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몸 관찰과 들숨 날숨 관찰
들숨 날숨 관찰은 몸 관찰의 하나로서, 숨 쉬는 몸을 관찰하는 것이다.
4념처의 몸 관찰은 다음과 같은 것을 관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일상의 몸
② 악한 법을 끊음
③ 몸의 자세와 마음 다스림
④ 숨 쉬는 몸[들숨 날숨]
⑤ 선정의 몸
⑥ 밝은 빛의 모양[광명상]
⑦ 관찰하는 모양
⑧ 더러운 몸
⑨ 6계의 몸
⑩ 죽은 몸
이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은 들숨 날숨 관찰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① 일상의 몸은 들숨 날숨 관찰과 별개의 내용이다.
② 악한 법을 끊음은 4정근에 관한 내용이다.
⑤ 선정의 몸은 몸 관찰로 얻어지는 선정에 관한 내용이다.
⑧ 더러운 몸과 ⑩ 죽은 몸은 들숨 날숨 관찰과 무관하다.
들숨 날숨 관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③ 몸의 자세와 마음 다스림은 들숨 날숨 관찰의 준비 자세에 대한 내용이다.
④ 들숨과 날숨은 들숨 날숨을 관찰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⑦ 관찰하는 모양은 들숨 날숨을 관찰하는 몸의 모양을 나타낸다.
⑥ 밝은 빛의 모양[광명상]은 들숨 날숨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⑨ 6계의 몸은 날숨 들숨과 함께 작동하는 것이디.
여기서 4념처의 각 부문의 설명 순서에 관하여 간략히 언급해 두기로 한다.
4념처의 각 부문을 설명할 때, 그 내욤들에 성질에 따라 일정한 순서가 있어야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만일 뒤의 경우라면, 그냥 설명의 순서일 뿐이지 꼭 그 순서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곧 내용들이 일정한 순서대로 서술된 것은 내용의 기술에서 특정한 순서대로 서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며, 실천의 측면에서는 병렬적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념처경과 비교해 보더라도 염처경과 다른 순서로 된 것도 있고, 또 4념처에 대한 논이나 해설을 보더라도 그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러한 순서의 문제는 들숨 날숨 관찰의 순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몸 관찰의 들숭 날숨 관찰에 관한 이 글의 서술에서도 4념처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2. 들숨 날숨 관찰의 예비적 이해
다음은 이상에서 정리한 바와 같은 들숨 날숨 관찰에 대하여, 그것에 대한 경들과 해설들을 참고하여 생각해 본 것이다.
이것은 들숨 날숨을 본격적으로 관찰하기 위한 예비 단계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1) 믿음과 기억
부처님과 법과 제자들을 믿어 의심하지 않고,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와 같이 나도 그렇게 행한다는 마음으로,
오로지 들숨과 날숨 그것만 생각한다.
[10념처를 참고하시오.]
곧 온 마음을 부처님과 들숨 날숨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부처님과 함께 숨쉬는 몸을 관찰한다고 생각한다.
2) 들숨 날숨은 몸의 원초적 요소이다
들숨과 날숨은 몸을 당장 유지하는 데 가장 긴요한 요소이다.
이에 들숨과 날숨이 뭄을 구성하는 가장 원초적 요소라는 것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모든 시간과 공간에 있는 모든 몸과 마음, 그리고 모든 세상의 모든 일들은 바로 나의 들숨과 날숨의 시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몸의 관찰에서 들숨과 날숨의 관찰로 나아가고,
들숨과 날숨의 관찰에서 몸의 관찰로 나아간다.
3) 지금 여기서 안팎의 몸을 관찰하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취하고 있는 나의 몸을 안팎으로 주시한다.
[바로 지금 여기가 나의 본래의 자리이며,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발지라제의 게송)
나의 몸은 허공 속에 있으며, 몸 안도 허공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생각한다.
몸 바깥의 허공과 몸 안의 허공은 본래 하나이다.
몸 안의 땅ㆍ물ㆍ불ㆍ바람과, 몸 바깥의 땅ㆍ물ㆍ불ㆍ바람도 그러하다.
(중아함경_162. 분별육계경)
[땅ㆍ물ㆍ불ㆍ바람ㆍ허공을 몸 안의 것과 몸 바깥의 것으로 나누어 본 것은 '나'를 기준으로 그렇게 본 것일 뿐이다.
사실은 땅ㆍ물ㆍ불ㆍ바람ㆍ허공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다.]
땅ㆍ물ㆍ불ㆍ바람은 본래는 한 덩어리로 존재한다.
그렇지만 그 덩어리가 땅의 성질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면 땅이라 하고, 나아가 바람의 성질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면 바람이라 한다. (잘못된 소견(6), 땅과 물, 불, 바람의 천신).
어에 땅의 안에는 물ㆍ불ㆍ바람이 있으며, 나아가 바람의 안에는 땅ㆍ물ㆍ불이 있다.
허공과 땅ㆍ물ㆍ불ㆍ바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허공의 안에는 땅ㆍ물ㆍ불ㆍ바람이 있고,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안에는 허공이 있다.
