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농부의 밥상
이정연
장마철이라 몇 며칠 발을 동동 구르며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찬거리를 거의 밭에서 얻는데 물이 차서 들어갈 수가 없어서다. 곧 저녁 할 시간인데 비가 잠깐 멈추기에 부리나케 밭으로 달려갔다.
꽃대를 살짝 올린 상추가 허리춤에 묶어 둔 푸른 잎을 내어놓는다. 초록색이던 파프리카는 거의 일주일 이상 볕을 쬐지 못했음에도 노랑 빨간색으로 익어서 더 탱글탱글해졌다. 손가락만 했던 오이와 호박은 따낼 시기가 지나서 노랗게 늙어 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인의 인기척에 반들반들한 얼굴을 내민다. 풋고추는 어느새 약이 올라 피부에 탄력이 여간 아니다. 붉게 익으면 말려서 고춧가루를 만들어 볼 요량에 마음이 설렌다. 온천지에 넝쿨을 내는 고구마는 순을 좀 솎아 주고 잘 익은 방울토마토도 두어 움큼 손에 넣는다. 비가 온다는 핑계로 돌아보지 못한 밭인데, 평소에 보살핀 덕인지 고맙게도 주인에게 은혜를 베푼다. 밭고랑에 난 풀을 뽑고 고추나무는 북을 좀 돋아 주고 이리저리 손질을 해 주고 나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푸른 잎들이며 열매들을 수확하니 어느새 땅거미가 내리고 집에 오니 저녁때가 늦어졌다.
시장기나 피로도 잊은 채 갓 따온 풍성한 재료들로 찬을 만들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먹을 생각을 하니 신바람 난 손발이 저절로 움직인다. 풋고추, 당근과 대파는 한입에 넣을 크기로 잘라 전을 부친다. 가지는 폭 쪄서 단맛 나는 무침을 하고 오이는 껍질이 질기니 살짝 긁어내고 오랜만에 고추장 초무침으로 입맛을 돋운다. 나무마다 달랑 한 개씩만 열려서 귀하게 얻은 파프리카는 샐러드 해먹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 얻은 방울토마토와 색을 맞춰 생으로 아삭 씹어 먹기로 한다. 어묵볶음에도 채소를 곁들여 맛을 더한다. 스무 평 남짓 작은 텃밭이지만 내게 대양과도 같은 기쁨을 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뿌리가 동글동글한 비트도 심고 아욱과 열무, 얼갈이, 대파까지 심어 먹으니, 기르는 재미며 맛이 채소를 사서 먹는 것에 어찌 비하랴. 특히나 대파의 맛은 확연한 차이가 난다. 대파는 듬성듬성 잘라서 숯불 바베큐 할 때, 석쇠 가장자리에 올려서 은근히 구워서 입에 넣으면, 그윽하고 깊은 단맛을 따라 무아지경 속으로 빨려들어 간다. 장마가 오기 바로 전에 감자를 수확했는데 작은 자루 하나 가득 나왔다. 소금을 약간 뿌리고 쪄 봤다. 파실파실 분이 나서 부드럽게 으깨어져 천천히 목 안으로 스며들었다. 감자에 나는 분 만큼 행복감도 파근파근 일어나서 저 멀리서 불어온 바람을 타고 향기처럼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제 비가 그치고 한더위가 지나고 입추가 지나면 바로 가을 무, 김장배추, 쪽파와 갓을 심으리라. 스무 해 정도 그 농장 배추로 담근 김장김치는 무르거나 군내가 나질 않고 아삭거리며 깊은 맛의 풍미가 여간 아니었다. 다음 해 김장김치 담을 때까지 어느 반찬보다 더 맛있게 먹는다.
그뿐이랴,
지금은 자녀들이 자라서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었지만, 아이들이 유치원생, 초등생 저학년일 때 애들 친구 몇 가족을 불렀었다. 그 초여름 주말 저녁에 고사리손들이 엄마랑 같이 상추를 따고 씻고 상을 차리는 동안 아빠들이 숯불을 피웠다 양념을 재워서 가져온 고기를 숯불로 은근히 구우니 온 들판이 양념 맛에 절구여진 것처럼 구수한 바베큐 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맛있는 고기 냄새는 난생처음이라며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군침을 질질 흘려대며 숯불가에 바짝 달라붙었다. 녀석들 극성에 제대로 익었는지도 살필 겨를도 없이 고기를 가위로 잘라 주었더니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어 대던지 그 기억이 이십여 년이 지난 오늘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해가 진 후에 모닥불을 피워서 그 속에 넣어둔 군고구마를 부지깽이로 보물찾기하듯 뒤적일 때 아이들의 뺨에도 노을이 즐겁게 물들어 갔었다. 요즘도 아이들이 모이면 그때 먹은 고기 맛을 잊을 수가 없다는 얘기를 한다고 들었다. 돌아보면 텃밭은 내 삶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삐리릭 소리에 돌아보니,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코를 벌렁거리며 언제 컸는지 장대만 한 큰아들 녀석이 달려와 안긴다.
“흠~ 엄마 이 냄새 미국에서 공부할 때 너무 그리웠어요. 특히 코로나 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우리 엄마표 주말농장 음식” 그랬어? 울 아들. “그래 맞다. 텃밭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키운 무공해 밥상이지.” 큰아이는 킁킁거리며 손 씻을 겨를도 없이 젓가락이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이것저것 집어삼켰다.
세상의 어느 제왕의 밥상도 부럽지 않은 우리 집 밥상을 차려 놓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배가 부르다. 수십 년간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 주고, 세 아이 중에 늦둥이 녀석의 난산으로 누워서 살던 나를 살려낸 일등공신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단순히 병마를 이겨낸 게 아니라 맨발로 흙을 밟고 때로는 푹신한 자연의 품에 안겨 쉼을 얻었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흙이 주는 기운이 심신의 아픔을 씻어 주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주말농장을 한 지 어느새 이십여 년이 훨씬 더 지났다. 그렇게 귀신들린 것 같은 병마가 주말농장 한 세월만큼 저만치 밀려 나간 것 같다. 예전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오른다.
“일구는 대로 주는 땅은 거짓말하지 않아.” 오늘 밤은 장마가 쉬어 갈 모양인지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밤공기가 어둠을 가로질러 거실로 들어왔다. 우당 탕탕 아이들이 오면서 지네들 아빠와 만난 모양이다. 녀석들의 머릿수를 세며 밥공기를 챙겨 들고 밥솥으로 향해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식구들이 다 모이면 곧 마주할 자연의 식탁이 짙푸른 설렘으로 다가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