질인 선캄브리아기 변성암류인 편마암(片麻巖)에 대하여 먼저 알아보자. 덕유산의 편마암은 남방 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편마암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원생대 중기 약 20억 년 전후의 것들로 보여 지며 화강암(花崗巖)과 달리 수평적으로 단단한 암석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절리(節理) 발달이 약할 뿐만 아니라 지금 알아보고자하는 호피의 석질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감하기 어려운 이질적인 점이 많다.
따라서 호피의 직접적인 탄생지중 하나인 무주구천동 계곡의 지질구조에 대하여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무주구천동 일대의 지질은 크게 구천동 북부의 외구천동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석영안산암(石英安山岩 dacite - 석영의 반정을 함유하고 화강섬록암에 상당하는 화학조성을 가진 화산암으로 호피의 구성요소 중 석영질과 관련한다.)과 백련사(白蓮寺)부근에 이르는 내구천동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화강편마암(花崗片麻岩은 무주구상화강편마암(茂朱球狀花崗片麻岩)이 대표적인데 전라북도 무주군(茂朱郡) 무주읍(茂朱邑) 오산리(吾山里)마을에서 남대천 다리건너 하류 산 아래에서 바로 발견되며 천연기념물 제249호로 지정되었다. 기존의 암석이 고온과 고압의 변성과정을 받아 생기는 암석으로써 호피석의 석질과도 관련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생대 백악기 약 8천만 년 전후에 구천동 지역을 남북으로 양분하면서 관입한 외구천동 지역의 석영 안산암은 지표면 근처에서 냉각되어서 형성된 분출암으로, 침식과 풍화에 강하여 주로 절벽 형태의 노출된 암상(岩床 sheet - 암맥처럼 직립하지 않은 판상관입암체의 총칭을 말한다.)을 이루며 비교적 판상절리의 발달이 탁월한 면이 있다.
내구천동은 주로 화강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곳 일대는 불규칙적인 절리의 발달로 인하여 다양한 하상경관(河上景觀)이 나타나고 있으며, 독특한 석영 암맥이 곳에 따라 습곡을 이룸으로써 특이하고도 기이한 풍광(風光)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 그렇다면 판상절리의 발달이 탁월한 곳과 불규칙한 절리의 발달이 근접해 있는 곳, 그리고 불규칙한 절리 속에 판상절리의 발달이 탁월한 독특한 석영 암맥이 산재해 있는 곳이 무주구천동이라는 말이다. 이와 같은 극반(極反)의 모습은 이곳이 극렬한 변성과정과 지각변동을 겪었으며 호피생성을 위한 특이요건을 갖추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흔히 호피석은 모암 즉, 암반(母巖=巖盤)이 없다는 것이 정설(定說)인데 금강호피 뿐만 아니고 다른 여타의 호피들로 이는 마찬가지라고 보여 진다. 그래서 호피석 선배들은 호피석을 핵석(核石) 즉 알돌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는 독자적으로 다른 석질의 가운데에 박혀있는 돌이라는 뜻으로 호피의 굳기가 모스경도로 7도를 넘나들다 보니 이에 대한 수긍이 간다.(수정(水晶)·황옥(黃玉)·강옥(鋼玉)·다이아몬드 등 모든 강질의 보석들은 극한(極限)의 열과 압력 속에서 탄생한 알돌들이기 때문이며 가장 강렬한 힘의 응결(凝結)된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금강호피의 화사한 색깔은 그럼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일반 돌에 비하여 2배 가까운 비중을 가지는 그 원인은 또 무엇일까? 호피의 깨진 단면이나 호피일부에 동그랗게 산화된 곳을 보면 다른 돌과 달리 매우 많은 철성분(철은 지각 속에 가장 많이 있는 원소 중에 하나인데, 금속원소로는 알루미늄에 이어 제2위이다. 그러나 지구 내부는 주로 철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지구 전체로 보면 존재율이 매우 높다 하겠다. 