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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師(목사)의 13대 靈性(영성) 2
(네 영성을 회복하라)
3>.이용도 목사 - 신비주의와 예수님과 영적인 합일, 기성교회 비판
이용도 목사는 1928년 어느 날 새벽에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흉측한 모습의 마귀와 싸우게 되었고, 마침내 그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체험을 하였다. 그 새벽의 체험 뒤부터 이용도는 권능과 용기를 얻어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1930년 2월 26일부터 3월 9일까지 평양중앙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이곳에서도 역시 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고, 이용도의 명성은 전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의 부흥회는 가는 곳마다 열화 같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의 부흥회는 비단 감리교회뿐만 아니라 교파를 초월하여 평양 장대현교회와 같은 장로교회에서도 열게 되었다.
그러나 이용도 목사의 부흥운동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신비주의적 부흥회 인도 방식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여신도들과의 서신거래, 불을 끄고 기도하는 것 등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지나치게 기성 교역자들을 비판하고, 무교회적인 신학을 펼치는 경향도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장로교 총회는 1932년 제 22차 회의에서 이용도 목사를 ‘이단’ 으로 정죄하고 장로교 내에서는 그의 출입을 봉쇄하였다.
그 후 원산에서 치료를 하다가 지병인 폐병이 심해져서 결국 1933년 10월 2일 친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33세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다.
4>.이용도 목사 서간집 요약
1930년대에 33살을 살다 간 목사로서, 당시에도 ‘이단’ 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던 분 이용도 목사 서간집 요약
1. 주님이 부르시는 대로 찾아가서, 밤이든지 낮이든지 엎드려 기도하라.
2.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가난하고, 굶주리고, 잠 못자고, 헐벗고, 욕을 먹는것 보다, 더 큰 복은 없다.
3. 주님과 같이 사는 자는, 겉으로는 가난하고 슬프지만, 속으로는 부하고 즐겁다.
4. 주님만 쳐다보고, 주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여라.
5. 목사를 주의 일꾼과, 사자와, 목자로 본다면, 성도와 목사와 주님께 불행한 일이다. 오직 죄인 중의 하나로만 보게 하라.
6. 나는 홀로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나의 자랑의 머리도 깎아 버리고, 겉치레의 옷도 벗어 버림은, 주님께 거리낌이 되기 때문이다.
7. 홀로 향하여 가는 곳, 남이 아는 듯 모르는 듯, 다만 골고다로 가신 주님의 뒤를 따라 가리라.
8. 주님이 가신 곳은, 자욱마다 고인 눈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쓴 물이 아니라 단물이다.
9. 주님만 구하여 주님만 얻으면, 모든 것은 덤으로 따라 온다.
10. 무엇을 아는 줄로 알면 무식함이고, 된 줄로 알면 미숙함이고, 똑똑한 줄로 알면 어리석음이다.
11. 명상과 기도는 주님을 발견하게 하고, 하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12. 주님을 모르고 사는 것 보다는, 주님을 알고 죽기를 원하노라.
13. 아침은 찬송과 활동과 돌진의 때요, 밤은 기도와 참회와 명상의 때이다.
14. 우리가 주님을 모시고 다니는 나귀가 되면, 우리의 값은 주님께서 계심에 있고, 우리의 영광은 주님께서 타심에 있다.
15. 어진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방향을 알아서 잡는다. 주님을 위한 어진 말이 되어라.
16. 신앙은 부업이 아니라 본업이요, 일부가 아니라 전부이다.
17. 신앙의 말 외에는, 입을 열지 말고, 침묵을 하라.
18. 강단에서 한 주일에 한 두번씩 생명없는 설교나 하고, 이집 저집으로 심방이나 하는 것을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주님의 일이 아니요, 죄악일 뿐이다.
19. 모든 명예가 다 수포로 돌아 가도 즐거워 하라. 주님의 사랑의 손이, 대신 그대를 만져 주리라.
20. 무엇이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주님보다 더 생각하고, 더 사모하고, 더 바라는 것이 있으면, 이는 주님께 합당하지 않는 큰 죄악이다.
21. 자기가 잘 믿는 줄 아는 자와, 죄의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는, 진실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다.
22. 주님을 따라서 살려면, 육신의 생각과, 정욕과, 사리 사욕과, 명예와, 성공과, 물욕까지도 죽어야 한다.
23. 땅 위에서 잘 살려고 하면, 벌써 하늘 나라의 복락을 잃고야 만다.
24. 하늘의 신령한 것을 위해서는, 곤고나 빈핍이나 수치나 죽음이나, 그 무엇이든지 달게 받으라.
25. 믿음이란 교리나 신조나, 예배 의식이나 기도나, 찬송에 있지 않다. 다만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주님의 신이 나의 신이 되며,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26. 나 자신이 죽는 날에야, 비로소 내가 완성이 된다.
27. 고苦(괴로움)는 나의 선생이요, 빈貧(가난)은 나의 애처요, 비卑(낮아짐)는 나의 궁전이요, 예수님은 나의 구주요, 자연은 나의 친구이다.
28. 평안할 때 보다는, 고통중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29. 믿을 사람도 없고, 사귈 사람도 없을 때에는, 하늘과 산과 물과 새와 초목을, 나의 친구로 삼아라.
30. 신자의 좌우명은, 무언과 겸비와 기도와 근로와 순종이다.
31. 신앙 생활이란, 육의 생명을 영의 생명으로 바꾸는 것이다.
32. 육의 원근은 공간에 나타나고, 영의 원근은 주를 사모함에 나타난다.
33. 주님의 생명이 크게 임할수록, 땅에서는 멀어지고, 비천에는 가까와진다.
34. 보는 눈과, 듣는 귀와, 말하는 입과, 글 쓰는 손과, 느끼는 마음도, 주님을 빼놓고는, 사각이요 화석이다.
35. 육에 죽고 영에 살며, 땅에서 천하고 하늘에서 귀한 자가 되어라.
36. 기도의 가뭄이 들면, 나의 영혼은 갈라지고 터져서 통증을 느낀다.
37. 기도를 못하는 나의 슬픔과, 기도가 없는 영혼의 가련함이, 밥을 굶고 옷을 벗음보다, 더 가엾고 불행하다.
38. 마귀는 지혜로워서, 우리의 신앙과, 건강과, 지혜와, 물질과, 기쁨과, 소망과, 자녀와, 명예를 다 빼앗지 않고, 오직 한가지, 기도만 빼앗으려고 한다.
39. 기도는 내 삶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나의 일생을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게 하소서.
