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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들어간다.
냉기가 전신을 파고든다. 찬기를 받아들이지 못한 팔에는 금방 토실토실한 닭살로 변해버린다.
샤워기의 물을 튼다. 찬물이 쏟아져 나오는 샤워기를 하수구에 대고 물을 뽑았다. 호스에 있는 찬물이 다 쏟아내야 따스한 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찬물들이 바닥에 튕기면서 발에 시리지만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발은 조금씩 감각을 잃어간다.
얼마나 지났을까?
예전 같으면 더운물을 쏟아 부을법한 샤워기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하다.
보일러?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하니 빨리 씻고 잠자려는 일념에서 담배 한 대만 피우고는 바로 화장실에 들어온 것이다.
보일러를 켜면 금방 더운 물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움직이기가 싫다. 화장실에서 문턱을 넘으면 주방이고 그 주방에서 보일러 있는 방까지는 채 한발자국이 되지 않으니 두세 걸음의 거리지만 나가기가 싫다.
거울에 비낀 머리를 본다.
3일에 한 번씩 감는 머리여서 푸석푸석한 것이 아니라 기름기가 돌고 있다.
오늘은 머리를 감는 날인데 찬물로 감을 수도 없다.
-하루쯤이야.
마음으로 혼자소리를 하면서 찬물로 대충 발만 씻는다. 사흘이면 어떻고 나흘이면 어떻고 거기에서 거기다. 머리는 며칠에 한 번씩 감아도 관계없지만 발만큼은 매일 한 번쯤은 씻어야 한다. 회사에서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점심휴식에는 가끔 휴계실에 일찍 들어가 자리를 차지하면 한숨 잘 수도 있으니깐 발 냄새만은 조심해야 한다. 참, 회사에는 휴게실이 아니라 탈의실이라고 부르고 있지.
사람들은 왜 그렇게 귀찮게 출퇴근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입은 그대로 집 와 벗어버리면 되는 것을.
화장실을 나서려니 땀에 절인 몸이 조금 끈적거림이 느껴지지만 씻는다고 해봐야 내일 출근하면 다시 땀으로 절어버릴 몸이다.
발에 묻은 물을 걸레로 대충 문대면서 주방으로 나와 냉장고 문을 연다.
그런데 냉장고는 이름처럼 차갑고 썰렁하다.
며칠이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먹다가 만 반도 안 되는 모두부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그런대로 먹을 것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행운이다.
나는 두부와 간장, 술을 갖고 방으로 들어온다.
펴 놓은 지가 며칠인지 몇 달인지 알 수 없는 이불에서 누기가 올라오면서 엉덩이를 축축하게 하는 것 같다. 이불 위에 다리를 토시고 앉아 술병을 깐다. 잔으로 부어 마시는 것도 귀찮으니 그냥 병째로 입에 쏟아 붇는다. 차가우면서도 찡한 느낌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서 몸 전체로 서서히 퍼지려고 한다.
두부에 간장만 듬뿍 묻혀 한입 크게 베어 문다. 항상 간직했던 두부의 콩 냄새는 이미 상실한 채 뭉적하고 이 시린 느낌만 전해준다. 요즘은 치통으로 조금 고생도 하고 있으니 두부면 뼈다귀를 핥는 것보다 더 진주성찬이다.
두부를 입에 넣고 우기적거리는데 아픈 이에 뭔가가 씹히면서 몸 전체의 신경을 건드려 골수까지 통증을 동반한다.
술맛이 구겨진다. 얼굴이 아니라.
두부에 뭐가 있었나?
냉수를 마시다가 뼈가 목에 걸릴 이야기란 말은 가끔 들었지만 두부의 뼈에 목이 걸린다는 말은 농담으로 하는 사람도 보지 못했다.
내용물을 확인해야 한다. 내용물을 봐야 화를 내도 낼 것이다. 그렇지만 내용물을 확인하는 방법은 뱉어내는 길 밖에 없다. 그러자면 주방으로 가야 하는데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가 싫다.
뭐지?
통증이 조금 가라앉기 시작하자 뱉지 않은 입안의 내용물이 궁금해지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싫다.
뱉지 않고 내용물 확인하기.
어렵게나마 하나뿐일 수도 있을 뱉지 않고 입안의 내용물의 정체를 찾는 방법이 떠오른다. 혀끝을 놀려 내용물을 굴려보지만 실오라기 같은 느낌만 느껴질 뿐 정체는 여전히 묘연하다. 혀가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아픈 이를 피해가면서 조심스럽게 깨물어 본다. 머리카락 같은 감각이 아니고 정말 실오리라면 쉽게 씹혀서 끊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기!
