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절의 안내도는 입구에 있어야 하지만 이곳은 안쪽의 "명상쉼터" 맞은쪽에 있다.
다시 수각(水閣)으로 가 보았다.
무량수각(無量水閣), 여의수각(如意水閣), 불수복천(佛水福泉), 복음수각(福飮水閣),등
앞 뒤로 많은 "현액"(縣額)들이 걸려있는 것이 특이하다.
"사천왕문"을 통해서 들어가는 길.
입구에서 보는 대웅전과 사리탑.
사리탑으로 가기 전에 좌측으로 "와불(臥佛)접견(接見)하는 곳"이란 표지가 있는 곳이 있다.
여기에서 계룡산을 보면 누워계신 부처님이 보이는데 나무가 무성해서 부처님 얼굴만 보인다.
"석가여래 진신사리 오층석탑"(釋迦如來 眞身舍利 五層石塔)
입구의 설명과 같이 근래에(1989년)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동농 김가진(東農 金嘉鎭 : 1846~1922)이 쓴 대웅전 현판.
대웅전 내부.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아미타불(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수행하는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이를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이라고 부른단다.
우측에는 고승(高僧)의 진영(眞影)이 있는데 함부로 들어가서 찍을 수가 없어 다른 분의 사진을 옮겨왔다.
대웅전 주련.(大雄殿 柱聯)
刹塵心念可數知 (찰진심념가수지)
세상 티끌 모두 세어 알 수 있고,
大海中水可飮盡(대해중수가음진)
마닷물 모두 마셔 없앨 수 있고,
虛空可量風加繫(허공가량풍가계)
허공을 헤아리고 바람을 붙잡아 맬 수는있어도
無能盡說佛功德(무능진설불공덕)
부처님 크신 공덕 이루 다 말할 수 없네.
대웅전 옆과 뒤에는 "심우도"가 있으나 뒤에는 잡동사니를 쌓아놔서 볼 수가 없다.
다른 절에서도 이런 경우를 많이 봐 왔는데 대웅전 뒤가 창고는 아니다.
이런 일은 없어야겠다.
대웅전 옆에는 오래된 백일홍나무 옆에 작은 "독성각"(獨聖閣)이 있다.
독성각 주련(獨聖閣 柱聯)
松巖隱跡經千劫(송암은적경천겁)
生界潛形入四維(생계잠형입사유)
隨緣赴感澄潭月(수연부감징담월)
空界循環濟有情(공계순환제유정)
소나무 바위에 자취 감추어 천겁을 지내고,
중생계 드러냄 없이 사방의 곳곳에 들어와,
감응은 인연을 따라 연못에 달빛이 내리듯,
허공과 세계를 돌고 돌면서 중생을 건지네.
독성각(獨聖閣)반대편으로는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이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막상 안을 들여다 보니 천수관음(千手觀音)이 아니고 양팔만 있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이다.
대신 뒤와 좌우에 많은 "관음보살"이 있다.
좌측에는 여의주를 쥐고 있는 해상용왕(海上龍王)이, 우측에는 합장을 하고 있는 남순동자(南巡童子)가 협시(挾侍)하고 있다.
화불(化佛)이 새겨진 보관(寶冠)을 쓴 관음보살(觀音菩薩)이 연꽃을 들고 있다.
"천수관음전 주련"(千手觀音殿 柱聯)
如是六德皆圓滿 (여시육덕개원만)
自在熾盛與端嚴 (자재치성여단엄)
塵點劫前早成佛 (진점겁전조성불)
爲度衆生現世間 (위도중생현세간)
嵬嵬悳相月輪滿 (외외덕상월륜만)
於三界中作導師 (어삼계중작도사)
이처럼 육덕이 두루 원만하시고
위광과 단정, 엄숙이 자재하시니
오랜 옛적 일찍이 성불하시고도
중생을 제도코자 세상에 오셨다네
높고높은 부처님 덕, 보름달 같은 환한 모습
삼계 중생 모두를 바른 길로 이끄시네.
"천수관음전"(千手觀音殿)앞 좌측에는 최근에 만들어진듯한 포대화상(布袋和尙)이 있다.
대웅전 앞 오층석탑앞에서 보면 "영원전"(靈源殿)이 있다.
영원전(靈源殿)은 명부전(冥府殿)과 같이하고 있는듯하다.
가운데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있고, 좌우에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脇侍)하고 있다.
"영원전"(靈源殿)은 충청 암행어사로 왔던 이중하(李重夏)가 썼다.
"이중하"(李重夏)는 어떤 사람인가.
1885년 백두산에서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지계"(土門江地界)를 심사하였다.
이때 청나라에서 조선의 주장을 거절하고 위협하자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국경은 줄일 수 없다.”며 끝내 양보하지 않은 사람이다.
한일 합방 당시에도 맹렬하게 반대를 했던 "청렴결백"한 분이다.
범종각 뒤에는 또 다른 수각(水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