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돠풀이 되는 꿈이 이상하여 올려봅니다.
어제 오후 복해밭에 옥수수와 호박을 심으려고
비가 오는데 서둘러서 올라갔더니
오전에 내린 비로 밭이 질퍽거린다.
씨뿌리기 멈추고 밭둑에 부직포를 덮는데
경사진 곳 혼자서 하느라 무리를 했는가 보다.
피곤하여 잠을 자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반야월에서 고향 땅 고산(孤山)에 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무슨 행사인지는 물라도 5월 모임을 위해서 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대열을 떠나서 하늘을 훨훨 날아서 고산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날기는 하는데 아무리 날아가도 내고향 고산은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여 가는 길을 멈추고 여기가 어디인지를 물었더니
그곳 사람들이 여기는 칠곡 가산(架山)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러면 고산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그 사람은 다시 다른 저 사람들(아낙네들)에게 물어보라고 손짓 한다.
그 아낙네에게 고산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그 아낙들은 고산을 계산(桂山)이라고 잘못 알아듣고는
계산성당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내가 찾는 길은 계산이 아니고 고산이며,
고산은 경산 쪽에 있다고 했더니
그 아낙들이 놀라면서
경산은 저쪽 길로 가라고 한다.
물론 그 길도 방향은 맞지만, 경산 가는 길이고
고향으로 가는 길은 아니다.
가다가 되돌아 와야 할 길이었다.
혼자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가지만
그 하늘을 날아가는 길이 많은 사람들과는 함께 하지 못하고
혼자만 고립되어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그러다가 꿈을 깨어보니 오늘 새벽이었다.
어제 밤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런 묵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하나님이 지시한 성막을 세운 해부터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한 해까지
희년이 30회(1,470년간)가 된 시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중간기는 15회 희년으로 히스기와 왕의 때가 된다.
희년법의 준수를 요청하는 이사야의 활동도 이 때가 전성기다.
그런데 출애굽 성막부터 15회 희년은 주전 710년 경이고,
이사야 37장 30절에서 산헤립 침공 연대는 주전 700년 경이라고 하니
10년 차이가 실제 차이인지, 오류로 인한 오차인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이사야 61장 1,2절 희년 소식을 전한 때가 언제인지 몰라서
연대를 두고 묵상하는 중에 잠이 들었다.
히스기왕의 즉위년과 재위 기간은 아직 확실하지 않고,
앗수르의 사르곤 침입과 산헤립 침공의 횟수도 불분명하다.
아하스가 36세에 죽은 해 히스기야가 25세이면
아하스는 11세에 히스기야를 낳았다.
하나님이 주신 덤으로 15년을 더 살았으며
선왕과 후왕 간에 재위 기간도 공동 통치로 겹쳐있어서
역대 왕들 중 연대가 가장 불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사야 61장 1,2절의 희년 소식은 더욱 더 미지의 해다.
누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제대로 아는 사람도 찾지 못하여 그냥 혼자 헤매고 있다.
모세의 성막(주전 1445년) --- 주전 710년 ? --- 열납의 해 선포(눅 4:19, AD26년)
출애굽 해방(0년 희년) --- 15회 희년 ?(이사야의 예언과 히스기야의 통치) --- 메시아 선포의 30회 희년
* 희년은 49년 주기로 오는 50년 째 해 <=> 안식일과 오순절은 49일 주기마다 오는 50일 째 날
안식년과 주의 날, 안식년과 희년은 모두 7의 주기를 가지며, 거룩한 성회는 7+1의 주기로 돌아옴(요 7:37)
** 학자들 주장대로 히스기야 왕이 BC 725년 즉위 했다면, 재위 14년 침공(사 36:1)은 BC 711/710 년경이 맞는데
성경 주석은 이때를 BC 701년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사르곤 2세의 침공과 산헤립의 침공에 대한 연대 적용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
나는 하늘을 날아올라 고산으로 가려하지만,
고산이 아닌 칠곡 가산으로 잘못 날아 갔나 보다.
물어본 사람도 고산은 어디인지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도 고산을 계산으로 알고서 길을 가르쳐 주면서
바른 길 두고서 둘러가고 가다가 돌아와야 할
경산 쪽 방향만 가르쳐 주고 있었다.
<고산(孤山)> : 고산은 행정구역이 경산에서 대구로 편입되면서 고산이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은 사라지고,
아파트지구가 되면서 지명은 "시지지구"로 바뀌어 사람들이 "고산"이라는 지명을 잘 모른다.
성경 풀이는 있는 것은 있는 대로 "있다"라고 해야 하고
없는 것은 없는 대로 "앖다"라고 해야 한다.
성경 이해는 실제적 내용이면 실제적 상황에서
종교적(협의 영적) 내용이면 종교적으로 이해하고 전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희년법에 대해서만은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실제적인 내용도 종교적인 것으로 바꾸어서 전하고 있다.
희년법이 나오면 성경 말씀이라도
이 법은 '현실적 적용 불가'라고 단언하여 놓고
여기에 사람 생각을 더하거나 제하여 버린다.
그래서 여호와가 자기 땅을 주면서 세운 희년법과
그 아들 독생자가 살과 피로 이어오는 성경의 구속사를
전달자는 더하거나 빼고 전하며,
수령자는 거기에 자기 생각을 보태어 행동하며 팔고 산다.
성경 희년과 열납의 해, 성령이 가르친 물질의 유무상통이
우리의 삶과는 너무 멀고도 먼 길이요, 먼 나라 이야기다.
희년법은 구약시대 생활에서 지켜야 규례이고 실정법이며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실무이자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는 유일한 해법이므로
이 법을 사람들이 룻과 보아스처럼 지키기만 했으면
우리가 희년을 두고 그 해가 언제인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지키지 않았기에 점잖은 제사장도 지식 많은 랍비도
희년법이 나오면 빼고 더하면서 자기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사람도 부족하긴 마찬가지 목적지 없는 허공을
밑도 끝도 없이 헤매다니고 있는가 싶다.
잠이 들어서야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기는 하지만,
그 도착지는 항상 찾지도 못하면서
혼자서 고립되어 헤매는 꿈을 꾸어온지도
한 두번이 아니고,
벌써 수년 째 수 차례 그런 꿈을 꾸고 있다.
처음과 한 두번이면 개 꿈처럼 여기겠는데
너무 자주 계속되니 이상하다는 생각이지만
꿈에는 무관심했고 둔해서 까닭을 모르겠다.
하늘을 나는 것이 좋은 듯 보이나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혼자 헤매는 것이
좋은 것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꿈이 너무 오래다.
목적지를 찾지 못한 날개는 스스로 접든지
아니면 가는 길과 목적지를 찾아내야 할텐데...
부족하고 미련하여 어느 것도 못하고
전능자의 손길만 기대하고 있을뿐이다.
*** 비슷한 꿈들이 계속 되풀이 되고 있어서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