화학적으로 활성이 커서 천연에 홑원소물질로서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산화물이나 탄산염의 형태로 광상을 이루어 산출된다. 주된 광석은 자철석 Fe에 이어 제2위이다. 그러나 지구 내부는 주로 철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지구 전체로 보면 존재율이 매우 높다 하겠다. 화학적으로 활성이 커서 천연에 홑원소물질로서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산화물이나 탄산염의 형태로 광상을 이루어 산출된다. 주된 광석은 자철석 Fe<A NAME="#4b515950"></A><IMG src="C:\DOCUME~1\ADMINI~1\LOCALS~1\Temp\UNI000006bc6e7c.gif" width=5px height=10px border=0>에 이어 제2위이다. 그러나 지구 내부는 주로 철로 이루어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본다면 금강 호피석은 극렬(極烈)한 변성과정과 지각변동을 거친 석영안산암과 화강편마암의 독특한 변성암(變成巖)으로 준보석에 속하는 알돌이고, 대단히 많은 철 성분을 비롯한 안정화된 중금속을 함유함으로써 비중이 일반 돌에 비하여 상당부분 크다고 할 수 있다.
2. 금강호피석의 분포지역
금강호피석의 원류(源流)를 생각해 본다면 덕유산을 근원으로 하여 두개의 물줄기로 크게 나눠 볼 수 있다. 한줄기는 무주군 안성면 덕유산의 덕곡계곡과 칠연계곡 주변으로부터 시작하여 안성면 덕산리와 진안군의 용담댐을 거쳐 무주군 부남면 대소리로 흘러 들어가 대차리로 가는 줄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주군 설천면 덕유산 구천동계곡에서 시작해 소천리, 용화리, 장백리와 무주읍 읍내리를 거쳐 대차리에서 만나는 물줄기가 그것이다.
이 호피석의 물줄기들은 대차리에서 합수(合水)한 후 내도리(일명 앞섬과 뒷섬)를 돌아 충남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로 그리고 다시 천내리를 거쳐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호탄리로 넘어 온다. 그 이후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에서 적하리, 금강유원지를 지나 대청댐 상류인 동락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대청댐하류인 신탄진대교(호피석 자탐)를 지나 공주의 백사장 모래밭에서도 작은 호피석이 보이는 것을 보면 금강호피석의 분포지역은 매우 넓고 방대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호피석이 덕유산 자락에 그 원석(原石)이 있다는 사실은 금강 주변 지천(支川)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금산의 봉황천이나 영동군 심천면의 초강천 그리고 보은 쪽의 보청천(보청천과 초강천에서 작은 호피석을 과거 1점씩 탐석한 기억이 있으나 극도로 희귀하므로 무시하도록 하겠다.)과 옥천의 서화천, 옥천천 등지에서는 호피석 비슷한 석질도 구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가설이 증명된다.
호피석의 상태을 보면 역시 상류지역은 전체적으로 매끈하거나 깔끔한 수마의 세련미보다는 거친 맛이 있다고 하겠으며(그래도 설천 용화리와 장백리에서도 수마미 좋은 큰 백호피 계열이 과거 다량으로 산출되었고 부남 쪽에서도 매우 깔끔한 호피를 과거에 탐석한 기억이 있으며, 상류지역이라도 비중이 특히 큰 흑호피 계열은 영롱한 피질의 돌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장백리와 대소리 쪽에서는 한쪽 면은 호피이고 다른 면은 잡석인 돌(이런 돌을 이용하여 호피를 조형(造形 = 따로 돌)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몇 해 전까지도 금강호피를 조형하여 전문적으로 파는 사람들로 인해 지역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던 때가 있었고 호피 구입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이 많이 보일 뿐만 아니라 호피의 색감도 전체적으로 둔탁(鈍濁)하다고 하겠다.