마침 두부에 박힌 내용물, 아니, 두부와 함께 입안에서 장난치는 녀석의 정체가 머리에 그려진다.
점심에 회사에서 닭고기를 먹었는데 아픈 이로 먹기가 힘들었지만 남보다 곱절은 더 떠왔었다. 고기가 있을 때면 항상 식당의 일꾼이 담아주지만 바닥난 상추를 가지러 간 사이에 자체로 담을 기회가 생긴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도 더 힘겨운 기회가 생겼고 그것을 그대로 놓질 내가 아니었다.
아픈 이로 먹기가 힘들었지만 대충 씹으면서 그냥 넘겨서라도 고기만큼은 바닥냈다. 점심에 그릇은 비웠지만 입안의 고기는 다 비우지 못하고 어느 이 틈새에 숨었다가 두부의 양념으로 술의 안주가 되어 다시 살아난 것이다.
두부와 함께 점심에 남긴 고기 한 점까지 삼키고 다시 술을 마신다.
술맛이 새롭게 다시 살아나려고 한다. 퇴근하면 술 한 잔 마시고 자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손에 들려있던 소주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자 눈 뜨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빈 술병과 아직 반에 반 정도는 남아있는 두부를 옆에 밀어 놓고 그대로 쓰러진다.
잠자리가 좋다.
천국인가, 천당인가 하는 말이 떠오른다. 가끔 전철을 타면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천국인지 천당인지 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지금이 이 잠자리만큼 좋을까?
얼마를 잤나?
자리에 누워 금방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알람소리가 요란하다. 소란을 피우는 핸드폰을 그대로 팽개치고 싶지만 습관처럼 버리지는 않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핸드폰에 18이란 숫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아직 덜 깬 잠, 그 잠을 위해 핸드폰을 놓고 다시 이불 속을 파고든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잠의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도 전에 머리를 치는 것이 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으로 시간을 다시 확인한다.
18시.
저녁 6시란 뜻이다.
6시는 출근을 위해 놓은 마지막 시간이다.
5시 20분에 알람이 울리면 잠을 깨고 30분에 다시 울리면 일어나 밥을 먹고 세수하고 6시에 울리는 알람에 맞춰 옷을 입고 출근 준비를 했다가 6시 10분에는 전철역으로 가야 하였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도보로 10분 거리, 전철역에서 30분에 발차하는 열차를 타고 3역을 지나 통근버스를 타는 것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런데 그 사이의 두 번의 알람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냥 잠에 빠진 것이다.
투덜거릴 여유조차 없다.
벗어 놓았던 작업복을 챙겨 입고 그대로 밖으로 뛰어 나온다.
집을 나와 계단을 내려 올 때에야 세수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세수를 하고 다시 나오기에는 너무 시간이 촉박하다. 흐트러져 버렸을 머리를 대충 손으로 넘기고 작업모를 꾹 눌러 쓴다.
어차피 모자를 썼으니깐 누가 세수를 했는지 머리가 어떤 모양인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총망히 대문을 나와 전철역으로 반달음을 놓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핸드폰을 꺼내니 “내 사랑”이란 이름이 뜬다.
출근이 급한 마음에도 피씩 웃음이 나간다.
친구 소개로 한 번 만나고 나서 데이트라고 둘이 한 번 만나 술 마시고 손 한 번 바로 잡아보지 못했는데 핸드폰에는 “내 사랑”이라고 이름을 새겼다.
“여보세요?”
급하게 뛰어나오기는 했지만 대신 조금의 시간은 남아있으니 길옆에서 숨을 고르고 점잔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네. 이제 한 20분 뒤면 도착할 거예요. 몇 번 출구에서 만날래요?”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쉽게 대답이 나가지 않는다.
20분?
몇 번 출구?
도무지 질서가 보이지 않는다.
“주무셨어요?” 대답이 없는 내게 여인이 채근하는 목소리로 변해버린다.
“아, 아니. 금방 나갈게.”
통화를 끊고 핸드폰을 다시 들여다본다.
토요일.
핸드폰에는 분명히 토요일이라고 적혀있다.
이번 주부터는 일이 적어져 토요일에 휴식한다 했었고 오늘은 여인을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토요일도 출근하는 것으로 알람을 놓은 상태였고 그놈이 알람에 속았던 것이다.
그대로 전철역으로 향하다가 내 옷차림을 보고 다시 돌아선다.
