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정절을 잃은 후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을 이르던 말‘이라
사전은 정의했다.
화냥년은 이를 빗대어 쓴 것이다.
난중에 구사일생으로 속환(贖還)되었던
환향녀들은 생환의 기쁨도 잠시,
이혼 문제에 부딪혀 가정 파탄은 물론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인조는 여론이 비등하자
홍제천에서 목욕재개하고 몸과 마음을 씻으면
행적을 묻어버리고,
그들의 정조를 거론 못하도록 하는 영을 내렸다.
이어 각 도마다 강을 정해 입욕토록 하여
그 행적을 용인하였다.
일부 사대부들은 제사를 받들 수 없다하여
강력히 반발했다.
반정의 토대 위에서 어부지리로
왕위에 오른 임금은 어릿광대일 수밖에 없었음이다.
민본사상(民本思想)이 근본인 유교사회는
그 본성을 잃고 사리사욕에 취했다.
권문세가들은 권위를 내세워 환향녀인
자식 이름자를 족보에서 영구히 지워 버렸다.
역사를 통해 다시 배운다.
그 것이 사리사욕에 취했을 때
그 악취가 더 심하다는 것을...
한문수/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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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수-깜빡 잊은 우리말
*한눌 이야기 깜박 잊은 우리말, 우리역사/ 환향녀(還鄕女)/ 어둠의 기억
한 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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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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