역시나 무주군 내도리와 금산군 수통리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된 수마미(水磨美)(영동하류나 옥천군에 이르러서는 황호피나 흑호피계열의 피부가 대단히 매끈하여 윤기가 흐르나, 호피석 특유의 아기자기한 잔 피부는 보기어려움이 있어 영동군 상류까지가 그 한계라 하겠다. 개인적으로는 유리알처럼 매끈한 피부보다는 흑호피 계열의 좁쌀이 박힌 듯한 깔끔하면서도 굴곡진 잔주름을 특히 좋아 한다.)의 호피를 만날 수 있으며 지탄리와 적하리 쪽에 와서는 수마의 정도가 대단히 심하고 전체적으로 돌이 작아짐으로써 좋은 호피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한편으로는 20여 년 전에 금강유원지 아래인 고당리와 합금리에서 산출된 선배들의 명품 산수호피(山水虎皮)가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호피는 금강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면서도 재미있는 사실의 하나가 호피의 원산지(原産地) 분포에 있어 금강과 낙동강 상류의 봉화지역 그리고 북한강 춘천지역(미사리 호피는 이곳 호피가 원류가 아닐까?), 남한강 및 임진강 호피 지역까지를 연결해보면 비스듬한 타원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은 전에 이와 같은 호피의 분포대를 “호피(虎皮)의 환형구조대(環形構造帶)”라고 명명한 바가 있다.(순창호피(淳昌虎皮)는 석질조직의 구성과 색감에서 지금 본인이 말하고 있는 호피들과 여러 가지 차이가 있음으로 이곳에서 언급(言及)을 자제하며, 지리산 산청 쪽에서도 호피석질 비슷한 돌이 산출된다고 들은 바 있으나 아직 무엇이라 하기는 어렵다.)
덧붙여 호피의 분포에 대하여 부언(附言)한다면 호피가 대한민국의 특산이거나 일부 지역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호피의 생성과 관련된 여러 조건이 합치(合致)될 경우 우리 지구촌 어느 곳에서도 산출이 가능하다고 보여 지며, 추후 전 세계적으로 호피의 산지들이 계속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본인은 외국 돌중에 아마존 계열의 황호피와 러시아 산 호피를 본 적이 있는바 비록 다소의 이질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호피계열임은 무시할 수 없었다.
3. 금강호피석의 특징
본인이 금강호피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금강 호피는 여타(餘他)산지의 호피와 어느 정도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물론 이 특징은 개별적이고 부분적인 관점이 아니라 큰 틀에서 포괄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임을 밝혀두며 불필요한 오해가 없기를 당부한다.)을 내포(內包)하고 있었다.
첫째, 금강 호피는 무늬구성(文樣構成)에 있어 매우 강렬한 아취(雅趣)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호피석(虎皮石)의 말뜻”에 가장 근접(近接)한 돌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정황(情況)상 금강 호피와 비교되는 것이 미사리 호피라고 설정해 본다면 미사리 호피의 품격있는 부드러움과 육덕(肉德)짐 그리고 은은함과는 별개로 격정적인 보색적(補色的) 색(色)대비를 가진다 할 수 있다.