회사 작업복을 입고 여인과 데이트란 것을 할 수는 없다.
급하게 집으로 다시 뛰어 들어와 집안에 구겨진 이불 위에 옷을 벗어던지고 나들이옷을 찾는다.
그런데 팬티가 보이지 않는다.
팬티가 3개밖에 없는데 하나는 한주일 동안 입은 것이고 나머지 두개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운 좋으면 술 한 잔 마시고 여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팬티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옷장을 뒤지다가 세탁기가 생각난다.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를 찾으니 세탁기 위에 팬티 2개가 댕그랗게 놓여있다. 세탁기 안에는 아직 빨지 않은 양말들이 있으니 세탁기 위에 팬티를 올려놓은 것이다.
팬티를 찾아 그대로 입으려다가 코에 갖다가 냄새를 맡아 본다.
씻지 않은 팬티, 한 번 입으면 일주일이나 열흘씩 입다보니 팬티에서 냄새가 독하다.
손에 들었던 팬티를 내려놓고 다른 것을 들어 냄새를 맡아본다.
독한 냄새가 코를 지나 머리를 어지럽히기는 여전하다.
하지만 선택이 없다.
처음 들었던 팬티를 다시 입는다. 팬티만 입었으니깐 다른 속옷은 출근할 때 옷을 입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옷을 대충 챙겨 입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도망치듯이 집을 뛰쳐나온다.
여자보다는 그래도 일 분이라도 일찍 가서 오래 기다린 척을 해줘야 한다.
역에 도착하여 아직 몸에 배어 나온 땀이 아니라 숨도 채 고르지 못했는데 역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많이 기다렸어요?”
곁으로 다가오는 여인의 몸에서 향긋한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50이란 나이와는 무관하게 향기를 풍기고 있다.
역시 여자는 냄새만으로도 좋다.
“응. 그냥 한참 기다렸소.”
제법 오랫동안 기다리고도 아닌 척을 해 보인다.
“뭘 먹고 싶소?”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흘러나온다.
“뭐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
목소리에서도 향기가 넘치려고 한다.
“우리 장어구이 먹으러 갈까?”
여인의 모습을 뜯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주머니를 계산하지 않는다.
“엄청 비쌀 건데요.”
이제 겨우 세 번째 만남인데 벌써 남자의 주머니를 걱정해주는 여인이 고맙다. 고맙지만 솔직하게 비싼 장어를 사려니 조금은 마음이 움츠러들기도 한다. 하지만 움츠러든 마음을 여인에게 보일 수는 없다.
“괜찮소. 오늘은 내가 한턱 멋지게 쏠게.”
여인을 데리고 장어집으로 향한다.
장어구이?
둘이서 먹어도 10만원 가까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무지 비싼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비싸다니 여직 그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오늘만큼만은 여인에게 쿨한 모습을 보여야 하고 그래야만 여인을 가질 수 있다.
“어서 오세요.”
어디가나 흔하게 듣는 소리지만 오늘만큼은 신경이 쓰인다. 비싼 장어집이라면 그 값만큼 가는 아가씨가 서비스를 해야 하겠는데 이놈이 집은 세월에 빨려서 이젠 여자의 냄새도 나지 않을 만큼 나이든 여인이 반색하고 있다.
“어떻게 드릴까요?”
얼굴과는 달리 그렇게 낡지 않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메뉴판을 내밀고 공손히 서서 답을 기다린다. 선생님에게 숙제를 검사 맡는 아이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맞은 켠의 여인에게 눈길을 준다.
여인은 알아서 하세요 하는 태도로 옷을 벗어 차곡차곡 옆에 개어 놓으면서 눈도 주지 않는다.
“장어구이 3인분 줍소.”
둘이니 2인분이라고 하고 싶지만 여인이 앞에서 쪼잔한 모습 보일 수는 없다.
뼈 같은 돈이 아니라 생명 같은 돈이지만 오늘만큼은 여인에게 투자를 해야 한다.
“술은 뭐로 마실래요?”
여인이 고개를 든다.
“전 술 잘 못 마셔서…… 그냥 알아서 시키세요.” 목소리가 아름답다. 아직 한 번도 안아보지도 못했지만 여인의 품은 따스하고 포근할 것이다. 이젠 중년을 넘어선 나이지만 이 나이에 이런 여인을 만났다는 것은 떡 함지에 넘어진 것이다.
“복분자 줍소.”
