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건웅은 불의에 침묵하는 방관자로 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인혁당 사형수8명의 유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화로 재구성한 《그해 봄/보리》을 냈다ㆍ
유가족의 아픔을 뒤늦게나마 보듬어주고,인혁당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거대한 국가 권력이
행한 폭력의 실체를 알게한다ㆍ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차별과 냉대 속에 감시 당하며 살아야했던 가족들의 삶이 얼마나 피눈물나는 아픔이었을까 자세히 알게되었다ㆍ
유가족이 말하는 공통점은 참담했다ㆍ
부인들을 남산중앙정보부에 끌고가 2박3일간 협박을 하며 남편이 간첩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각서를 쓰기를 강요했다는 것이다ㆍ
특히 아이 셋의 엄마이자 30대 후반의 가정주부였던 김용원의 부인에게는 물에 흥분제(최음제)를 넣어 먹인다음 몸을 가누지 못해 의자에서 떨어져 땅바닥을 기는 모습을 조사관들은 즐겼다고
한다ㆍ
집에 돌아왔을 때 수치감을 견딜 수 없어 남편의 옷과 가족사진을 불태우고 아이들과 쥐약을
먹으려는 순간 친정어머니가 발견하고 만류했다ㆍ
유가족에게 사형집행 후 죄수복을 입은 시신을 인수받았을 때 고문의 흔적으로 새까맣게 타 있는 손발톱과 피멍이 든 몸을 본 기억은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이다ㆍ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경찰의 직접적인 고문과 감시가 아니라 살갑게 지내던 이웃,
절친했던 친구,친척들마저 외면하고 '간첩가족'이라고 외면했을 때라고 했다ㆍ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은 따돌림받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야 했다ㆍ
하재완의 딸은 초등학교 2학년 소풍날 간첩 딸이라고 아이들이 도시락에 개미와 돌을 넣고
괴롭혀 나무 뒤에 숨어서 밥을 먹어야 했다ㆍ
뿐만아니라 4살 막내 동생을 마을 앞 당산나무에 묶어 놓고 간첩이라고 죽여야 한다며
아이들이 총살시키는 장난을 할 때도 동네 어른들은 구경하며 웃었다고 한다ㆍ
이수병의 아내는 12개월된 막내딸을 업은 채 끌려가 남편의 구명운동에 대해 조사받고,국
가를 전복하려 모의했다는 것을 시인하라는 각서를 쓰라 강요 당했다ㆍ
열악한 조사실에서 아기가 아프고 설사를 하고 기저귀도 떨어져 냄새도 나서 할 수 없이
강요한대로 각서를 쓰고 나왔다ㆍ
그래도 이수병의 아내는 마음 착한 서대문형무소 교도관의 배려로 호송교도관과 함께 마당을
지나가는 남편을 말도 못 붙이고 바라만 1분 쯤 볼 수 있었다ㆍ
스쳐지나가며 아내와 등에 업힌 딸을 알아본 남편이 한 말은 딱 두 마디 ''많이 컸네,많이 컸네''
이 짧은 만남 후 1주일 뒤 남편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ㆍ
1975년 4월,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ㆍ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오후 6시 국기하강식이 있을 때 어디선가 애국가가 울리면 가슴에 손을 얹고 끝날 때까지
꼼짝않고 서 있었다ㆍ
반공웅변대회에 나가는 친구를 응원하러 극장에 가고,
불온삐라를 주워와 공책을 받아가는 친구를 엄청 부러워 했다ㆍ
전국민의 군사화 훈련인지 체력단련인지 전교생이 빠짐없이 태권도를 배웠다ㆍ
6월 장마에 하늘이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6.25기념일이 되면 4km를 걸어서
경포대호국위령탑까지 '아~~잊으랴ㆍ어찌 우리 그날을~~'6.25기념일 노래를 부르며 행진했다ㆍ
새마을운동이라고 일요일 새벽부터 빗자루 들고 학교로 갔다ㆍ
집앞 골목도 안 쓸었는데 학교 앞 남의 집 골목을 쓸어야 했다ㆍ
근면을 가르친다는 명목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ㆍ
《그해 봄》을 읽으며 억울하게 죽은 인혁당 8명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 그들의 한을 풀어주지는 못 하겠지만 기억하면서 다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ㆍ
1)우홍선(당시 35세):
6.25때 최전방에서 부상을 입은 육군종합31생 소위였고,한국골든스템프사 상무
2)김용원(당시 40세):
경기여고 교사ㆍ가난 때문에 부산고 2때 중퇴했으나 검정고시를 보고 서울대 문리대 합격,
교원임용고시 전국수석 합격한 수재였다ㆍ
3)송상진(당시 47세):
1차 인혁당 사건 때 교사였는데 감옥에 들어 갔다가 무죄로 풀려나왔지만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양봉업을 함
4)하재완(당시 43세):
군 특부부대 제대 후 고향에서 양조장하다 대구에서 건축업
5)이수병(당시 38세): 독어ㆍ일어ㆍ불어에 능통했던 삼락일어학원 강사
6)도예종(당시 51세): 자유당 정권이 불법 선거 운동에 교사를 동원하는 것 반대하는
교원노조 활동하다 감옥가면서 해직, 형님이 하던 건설회사에서 월급받는 사장으로 일함
7)여정남(당시 31세):1970년대 초반 경북대 학생운동 주도,박정희정권의 3선 개헌 반대 투쟁
8)서도원(당시 52세): 통일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학강단에도 선 대구매일신문 기자였음ㆍ
독학으로 침구사 자격증 얻어 무료의술 활동도 함ㆍ
그의 마지막 말은 ''다들 통일된 세상에서 행복하십시오ㆍ''
북한이 어제 오후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 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ㆍ
우리나라는 언제쯤 남과 북이 갈등하지 않고 통일된 나라에서 살 수 있을까ㆍ
마음이 무겁다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