40. 죽어서 세상을 떠남은 슬퍼할 일이나, 천국에 올라감은 경축할 일이오니, 죽음을 너무 슬퍼함으로, 하나님께 욕이 되지 않게 하라.
41. 세월은 바람 같고, 인생은 구름과 같아서, 인간은 세월 앞에 흘러 가는구나!
42. 한 분이나 두 분만으로도 만족한데, 여섯 분이나 계시니, 기쁜 마음으로 가서 집회를 인도하리다.
43. 나의 별명을 시무언이라 함은, 말이 없음이 옳고,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리며, 일생을 성전에서 지내다가, 마침내 주님을 만나서 즐거워하던, 시므온을 그리워 함이다.
44. 예수님의 혈청 주사를 맞아서, 영육이 건강하기를 바란다.
45.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면 망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일을 당하던지, 결코 하나님을 슬프게 하지 말라.
46. 염려는 걱정을 낳고, 걱정은 연약을 낳고, 연약은 죽음을 낳는다. 일점 일획의 염려까지도, 다 주님께 맡겨 버려라.
47. 이미 죽은 사람을 위하여, 허례로 많은 돈을 허비하며, 추도회 라는 이름으로, 추도예배를 드리지 말라.
48. 인간의 참된 진리는, 필히 고통을 통해서 나온다.
49. 흙판이나 책을 통하여 얻은 진리는 흙덩이요, 고통을 통해서 얻은 진리는 금 덩어리이다.
50. 나는 이권도 없이, 빛도 없이, 명예도 없이, 죽으려고 한다.
51. 우리가 배울 것은, 외적으로 가난하고 단순하게 사셨던, 주님의 청빈한 생활 모습이다.
52. 주님께 아주 꽉 미쳐서, 물 불을 헤아리지 않고, 성광을 이루어라.
53. 진리(JX)는 이웃도 허락하지 않고, 형제도 수용하지 않고, 친구도 즐겨하지 않는다.
54.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아! 사람들이 좋아하고 싫어함을 좇을 것이 아니라, 다만 진리만를 좇으라.
55. 기도에도 예수님! 찬송에도 예수님! 떠들어도 예수님! 잠잠해도 예수님! 생시에도 예수님! 꿈에도 예수님! 먹어도 예수님! 입어도 예수님! 잠 잘때도 예수님! 일해도 예수님! 생활의 촛점을 오직 예수님께 맞추어라.
56. 아무 것도 되려고 하지 말고, 다만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라.
57. 신앙이란 사람을 따라감이 아니라, 다만 주님을 따라 감이다.
58. 세상과는 멀어질수록, 주님과는 가까와진다.
59. 세상에서 버림을 당하는 일이, 오히려 큰 축복이다.
60.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이, 가장 큰 하나님의 일이다.
61. 하늘의 일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이다.
62. 믿음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성장한다.
63. 예수님을 아는 일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64.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러워하지를 말라. 하늘이 알아주면 족하지 않는가?
65.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의 통로요, 성령 충만의 방법이요, 영혼의 양식이요, 신앙의 골수이다.
66. 기도 없는 신자는, 이름만의 신자요, 껍데기 신자요, 짝퉁 신자이다.
67. 기도할 때가 능력의 때요, 기도하는 곳이 능력의 장소요, 기도하는 사람이 능력의 사람이다.
68. 인간의 최고 학부는 대학이 아니라, 아파서 누워있는 병실이다.
69. 이것 저것 다 구하지 말고, 오직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예수님만을 구하라.
70. 알고서 따르거나, 이해를 해서 기쁘거나,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만족한다면, 불신자와 무엇이 다른가?
71. 교권에서도 주님! 단상에서도 주님! 산속에서도 주님이면, 그만이요 만족이다.
72. 사람에게 버림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때에, 하나님께 멸시를 당한다.
73. 선은 약하되 강하고, 악은 강하되 약하며, 선은 지고도 이긴다.
*이상, 정지로 목사 요약*
5>.거지 아이 ‘억성이’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연민과 사랑 이야기(이용도 목사의 일기집에서...)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었을까? 어린 거지 아이 억성이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연민과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보아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줍니다.
"예배당은 너무 추워서, 말을 하기가 힘들다. 意氣 저상하여 설교도 힘이 없다. 돌아 오는 길에 조그만 거지 아이가 뚜껑 없는 주전자를 손에 들고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손과 발은 홍도 같이 빨갛게 얼었다. 바람은 눈 위에 칼 같이 사나운데, 저런! 인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였다. 하나님의 保佑之澤이었는가? 아! 죄악의 세상이라. 자기만 살려고 눈에 불이 난 인간들 어찌 이 가련한 乞兒를 본 척이나 하고 지나 가랴? 마음에 민망함을 이기지 못하여 여관으로 대리고 와서 두루마기를 벗어 둘러 주고 아랫목으로 인도하여 이불로 둘러 줄 때, 나의 마음 너무 민망하여 슬픔을 이길 길이 없었다.
오. 주여! 이 아이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너 조반 먹었니? 못 얻어 먹었시오. 때는 열한 시 반이다. 뜻뜻이 먹어도 떨리어 견딜 수 없는데, 아! 어이 생명이 살아 남았노? 엊저녁은 어디서 잤니? 家街에서 잤어요. 그래! 무엇을 덮고 잤니? 아무 것도 안 덮고 잤어요. 어제 저녁 같이 추운 밤에 아무 것도 덮지 않고, 밖에서 잤다. 밤에 물 그릇이 땡땡 언 어제 저녁에 아! 나는 너무도 호강스러웠다. 北風寒雪 추운 밤에 거리에서 울며 떨고 있는 아이를 생각지 않고, 나만 혼자 이불을 두 개씩, 포대기 깔고 편안히 자고 있었구나.
오! 나에게 禍가 있으리로다.
너 혼자 잤니? 네. 아 혼자서 어떻게 밤을 샜노? 엊저녁에 밥은 얻어 먹었니? 네. 무슨 밥? 찬 밥이오. 그래! 찬 밥을 주드냐? 네. 아이의 눈에는 원망과 고독이 아직도 끝이지 않았다. 나의 눈에도 참회의 눈물이 그칠 줄을 모르노라. 몇 살이냐? 여덟 살이에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니? 어머니는 아버지와 쌈하고 양잿물 먹고 죽고, 아버지는 미쳐서 달아 났어요... 아! 엄동설한에 거리에서 기한에 우는 乞兒. 네게는 죄가 없다. 네게 무슨 죄가 있으리. 눈물이 앞을 가리워, 日記를 쓸 수 없어, 수건을 눈에 대고 그냥 한참 울었다... 오! 하나님이시여. 어떻게 하시려나이까? 이 가련한 乞兒를. 네 이름이 무어냐? 億成이에요. 성은 崔가요. 오 崔億成이로구나... 너 예배당 아니? 알아요. 예수 믿는 사람 너의 동리에 있니? 많아요. 여기도 예수 믿는 사람 많아요. 오! 그래.