비싼 안주에 싸구려 소주는 슴슴하게 느껴진다. 어차피 오늘만 확실하게 쓰기로 했으니 술로 맛이 가게 할 수도 없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나이든 여인, 아니, 나이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여인이 사라지고 마주 앉은 여인과 둘만이 공간이 남았다. 그런데 상 하나 사이에 두고 앉은 좁은 공간인데 그 공간을 메울 말들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 힘들지 않소?”
한국이란 곳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흔하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아니요.”
여인의 얼굴에 미소가 스쳐간다.
“일 재밌어요. 모르는 것 배우면서 하고 그래서 즐겁거든요.”
-헉
입이 아니라 머리에서 발끝까지 억이 막히고 있다.
일이 재미있다는 사람은 한국에 와서 처음 듣는 말이다.
흔히 어떻게 힘들고 한국 것들이 어쩌고 개도 안 먹는 돈 때문에 어떻게 참고하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가는데 재미있다는 말에는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생각나지 않는다.
식당에서 일하면서 그것도 재미있어 하는 여인이 있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멍청하니 앉아있는데 마침 밑반찬들이 오른다.
여인의 잔에다 술을 가득하게 부어준다. 술 한 잔 마시면 밋밋한 분위기가 바뀔 것 같다. “앞으로 어디에서 살고 싶소?”
목을 타고 넘어간 술맛을 혀끝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면서 여인에게 다시 눈길을 준다.
“글쎄요. 중국 가서 살아도 되고. 이젠 애도 다 컸으니깐 그냥 여기서 살아도 되고요. 편한데서 살면 되지요.”
여인은 내가 만들 다음 말들을 너무 쉽게 끊어버리고 있다.
“중국에도 조그마한 아파트 하나 있어요. 앞으로 일은 모르니깐 그냥 세를 줬거든요.”
여인은 스스럼없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내가 그간 모은 돈으로도 중국에다 아파트 두 채는 사고도 남을 것이다.
한국에 와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었다. 일 년에 4일밖에 쉬지 않고 일한 날들도 있었다. 요즘은 한국 경기가 안 되니 일도 적어져 주말도 이렇게 한가하게 보내지만 몇 년을 야간만 뛰면서 주말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었다.
노후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젠 체력이 달린다.
잠에서 깨어나면 피곤이 가시지 않고 낮인지 밤인지 구분이 되지 않기가 일쑤다. 딸려가는 체력과 쫓아오는 나이가 결국 위기를 느끼게 하고.
“앞으로 뭘 하고 싶나요?”
여인의 물음에 술병을 들던 손이 멈춘다. 아파트 있다는 자랑하는 여인에게 내가 갖고 있는 돈을 막 말하려고 했는데 여인의 물음에 꿀꺽 삼켜버린다.
“글쎄.”
자국만 난 여인의 잔 대신 비어버린 내 잔에 술을 붓는다.
술이 문제다.
아니면 잠이 덜 깼나?
세상에 어디 믿을 놈이 있다고 이제 겨우 세 번 만난 여인 앞에서 돈 말을 하려고 했다니?
-앞으로 뭘 하지?
나이 들면서 체력이 달리는 것은 보았지만 앞으로 뭘 할지는 아직 생각한 적이 없었다. 비어버린 머리, 그 머리에는 그냥 지금 술과 여인만 들어오고 있을 뿐이다.
노후를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단 한 번도 앞으로 뭘 해야 할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여인의 얼굴은 표정이 없다.
처음에는 그래도 조금씩 흘러가던 미소도 보이지 않고 있다.
결혼까지 생각한다면서 자신이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내가 한심해서일까?
뭔가를 말해야 하는데 비어버린 머리에서 떠올릴 것이 없다.
마침 장어구이가 오른다.
장어집은 그래도 장어구이가 구세주인가 보다.
“장어구이는 그래도 이 집이 최고요.”
나는 장어를 집어 먼저 여인에게 내민다.
“괜찮아요. 저절로 먹을게요.”
여인은 급하게 손사래를 한다.
여인의 앞으로 향하던 장어를 집은 손을 거둬 내 입에 넣어야 하는지 그냥 놓아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여인의 인사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인 앞에 접시에 장어를 놓는다.
하지만 여인은 젓가락은 내가 준 장어가 아닌 곳을 향한다.
그러고 보니 여인이 왼손은 자주 코 밑으로 향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정인 든다. 발 냄새. 여인을 만난다고 팬티는 갈아입었지만 급한 마음에서 양말도 벗지 않고 속옷을 갈아입으면서 출근하려고 신었던 양말을 그대로 신고 나온 것이다.