들숨과 날숨은 기본적으로 몸 안팎의 바람의 흐름인데, 몸 안의 땅ㆍ물ㆍ불이 동시에 작동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바람이 땅ㆍ물ㆍ불을 품고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들숨과 날숨은 몸 안팎의 땅ㆍ물ㆍ불의 흐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들움과 날숨은 몸 안팎의 땅ㆍ물ㆍ불ㆍ바람이 서로 모이고 흩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죽은 몸의 경우에는 안의 땅ㆍ물ㆍ불ㆍ바람과 바깥의 땅ㆍ물ㆍ불ㆍ바람의 구별이 사라지게 된다.]
4) 밝은 빛의 모양을 보다
밝은 빛의 모양[광명상]은 청정도론의 광명의 까시나를 가리키는 것일까? 아나면 아잔 브람의 니미따를 가리키는 것일까?
청정도론의 광명의 까시나의 설병은 다음과 같다.
광명의 가시나에서는
“광명의 까시나를 배우는 자는 벽의 틈새나 열쇠 구멍이나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광명에서 표상을 취한다.”라는 말씀 때문에,
전생에 수행하여 덕을 쌓은 자는 벽의 틈새 등을 햇빛이나 달빛이 들어와 벽이나 마루에 드리워진 원반을 보거나,
잎이 무성한 나무 가지 사이를 빽빽하게 꽂아서 만든 막사 사이로 들어와서 땅에 드리워진 원반을 볼 때 표상이 일어난다.
밝은 빛의 모양이 몸 관찰의 다른 대상들과 대등한 지위를 차지하는 것으모 본다면, 청정도론의 광명의 까시나를 가리키는 같기도 하다.
그런데 청정도론의 광명의 까시나에 대한 설명을 니미따를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여기서는 다만 광명이라 생각되는 예를 한 가지 들어두기로 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눈을 감고 허공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허공은 캄캄한데 희미한 빛의 점들이 보인다. 그때 빛의 점들에 가까이 다가가서 집중하여 보면, 빛은 더 크고 더 밝게 빛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 몸 안의 허공이 온통 밝은 빛으로 가득함을 보게 된다.
그 빛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미도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아주 작은 조각에서 온 것이 아닐까? 모든 사물들은 궁극적으로는 빛으로 환원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3, 4)는 10일체처/10까시나의 내용과 관련된다.]
5) 안팎의 몸이 무상함을 관찰하다
몸과 마음, 곧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마음과,
몸과 마음에 비친 것들인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과,
몸과 마음의 인식과,
몸과 마음의 접촉과,
접촉으로 말미암아 생긴 느낌ㆍ생각ㆍ의도ㆍ애욕ㆍ기억ㆍ번뇌 등은,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인연에 따라 생기고 없어지는 것들로서,
모두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며, 나가 아니고 내것도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그것들은 땅ㆍ물ㆍ불ㆍ바람이 모이고 흩어짐을 되풀이하면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모두 마치 물거품처럼 잠깐 동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마는 현상이며, 다만 임시로 붙여진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또 들숨과 날숨은 몸의 일부이니, 들숨과 날숨도 인연에 따라 생기고 없어지는 것으로서,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며, 나가 아니고 내것도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그리고 나라는 생각에 붙잡혀 있는 동안에는 몸과 마음의 평안을 얻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한다.
6) 들숨 날숨의 모습을 관찰하다
들숨과 날숨을 관찰할 때는 들숨은 들숨대로 날숨은 날숨대로 따로따로 관찰한다.
곧 들숨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과정과 날숨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과정을 분리하여 관찰한다.
들숨과 날숨. 날숨과 들숨 사이에 아주 잠깐 동안의 멈춤이 있다.
아주 잠깐 숨이 멈추는 동안은 들숨과 날숨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이러한 들숨과 날숨의 생멸과 멈춤의 과정을 분명히 알고 몸으로 느껴 보도록 한다.
먼저 공기가 코끝으로 들어오고 나가고 하면서 코 안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것을 또렷하게 알 수 있도록 숨을 크게 들이쉬고 크게 내쉰다.
또 마음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기 위하에 일부러 들숨과 날숨을 길거나 짧게 해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들숨과 날숨을 본격적으로 관찰할 때는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자연스럽게 관찰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숨을 돌이쉬거나 내쉴 때의 몸의 움직임, 예컨대 허파와 배 등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숨을 들이쉴 때는 온 몸을 공기로 가득 채운다고 생각하고, 숨을 내쉴 때는 온 몸의 공기를 완전히 비운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준비 과정에서 한 마음이니 고요한 마음이니 하는 것들은 일단 재껴 둔다.]
3. 본격적인 들숨 날숨 관찰
이러한 것들에 충분히 익숙해 졌다고 생각되면, 본격적인 들숨 날숨 관찰에 들어간다.
그런데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어느 순간에라도 들숨과 날숨을 놓쳤다고 생각되면,
곧 갖가지 상념이나 졸음에 빠져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되거나 몸으로 느끼지 못하게 되면,
바로 예비 단계로 되돌아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2024.09.03,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