황호피를 예로 든다면 아름다운 황금색과 짙은 검정색이 규칙성 없이 혼재하여 뚜렷하게 내재(內在)함으로써 정연(整然)한 화려함을 표현해 내고 있으며 결정구조(結晶構造)가 극적인 측면이 있어 깨돌(“깨돌”이라는 표현은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본인은 금강 호피가 황금색에 검정깨를 뿌린 듯 한 강렬성이라는 측면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단은 추측한다.)이라는 말이 나온 듯도 하다. 이와 같은 특징은 흑호피와 청호피, 백호피 등 금강호피의 대부분에 있어 고유한 특색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어 구분이 가능하며, 일부의 봉화호피와 춘천호피 계열이 유사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둘째, 금강 호피는 색상의 다양성(多樣性)에 있어서 대단한 포괄성(包括性)을 자랑한다. 호피의 대표주자인 황금색의 황호피, 청호피와 흑호피, 백호피, 적호피, 녹호피와 자호피 등 이루 말 할 수없는 다양한 색상의 호피가 산재(散在)함으로써 금강에 서는 즐거움을 배가(倍加)시켜 준다. 물론 물량 점유율에 있어서 청호피와 백호피, 흑호피와 황호피가 주를 이룬다고 하겠으나 그 외의 다양한 호피도 심심치 않게 우리 앞에 다가와 눈짓하고 있으며, 색상의 다양성과 더불어 그 색상이 선명(宣明性)하고 또렷하게 부각된다는 점에서도 금강호피의 높은 가치성을 평가해 줄 수 있다. 본인의 경우 오석(烏石)으로 혼동할 정도의 완벽한 흑색 위주의 매끈한 호피와 깔끔한 색감의 차돌과 같은 희디흰 백호피에 크게 감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셋째, 금강 호피는 그 산출량의 대량성에 있어서 타의 추종(追從)을 불허한다. 호피의 원석이 산출되는 무주군 안성면과 설천면 부근의 상류로부터 금강줄기를 따라 400여리에 걸쳐 꾸준하게 놀라운 호피들이 지금도 탐석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량성(大量性 - 금강의 대청댐위로는 용담댐 외에 강줄기에 큰 물막이 공사를 한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충주 부근에서 남서방향으로 옥천을 지나 익산(益山) 북쪽 15㎞까지 띠 모양으로 길게 분포되어 물줄기를 역행(逆行)하는 옥천계 지향사(沃川系 地向斜)의 영향때문에 많은 여울목을 만들어 내는 것과 관련된 듯하다.)은 금강 호피가 여타(餘他) 호피석의 산지와 확연히 구별되는 대표적 특징으로써 금강 호피 산지의 매력을 더하는 요소라 하겠으며, 금강 호피가 앞으로도 그 성가를 계속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듬직한 밑바탕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금강 호피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그 엄청난 크기에 있겠다. 이는 금강 호피의 대량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겠지만 그 외에도 호피 생성의 과정에서 거대한 알돌의 탄생이라는 특이성(特異性)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류지역인 무주나 진안 쪽에서 탐석된 큰 호피들(무게 100kg 전후의 호피)과 호피 선배님들의 석질을 방문하여 접하였던 아름다운 피질의 대형호피, 그리고 먹음과 굴곡미가 뛰어난 정원석(庭園石) 호피들을 보며 크게 경탄(敬歎)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대형의 호피들이 과연 수석으로 바람직한가하는 물음과는 별개로 호피가 알돌이라는 측면과 수석으로써 좋은 크기의 명품 호피 산출 가능성이 높다는 관점에 접하여 말하는 것이다.
다섯째, 금강 호피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아름다운 변화를 수반(隨伴)하는 호피가 여타 산지에 비하여 제법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물론 양이 많기에 가능한 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어느 산지의 호피이건 그 자체로 변화를 갖는다는 것은 호피의 성질상 매우 힘든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호피가 변성과정에서 다수의 석영과 철분 성분이 혼입되어 핵(核)인 호피원석을 감싸 뒤엉켜 형성된 것이고 그 주변에 잡석 질이 존재한다고 보면, 금강호피는 타 호피에 비하여 이 과정이 매우 역동적으로 형성(원석 깊은 곳까지 석영과 철분 성분이 이질적으로 포함된 경우를 말한다.)된 것으로 보여 진다.