피곤해서 자주 씻지 못한 양말에서 냄새가 풍겨 장어에 감염되려고 한다.
급하게 발을 모아 올방자를 틀면서 냄새를 감추지만 스스로도 어설프게만 느껴진다.
“어, 김형 여기서 술 마셨어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현수가 웃으면서 내려다보고 있다.
현수는 나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조선족이다. 그냥 조선족이 아니라 가짜 한국인이다. 이제 마흔 살인데 무슨 대학까지 졸업했다는 놈이 고작 나랑 똑 같이 회사에서 기계를 다루면서도 한국 놈들 뺨치게 흉내를 잘 낸다. 회사에서 식사가 끝나면 한 국놈들처럼 화장실에 가 치솔질을 십 분씩이나 하고 몸에서는 항상 이상한 향수냄새를 풍기는 녀석이다.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조선족들은 서로 모여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아무데나 자리가 보이면 앉아서 먹는데 현수만은 항상 한국 놈들 틈에 끼어 떼 지어 먹으면서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렇게 한국 놈들에게 알랑거리더니 입사한지 3개월 만에 정직원이 되고 반년도 안 되었는데 유일하게 기계를 보고 있는 조선족이다.
회사에 입사한지 8년이 되면서 두 번이나 우수사원까지 된 나도 여전히 기계 앞에서 관리자들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일을 하는데……
요즘은 팀장으로 승진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고.
현수는 보기만 하여도 더럽고 구리다. 내 힘으로 벌더라도 저렇게 한국 놈들의 앞잡이로 살고 싶지는 않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수 같은 놈을 이런데서 만나다니 재수가 없어도 더럽게 없다.
현수를 넘어 작업반장의 능글거리는 얼굴이 보인다.
며칠 전 작업반장이 정년퇴직을 하면서 조장을 하다가 반장으로 승진한 사람이다. 현수와는 자별한 사이기도 하지만 아마 팀장 자리가 욕심나 비싼 장어까지 먹이면서 아첨을 떨었을 것이다.
속은 더럽지만 침 대신 얼굴에 웃음을 만들어야 한다. “반장님 반갑습니다. 제 여친입니다. 우리 작업반장이오. 한 잔 하십시오.”
여인과 반장, 그리고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인다.
“아니, 천천히 마시세요.”
반장과 현수가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나간다.
식탁 위에 장어구이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있다.
장어구이는 다시 덮여 달라는 말도 못한다.
식은 장어구이만큼 여인과 사이도 이상하게 찬기가 느껴진다.
비싼 장어구이를 놓고 분위기는 그 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비어버린 술병을 보면서 한 병 더 청해야 하는지 아니면 식사를 주문해야 하는지 망설인다.
“잘 먹었어요. 이젠 일어날까요?”
반도 먹지 않은 장어구이를 두고 여인이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여인의 앞에 처음 집어준 장어도 그대로 댕그라니 놓여 있다.
“아니, 식사를 해야지.”
여인의 다리라도 잡고 싶다.
이렇게 비싼 장어구이, 여인이 앞에서 포장할 수도 없고 그냥 버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배가 불러 먹을 데가 없어요.” 아무리 여인이라지만 몇 점 집지도 않고 배가 부르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냥 앉아서 미적거릴 수는 없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니 어지럼증에 몸이 휘청거린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간다. 먹은 것도 없는데 9만 8천 원이 나온다.
밖에 나서니 급하게 마신 술이 취기가 오르면서 다리가 휘청거린다.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 화장실에 나간 여인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이젠 어디로 가지?
비싼 장어까지 먹었으니 여인과 함께 어디 잠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집으로 데리고 가면 돈도 들지 않고 좋겠지만 개이지도 않은 이불이 널브러진 집으로 데리고 갈 수는 없다.
폼 잡을 바에는 호텔에 가면 좋지만 그 비싼 호텔비까지 팔 수는 없다. 호텔에 한 번도 든 적은 없지만 장어구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비쌀 것이다.
어디로 가지?
여관으로 간다는 것도 조금 체면이 깎인다. 여인과 처음 가는데 호텔은 아니더라도 싸구려 여관으로 가자고 말하기도 별로다.
모텔?
호텔과 여관 사이에 있다는 모텔이 생각난다. 한국에 와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모텔이지만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모텔을 본 기억이 없다.
한국에는 흔한 것이 모텔이라고들 하던데 그런 것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고 오직 회사에서 일하고 돈 버는 것만 알았지 그런데는 눈을 준적이 없었다.
어디에 모텔이 있는지 모르니 일단 택시를 탈 수 밖에 없다.
