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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세계로 보는 지식의 계급적 이데올로기
본 카페지기 이재원의 글(2024.3.24.일요일.오후 3시부터 저녁까지 봄비가 옴)
인간의 권력에만 계급이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자 지식에도 계급이 있다. 노력하면 변할 수 있는 사다리형의 계층이 아니고 결코 변할 수 없는 신분적 계급이다. 지식의 근원적인 사고에는 기계론과 화학론과 목적론이 있고, 그에 대한 파생된 계급적 구조가 특권상층과 중간상층과 중간하층, 말단하층이 있다. 이는 계급적 태생으로 결코 바꿀 수 없다. 한번 상층이면 종신토론 상층이고, 한번 말단 하층이면 죽을 때까지 무조건 하층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돈은 벌 수 있어도 계급은 바꿀 수가 없다. 기계론과 화학론, 목적론은 프러시아 독일 철학자인 헤겔의 엔치클로페데인 철학강요에서 나온 말이다. 헤겔은 인류최고의 이론철학자이다.
계급론에 대한 증거로서 다음을 논하고자 한다.
먼저 중간계급에는 상층과 하층이 있는데 이에 대한 분석으로 절대다수처럼 보이는 중간의 중간층을 상정하고자 하는 유혹이 있을 수 있는데 이는 부질없는 발상이다. 중간계급에는 상층과 하층만이 DNA적으로 있을 뿐이며 결코 중간의 중간층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것은 지적으로 정해진 수순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뇌과학적 원인이다. 뇌과학자들이 정확하게 설명들을 하고 있다.
의사, 변호사, 교수, 정치인 등의 등급이 중간상층이라면, 중앙이나 지방 및 군인 등의 모든 직업공무원 및 초·중등 교사의 계층적 계급 이하들은 무조건 중간하층이다. 혹 운이 좋아 그가 아무리 권세가 있는 자리에 가거나 돈이 무척 많아도, 신분을 세탁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도 그는 중간하층이다. 지적인 수준이 아예 그렇다는 것이다. 지적수준에는 사고력과 인격과 품격이 있는데 지적수준과 사고력은 비례한다. 인격과 품격 또한 지적수준과 비례한다.
지적수준이 그의 의식주(衣食住)과 계급(階級), 후광(後光,aura) 등등 모든 것을 결정한다. 계급이 다르면 지적수준은 확연히 다르다. 그 간격은 결정적이고 이미 태생적이다. 신(神,God)의 은총(恩寵)으로 중간상층이나 중간하층이 노력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하더라도 그는 출신 그 이상의 지적 품계를 누릴 수가 없다. 이건 나의 작의적(作意的)인 언어가 아니다. 이미 스스로들 그대로 진행하고 있다. 지성의 원천인 지적계급으로 인하여, 계급간에는 건널 수 없는 격리의 강물이 비바람부는 격랑의 돌풍과 먹구름의 전복적 조류를 세차게 타고 길고 긴 긴바다처럼 크게 대해를 이루어 무시무시하게 가차 없이 아래 위로 요동을 치며 괴성의 질곡으로 가름 없이 내리곶으며 소용돌이치며 검푸른 황색으로 깊은 색조를 내며 줄줄이 엄동의 파도소리로 숨쉬며 괴이하게 성간 우주의 블랙홀의 지옥의 문처럼 깊은 나선을 그리며 끝을 끝내 알 수 없는 요단강을 휘저으며 흐른다.
