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1장 6.25 한국전쟁 그 무렵
12. Noblesse oblige
한국전쟁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동족상잔의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우선 중요한 것 몇 가지를 예로 든다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기록했고 피해 재산 또한 어떤 전란에 비해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을 줘왔다. 특히 20여 국가 이상이 참전하거나 관여한 전쟁이었다. 더구나 정전 70년 후까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크고 작은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 전쟁 한 복판에서 군번 없는 육사 생도, 소총 소대장, 중대장 대리로 참전하여 중상도 당하고 치욕의 인민군 포로가 되기도 했는가 하면 한편, 운 좋게 전공을 세워 첫 화랑무공훈장을 받아 한때 전쟁영웅 대접도 받았다. 따라서 한국전쟁은 나와 함께 영욕을 같이한 셈이다.
그래서 한국전쟁은 나에게 전투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하나둘도 아닌 여러 개가 70년 가까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 트라우마는 나를 괴롭히는 악마만은 아니었다. 그 괴롭힘 속에서 꿈틀거리는 문학의 소재가 지금도 노년의 나이답지 않게 정의 구현과 함께 문학 작품으로 살아내고 있다.
프랑스어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뜻한다. 이는 지도층 인사의 솔선수범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리키는 서구 선진국 사상의 기본이다.
정치와 경제가 안정된 서구 선진국은 전쟁이 발발하면 전선으로 앞장서서 출전하고 생활에서도 자신의 지위에 알맞은 품격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지도자를 많이 가지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지도자의 결정을 존중하고 자신 또한 국가에 대한 봉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까마득한 기원전 3세기 이야기지만 당시 로마인들은 신분이 높을수록 병역과 납세 등 국가적 의무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도덕률로 삼고 있었다.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는 카르타고의 한니발군이 이탈리아 반도에 침입하자 국정 최고 책임자인 집정관이 몸소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15년간 길고도 긴 항전 끝에 국난을 극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13명의 집정관이 전사한 것으로 로마의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층과 대비되는 정황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한국전쟁에 미군 장성 자제들은 139명이 참전했다. 그 가운데 35명이 전사 또는 전상을 당했다. 전사자 중에는 당시 미8군사령관 벤플리트 장군의 아들도 있다. 어디 미군뿐이랴, 적측 중공군총사령관 모택동의 아들도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도층 자제들은 교묘하게 이 전쟁을 피해갔다.
한국전쟁 초기 150여 명의 육사생도2기생 전원이 단기 교육을 받고 육군소위로 임관되어 전원이 전선 소대장으로 출진하는 과정에서 당시 이승만 정권의 실세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의 아들 원창희 소위만 부산역 헌병대장으로 발령, 전쟁 기피케 한 사연은 빙산에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장관을 비롯하여 국회의원 등 자제들은 모두 병역을 기피하였다. 심지어 한간에서는 전쟁터에서 죽어가면서 "빽!" 하고 죽었다는 일화는 당시의 사정을 극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빽이 없어 억울하게 죽어간다는 풍자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병역을 기피한 대통령은 세 명이 있다. 그들은 갖은 미사여구로 변명을 하고 있었지만 엄격한 잣대로 보면 병역 기피자들이다. 2021년 현재에도 병역 면제자들이 대권 도전에 나서고 있는 실정 또한 개탄스러운 현상이다.
지나간 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의 경우 전체 대상자 333명 중 24%가 병역을 면제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의 자제 362명 가운데 23%가 군에 가지 않아 병역 면제 비율이 일반 국민들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이렇듯 지도층 인사들의 왜곡된 처신이 2022년,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의 오늘, 개선되었을까?. 대답은 '아니다' 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정의 구현'의 일각에서라도 개선하는 일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착이 되었을 때 명실 공히 선진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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