택시 요금도 기본요금이 될 만큼 가까운 곳에 있어야겠는데 이름을 모르니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 여인이 밖으로 나온다.
피우던 담배를 땅에 그대로 버리고 여인을 따라 골목에 들어선다.
장어집에서도 말 없던 여인은 밖에 나와서도 말 한마디 없이 앞에서 걷고 있다.
여인의 옆으로 급히 다가가지만 여인은 고개도 돌려주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그러나?
나이가 얼만데?
여인만이 갖는다는 그런 값을 하느라고 능청을 부리는 것 같다.
여인의 팔을 잡지만 여인은 반응이 없다.
마침 골목은 어둡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여인의 팔을 잡아당기면서 품에 안는다.
여인의 얼굴을 향해 입술을 내밀 때 여인이 밀어낸다.
여인의 갑작스러우면서도 강한 힘에 떠밀려 몸이 휘청한다.
“이러지 말아요.” 멍하니 서서 여인을 바라본다. 여인만의 특유의 앙탈인지 아니면 정말 싫어서 밀어낸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판단이 서지 않으니 다시 안아야 하는지 그냥 바라봐야 하는지 어떻게 할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갈게요.” 여인은 도망치듯 골목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여인은 도망친다.
도망치는 여인을 멍청하니 서서 본다.
비싼 장어구이를 먹였는데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여인은 골목을 도망친다.
여인이 도망친 골목에 멍하니가 아니라 멍청하니 서있으니 화가 난다.
내 피 같은 돈만 팔았다는 것이 화가 난다.
여인은 다음에 만나자는 말도 없이 도망친 것이다.
-꺼어억.
긴 트림만 나온다.
이 사이에 끼운 뼈가 느껴진다.
손가락을 넣고 뒤져보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멍청하니 그냥 서있을 수만 없어 골목을 나섰을 때 환한 가로등이 길을 비추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이지만 여인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여인이 없는 길은 골목처럼 여전히 비어 보인다. 화가 나지만 어디에 화를 풀 곳도 없다. 여인이란 결국 남자들의 주머니만 털어 먹는 그런 좀도둑 같은 인간들이다. 그래서 여직 내 노후를 위해서 돈을 차곡차곡 모았을 뿐 여인들과 사귀지도 않았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돈만 판 내가 한심하다.
사창가 여인이라도 그 정도 돈을 주면 몸이라도 주겠는데 몸이 아니라 한 번 바로 안아도 보지 못하고 돈만 판 것이 화가 난다.
길가에 중국전통 마사지란 간판이 보인다.
마사지라면 색정봉사도 함께 한다고 많이 들었었다.
이대로 집으로 가기에는 화가 풀리지 않는다.
마사지라도 가서 아가씨와 한 번 놀아볼까?
손도 바로 잡아보지 못한 여인에게도 십만 가까운 피 같은 돈을 팔았는데 아가씨라면 돈 주면 몸을 줄 것이다.
그런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 번도 못가 보아 두려운 것도 있지만 들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돈을 주면서 무조건 옷 벗어 해야 하나?
아니면 마시지란 것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돈을 판 것만큼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도 오늘은 화가 난다. 문득 마사지란 간판을 넘어 모텔이란 간판이 멀리 보인다.
“모텔 가면 다방 전번 가득해요. 전화만 하면 뽀시시한 애들도 얼마든지 있거든요.”
어디선가 현수가 나를 보면서 스멀스멀 웃고 있다.
한국인들과 밥 먹으면서 흘렸던 말인데 갑자기 다시 머리에서 살아나고 있다.
모텔 가서 전화하면 문전 배달이라?
여자도 정말 배달될까?
마사지가 아닌 모텔로 발길을 돌린다.
카운터에서 방 키를 받아들고 방에 들어서니 휴지통에 정말 다방전화번호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간판들도 재미있다.
여우다방에서부터 시작하여 거시기다방까지 있다.
다방 전화번호를 보면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전화번호를 누르지만 마지막 통화를 누르지 못한다.
가격이 얼마인지 모른다.
그리고 꼭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조선족 아줌마가 싸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확한 가격도 모르고 있는데 전화를 했다가 바가지를 쓰고 또 피 같은 돈을 날리지는 않을까?
돈 걱정과 함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도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폰을 끄고 다방 간판들만 들여다본다.
모텔에 들어온 것이 후회된다.
여인에게 그 비싼 장어구이를 사준 것은 뺨을 쳐도 성차지 않을 만큼 화가 나고 후회가 되지만 모텔에 들어온 것도 그것과 못지않게 화나고 후회된다.