하여튼 이유불문하고 중간상층의 최고봉은 대통령이고, 중간하층의 최고봉은 중앙의 1급 공무원급이나 군장성급이다. 이유는 특권상층은 결코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지위고하 모든 공무원들은 봉급생활자이기 때문에 역시 지배층이 아니다. 정년이 보장된 나라의 그냥 일꾼이다. 대통령도 임기 후엔 돈을 아무리 많이 숨겨놓아도 생계형 연금으로만 먹고 살아야 한다.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이다가는 그는 그의 모든 것을 잃고 바로 순간적으로 누구라도 그를 인격적 최하층으로 비하(卑下)할 수 있는 천(賤)하고 천한 하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결코 계급은 속일 수가 없다. 계급은 양이 아니고 질이기 때문이다. 이를 논리학에서는 추상적 동일성이라한다. 양은 그 아무리 많아도 동일률과 모순율에서 새로운 질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하든말든 한번 독수리는 영원한 독수리로 자신의 털을 아무리 많이 뽑아도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물론 사장으로부터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나 고용주로부터 일급을 받는 노동자들보다는 신분도 안정이 되고 하는 일도 보다 더 애국적이기 때문에 질적(質的)으로 고급이다. 별이 어깨에 빛나는 장성급도 유사시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가야하기 때문에 결코 특권상층이 할 짓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품삯을 받는 본질적으로 그냥 고용된 노예적(奴隸的) 머슴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농보다도 하층이다. 이때의 농(農)이란 대략 햇볕과 물 잘 드는 농지(農地)로 최하(最下) 3,000평 이상의 경제적 자급자족이 가능한 4인 가족 중심의 소농(小農)이상을 말한다. 농사를 힘써 짓기 때문에 빈약해 보이지만 그래도 계급적으로 따진다면 작은 유산자(有産者)로 중간상층에 해당된다. 왕족이든 귀족이든 농산물 구입비로 돈만 주고받으면 되는 그 누구와도 1대1로 상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고용(雇用)이나 피용(被用)된 봉급생활자나 월급생활자보다도 질적으로 상위계급이다. 신의 은총으로 거부가 된다면 그는 자신의 태생적 질에 맞는 생활을 높게 잡아서 무지무지하게 크게 번창해도 아무런 탈이 없다.
특권상층이 정치를 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가계의 영속적 부유와 강력한 신분유지가 무엇보다도 가장 우선하기 때문이다. 골육상쟁의 왕족이 아닌 귀족들이 하루에도 수시로 급변(急變)하는 정치를 하는 순간 언제 그 가족들이 통째로 노비나 노예로 전락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학은 학자들이 해도, 정치는 정치꾼들이 해야 한다. 특권상층인 이네들은 토지(土地)와 농노(農奴)를 기반으로 하는 장원(莊園)과 지속적 금전(金錢)만을 취급을 해야 자손대대로 그 신분과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고, 또 끼리끼리만 모이고 모여 혼인(婚姻) 등 내부경쟁을 하면서 살아가야한다. 막후(幕後)에서 A. Smith급의 고급 학자와 쓸모가 있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양성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정치주자(政治走者)가 직접 필요하다면 차남(次男)이나 삼남(三男) 등을 진출하게 한다면 크게 일거양득(一擧兩得)이다.
나의 경우 만 27세인 1982년 3월1일부터 2017년 8월말까지 35년 6개월 동안 중등 교직을 하면서 너무나 행복했다. 교직이란 고민이 필요 없는 직업이다. 막가는 노동현장도 아니고 고급지식으로 무장하거나 논문 등으로 경쟁을 할 필요도 전혀 없다. 무조건 철없이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직업이다. 교무실도 행복 가득이다. 모두 대졸로 선남선녀의 교사들로 충일(充溢)하고 학생들도 성인기 이전이라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모두가 넘치게 건강하다. 세상사에 무관심하여도 된다. 학부모들에게도 조그만 예의 있게 양보하고 신경 쓰면 교사들을 잘 대우해 준다. 문제가 있어본들 죄와 벌이 무성한 성인들의 약육강식의 작자생존에 비하면 찻잔 속의 살랑거리는 봄바람정도이다. 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는 자신의 임명독립교과를 중추로 하여 직무를 하기 때문에 학교장으로부터도 상당부문 독립된 준교육기관의 대우를 받아 자율적인 수준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리하여 국가에 무조건 필요한 미래의 인재를 양성·교육하는 교사라는 신분으로 국가의 강력하고 거의 철저한 보호를 받으며 이런 세계에서 나는 행복하게 지내왔다. 이제 내가 말하고자하는 것이 나온다. 정년인 2017년 8월이 되기 전에 갑자기 돈에 관심이 생겨 소액으로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주식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일과 후 퇴근도 빨리 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주식강좌를 한 학기 내내 듣고 또 들었다. 중학교라 야간자습도 없다. 어둠이 교정에 어둑어둑 내릴 때 경비실에 가서 경비하는 분께 인사를 드리고 교무실을 나서면 되는 것이다. 한 학기 내내 거의 매번 그렇게 했다. 교무실이 교과별로 층별로 나누어져 있어서 퇴근시각 후 혼자 공부하기엔 참 좋다. 그래도 간혹 같은 교무실에 있는 분이 일이 넘쳐 초과근무를 신청하여 일하는 분이 있는 날에는 그 분의 업무몰두(業務沒頭)를 위해 그냥 바로 퇴근을 했다.
