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영락경 제6권
18. 무량경품[4]
[열 가지 공덕의 복]
그때 이름을 무관(無觀)이라고 하는 보살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팔을 드러내고 합장한 채 꿇어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여덟 사람은 이 현겁 속에서 선남자나 선여인으로서 이 글귀의 뜻을 받아 지녀서 외는 이가 문득 마땅히 열 가지 공덕의 복을 얻도록 옹호하겠나이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첫째는 형상이 없는 법을 얻고,
둘째는 법의 곳간[法藏]에 깊이 들어가고,
셋째는 변재(辯才)가 제일이 되고,
넷째는 한량없는 법을 얻고,
다섯째는 빠른 지혜를 얻고,
여섯째는 큰 서원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일곱째는 정의 뜻[定意]이 자재하고,
여덟째는 중생의 생각[念]을 거슬러 알고,
아홉째는 무생(無生)의 마음을 세우고,
열째는 행이 본래 자연(自然)인 것이니,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글귀의 뜻을 받아 지녀서 외는 이는 문득 마땅히 열 가지 공덕을 얻을 것이옵나이다.
만일 삼천대천세계 속에 가득 차있는 선남자나 선여인으로 하여금 보살의 도를 모두 성취하게 하더라도, 이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글귀 하나의 뜻을 받아 지녀서 외는 것만 못하옵니다.
왜냐하면 온갖 훌륭한 공덕이 모두 이를 말미암아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떠하냐, 족성자여. 가령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을 모두 석제환인(釋帝桓因)이 되게 하였다면,
그 공덕의 복이 많은가, 적은가?”
“몹시 많고 몹시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믿음을 세운 선남자나 선여인이 세 가지 선의 근본[三禪本]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매우 많고 매우 많으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을 모조리 범천(梵天)이 되게 하여서 낱낱의 범천에 신덕(神德)이 한량이 없다면,
그 공덕의 복은 많겠는가, 혹은 적겠는가?”
“몹시 많고 몹시 많나이다. 세존이시여,”
“그렇다 하여도, 이것은 1지(地)의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선의 행[三禪行]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으며 비유로써 비교할 수 없느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벌써 1지(地)에 있으면서 보살의 칭호를 얻어 가지고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찼게 하였다면,
그 공덕의 복은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2지(地)의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선의 행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2지의 세 가지 선의 행은 1지가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2지(地)의 보살로 하여금 모조리 성취케 하여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차게 하였다면,
그 공덕의 복이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3지의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선의 행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3지 보살은 2지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떠하냐, 족성자여. 만일 3지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선을 갖추어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찼다고 하면,
그 공덕의 복은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4지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선의 행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4지의 세 가지 선은 3지의 세 가지 선이 미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어떠한가, 족성자여. 4지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선을 갖추어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찼다고 하면,
그 공덕의 복이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5지 보살이 세 가지 선의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5지의 세 가지 선은 4지의 세 가지 선이 미칠 바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5지의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선을 갖추어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찼다고 하면,
그 공덕의 복이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6지 보살이 세 가지 선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6지의 세 가지 선은 5지의 세 가지 선이 미칠 바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6지의 보살이 세 가지 선을 갖추어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찼다고 하면,
그 공덕의 복은 어째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7지 보살이 세 가지 선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7지의 세 가지 선은 6지의 세 가지 선이 미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만일 7지의 보살이 세 가지 선을 갖추어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찼다고 하면,
그 공덕의 복은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8지 보살이 세 가지 선의 행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8지의 세 가지 선은 7지의 세 가지 선이 미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9지의 보살이 세 가지 선을 갖추어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찼다고 하면,
그 공덕의 복은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10지 보살마하살이 세 가지 선을 닦은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10지의 세 가지 선은 9지의 세 가지 선이 미칠 바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10지 보살이 세 가지 선을 갖추어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찼다고 하면,
그 공덕의 복은 많겠는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마하살만은 못함이니,
왜냐하면 일생보처의 세 가지 선은 10지(指)의 세 가지 선이 미칠 바 아니기 때문이니라.”
“어떠한가, 족성자여. 일생보처 보살이 세 가지 선의 행을 닦아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찼다고 하면,
어떠한가, 족성자여, 그 공덕의 복이 많겠는가, 혹은 적겠는가?”
“매우 많고 매우 많나이다. 부처님이시여.”
“그래도 여래ㆍ지진ㆍ등정각께서 잠깐 동안 세 가지 선을 생각하시어 그 공덕을 얻으신 것만 못함이니, 그 공덕의 복은 가히 측량할 수 없느니라.
온갖 여러 부처님은 이 세 가지 선으로 말미암아 일체 모든 법을 갖추었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문득 게송을 설하셨다.
세 가지 선은 모든 부처의 어머니,
일체의 법을 낳고
중생의 고통을 건지니
이로 인해 인중존(人中尊)이 되었노라.
10지 보살의 종자
얻은 선(禪)이 같지 않으니,
근본 지혜에는 약간이 없고
쉬는 마음을 제일로 삼네.
현재의 열여섯 가지 법
그 가운데서 스스로 즐겨하지만
3독(毒)의 근본에 의지하지 않으니
비로소 열 가지 구절의 뜻에 응하네.
한량없는 경계 뛰어 넘고
근본의 관행(觀行) 잃지 않아서
여러 중생 제도하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모든 법은 꿈같고 허깨비 같아
있음도 아니요 있지 않음도 아니네.
온갖 무리 모조리 교화하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비록 아직은 10지에 있으면서
능히 불사(佛事)를 베풀어 짓지 못해도
갖가지 변화를 나타낼 수 있으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견줄 수 없는 열두 가지 바퀴로
본래 없음의 행을 널리 창달하고
온갖 근본을 받아들이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나고 죽음 한량이 없고
3유(有)의 길에 막힘없어
식신(識神)은 자연히 옮기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사람은 이미 항상하지 않음을 알고
세상의 영화와 총애[榮寵]에 집착하지 않아
참 사람[眞人]은 이것도 저것도 다 끊으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정이 있음은 정 있음이 아니요
정 없음도 또한 마찬가지이네.
도의 행이 삼계를 지나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나고 죽음 본래 조짐이 없고
인연으로 온갖 법이 있을 뿐
저와 저가 서로 모르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사랑과 연민으로 널리 기르고
신상(身想)의 근본에 집착하지 않으며
법의 성품에는 높고 낮음 없으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보살의 근본 행은
오직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으로
열반에 나아가게 되는 것이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도는 네 가지 평등한 마음으로부터이고
큰 서원은 움직일 수 없으며
열 가지 지혜는 뭇 도를 넘으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보시바라밀을 갖추어
낮고 열등한 사람을 건져주어서
곳을 따라 그 생각을 채워주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계를 지켜 범하는 바 없음이
마치 길상의 병을 보호하듯 하고
생각 생각에 잡된 상념 없으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인욕행(忍辱行)의 근본은
상대를 받아들여도 마음이 변치 않고
허공처럼 상념이 없음이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수없는 겁 동안 정진하여
끝내 게으름 품지 않고
중생이 무리를 가르치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세 가지 선의 행 바르게 받아
한 뜻으로 염(念)하면서 변치 않고
시방세계를 감동시키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지혜의 큰 바다 연못
평등하여 둘이 없고
온갖 망상을 없애버리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선권(善權)엔 방법이 없고
변현(變現)엔 한량이 없어
귀천(貴賤)이 있음을 헤아리지 않으니
이를 일러 세 가지 선의 행이라 하네.
그때에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설하시고 나자 백천억의 중생들이 위없는 마음을 모두 발하여 세 가지 선의 행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