그냥 집으로 도망치고 싶다.
하지만?
주말이라고 6만원이나 주고 들어온 모텔을 그대로 나갈 수도 없다.
본전도 못하고 그냥 잠만 자기도 싫다.
-꺼어억.
트림만 나간다.
술기운이 오르면서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조선족아줌마가 싸다.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핸드폰으로 전화번호를 누른다.
“안녕하세요? 여우다방입니다.”
핸드폰 저편에서 여인의 간드러진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대답이 나가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여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예. 아가씨 있슴까?”
“우리 다방은 퇴폐사절입니다.”
여인의 대답에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린다.
모텔에다가 전화번호까지 올려놓으면서도 퇴폐사절이라니? 차라리 소가 호랑이를 잡아먹는다고 할 거지.
다시 전화번호를 누르려다가 잠깐 손을 멈춘다.
경찰들의 단속이 무서워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친 것이다.
다른 곳에 전화해도 그런 의심이라면 직접 아가씨를 찾는다면 거절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머릿속을 더듬는다.
머리 어딘가에는 그런데 대한 말 들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지러워진 머리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라고 해야 하지?
한참을 더듬어서야 어디에서 주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실오라기 하나가 잡힌다.
시간제, 배달, 그런 질서 없는 말들이 떠오른다.
다방이니깐 배달이라면 커피 배달을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제란 말은 그 뒤를 말할 거고.
“네. 다방입니다.”
먼저와 꼭 같이 여인의 달콤한 소리가 아니라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남자의 목소리에 갑자기 주눅이 들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커피 배달이 됨까?”
조심스럽게 겨우 한 마디 뱉어 낸다.
“아네. 어디로 보낼까요?”
허스키 한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온다.
“어디세요?”
“예. 다방입다. 시간제도 있슴까?”
“네. 오십분에 7만원입니다.”
-허걱.
한 시간도 아니고 오십분에 7만원이란 말에 뒷말이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싼 아가씨는 없슴까? 하룻밤으로……”
죄지은 아이처럼 목소리가 가라앉는 것이 내게도 보인다.
안되거나 없다면 그냥 이대로 잠이나 잘 것이다.
“네. 교포 있어요. 하룻밤에 10만원이고요. 보낼까요?”
모텔이름을 말해주고 전화를 끊으니 공연히 마음이 이상화게 활랑거린다. 어릴 때 잘못을 저지르고 어른에게 잡힐까봐 두려운 그런 마음이다.
아가씨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참,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 그것도 교포 아줌마지.
옷은 벗고 기다려야 하나?
아줌마가 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침대에서 내가 할 일 하면 되나?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냥 바다 한 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술기운으로 인해 모텔에 온 것이고 아가씨, 참, 또 아가씨가 된다. 아줌마를 찾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일단은 겉옷은 벗어야 할 것 같아 옷을 벗으려니 지갑이 만져진다.
내가 잠든 사이에 여자가 내 지갑을 갖고 도망가면 어떻게 하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어딘가에 여자가 찾지 못할 곳에 지갑을 감춰야겠다. 지갑을 꺼내 주변을 찾아보지만 감출만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침대 밑에 넣고 싶지만 도둑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곳이 침대 밑일 것이다.
지갑을 들고 주변을 찾다가 냉장고에 눈이 멈춘다.
냉장고 뒤에 감추면 쉽게 찾지 못할 것이다.
지갑을 냉장고 뒤에 감춰 놓고 바지까지는 벗어 놓고 아줌마가 오기를 기다린다.
참, 아줌마에게 돈을 줘야 하는데 냉장고 뒤에서 지갑을 꺼내 준다면 쪽 팔릴 것 같다.
지갑을 다시 꺼내 10만원을 주머니에 넣고 지갑을 다시 냉장고 뒤에 넣는다.
이젠 준비가 다 되었나?
주변을 둘러보니 다시 지갑이 마음에 걸린다. 지갑도 없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준다는 것도 별로일 것 같다.
다시 지갑을 꺼내 지갑에 있는 현찰들을 냉장고 뒤에 숨기고 지갑에 10만원을 넣고는 주머니에 넣는다.
“딩동.”
벨이 울린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리가 떨린다.
문가로 다가가면서도 냉장고에 신경이 쓰인다.
아차, 지갑에 카드가 있는 것을 깜빡했다. 지갑을 훔쳐갖고 도망가면 카드는 어떻게 하나? 급하게 카드들을 꺼내어 그대로 냉장고 뒤에 던진다.
