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는 설치미술가
이지우
초저녁 공원 근처에서 거미가 집을 짓는 모습을 마주했다. 거미가 나뭇가지에서 내려와 거미줄을 붙여놓고 거미줄을 타고 다시 올라가 다른 쪽의 지지대에 거미줄을 붙여놓는다. 거미줄은 방사형 구조로 짓는데 이는 면적을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부지런히 커다란 마름모꼴로 만든 다음 자전거 바큇살 모양의 씨줄을 치고 있다. 초반 집짓기는 자신이 다니는 길을 먼저 만든 다음 본격적으로 거미의 집을 짓기 시작한다. 가장 큰 원에 가까운 모양으로 지어나간다. 배꼽 아래쪽 부분, 실젖에서 거미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거미줄은 마술을 부리듯 쉬지 않고 나온다. 집을 짓기에 알맞은 굵기의 실만 뽑아낸다.
한 자리에서 꼼짝 않고 거미의 집짓기를 지켜보았다. 거미는 자로 재듯 일정한 간격을 맞춰 거미줄을 끌고 가다가 뒷발 로 꾹 눌러 씨줄에 붙여 놓고는 다시 날줄을 끌고 가다 씨줄 부분을 뒷발로 꾹 눌러 붙여놓는다. 마치 사람이 베틀에 앉아 쉬지 않고 베를 짜는 모습 같다. 자로 잰 듯 일정한 간격과 구간을 나누며 가장자리에서 안쪽으로 거미줄을 치며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집을 짓는다. 작아지는 도형의 크기 때문에 속도감을 내더니 뚝딱 집을 완성한다. 아주 빠른 속도로 집이 완성 되었다. 허공에 지은 설치미술. 거미는 타고난 건축가임이 틀림없다. 이제 거미는 거미줄의 한가운데서 까만 점처럼 자리 를 잡고 앉는다. 미동도 없다. 이제부터 먹잇감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거미줄을 치는 거미를 정주성거미라 하는데 이 거미는 시력이 나쁘다. 시력이 나쁜 대신 자신의 몸에 나 있는 털이 감각 기관이라 거미줄이 흔들리면 재빠른 반응으로 거미줄에 걸린 곤충에 다가가 포획을 한다. 이렇게 곤충마다 각자 다른 자신 만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자연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비가 내린 후 거미줄에 맺혀 있는 물방울을 만났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 화백’의 그림이 생각났다. 화백의 그림을 감상하 다 보면 화폭에 담긴 물방울에 손가락을 대고 싶어진다. 순간 물방울이 톡 터져 흐를 것 같은 착각과 생동감. 연속적인 물방 울의 영롱함에 빠져들었던 기억. 거미가 설치한 조형물에 물 방울이 매달려 완성된 한 폭의 자연미술품. 환상적이다.
내가 어린 시절 기와집 추녀 밑에 거미줄을 친 시커먼 산왕 거미를 자주 만났다. 나보다 9살 어린 남동생은 그때 나이가 3살이었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엄마는 어린 동생을 떼어 놓고 일을 나가셨다.
엄마를 기다리던 동생은 엄마의 빈자리를 견디다 못해 누나 들한테 늘 거미를 잡아 달라 조르며 울어댔다. 동생이 울며 떼 를 쓰면 언니나 나는 할 수 없이 긴 장대를 가지고 거미를 잡 아 주곤 했는데 동생은 그때야 울음을 그쳤다. 동생에게 잡은 거미를 보여주고 다시 놔주곤 했는데, 다음날 보면 찢어진 거 미줄을 수선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는 산왕거미의 모습이 생각났다.
최근에는 산왕거미를 거의 만난 적이 없다. 대신 숲길이나 공원의 숲에서 황금색 거미줄을 치고 있는 무당거미를 자주 만난다. 무당거미는 이름에서 말하듯 빨강, 검정, 노랑, 은회 색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여름이 되도록 눈에 띄지 않다가 성충이 되어서야 커다란 거미집과 화려함 때문에 자주 만나게 된다.
덩치가 큰 무당거미는 황금색 거미줄로 3층짜리 집을 짓고 자신은 중간층에서 산다. 양옆에 있는 거미줄은 먹이 저장고 이면서 먹고 버린 쓰레기를 붙여놓고 위장을 한다. 마치 군인 이 모자나 옷에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꽂아 위장하듯이 위장 술로 천적의 눈을 피한다.
무당거미는 살짝 건드리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마구 흔드는데, 이 행동은 거미줄을 흔들어 천적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다. 또한 짝짓기 철이 되면 숫거미는 암거미 주변을 배회한다. 특히 숫거미는 암거미에 비해 몸집이 아주 작다. 숫거미는 암 거미 주변을 서성이며 짝짓기 기회를 노린다. 암거미가 먹이 를 먹고 있는 틈을 타서 짝짓기를 하는데 이때 숫거미는 암거 미의 식사가 끝나기 전에 짝짓기를 빨리 끝내야 한다. 여차하 면 암거미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가을날 나무가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기 전에 무당거미는 알을 낳을 만한 나뭇잎을 찾아 거미줄로 나뭇가지와 잎을 단단 히 고정한다. 그런 후 나뭇잎에 얼기설기 거미줄로 폭신한 아 기 요람을 만든 다음 알을 낳고는 천적의 눈에 띄지 않게 거 미줄로 나뭇잎을 꼭 붙여 놓는다. 마지막 잎새처럼 거미알이 들어 있는 잎 하나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달랑거리며 겨울을 난다.
봄은 계곡의 물소리에서 졸졸거리며 오고 있다. 계곡을 향해 서 있는 나뭇가지에 달랑거리는 잎이 보인다. 살며시 나뭇 잎을 벌려 들려다 보니 분홍빛 무당거미알이 오밀조밀 서로 의지한 채 살아있다. ‘참, 대견한 녀석들, 나뭇잎 요람 속에서 알알이 숨소리를 죽여 가며 잘도 살아 줬네.’ 지난 겨울에는 유난히 눈도 많이 내렸다. 영하 15도까지 내 려가는 강추위도 며칠씩이나 이어졌다. 계곡을 지나는 바람은 더 추었을 텐데 말이다. 따스한 햇볕이 보석 같은 알들의 잠을 깨우는 날. 또 다시 거미의 한살이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