예수 믿는 사람은 도처에 많거니와, 너를 긍휼히 여길 신자는 없었구나!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고, 다만 自己의 욕심만 위하여 믿는 체 하는 現代 교인아. 너에게 禍가 있을진저. 여관 主人이 문을 연다. 이는 주인 집 아이가 나의 乞兒 데리고 들어 옴을 보고 들어 가서 告하였기 때문이었다.
떡국 한 그릇 시켜 오라고 하고, 나는 조금 未安을 느꼈다... 여관에 부탁하여 물을 끓여다가 乞兒의 얼굴과 手足을 씻기고 얼어 터진 발가락을 헝겊으로 처맨 것을 끌르고 씻고, 빅쓰를 발러 줄새 나의 憐恤이 극하여 눈물이 쏟아졌다. 울면서 씻어 주고, 싸맨 후 나의 內衣와 저고리 입었든 것을 입혀 주고, 양말을 신기고 버선을 덧 신겨 줄새, 아! 이는 乞兒가 아니요 我子요, 愛兒인 感이 興起하였도다.
그러나 저에게 맞는 것으로 입혀 주지 못하고 나의 입었든 헌 것, 큰 것을 억지로 입히매, 主님을 이리도 소홀히 대접한다는 感이 끓어 올라 적이 민망하다. 주인 마누라 들여다 보더니, 버선이 어찌 큰지 長靴 신은 것 같구나! 하고 웃고 가는지라. 저녁밥을 같이 먹고, 밤에 같이 자다... 나의 옆에서 자는 더벅머리를 보니, 이는 꼭 羊과 같었다.
이는 나의 羊이었든가? 아! 귀엽고 可愛로운 어린 羊아! 기한에 울며 거리에서 방황하던 孤羊을 찾었노라. 오. 주여! 나는 목자 노릇하기 어렵사옵니다. 내가 이 어린 것을 어이 하오리까? 주여! 나를 도우사 이 어린 것을 도울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얼굴이 미소가 나타 나고, 그의 입은 平和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볼 때, 나의 마음은 기쁨이 가득 하였도다. 저의 울음은 나의 울음이었고, 저의 웃음은 나의 웃음이었다. 오! 네가 울어 내가 울었고, 네가 웃어 내가 웃었으니, 이 어인 인연인고. 이것이 과연 목자와 양의 인연이었는가?..."
거지 아이를 씻기우고, 상처를 매만져 주고, 먹여서 재워 놓고도 가슴이 아파서 우는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그 중에 그의 사랑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산정현 집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겨울 산정현 집회 때에 회당에서 밤을 세워 기도할 때, 내 맥박은 끝이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숨이 곧 끊어질 것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안수기도를 원하는 이가 한 분 왔습니다. 나는 숨도 쉴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으니, 기도를 드리지 못하고 그 머리 위에 손만 얹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내 심중에 일어 나는 감격은 컸습니다. 내 숨이 끊어지려는 순간에, 남을 축복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격했습니다. 내가 숨이 지더라도 그 부인은 축복을 받을지니, 나는 죽어도 내 대신 주님께서 그를 축복하실 것이 믿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기도는 축복의 기도가 아니라, '나는 남을 도울 힘이 없사오니, 주 친히 축복하옵소서.'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힘이 나고 말문이 터져서, 둘이 다 충분히 감격할 수 있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숨이 넘어 가는 순간, 다른 사람을 위해 축복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이용도 목사.
"예수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또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이용도 목사의 산정현 집회에서 보여 준 사랑은, 예수의 사랑의 신비 속에 하나가 되어 보여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용도 목사의 사랑의 영성은 자연을 포함합니다. 이용도 목사는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소외 되어 고독해 보이는 까마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하고,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모든 분별지로부터 벗어나 만물과도 화합하고, 서로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어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 속에서 자란 이용도 목사는 섬세하고 부드럽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감싸 안을 줄 아는 모성적 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려서 그를 포근하게 감싸 주고, 안아 주고 업어 주던 어머니의 모습과 일치되고 있습니다.
""유한 물이 강한 돌을 굴려 간다. 유한 골짜기 물이 단단한 굳은 반석을 쪼개고, 깨쳐 모래를 만든다. 강한 것(石)의 힘보다 유한 것(水)의 조화가 실로 묘하도다. 유는 우주의 본성이었나니, 유가 강을 주관하였나니라. 우주 만유의 본성은 小요 弱이요 柔이었나이다."
이용도 목사는 여성성인 유약함이 강함을 이긴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우주의 본성인 부드러움이 강함을 주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대목은 도덕경의 上善若水를 생각하게 합니다. 노자는 최고의 선덕은 물과 같은 것이어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고, 남이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고 보았습니다.
이용도 목사 또한 마음은 늘 겸비하여 낮은 데 처해 있어야 되고, 비천은 늘 그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이용도 목사의 삶은 포용적이고, 여성적이며, 그의 내면은 부드럽고, 섬세하고, 생명력이 있었으며, 優位보다는 無位에, 높아짐 보다는 낮아짐에 처해 있었습니다.
일제 하의 가난과 질고 속에서 몸부림치던 힘없는 민중들의 상처 받은 영혼의 탄식 소리를 들을 줄 알던 사람, 그들의 아픔에 통곡할 줄 알던 사람, 민족의 고난과 예수의 고난을 눈물의 설교를 통해 뭇 영혼 들을 생명수로 촉촉이 적셔 주던 사람, 배가 고프면 물로 배를 채우고 웃으면서 가야금을 뜯을 줄 알던 사람, 무언, 겸비, 기도, 순종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던 사람, 날마다 죽음을 무릅 쓰고 그냥 무식하게 돌진하던 사람, 쫓기고 버림 받은 사람을 조건 없이 끌어 안는 넓은 가슴을 가진 사람. 오직 예수를 그리워 하고 예수 만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무교회 서적도, 사회주의 서적도, 불경 서적도 읽기를 권했던 한 없이 열린 영성을 갖고 있던 사람...
이용도 목사는 삶 속에서 철저히 죽어, 죽음을 넘어서 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천년 같이, 천년을 하루 같이 살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생명, 몸, 생각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 솟아 오르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주와 하나가되는 삶,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깨어져 無가 되고, 空이 되고자 했습니다. 이용도 목사는 자신을 온전히 비워, 영원히 넘쳐 흐르는 생명의 물결 위에 자신을 실으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용도 목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겠습니다.