주식강좌를 들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했다. 말만 대학을 나온 도덕교사이지 주식의 세계를 전혀 몰랐다. 사립학교에 근무할 적에 몇몇 교사가 주식을 하다가 엄청 손해 본 이야기를 몇 번 들었어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어릴 적부터 들어온 주식이나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의 영향일 것이다. 나의 조부인 경우 1905년도 생으로 일제강점기엔 경북대구에서 당시의 첨단거래상업인 지물(紙物)장사로 엄청 돈을 벌었고, 6·25사변 때는 대구시내에서 전당포를 운영하여 떼돈을 벌었다. 한마디로 집안에 돈이 넘쳐났다. 우리나라가 갑자기 해방이 되는 통에 일제강점시대 때의 조선화폐가 상자에 가득하게 방치되어있었다. 당시 온 나라가 극빈할 시에 남들이 모르는 나름의 엄청난 부자(富者)이었다. 한데 본질이 장사꾼이라 경제에 대한 사상과 철학이 너무나 빈곤하였다. 그냥 그대로 사농공상의 계급 가운데 말단이었다. 거부(巨富)치고는 머리가 텅 비어 있었다. 종전 후엔 작은 이익으로 경마에 재미를 붙여 이때다 싶어 매번 1등만 하는 우수한 경주마에 큰돈을 왕창 걸었다가 승부조작에 걸려 패가망신 급의 손실을 보았다. 그날 저녁에 저녁 수라를 드는데 손이 달달 떨려 밥을 겨우 먹었다고 하였다. 하여튼 당시 대구 동산동지역일대에서 유일한 2층 양옥집으로 그 동네 제일의 부자였다.
하지만 누가 고의(故意)로 소개한 미색의 첩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기 시작하여 서서히 몰락했다. 첩이 너무나 엄청난 미색이었고, 재산을 빼돌리는 수가 영악하여 조부가 전혀 눈치를 못 챘다. 조부와 첩, 둘 사이에서 소생(所生)한 자녀로 아들과 딸이 있는데 모두 자신의 어머니를 그대로 빼닮아 엄청 미남이고 미인이다. 그런데 외모는 자체발광의 스타급으로 준수한데 성장에 문제가 있는지 아쉽게도 성품이 외모를 따라가지 못했다. 또 말도 안 되는 일은 나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외손녀가 갑자기 혼자가 되어 친가와 외가 등으로 이리저리 방황을 할 적에도 방치하다시피 했다. 자신의 외손녀보다도 첩이 데려 온 딸 둘을 집에서 키우는 등 엄청 더 귀여워하였다. 진짜로 망하려고 하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의 백부는 부친이 사준 대구근교의 사과농장을 도박으로 탕진하고, 나의 아버지는 부친의 지원으로 경북고령에서 성냥공장을 운영하다가 뇌염에 걸려 반신불수가 되어 정신지체 장애자가 되었다. 공장도 망하고 자신도 극빈자로 몰락했다. 운이 나쁠 경우인 세태(世態)에 전혀 준비가 안된 빈천한 지적수준이었다. 정신이 박약(薄弱)한 보통 범인(凡人)들의 생물학적인 가족을 떠나 가정과 전통과 가문에 있어서, 세계를 누빌 특권상층이 될 수 있는 길을 목전에 두고 스스로 패망의 나락으로 간 케이스가 되었다. 하층계급이 양적인 돈은 벌 수 있어도 신분변동의 질적 상승은 실로 매우 난해한 것이다. 이는 신(神,God)의 도움이 있는 경우에만 겨우겨우 아슬아슬하게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신조(神助)로 극(極)히 가능한 것이다. 정신과 부(富,the Wealth)에 있어서 특권상층의 귀족적 가문이란 나라와 별개로 나라가 바뀌어도 그 가문의 부와 귀는 정신과 함께 그대로 자긍심 이상으로 자존심 높게 내·외적으로 살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일단 패망은 했지만 그래도 대도시 성가(聲價)의 거부의 경험이 있는 분이라 수습 후 다시 부(富)를 크게 일군 조부의 도움으로 나의 아버지는 부산 온천장에서 주택건축자재인 블록공장을 경영하여 실력 이상으로 돈도 벌었으나 부실하게 사업하여 망하는 자기 동생의 꾐에 빠져 사업재정연대보증을 서는 등 역시 패망의 수순을 밟았다. 한마디로 나의 숙부(叔父)가 반신불수(半身不隨)이고 정신지체 장애자인 친형의 돈을 다 빼간 것이다. 참고로 나의 숙부 역시 조부의 도움으로 부산 남포동에서 합판대리점을 하다가 나름 성공하여,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삼창합판'이라는 소규모 합판공장을 부산 감전동에서 경영하였다. 소규모라지만 부산에서는 동명합판, 성창합판 다음의 3위권 수준이었다. 조부의 도움으로 공장대지(工場垈地)인 땅도 쉽게 구입하고, 나름 박리다매(薄利多賣)로 선전했으나 판매경쟁에서 밀리는 와중(渦中)에 합판이 갑자기 사양산업(斜陽産業)이 되면서 급증하는 채무로 몰락했다. 채무(債務)로 망하면서 정신지체(精神遲滯)와 반신불수(半身不隨)인 나의 아버지의 재산을 노린 것이다. 하여튼 지적인 근본 수준이 콩가루 집안이었다.
