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영흥도 골목 TMI ⑩ 영흥도 둘레길 서해 바다에 움튼 인천의 섬으로 봄 마중을 다녀왔다. 섬과 섬을 넘고 바다와 바다를 건너 줄지은 섬 끝자락에 영흥도가 있다. 뭍에선 꽃샘추위가 시작된 날, 섬에선 바람에도 봄 내음이 흥건하다. 봄물이 흠뻑 오른 가지마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벙글고, 바다는 제철 맞은 봄것들을 올려보내 풍요로운 계절을 알린다. 햇살도 푸근하고 눈부시다. 이맘때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 낚싯배가 촘촘하게 정박한 진두항의 봄 오래된 포구, 진두항의 봄 낚싯배가 촘촘하게 정박한 선착장,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이 파닥거리는 수산 시장, 왁자지껄 오가는 흥정 소리… 겨우내 한적하던 포구에 봄물이 흠뻑 올랐다. 진두항에서 만난 강재원(43) 씨는 12년 차 낚싯배 선장이다. 한때 샐러리맨이었지만 지금은 서해 바다가 그의 직장이다. 낚시꾼들을 싣고 어족이 풍부한 자월·덕적군도로 출항해 ‘자연의 녹’을 받는다. “바다가 좋아 돌아왔어요. 고단해도 바다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해요.”
▲ 새 배를 진수한 강재원 선장
▲ 섬에서만 볼 수 있는 봄의 제전, 뱃고사 오늘, 첫 조업을 앞둔 그의 배가 포구를 힘차게 흔들고 있다. 물려받은 배를 10년 넘게 부린 끝에 드디어 자신의 배를 사고 뱃고사를 지내는 날이다. 바다를 업으로 사는 이들에게 가장 경건하고 엄숙한 시간. 겸손히 자연에 머리 조아리며 풍어와 안녕을 기원한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한다. 섬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봄의 제전’이다. 수산 시장에도 모처럼 활기가 돈다. “요새가 최고로 영글었을 때야. 하얗게 알이 들어차 맛있어요.” 가는 곳마다 상인들이 제철 맞은 주꾸미를 번쩍 들어 보인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려 싱싱하고 탱탱하다. 지난 2021년과 2022년 두 번의 화재 후 임시 시설에서 장사하고 있지만, 곧 새 건물이 완공된다는 소식에 시장엔 기대감이 감돈다. 기쁨도 슬픔도 모두 바다에서 견뎌내는 포구 사람들의 새봄이 벙글고 있다. ◈ 진두선착장_옹진군 영흥면 내리 8-13 ◈ 영흥수협수산물직판장(수산 시장)_옹진군 영흥면 영흥로 109-12
▲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물살이생물
▲ 제철 맞은 주꾸미가 포구에 돌아왔다. 버스터미널 하나, 카페 하나 수산 시장을 빠져나와 해안길 따라 10분 쯤 걸으면 영흥도에 하나뿐인 버스터미널이 인사한다. 길손이 들고 나지만 터미널 안은 대개 한산하다. 마실 나온 섬 주민들이 대합실 자리를 드문드문 채우고 있을 뿐이다. 나른해진 봄 햇살도 할머니의 등덜미에서 졸고 있다. 대합실 한편 ‘카페 터미널’에선 고소한 커피 향이 새어 나온다. ‘도서특성화사업’으로 작년 여름 문을 연 마을 카페를 지키는 사람은 임희준(27) 점장. 마을 이장인 아버지 임병삼(57) 씨의 권유로 운영을 맡게 됐다. 뭍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했을 때, 태권도 국가대표를 그만두고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언제나 아들 편이던 아버지의 곁을 이젠 장성한 막내아들이 든든하게 지킨다. 좌석은 예닐곱개로 아담하지만 주말이면 수 만 명이 다녀가는 여행지답게 대형 카페만큼 메뉴가 다양하다. 에스프레소부터 돌체라떼, 비엔나커피까지 13종의 커피, 시원한 과일 에이드와 스무디, 건강차까지 수십 가지를 임 점장이 직접 개발했단다. 마을 이름을 달고 하는 카페라 어느 하나도 허투루 한 게 없다. 올봄 계획을 묻자 “‘벚꽃 라떼’를 준비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새하얀 꽃잎이 훈훈히 풍기는 4월에 만날 영흥도의 커피 맛이 궁금하다. ◈ 영흥 카페 터미널_옹진군 영흥면 영흥로176번길 8 0507-1352-1952