""나는 나의 일에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그냥 생명 강수 넘쳐 흐르는 대로 떠나려 갈 모양! 그러다가 어디 걸리면 머무르고, 또 쓸려 가면 가다가, 깨어지면 깨어지고!"
6>.이용도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 받았을 때의 시:당시에 이용도 목사는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했다.
人 世
힛끗 찬 視線 독하게 던지고,
십년의 친우 一朝에 가도다.
魔徒를,
사탄을
주여! 멸하소서.
목사님 목사님 하던 성도의 音聲,
면직되고 得病하니,
찾는 자 없도다.
병 들고 돈 없으니,
다음 올 운명은?
버림 받는 자에게
가을은 쓸쓸하고,
병들어 누운 몸을
겨울 밤은 울린다.
오 주여~
이용도 목사는 1920년대 말과 30년대 초기에 5년 정도 짧게, 불같이, 바람같이, 생수같이 쓰임받고, 전격적으로 세상을 떠난, 33세의 나이에 요절한 위대한 성령의 종이다.
4>.이성봉 목사 - ‘허사가’ 로 대변되는 하늘나라 영성 추구, 순교의 영성, 임마누엘특공대 동행
이성봉 목사 일대기 국민일보연재 내용
1. 이 목숨 하늘나라 일에 바칩니다
2. 중학생 때 김익두 목사 설교에 감동
3. 병상에 누운 후 간절한 회개기도
4. 골수염 완쾌 기쁨에 신앙생활 결심
5. 첫 사역지 수원서 북치며 가두전도
6. 7년 앓던 무당할머니의 병 고쳐
7. 목포교회 부임... 새 예배당 건축
8. 목포 일대에 '예수 바람' 일으켜
9. 총회서 부흥목사로 임명받아
10. "다른 교파 집회 가지 말라" 교단 명령
11. 감격의 해방...교단 재건에 혼신
12. 급성맹장염 씻은 듯... 신유은사 체험
13. 빨치산 대장이 조사하다 풀어 줘
14. "이목사 집회하는 곳마다 교회 선다"
15. 회개설교 때마다 청중들 눈물바다
16. "한국의 무디"... 미국 성회도 대인기
17. 양떼 돌보느라 집안은 가난한 생활
성결교회의 대부흥사(1900-1965년). 평안남도 강동군 출생. 6세에 기독교에 입문하고 어머니로부터 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았다. 중화 경의학교를 거쳐 14세에 신천 경신소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에 경제적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여 오랜 기간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가 21세 되던 해에 원인 불명의 병으로 6개월간 평양 기흘병원에 입원하면서, 비로소 인생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며 철저하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신앙 역전의 대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29년 동양선교회 경안성서학원을 졸업했고 1936년에는 일본에 유학을 다녀왔다.
해방 후 '조국의 무너진 교회를 회복하라' 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북에서 성결교회 재건 운동에 앞장섰다. 1950년 6.25 전쟁 때는 목포에서 피난을 거부하고 집회를 인도하다 인민군에게 붙잡혀 온갖 고초를 겪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1954년부터 2년 동안 '임마누엘 특공대' 를 조직하여 무너진 교회 복구를 위해 순회 집회를 인도하였다. 이 때부터 그는 전국을 돌며 천막을 치고 대중 집회를 열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수 많은 인파가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1957년에는 8개월 동안 미국에서, 1961년부터 1963년까지는 전국 408개 교회에서 순회 집회를 가졌다.
이성봉 목사는 세상을 떠나기 10일 전까지 강단을 지켰으며 1965년 7월 성결교 합동 총회에서 마지막설교를 하고 그 해 8월 2일 별세하였다. 유해는 청주 교회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1900년 7월 4일 ~ 1965년 8월 2일
평안남도 강동군
저서(작품)『천로역정 강화』,『임마누엘 강단』등
성결교회 전국부흥사, 임마누엘 전도대장, 목사, 부흥사
1)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은혜 체험적 삶이었다.
2)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삶이었다.
3) 이성봉 목사님의 삶은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이었다.
4)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이었다.
5)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예수 중심주의 신앙이었다.
6)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회개와 중생의 복음 신앙이었다.
7)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성결의 복음 신앙이었다.
8)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신유의 복음 신앙이었다.
9) 이성봉 목사님의 신앙은 재림의 복음 신앙이었다.
최초의 전문 부흥 설교자 이성봉 목사:
부흥사의 모범 답안 이성봉 목사가 본격적인 부흥사로 나서는 시기는 1937년부터이다. 이때부터 그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부흥사로서의 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오늘날 그를 부흥사의 최고 모델로 삼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생명을 건 복음 전파
2) 영적 전투로서의 복음 전파
이성봉 목사는 1954년에 ‘임마누엘 특공대’라는 전도단을 조직하여 부흥회를 다녔다. 이는 부흥회를 영적 전투로 보고, 설교하는 것을 전장에 나가는 장수처럼 생각하며 결연한 각오로 나선 것이다. 그는 이 전도단과 함께 1년 동안 70여 지역을 순회하면서 전도하였고, 1956년에는 1천 교회 설립을 위한 전국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3) 삶으로 설교한 부흥사
그는 돈이 생기면 항상 어려운 교회와 가난한 성도를 위하여 나누었고 자신이나 가족은 매우 어려운 생활을 감수하였다. 이성봉 목사는 항상 가방에 그득히 돈을 가지고 다녔으나, 그 돈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약한 교회, 딱한 목사님들에게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그리고 집에는 돈을 주지 않아서 가족은 항상 가난에 찌들어 살아야 했다.
4) 작은 자에 대한 배려
이성봉 목사의 트레이드마크는 설교 중 부르는 찬송이었다. 그는 빼어난 음성으로 찬송을 불러 듣는 이들에게 은혜를 더하였다. 또한 당시의 대중음악이나 민요 가락을 사용하기도 하고, 기존 찬송가의 곡조에 새로운 가사를 창작하여 부르기도 하였다. 오늘날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그의 대표적 찬송시 중에는 현행 찬송가 266장(주의 피로 이룬 샘물) 곡조에 얹어 부른 ‘인생 허사가’ 가 있다.
1.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 일생의 향락 좋대도 바람을 잡누나
/ 험한 세월 고난 풍과 일장춘몽이 아닌가
/ 슬프도다 인생들아 어디로 달려가느냐.
