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고아읍 접성산
3월20일
항곡교회(초원아파트)-예강리 갈림길–이례리 갈림길–정상–원호리 방향 0.5지점-항곡교회
약5km 1시간30분 소요
밤사이 부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모든 것들을 날려 보내려는 듯 격렬했다.
태양이 적도 위를 지나가는 절기는 춘분,
그렇다고 바람이 이렇게 요란스럽게 지나가야하나.
소나무 여린 가지는 푸르게 꺾였다.
잎보다 먼저 온 오리나무의 꽃도 혹독한 바람 앞에는 어쩔 수 없었나보다.
산길에 뚝뚝 저항의 흔적이 어지럽다.
이 세상 모든 꽃들이 흔들리면서 피어난다는데
어이 하여 그것을 참지 못했을까.
고아읍에 있는 항곡교회 앞에 차를 세워두고 포장길 끝까지 올랐다.
오른쪽으로 전망대 1.4km의 이정표를 따라 길은 처음부터 오르막으로 시작된다.
자동차가 다닐 정도의 넓은 길은 마치 임도를 걷는 기분이다.
좁은 오솔길이 이렇게 넓어진 것은 짐작컨대 몇 년 전 대망리에서 시작된
산불의 진압 과정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나의 오르막이 끝나니 예강리0.8km 초원아파트0.6km(우리가 올라온 방향)
능선이 우리를 기다린다. 뿌리가 약한 나무, 병든 나무, 의지가 약한 나무를
사나운 바람은 그냥 두지 않았다. 넓은 길을 가로막는 그들의 주검 곁에서
더욱 빛나는 삶이 있다. 흔들리며 젖으며 피워낸 진달래의 꽃빛이 어찌 그리 고운지.
그 빛 하나로 접정산 오름길은 완연한 봄이다.
바람의 흔적을 밟으며 몇 차례 고개를 오르니 이례리 1.8km 갈림길에 이른다.
밑동이 새까만 나무들이 발길을 그쪽으로 이끈다. 그것은 또 다른 바람의 흔적,
불길을 앞세워 파죽지세로 덤비는 운명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음이다.
죽어도 죽지 못한 나무는 머지않아 조용히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날을 표시해 놓은 빨간 페인트의 선이 검은 몸통위에 더욱 선명하다.
다시 돌아 나오면 한차례의 나무계단이 보이고 언덕위에 산불감시초소의 깃발이 무색하다.
깃발을 꽂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흔들 릴 기회조차 주지 않은 그 바람이 야속할 수밖에.
먼 곳에서도 올려다 보이던 접성산의 상징인 정자가 어느 날부터 인지 보이지 않았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정자가 있던 자리는 전망대로 바뀌었고 그 옆에는 운동기구도 보인다.
산불이 정자까지 삼켜 버린 걸까. 소멸은 생성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시설물은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듯이 당당하다.
발아래 보이는 아찔한 풍경과 한 몸인 듯 조화롭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만물의 이치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접성산 정상에 이르니 겨우 30분소요,(10시30분)
여기서 돌아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진행방향은 원호리(4.0km), 능선으로 이어진 오솔길 은 호젓하여 바람조차도 부드럽다.
꺼먼재,북봉산,다봉산의 마루금이 오른쪽으로 보이고,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그날의 환희를 눈으로 더듬는다.
내리막이 나타나는 지점에서 뒤돌아 온다.
다시 전망대에 섰다. 골골이 깃들어 사는 집들이 산과 강을 끼고 평화롭게만 보인다.
그곳인들 바람이 왜 없을까. 다들 흔들리며 사는 것을.
접성산 산불의 흔적을 보고나니 그 나마 흔들릴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 안에서 부는 바람을 잠재우고 나면 그 바람도 고이 물러 갈 것을.
항곡교회로 향하는 내림 길은 바람조차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