내가 경남 밀양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밀양한학유지(密陽漢學有志)들이 공부하는 서당에서 매주 5일로 6년간 저녁마다 사서삼경 등 한문(漢文)을 배울 때 훈장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설해문자시간에 백부와 숙부의 차이를 한자로 분석하며 해석하여 주었다. 백부(伯父)는 조카를 위에서 자애의 사랑으로 내려다보고 숙부(叔父)는 조카를 등 뒤에서 몽둥이를 들고 노려보고 있다고 하였다. 역사가 증명하는 정확한 교훈이다. 예를 들면 나의 동생도 나와는 두 살 터울인데 자기 조카인 나의 아들을 처음 볼 적에 ‘네 이놈! 내가 바로 너의 삼촌이다.’라고 갈(喝)하였다. 태어난 지 돌도 안 지난 조카에게 숙부인 인간으로서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도 가족이었던 동생이 명실(名實) 공히 남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몽골한국인 특유의 뱀눈을 번뜩이며 거실에서 일인용 소파에 누워있는 조카에게 한 첫 말이었다.
하여튼 그 주식강좌를 들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전혀 모르고 선생을 한 것이다. 그것도 도덕 교사를 한 것이다. 도덕(동일 대상의 과학적 사고)과 윤리(동일 목적의 사상적 학문)는 느끼지만 보이지 않는 비매매(非賣買)의 정신 가치를 다루는 교과로 동일계열인 철학(동일성의 목적 보편성)과 대등한 분야로 그 깊이와 기본이 살아 움직이는 자국(自國)의 정치체제(政治體制)에서 나오는 정치철학의 시대적 현존 표상인 것이다. 특히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정부주도 교육에서는 직접적인 주요 이념교과로 그 농도가 심하다. 번영만을 해야 하는 한 나라의 교육으로 치면 그 나라 교육의 근본의 핵인 그 시대 교육철학의 실제지침서 교과인 것이다. 주식강좌를 보고 또 보면서 자유와 자본주의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했다. 내가 이렇게 무식하면서 교사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도 다 자유(自由)가 넘치는 자본주의(資本主義)의 덕분인 것이다. 더 핵심적으로 중요한 것은 내가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주식만 장기적으로 보존투자를 해서도 엄청난 일급(一級)의 부자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35년 6개월간 경제를 살펴보면서 주식을 성장주 위주로 투자만 했다면 나는 부산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망측한 것은 바로 다음 사진이다. 2009년 2월17일의 Satoshi Nakamoto의 Bitcoin에 대한 작은 논문이다. 2009년 2월이면 나의 정년 8년 6개월 전이다. 나는 그 8년 6개월 동안 어떤 교사에게서도 비트코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심지어 나는 2013년과 2014년엔 학교의 정보부장까지 역임했다. 정보부장이라면 교내의 정보망을 관리하면서 정보부장회의에도 몇 번 참석을 하곤 한다. 또 정보망관리 외부전문 업체의 설비기사까지 매주 2회 이상 만난다. 정보처리에 실력이 있는 기획교사의 주선으로 그 설비기사님을 모시고 저녁회식도 부산 해운대 고급식당에서 학교교비로 여러 번 했다. 정보망과 정보처리에 대한 이야기가 넘치는 그 자리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예 없었다. 학교마다 교무실에는 정보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도 한둘이 있다. 대개 명색이 국립대학교 사범대학 혹은 사립대학교 정보처리 관련학과 출신들이다. 이네들로부터도 들은 바가 없었다. 심지어 주식관련 유튜버에서도 비트코인에 대한 소개라도 본적이 없었다. 그냥 주식매매타이밍만 열심히 배운 셈이다.