2. 이팔청춘 그 꽃다운 시절도 지나고
/ 혈기방장 그 장년도 옛 말이 되누나
/ 성공 실패 꿈꾸면서 웃고 우는 그 순간에
/ 원치 않는 그 백발이 눈서리 휘날리누나.
3. 해와 달과 별까지도 총명하던 정신
/ 안개 구름 듬북끼어 캄캄해 지누나
/ 모든 정욕 다 패하고 아무 낙도 없어지니
/ 땅에 있는 이 장막은 무너질 때가 되누나.
4. 인삼 녹용 좋다 해도 늙는 길 못 막고
/ 진시황의 불사약도 죽는데 허사라
/ 인생한번 죽는 길을 누가 감히 피할소냐
/ 분명하다 이 큰 사실 너도나도 다 망한다.
5. 꽃이 떨어진 후에는 열매를 맺고요
/ 엄동설한 지나가면 양춘이 오누나
/ 어두운 밤 지나가면 빛난 아침이 오리니
/ 이 세상을 다 지난 후 영원한 천국 오리라.
6. 근심마라 너희들은 하나님 믿으니
/ 또한 나를 믿으라고 주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 그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지요
/ 기쁘도다 주님 함께 영원히 함께 살리라.
7. 강 건너편에 종소리 내 귀에 쟁쟁코
/ 보석성에 그 광채는 눈앞에 찬란타
/앞에 가신 성도들이 주님 함께 기다린다
/ 어서 가자 내 고향에 할렐루야로 아멘.
어느 작사가의 허사가
예수 믿어 중생한 나 죽기는 왜 죽어
험한 세상 말세 됐네 주님 다시 오시면
공중 휴거 홀연 변화 영생복락 누리리
주 예수여 이 시간에 어서 속히 오소서!
이성봉(李聖鳳) 목사 순교를 결심한 성결교 지도자
1. 성결교단 재건에 힘씀
1945년 이성봉목사는 만주 주문교회에서 해방을 맞고 "무너진 곳을다시 주복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귀국하여 이북에서 폐쇠된 성결교회 재건운동에 앞장서서 교회 재건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여러 곳을 돌며 무너진 제단을 다시 세우기에 힘썼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38선이 막히고 교회탄압이 날로 심해지자 이목사는 46년 월남하여 남한에 성결교단재건에 앞장섰다.
2. 순교를 결심
1950년 이목사는 서울 충정장로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다가 25일까지 집회를 마치고 27일에 목포에 내려와 압해도에서 20일 동안 집회를 열었다.
이때 인민군은 정읍까지 쳐내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목포 성결교회의 동료목사는 이성봉 목사에게 피난가자고 했으나 거절하고 혼자 남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다 8월 2일 수요일밤 예배를 인도하고 나서 내무서원에 붙잡혀갔다. 이 목사는 잡혀가면서 순교를 결심했다. 그래서 온갖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키며 옥중에서 매일 찬송하고 기도했다.
3. 임마누엘 특공대 조직
이 목사는 1954년부터 2년동안 625로 인하여 무너진 교회의 재건과 약소교회를 위한 "임마누엘 특공대"를 조직하여 순회집회를 인도하였다.
서울,부산,인천,대구,대전 등 대도시를 돌면서 천막을 치고 대중집회를 할 때에는 수천명 혹은 수만명이 모여들어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이 목사는 농촌과 산골, 도서의 여러 지방을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하여 부흥의 기틀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또 그는 전후방의 장병들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나환자들도 자주 돌아보고 격려 위문했다. 소록도의 갱생원 여수의 애양원, 대전의 애경원, 부산의 상애원, 인천의 소생원, 금천의 성애원, 창년의 소혜원 등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편 1955년 신촌교회를 개척하였다. 1959년 이목사는 N.A.E.대표로 도미하여 약 8개월동안 워싱턴 뉴욕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등 각처를 순회하면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4. 1일 1교회 순회집회와 소천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1일 1교회 순회집회를 시작한 이목사는 408개 교회를 순회하였다. 이목사는 세상을 떠나기 10일전까지 단을 지켰으며, 1965년 7월 성결교 합동총회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였고, 1965년 8월 2일 별세했다.
배종부 목사는 이 4분의 맥을 이어가기를 원한다.
4.한국교회의 부흥의 맥을 이어간 이들
1>.나운몽 목사
끊임없는 이단 시비의 희생제물
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용문산에서 성령 운동을 시작한 개신교 목사.
나운몽(羅雲夢)은 1940년 5월 나운몽은 어모면 능치동 산274번지[현 능치리 산274번지] 일대 약 200정보에 애향숙(愛鄕塾)을 개설했다. 애향숙은 기독교 교파별로 신도들을 이주 수용했는데, 감리교 신자들은 애향촌에, 성결교 신자들은 믿음촌에, 장로교 신자들은 소망촌으로 구획하여 집단 주거지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그리고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50평[826.45㎡] 규모의 예배당을 짓고 이곳에서 한꺼번에 각 교파 전원의 신자들이 연합예배를 드리게 했다.
이후 나운몽은 애향숙 자리에 용문산기도원[1947년]을 세운 데 이어 고등성경학교[1955년], 기드온신학교[1956년], 용문산수도원[1960년]을 세웠다. 또 용문산 600m 정상에 기도단을 설치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으로 한 사람씩 끊이지 않고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계속하게 했는데, 이는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1975년 미국 나성성서신학대학 명예신학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2년 국제크리스찬대학교 성경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운용 목사는 용문산기도원장, 용문산수도원장, 한국복음화운동본부장, 일동교회 운동본부장, 기드온신학교장, 대한예수교 오순절성경회감독, 만민교회 담임목사, 새별산교회 담임목사, 애향원 이사장, 『기독공보』·『농민성보』·주간 『복음신문』·월간 『신앙세계』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1980년 세계설교자협의회 수훈공로상을 수상하였다.
나운몽은 1947년 다시 용문산에 들어가 4월 5일 ‘애향숙’이라는 이름을 짓고, 5명의 숙생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후 신비체험을 하고 전국 각지에서 부흥회를 주도하였으며, 애향숙과 구국기도를 접목시킨 용문산기도원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더욱 발전해 나운몽의 3겹줄 전도운동인 부흥·문서·기도 전도의 열풍도 크게 일어났다.
1955년 기드온고등성경학교 설립, 1956년 기드온신학교와 기드온수도원을 창설하였고, 1961년 문교부로부터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1962년 용문산기도원에는 신도 4백여명 외에 남녀학생 3백명을 합쳐 7백여명이 있었다.