▲ 임희준 점장이 자신있게 추천하는 ‘흑임자크림커피’ 하늘고래전망대 진두방파제를 지나 해안로를 걷다 보면 웅장한 영흥대교를 배경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하늘고래전망대(높이 4m)’에 다다른다. 파란 하늘을 바다 삼아 뛰어오를 것 같은 형상이다. 바다와 생명, 꿈을 상징하는 전설의 동물로 주민들의 풍요로운 삶과 소원 성취를 기원하는 의미로 세웠다. 밤에도 섬을 밝혀, 그림 같은 밤바다의 야경을 고스란히 즐기기에 제격이다. ◈ 하늘고래전망대_옹진군 영흥면 영흥북로 74
▲ 영흥대교의 야경 생명의 바다, 어머니의 바다 하늘고래전망대 맞은편, 온몸을 꽁꽁 싸맨 아낙들이 쉴 새 없이 조새질을 하고 있다. “드셔봐. 굴 맛이 꿀맛이야.” 할머니에게 다가가자 뽀얗게 살 오른 굴을 입안에 넣어준다. 싱싱한 바다 냄새가 확 퍼진다. 섬사람 송부선(83) 씨는 “아침에 내가 다 잡은 거야”라며 조새(굴 까는 도구)로 좌판의 굴, 바지락, 갱을 가리킨다. 할머니는 평생 맨손으로 바다에서 삶을 일궜다.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캐고 잡는 재미에 바다가 좋다. 아직은 바람 끝이 차가운 3월, 새벽 바다에서 억척스럽게 캐 온 해산물을 바람막이 하나 세워진 노상에서 저녁까지 판다. “여긴 몸만 건강하면 평생 먹고살 걱정은 없어. 사시사철 바다가 주는 대로 잡고 따고 캐면 돼.” 소쿠리 하나만 있어도 먹고살 걱정 던다는 주민들은 영흥 앞바다가 오랜 자부심이다. 특히 섬의 동쪽은 갯벌이 좋아 최고의 마을 어장을 갖추고 있다. 물때마다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며 성장한 물살이 생물들은 영양과 풍미가 일품이다. “달짝지근하지. 맛이 천지차이야.” 까맣게 그을린 섬 아낙의 얼굴에 봄 햇살이 반짝 부서진다. ◈ 영흥어촌계직판장_하늘고래전망대 맞은편
▲ 내리어촌계 아낙들의 봄. 사시사철 생명이 넘치는 영흥 앞바다는 주민들의 오랜 자부심이다. 푸른 봄, 깊은 밤 살랑살랑 계절이 봄의 문턱을 넘어서면 영흥도의 바다는 푸른빛을 더해간다. 햇살 아래 하늘을 품고 있다가, 어스름 녘이면 소리 없이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파란 물결 넘실대는 빛의 바다가 펼쳐진다. 진두항에서 10리를 걸어 도착한 ‘십리포해수욕장’. 깊고 푸른 밤을 마주하니 바다가 걱정 근심을 다 씻어주는 듯하다. 지친 마음 훌훌 털어놓고 잠시 쉬어 가란다. 바다로 통창을 낸 카페엔 서로를 도닥이는 눈길이 마주 보며 웃고 있다. 덩달아 마음이 느슨해진다. 짐을 내려놓고 밤바다의 색과 소리와 움직임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바다 향기를 가득 들이 마신다. 들락날락. 바다는 바위에 제 몸을 몰아붙였다 창백한 포말로 부서진다. 하이얀 모래밭은 너른 가슴 펴고 부서진 짠물을 담담히 놓아준다. ‘굳게 달려드는 결심’도 있지만 ‘움켜잡은 것을 놓아주는 용기’도 있음을 바다에서 배운다. 그러쥐고 있던 나만의 작은 세상을 열어야 밀물썰물이 인다는 것을. 짧은 바다 여행을 가슴에 품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내일을 너끈히 살아낼 수 있는 용기를 십리포에서 길어 올렸다. ‘고맙다. 바다야, 너와 내가 변치 않는다면 다음 계절에 또다시 만나자.’
▲ 깊고 푸른 영흥도의 봄 바다 ■ 인천시티투어 선재·영흥 노선 ○ 운행 일정 : 매주 1회(수) /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약 8시간) ○ 탑승 장소 : 인천종합관광안내소(센트럴파크역) 또는 인천역 * 예매 시 지정한 탑승 장소에서만 탑승 가능 ○ 이용 요금 : 성인 1만 원 / 소인(5세~고등학생)·경로·인천시민 8,000원
▲ 바다로 통창을 낸 십리포해변의 카페 ‘하이바다’ ■ 십리포해수욕장 ○ 위 치 : 옹진군 영흥면 내리 734 ○ 전 화 : 032-886-6717
■ 하이바다(매주 수요일 휴무) ○ 위 치 : 옹진군 영흥면 영흥북로 374-25 ○ 전 화 : 032-880-0596
원고출처 : 굿모닝인천 웹진 https://www.incheon.go.kr/goodmorning/index 글 최은정 굿모닝인천 편집위원│사진 허정인 자유사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