그러다가 퇴직 후 2020년경에 신문지상에서 가상자산정보와 관련선전이 난무해서 비트코인을 알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관련 유튜버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그래도 무슨 소리인지 난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시작한 소액 주식투자만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이다. 주식투자의 매력은 엄청나다. 내가 잠들어 있어도 나의 주식은 자신의 이윤을 위하여 전 세계를 누비며 열심히 돈을 벌어오고 있다. 그래도 주식은 매년 분기별로 소폭 요동(搖動)을 치고 2년마다 중간급의 요동을 친다. 그리고 대개 10년에 한번 씩 급변의 대규모 요동을 치면 큰 가지치기를 사정없이 한다. 목돈인 경우 상장지수펀드인 ETF에 장기(長期)로 걸어놓으면 결국은 돈을 벌게끔 되어 있다. 그래서 큰돈을 복리이상 벌 수 있다. 복리의 혜택을 교원공제회에서도 본 적이 있지만 조직의 안전과 지속적 번영을 위하여 복리의 급승(急昇)을 대략 퇴직 2년 전에 보여 주곤 바로 퇴직으로 막(幕)을 내린다. 교묘하지만 정당한 수순이다. 그래도 1989년 이후의 장기회원으로서 나름 큰 이득을 봤다. 그 이전에도 1982년부터 6년간 밀양에서 교사로 있을 때도 소액이지만 교원공제회원으로 납입을 했다. 학교를 옮기면서 찾았는데 생각보다는 큰돈이었다. 그 돈으로 전셋집을 구하는데 보태었다.
하지만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식할 작은 돈으로도 10년만 행운수준급으로 운이 넘치게 잘하면 중소형 경(輕)비행기를 자가용으로 몰 수 있는 슈퍼리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어서 기라성(綺羅星) 같은 교무실의 그 수많은 선·후배 및 동기 교사들의 지적수준에 바로 큰 의심이 간다. 15시수 1학점짜리 교원정보처리연수를 갔는데 나는 들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보처리를 대학에서 배운 정보담당교사들이 주축이 된 연수라서 그런지 기초설명도 없이 진도를 강사가 막막 나갔다. 옆의 여교사 한 분께 저 강사님의 설명을 선생님은 이해가 가느냐고 물었다. 대학에서 다 배운 내용이고 일부만 신지식이라고 하였다. 아이고야 똑똑도 하시다. 그런데 미래정보를 위한다는 그 똑똑한 교사들의 정보관련 연수에서도 ‘거래의 자유’인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래도 출석을 열심히 한 덕분으로 수강학점은 받아왔다. 이미 2009년 2월17일부터 미국에서 점점이 다가오는 비트코인도 모르는 있는 대졸의 교사들! 2012년 이후엔 미국 서부에서는 마약하는 히프족도 사고파는 비트코인을 한국교육계의 지성계층인 교사들이 모르고 있었다. 나도 문제가 있다. 주식이나 투자를 배우려면 돈을 투자하여 시중(市中)의 전문도서로 배워야하는데 공짜로 인터넷으로만 알려고 하니 그게 바로 나의 실책이었다. 2017년경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비트코인관련서적이 시중에 나와 있었는데 나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교사는 물론 한국인 자체가 세계 글로벌 무대에서는 중간하층의 무리들이다. 일정의 여유소득(餘裕所得)과 가상자산에 대한 기본지식만 있고 적시(適時)를 노리는 뱀처럼 참을성만 있으면 그 누구라도 10년 안에 개인금융자산 5억불 이상의 세계 100위급 이내의 부호(富豪)로 수퍼리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실천지식혁명가 레닌(Lenin)시대의 트로츠키(1879.10.26.~1940.8.21.)의 명언이 생각난다. 그대는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전쟁이 그대에게 관심이 있다. 만인이 조용하고 행복하게 저녁의 명상에 잠겨 있어도 언덕 너머에 있는 전쟁의 회오리가 언제 일탈(逸脫)하여 그곳으로 갈지 모른다. 프러시아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그의 엔치클로페데의 철학강요에서 인류의 학문적 사고유형은 오로지 기계론과 화학론과 목적론뿐이다라고 하였다. 물질과 양태와 정신이다. 불변과 변화와 통일이다. 탈레스의 평등한 자유(自由)와 프로타고라스의 계급적 보수(保守)와 플라톤의 복지적 민주(民主)이다. 나는 이 중에서 프로타고라스의 화학론을 택한다. 인류의 목적? 그런 거는 없다. 있다면 오로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각자의 시대에 맞는 변화만이 신(神,God)과 자연, 아니면 자연과 인간 등의 이원적(二元的) 평행선으로만 끝없이 계속하여 펼쳐 있을 뿐이다. 발전이 아니라 변화일 뿐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헤겔이 전 독일시민을 상대로 본인도 모르는 말로 사기(詐欺)를 치고 있다고 말이다.