지나친 신비운동을 막았던 기존교회들로부터 논란이 벌어져, 1968년 7월 22일 예장(고신) 총회의 경남노회는 용문산기도원을 이단으로 결정했고, 이후에도 이단 논쟁 시비는 계속 일어났다.
용문산기도원은 793.39㎡[240평] 규모의 대강당 대성전을 비롯하여 88회관, 사무실, 도서관, 성경학교, 신학교, 수도관, 중앙숙, 기념관 등이 있는 애향촌, 그리고 소망촌, 칠성촌, 믿음촌에는 150여 가구가 상주하고 있다. 전국에서 이주해 온 독신자 700명, 학생 600명이 있다. 고등 성경학교에는 현재 300명의 학생이 취학하고 있는데, 2010년 10월 현재 남자 641명, 여자 559명을 배출하였다. 1990년대에는 300여 가구에 1,000여 명이 상주하였고, 전국의 신도 3만여 명이 연중행사로 기도대집회를 열기도 하였다. 현재 용문산기도원 원장은 나운몽 목사의 장남인 나서영 목사이다.
한국전쟁 이후 기도원 운동의 열기가 고조되던 시기에 한국 기도원의 모체인 용문산기도원은 폭발적으로 발전하였고, 기독교의 토착화 작업에 일익을 담당했다. 용문산기도원은 철원의 대한수도원, 가평의 한얼산기도원 등과 함께 한국교회의 기도원을 대표하였으나, 신비주의적 성령론 등의 이유로 기독교 주류 진영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기독교대한감리회에 편입되면서 ‘이단’ 시비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2>.이천석 목사
전설적인 부흥강사 이천석 목사
"은혜의 세 줄기" - '술집에서 만난 기생이 권사가 되고, 술 먹는 자신(이천석 목사)이 목사가 된 것', '동대문 조폭 번개가 목사가 되는 것'이 거듭남
그를 따르는 모임이 ‘법과 교회’ 라는 이름으로 사역을 한다.
전설적인 부흥강사 이천석 목사는 1980년 한얼산 기도원에서 '은혜의 세 줄기'라는 제목으로 그의 18번인 "성령으로 뜨겁게", "말씀으로 새롭게", "은사로 강하게" 라는 설교로 시작해서 끊고, 청산하고 씻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은사도 강하게 받을 것을 강조한다. 성령을 뜨겁게 받아야 심령이 변화되고 물통의 복이 온다고 주장한다. 신통의 복을 받은 사람은 기도를 해도 잘 나오고, 은사를 강하게 받으면 인격이 새로워지고, 인격이 새로워지면 인통의 복이 온다고 강조한다.
더러운 요강 같은 심령이 변하여 깨끗한 음식을 담는 주발 같은 심령이 되어야 한다며 심령의 변화를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미국에서 부흥회를 끝나고 은혜 받은 여권사와 식사를 하는데, 많이 본 것 같은데 알고 보니 자신이 목사가 되기 전에 술집에 다닐 때 만난 평양기생 이화자라는 여인이라는 것. 후에 기생은 권사가 되었고, 자신은 목사가 되었다는 에피소드까지 전한다. 그래서 기생이 변화여 권사가 되고, 뜯어 먹는 사람(이천석 목사)이 변하여 목사가 된 것이 거듭남이라고 말을 한다.
이 당시는 한얼산 기도원이 인산인해이고, 한번 집회에 2,000-3,000여명 이상 참석할 때이다. 당시 찬양집 20집을 낸 최귀라의 찬양으로 시작이 된다.
"마음속의 죄악이 삼팔선 되고, 머리 속의 생각은 헛된 꿈이라....
한다리 바쳐서 못 이룬 통일, 남은 다리 주께 바쳐 통일해 보자."
그러면서 믿음은 역사해야 한다며, 신앙과 현실을 연결시켰다. 그는 이 설교에서 신통, 인통, 물통이라는 단어로 설교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영육으로 나뉘지 않고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천석 목사의 설교는 대부분은 심령의 변화와 삶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으며, 구수한 간증과 유우머로 피부 속에 속속이 들어 오게 하고 있다. 그는 체험과 철두철미한 복음에 입각한 설교로서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고, 구수한 유우머로서 지루하지 않게끔 하고, 대부분 산 체험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확신에 가득 차 있고, 믿음의 역사를 강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건전한 영적 설교이다. 이천석 목사의 설교로 인해 수천명의 목사가 태어 났다.
합동측 소속목사였지만 이천석 목사는 성령과 은혜 위주였고, 설교는 상당히 복음적이었고 영육의 연결을 중시했다. 한 다리의 힘으로 설교했고, 안수를 하고 나면 그의 고무다리에 맞닿은 살갗 부분이 벗겨져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래도 한 다리로 집회시마다 수 천명을 안수하면 방언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당시는 성전에 수천명이 들어 왔기 때문에 3층까지 앉을 자리가 없었고 자리 쟁탈전이 일어났을 정도이다.
그는 인도에 가서, 도마가 순교한 자리에서 약 50만명이 모이는데서도 순교의 정신으로 집회를 인도했고,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였다. 소경을 72명 고쳤고, 앉은뱅이, 목발 짚고 참석한 사람들 수십명을 고쳤다. 이성봉 목사 집회를 해산하기 위하여 찾아갔다가 은혜를 받아 새사람이 된 후에 중앙신학교를 가서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하였다. 중앙신학교 출신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
이천석 목사는 거룩과 고아함을 부르짖다 1차 목회에 실패하고, '생긴대로 목회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태백산에 들어가서 홀로 100일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생긴 대로 목회하여 두 달 만에 교인이 300여명으로 성장하였다고 했고, 성복중앙교회를 세워 재적 인원만 3,000여명이 되었다고 한다. 한얼산기도원은 겨울만 되면 인산인해였다.
1986년 이천석 목사는 순복음교회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오는 도중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 날 따라 혈압약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3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소천했다.
이천석 목사의 죽음은 한국교회로서는 큰 거목을 잃은 것이다. 70-80년도 당시 교회는 순복음교회, 기도원은 한얼산기도원이었다. 조용기, 이천석 목사는 한국교계의 거목이었다.
차범근이 하나님을 만났던 한얼산 기도원
70년대 후반, 한얼산 기도원장 이천석 목사는 한 다리에 고무다리를 끼고, 한얼산기도원에 모인 수천명앞에서 집회를 인도하곤 했다.
당시 부흥회가 전국을 휩쓸 무렵, 이천석 목사는 그 한가운에 서 있었고, 조용기 목사와 더불어 한국의 부흥계를 인도했다. 한얼산 기도원은 방학만 되면 신도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이천석 목사의 흥겨운 설교에 넋을 잃기도 했다.