호피가 떨어져 나와 물에 의한 수마를 거치는 동안 약한 성분인 호피원석 주변의 석영질 덩어리와 철분덩어리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가 굴곡과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금강 호피를 살펴보면 호피의 오목한 곳에 덜 빠진 석영질 덩어리(부정형의 형태인 경우가 많다.)가 붙어 있거나 철분 성분(대부분 원형이거나 타원형의 형태를 띤다.)이 산화된 채로 상당한 하류 산지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호피산수석 계열중 금강호피에는 유독 일정부분만 푹푹 먹어 들어간 호수석이 많이 산출되고, 관통석이 다른 여타의 산지보다 탐석빈도가 높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추론이 다시 한 번 증명된다고 하겠다.
4. 금강호피석의 주요 산지
금강 호피를 말할 때 본인은 “자존심(自尊心)이 강한 돌”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이는 묘한 것이 금강줄기에 항시 그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큰 호피는 나오는 곳이 따로 있을 뿐만 아니라 호피가 준보석의 경도로써 비중이 높아 돌밭이나 강바닥에 노출될 경우 빠른 시기에 다른 돌을 등에 업고 그 모습을 감춰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강 호피를 제대로 하기위해서는 첫째로 호피석이 모여 있는 포인트 지점(호피가 나오는 돌밭에서는 불과 몇십 미터의 차이로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을 알아야하고, 둘째로 호피석이 표면으로 노출되는 큰물지난 후의 짧은 시간의 때(며칠 차이로 탐석의 결과가 많이 다르다.)를 맞추거나, 금강변의 공사현장으로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이때까지 금강호피를 해오면서 수석계 지인이나 선배님들에게 어디어디에 가면 쓸 만한 호피가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들었고, 그 결과로써 금강의 지리를 꽤 터득하게 된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우리 동호인들에게 스스로의 경험담(사람마다 탐석 결과물에 대한 추억으로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기에 온전히 본인의 생각임을 밝힌다.)을 지금 말하는 것이며 금강호피를 탐석하는데 작으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첫 번째 산지로 옥천군 이원면 적하리와 지탄리 산지이다. (물론 더 하류인 금강유원지 이하의 산지도 있다 하겠으나 이미 그 고갈(枯渴)의 정도가 심하고 좋은 호피를 하기 어려운 만큼 제외하도록 하겠으며, 적하리 밑의 금암리 돌다리 산지도 여러 번 확인한 결과 믿기 어렵다.) 적하리 산지는 두 번째 여울목을 사이로 두고 위와 아래인데 현재로는 위쪽산지가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이곳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큰 호피가 산출되는 곳으로 과거에는 엄청난 크기의 명품 호피들이 많이 발견된 곳이다. 그리고 바로 물줄기를 돌아 금강 청석의 모태(母胎)인 옥천군 이원면 칠방리가 자리 잡고 있다.
지탄리는 너무나 유명한 산지로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철교 하류와 상류 지역인 장동리 산지이다. 철교 하류의 지탄리 산지는 3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명품이 산출되는 불멸(不滅)의 산지이나 상수원 보호구역인 관계로 망신(亡身)을 각오하지 않으면 들어가기 어려운 문제가 있고 장동리 산지는 큰물이 지나가야 포인트가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두 번째로 영동군 심천면 구탄리와 고당리 그리고 영동군 양강면 청남리 산지이다. 구탄리는 물길이 돌아가는 곳에서 좋은 작품을 한 기억이 있으며 고당리는 영동가는 대교 위 200m 여물목 위아래이며 청남리 산지는 다리 위와 아래 지역을 말하지만 본인이 확인한 바로는 지난 명성만큼 현재로는 소득이 별로 없는 곳이므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세 번째 산지로는 영동군 양산면 송호리 산지와 호탄리 산지이다. 이곳은 학창시절부터 무수하게 발길을 누빈 곳으로 송호리는 국민관광지가 있는 다리 아래쪽이며 호탄리 역시 이와 같은데 지금은 좋은 작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송호리 하류산지는 가끔씩 탐석하러 가고 있다.