한국 제2의 도시 330만 부산시민과 100% 대졸 이상인 초·중등학교의 교원들!!! 세계사에서는 이들이 모조리 지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태생적 중간하층들이다. 그리고 라틴어 등은 고사하고 독·불의 학술어 원문해석은커녕 잡지(雜誌)나 신문에서조차도 알아주는 세계적 석학(碩學)이라곤 단 한 명도 없는 부산의 대학교수들도 잘해야 모조리 중간 하층의 2·3급 일꾼들이다. 이건 내가 부산에서 대학원 졸업 및 580시수급의 자격전공연수 등을 동아대나 부산대 등에서 다녀봐서도 안다. 1987년 8월엔 180시수의 도덕윤리 1급 정교사 자격연수도 서울대학교에서 한 달간 받았다. 그래도 대한민국 부산은 유라시아의 다뉴브 강 동쪽에서는 유일하게 자유가 넘치는 물류대항이고 그 관문(關門)이다. 또 무역거래(貿易去來)의 경제문화선진국(經濟文化先進國)이다. 동유럽 및 아시아 지도를 자세히 보면 여전히 국민들이 중세적 농노나 고대 노예의 정신적 수준들로 차있다. 우리 부산마저도 진정한 수준의 자유시민들은 대거(大擧)로는 없다고 봐야한다. 도시에서의 진정한 수준의 자유시민적 수준이란 몇몇의 자유지식인이 그 도시에서 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유를 체득할 수 있는 거주민들이 유권자마냥 많아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유라시아 최고급의 항만도시(港灣都市)인 부산에도 절대다수로 없으니, 다른 곳은 더 볼 필요도 없다. 정치학(政治學)은 정치인이 배우는 것이 아니다. 바로 유권자들이 배워야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을과 가족들을 위하여서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은 물론 모든 유라시안들을 통째로 바보 2급 이하 시민으로 만든 다음 소(小)논문에 대한 사진을 음미해주면 감사하겠다. 이 사진의 서막(序幕)은 프로타고라스가 기원전부터 그리스에서 제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갈망해온 지침으로 모든 인간은 각자가 만물의 척도(尺度)라며 귀족정치에 대항한 ‘나 개인의 직접적 차원의 거래의 자유’로 새로운 차원의 화폐론의 등장을 신의 계시(啓示)로 알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대(舞臺)에서 모습도 알리지 않고 바로 종멸(終滅)로 사라졌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들의 변화를 위한 신(神,God)의 은총(恩寵)이며 계시일 뿐이지, 뭐 시시하게 말장난인 자기반성의 거룩한 변증법적 세계인식의 자체 발전론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바라볼적에 한 개인이나 사람 그 자체로만 봐야지, 헤겔처럼 추상적인 인륜 속의 인간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루소적으로 국민적 자유주의를 아무리 강조해도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사람을 위한 보편적 철학이 아니고, 특정 목적을 위한 매우 위험한 주관적 사상이 된다는 것이다. 철학은 기계론적 객관성과 주관적 사상을 참조는 해도 그런 것들을 넘는 보편이 되어야 한다. 보편에 어떤 추상성이 들어 가는 순간, 헤겔의 논리, 변증법처럼 어떤 논자(論者)의 주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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