이목사는 "개만 아니면 방언을 다 받는다"고 하여 한얼산 이목사의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90% 이상이 방언을 체험하도록 하는 방언의 은사가 있었다. 집회가 끝나면 고무다리를 질질 끌면서 수천명의 신도들을 안수해 주기도 하였다. 신도들의 안수가 끝나면 고무다리와 살갗이 닿은 부분에 피가 줄줄 흘렀다고 한다.
이목사는 77년 12월 24일 차범근에게 20분간 안수기도를 해주어 몸이 완치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했다. 그 이후 차범근은 절실한 기독교인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이외에 탁구선수 양영자 씨의 팔꿈치 관절염을 고치기도 하여, 두 사람 모두를 크리스찬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외에 많은 범죄자들이나 조직폭력배들이 이목사의 설교를 듣고 감복하여 목사가 되기도 하였다. 현행 대형교회 목사들도 이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깨지고 새사람 된 사람들도 많이 있다. 설교시 욕을 한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하류층에 있는 민중들은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이목사는 욕도 은혜라며 자신이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긴 모습대로 하기 때문에 사람들한테 좋은 반응을 주었다고 말하곤 했다. 감리교 임마누엘의 김국도 목사, 이태희 목사, 최귀라, 강승구 목사 등이 모두 이천석 목사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다.
당시 한얼산 기도원에서 자주 부르던 가스펠송 중의 하나는 "한다리 바쳐서 못 이룬 통일, 남은 다리 주께 바쳐 통일해 보자"로서 이천석 목사는 통일에 대한 남다른 간절함이 있었다. 또한 자주 부르던 찬송가는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Amazing grace"(나같은 죄인 살리신)이었다.
그러나 이천석 목사는 그토록 원했던 여의도순복음교회 집회를 하고, 뇌출혈로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그는 지성인들이 보기에는 거친 설교를 하곤 했지만, 그의 파란만장한 간증과 유모어는 뭇사람들에게 은혜를 주기에 충분했다.
3>.현신애 권사
끊임없는 이단 시비의 희생제물
당시 현권사님의 천국복음 전도 신유집회는 용산역 근처 철길 옆에 천막을 치고 집회를 했었는데, 매일 매일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말이 10,000명이지 그것은 어디서고 쉽게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서울, 부산, 대구를 일 년 내내 오가며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신유집회를 했다. 전국에서 몰려온 병자들이 임시천막을 치고 거기서 숙식을 하면서 병고침의 은혜를 받으려고 어떤 불편도 감수했다.
이런 것들이 6,70년대 우리 기독교 역사에 생생하게 존재했다니, 우리 한국기독교는 이러한 성령님의 은혜스러운 놀라운 역사하심을 등에 업고 부흥, 성장했던 것이 틀림없다.
오늘날 이런 별세계(別世界)의 모습은 찾고 싶어도 찾아볼 수 없다. 대형천막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민처럼 가마니를 깔고 잠을 잤고, 매일 매일 불치의 병자들이 기적적인 고침을 받고 환호성을 질렀다. 또한 병자들이 매일매일 죽어 나갔고, 죽으면 치울 때까지 천으로 덮어 놓고 그 옆에서 밥도 먹고 얘기도 하고 그랬다.
별의 별 환자가 다 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죽을 병자들의 전시장이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이적과 기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현신애 권사는 1970년대 한국에서 신유은사로 유명한 분이었다.
1만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안수기도를 받고 병고침을 받고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된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숨을 거두고 영혼이 천국에 갔다.
가서 보니 자신은 수많은 환자들을 고쳐주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다가 갔으므로 자신의 집이 크게 지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개집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기를 모르느냐고 물어보았다.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였다. 자신이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신실하게 잘 섬기고, 병고치는 능력으로 수많은 사람을 고쳐주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왜 예수님께서 저를 모르십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 능력을 가지고 네 장사를 하였지, 언제 나에게 영광을 돌리고, 나의 일을 하였느냐?”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한국의 유명한 몇 분의 목사님들을 거명하면서 이 분들은 모르시느냐고 물어보았는데 대부분을 모른다고 하셨다고 한다. 너무나 놀라서 한 번만 회개할 기회를 달라고 예수님께 사정을 하여 허락을 받아 되살아나게 되었다.
마침 시신은 칠성판에 뉘워둔 채 미국에 살던 아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입관을 미루고 있었다고 한다. 살아나서는 그동안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헌금한 것을 모아둔 것이 30억원이 있었는데, 그것을 북한선교단체에 헌금하고 예수님께 물어보았을 때 모른다고 하셨던 그 목사님들을 찾아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더라고 회개하라고 전해주었다고 한다.
현신애 권사님은 유명교회 목사님들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목사님 제가 천국에 갔는 데 저를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목사님의 이름을 댔더니, 목사님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유명 목사 曰 " 아침부터 여자가 재수없게 "
한국의 유명한 몇 분의 목사님(조용기 목사등)을 거명하면서 이 분들은 모르시느냐고 물어보았는데 대부분을 모른다고 하셨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조용기 목사 역시, 엘림복지타운(근로자들을 위한 기숙사)을 건축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것은 당시의 유명한 사건으로 한국의 모든 신문에 크게 실렸던 이야기이다. (본인도 모 중앙지의 1면 상단에 가로로 크게 난 내용을 잘라서 수년간 가지고 있었었다.)
“중(스님) 청년 일어나 봐요” - 서재생 목사/ 서울대현교회 / 불교에서 개종
4>.조용기 목사
끊임없는 이단 시비의 희생제물,
통일교의 세계일보에 대항해 국민일보 창간, 매월 600억씩 출혈하며 한국교회를 지킴,
전국과 온 세계의 수백개의 지교회를 통한 세상 욕심의 목회,
자녀 타락, 현대판 엘리제사장 연상,
조용기 목사는 유일하게 60년간 한국현대교회사를 카바하는 인물이다.
5>.신현균 목사
윤리성의 문제, 보스 목회
너무나 많은 부흥사들의 돈타락, 성적타락, 권력의 타락을 보았다.
이제 부흥의 시대는 와야 하지만, 부흥사의 시대는 끝났다.
6>.김홍도 목사
세습파들의 대표자
7.목사와 목회
큰 교회 만들려 하지 말라.
인위적인 부흥을 시도하지 말라. 한국교회의 폐해중 으뜸은 80%가 넘는 개척교회들의 절망과 고사현상이다.
허위의 목회, 허위의 설교 하지 말라.
교인을 위선으로 대하지 말라. 인격목회를 하라.