네 번째 산지는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에 새롭게 건설된 다리아래 여물목과 가선리와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경계를 이루는 절벽길 도로 밑 여울목이다. 이 두 곳의 여울목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좋은 돌이 나오는 곳으로 추천할 만하다고 하겠으며 본인의 경우 두 번째 여울목에서 제법 쓸만한 단봉호수의 작품을 한 기억이 있어 요즘도 심심치 않게 발길을 대고 있다.
다섯 번째 산지는 용화리, 예미리 등을 훌쩍 뛰어 넘어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산지이다. 주로 좋은 호피가 나오는 곳은 수통리 다리 아래에서 한참을 내려가 물길이 휘어져 꺾여 지는 곳으로 현재도 제법 유명세가 있는 곳임을 밝혀두며 큰물지난 후 필수 순례코스로 잡아 방문하고 있는 곳이다.
여섯 번째 산지는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와 방우리 산지인데 내도리의 경우 다리 건설할 때 많은 호피 명품들이 산출(당시 본인은 고생만 죽어라 했다.)되었고 다리 위 보(洑)아래에서는 아직도 호피석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띠고 있으며, 방우리 위쪽 산지는 지금도 수석인 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의 설명은 대차리 앞까지의 설명으로 그 위쪽은 호피의 원산지가 가까워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는 여러해 전 작렬(炸裂)하는 여름날 무주읍 읍내리 다리아래 보(洑)밑 하상 공사 시에 호피가 트럭에 그득히 실려 나가는 모습(역시 석복이 없나 메주돌 하나 해온 기억이 있다.)을 직접 본인이 목격하였기에 산지를 운운하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언한다면 비록 강 표면에 호피가 심각하게 고갈되어 평상시 탐석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특별히 산지를 언급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 할 수 도 있겠으나, 이와는 별개로 강바닥 그 아래에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명품호피가 잠자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군말 없이 부단한 노력과 실망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함께하는 석복(石福)을 기대할 뿐이다.
Ⅲ. 맺음 말
우리가 볼 수 있는 돌에는 지극히 무른 활석부터 영원성으로 대변(對辯)되는 다이아몬드까지 참으로 많은 종류가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돌의 무더기 속에서 우리들은 미추(美醜)의 이성(理性)으로 멋들어진 돌들을 발견하였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의미의 부여는 곧 갈망이 되고 바람이 되었다. 돌 하나를 봄으로써 넉넉히 자신에게 미소지울 수 있었기에, 그 속에서 지극한 환희와 시름의 극복과 위안을 얻을 수 있고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었기에 어찌 감사하지 않았으랴?
그리고 그 많은 돌중에 금강 호피가 있음을 가슴으로 그리며, 이제 그 금강 호피가 금강 호피 나름대로 말을 하고 있음을 느껴본다. 과거 수석(壽石)의 본류(本流)라고 지칭하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행사하던 “원(遠)의 색조(色調)”에 어긋난다는 타박(打撲)으로 비루(鄙陋)하게 외면당했던 시절을 지나, 고유한 주체(主體)로써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살아가는 독보적인 금강호피를 새롭게 지켜보는 것이다.
금강의 대표주자인 금강 호피가 더욱 발전하기를 이곳을 통하여 간절히 기원하면서 여러 강호(江湖)의 제현(諸賢)들에게 섣부른 장담(壯談)을 하는 점 사과하는 바입니다. 끝.
※ 호피를 찾아 천 리 넘어 만 리를 갔습니다. 살아온 세월의 반을 지나도록 보고 싶은 호피를 찾아 헤매고 또 해매였습니다. 처음에는 10년에 좋은 돌 한 점씩 적어도 평생에 6점은 하려니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30년에 한 점씩 2점 만하자고 했습니다.
이제는 금강호피를 평생에 1점만 하더라도 원이 없습니다.
- 2009년 06월 05일 대전에서 강바람돌이 -
[출처] 금강 호피석을 말한다. (무찰수석-인터넷수석동호회) |작성자 무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