“딩동, 딩동.”
별이 다시 울린다.
문을 열자 거쿨진 여인이 얼굴이 다가 온다.
여인은 가방을 들고 마치 오래전부터 아는 사람을 만나듯이 스스럼없이 방으로 들어온다.
“커피 마실래요?”
여인이 가방을 놓으면서도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니.” 나는 대답하면서 여인의 뒤로 다가가 품에 안는다.
여인이 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망설여지고 두려웠는데 정작 오니깐 담이 머리를 드는 모양이다.
돈 내고 산 여인인데 내가 두려워하고 쪽 팔려야 할 이유가 없다고 술은 담을 만들어주고 있다.
“돈 먼저 주세요. 선불이거든요.”
여인은 손부터 내민다.
음식점 가도 먹고 나 결재하는 것이 상식인데 여인은 돈부터 줘야 하는 모양이다.
주머니에서 5만원짜리 두 장을 꺼내어 호기 있게 여인의 앞에 내민다.
냉장고에 다시 눈길이 간다.
참, 여자 앞에서 쪽 팔리지 않게 놀려면 몇 장 더 꺼내 보이면서 거기서 세여서 줘야 하는데 깜빡 했다.
“씻었어요?”
여인이 옷을 벗으면서 나를 쳐다본다.
“양.”
언제 씻었더라? 어제 퇴근해서 씻었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돈 주고 산 여인인데 시간을 아껴야 한다.
여인이 스스럼없는 옷 벗는 모습에 나도 그대로 옷을 벗어 던진다.
옷을 벗고 침대에 오르려니 여인이 전등을 꺼버린다.
순간적으로 주변이 어둠에 잠기고 손에 여인의 살결만 잡혀온다.
여인의 몸을 더듬으면서 입술을 더듬는다.
그런데 여인이 고개를 돌리면서 입술을 주지 않는다.
-돈을 줬는데 입술도 안줘?
다시 술기운이 찾아오면서 오기까지 더해주려고 한다.
여인의 머리카락을 잡아 억지로 고개를 돌리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여인은 완강하다. 손까지 내밀이서 얼굴을 밀어버린다.
“양치했어요?”
여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기어이이 입술을 향해 얼굴을 들이 밀었다.
“어휴, 냄새야.”
여인이 확 밀어버린다.
벽에 몸이 부딪친다.
미처 화가 나기도 전에 방에 다시 불이 들어온다.
“미치겠어.”
여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옷을 주어 입는다.
“왜 그래오?” 침대에 누운 채 옷을 주어 입는 여인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냄새나서 못하겠어요.”
바지까지 찾아 입는 여인을 보니 마침내 화가 난다. 돈 받고 몸 파는 신세에 냄새 타령을 해? 일어나서 뺨이라도 쳐주고 싶다.
하지만 생각처럼 몸은 움직여주지 않는다.
“여기 있어요.” 여인은 주머니에서 내가 준 돈을 침대에 던지고 도망간다.
골목에서 여인이 가듯이 도망치듯이 아니라 아예 도망친다.
냄새?
여인도 그 냄새가 싫어 다시 보자는 인사도 없이 도망갔을까?
일하는 사람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화가 난다.
돈 벌러 한국 와서 돈만 열심히 벌었는데 냄새가 난다고 몸 파는 아줌마, 그것도 교포 아줌마에게까지 천대를 받는다는 것이 화가 난다.
냉장고 뒤에 바로 숨지 못한 카드가 얼굴을 내밀고 키득거린다.
여인?
돈??
냄새???
돈?
여인??
냄새???
냄새?
돈??
여인???
머리를 수많은 벌레들이 헤집고 다닌다.
노후를 위해서 돈을 모았고 돈만 있으면 여인은 언제 건 있다고 자신했는데 냄새란 것의 앞에서 몸 파는 여인의 구박까지도 받아야 한다?
냄새?
회사에서 조선족들과 대화를 할 때면 항상 고개를 틀고 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식사가 끝나면 양치하고 껌을 질근질근 씹는 현수가 스멀스멀 기어온다.
한국인과 한국인 앞잡이와 조선족들과 여인과 아줌마들이 하나의 냄새가 되어 코로, 눈으로, 입으로 손으로, 발로 몸 전체로 기어들어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어지러운 머릿속에서 내 발 냄새와 입 냄새가 하나로 되면서 나만의 향으로 된다.
마침내 나는 침대 위에서 꾸역꾸역 향을 토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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