자기를 부인하는 영성만큼 주님께 쓰임받는다.
목회 잘하고 마지막에 지옥가지 말라.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정해주신 분량대로만 목회하라.
1>.오직 진실하게 목회하라.
2>.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드려라.
3>.전도하라.
4>.성령의 교회를 만들어라.
5>.헌금으로 하늘의 부자가 되게 하라.
6>.선교에 눈을 뜨라.
7>.삶의 제자를 키우라.
8.목사와 사역
자기 만의 목회의 주사역을 말한다.
은사따라 일하라.
한 두가지에 목숨과 인생을 걸어라. 나는 부흥사역, 성령사역이다. 하용조 목사의 말을 빌리면 ‘자기 목회철학’, ‘자기 교회론’이 정립되어야 한다.
9.목사와 세상
세상을 어찌 볼 것인가?
세상과 분리되면 안된다. 세상속에 살면서, 세상에 참여하고, 세상을 변혁시키는 영성을 가져야 한다. 정치만 해도 늘 관심을 갖고, 정의를 세우며,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은둔의 영성, 고립의 영성은 안된다.
고신파는 고립되었다. 철원의 대한수도원은 고립되었다. 이단들과 사이비들은 고립된 집단들이다.
야고보서의 영성:야고보서 1:27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음란과 간음’에 대하여 - 세상에서는 ‘불륜’ 이 ‘사랑’ 으로 미화된다. ‘동성애’ 가 미화된다.
‘술’에 대하여 - 세상에서 ‘술’은 남녀의 일상이다. ‘술, 노래, 춤, 음란, 간음’ 이 차례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노래’에 대하여 - 그 주제는 ‘향수, 사랑, 인생’이다. ‘세상노래’는 다 버려야 한다는 논리는 틀린 것이다. ‘새벽 이슬’ 같은 노래는 참 좋다.
나는 비극으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진방남의 ‘나의 불효자는 웁니다’ 를 기억한다. 사람은 마지막에 아름답게 헤어져야 한다.
1.불러 봐도 울어 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 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요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2.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여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어린 세대의 문화’에 대하여 - “중3년 딸을 가진 엄마의 한숨”
‘돈’에 대하여,
‘가치관’에 대하여,
‘인생관’에 대하여,
‘경제관’에 대하여 각각 자기만의 정립이 있어야 한다.
무조건 흑백논리로, 정죄 판단 매도하면 안된다. 이런 말이 있다. “세상을 버리라. 세상이 너를 버릴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회를 이루고 산다. 나 스스로 고립되면 내가 변혁시키고 바꿀 세상도 없어지게 되고, 나의 교회도, 목회도, 인생도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게 된다.
10.목사와 돈
목사는 가난이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부자 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잠30:7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천수답인생으로 만족해야 한다.
“네 돈이 십자가에 못박혔느냐?”
거듭난 돈의 수지(收支)가 있어야 한다.
헌금생활, 선교비, 구제비 지출이 3대 영적 지출이다. 생활비는 그 다음이다.
도와달라 하면 10명에 한명, 1000명에 3-4명이 호응한다.
돈의 청지기가 되면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사도 바울의 빈부에 온전히 대처하는 법을 배우라.
빌4: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1.목사와 대인관계
항상 섬기라.
차별대우 말라. 위, 아래로 절대 사람을 대하지 말라.
비판과 비난에 의연하라. 절대 맞받아치지 말라. 축복하면 당신의 영성은 높은 경지에 있다. 이것도 중요한 영성훈련의 한 파트이다.
“성령의 길을 가는 나를 비난하지 말라.”
“남을 씹는 사람의 죄 후기”
절대 감사인사와 댓가를 바라지 말라. 베풀고 잊어라. 감사의 말 한마디도 기대하지 말라.
“큰 목회를 못함에 대한 감사”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 하나님의 섬김의 사람을 찾으라.
12.목사와 사명 - ‘섬김과 나눔’
목사 각자는 자기만의 사명의 길을 가야 한다. 내 가슴에 새겨지지 않은, 다른 사람의 사명은 나의 갈 길이 아니다. 나의 사명은 ‘섬김과 나눔’이다. 성령하나님의 은혜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서, 나만의 내 갈 길과 은연중 나의 늘 살아가는 모습이 이 길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의지적으로 결심하는 길이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살게 되는 길이 목사의 사명의 길이다.
‘이신득의’ 사상의 ‘믿음으로만 구원’은 거짓이다. “믿음의 실천으로 오는 구원”이다.
나만의 신앙의 사명이 ‘나만의 삶의 실천’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늘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나의 삶은 ‘개척교회 목사님들, 가난한 선교사님들과의 섬김과 나눔’이다. 나의 경제 지출원칙은 헌금, 선교비, 구제비, 생활비이다. 명심하라. “교회가 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박용규 목사
롬12: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3.목사의 예언의 은사와 ‘고종명(考終命)’의 은혜
아직 죽어보지 않았지만, 생각으로 나의 죽음의 시간에 미리 가 볼 수 있다.
“남은 삶을 계수하는 지혜를 얻게 하소서.”
‘고종명(考終命)’의 은혜를 받으라.
미래적 축복을 선취하는 믿음의 삶을 살라.
기도하는 자는 예언의 은사가운데 살며, 가장 중요한 자기의 죽음을 알게 된다.
자기의 죽음을 아는 자는 남은 삶을 사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천국에 보물을 쌓게 된다. 삶을 정리하고 가지치기 하게 한다.
오복(五福)이란? (다섯가지의 복)
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서경(書經)》1편인 <홍범(洪範)>에 나오는 오복(五福)을 보면,
1.수(壽)로서, 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의 복(福)을 말했고,
2.부(富)로서,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부(富)의 복(福)을 말했으며,
3.강령(康寧)으로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福)을 말했고,
4.유호덕(攸好德)으로서,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福)을 말했고,
5. 다섯번째로는 고종명(考終命)으로서,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福)을 말했다.
그러나 서민들이 원했던 또 다른 오복(五福)으로는,
1. 치아가 좋은 것.
2. 자손이 많은 것.
3. 부부가 해로하는 것.
4.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5. 명당에 묻히는 것을 말했다.
어디선가 보았던 내용을 보면 다음을 “신현대판 오복”이라고 한다.
1.건강한 몸을 가지는 복과,
2.서로 아끼면서 지내는 배우자를 가지는 복,
3.자식에게 손을 안벌려도 될 만큼의 재산을 가지는 복,
4.생활의 리듬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를 갖는 복,
5.나를 알아주는 참된 "친구"를 가지는 복을 현대판 신5복(新五福)으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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