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와 백만송이 장미
김금래
조지아 주립대학과 문화예술 교류를 위해 조지아로 떠났다.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다. 바다냐 호수냐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카스피해가 궁금해 지도를 찾다 알게 된 나라가 조지아다.
카스피해는 이란, 러시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다섯 나라에 둘러싸여 있다. 카스피해의 비극은 세계 3위의 석유 매장량 때문이다. 호수라면 다섯 나라가 카스피해의 지하자원을 공평하게 나누게 되지만 바다라면 육지에서 12해리까지 자국 영해로 인정되기에 이해관계에 따라 주장이 엇갈리는 것이다.
짠맛을 지니며 한반도 2배의 넓이지만 내륙에 둘러싸여 호수 같은 카스피해! 석유에 혈안이 된 건 주변국뿐만이 아니다. 유전 탐사 개발에 참여한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나 우리나라를 포함한 관련 국가들의 이권이 개입된 카스피해는 바람 잘 날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바다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카스피해는 온난화로 점점 말라가고 있다. 독일 브레멘 대학 및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의 연구팀은 2100년이 되면 최악의 경우 카스피해 전체 면적의 1/3이 육지로 바뀔 수 있다고 한다. 만약 그리되면 주변국의 생태계는 물론 어업이나 해상 운송, 항구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것이다. 카스피해는 2018년 30년의 논쟁 끝에 ‘특수한 지위를 가진 바다’로 규정된다. 그러나 환경에 대해선 어떤 진지한 논의도 들려오지 않는 듯하다.
내가 카스피해를 직접 본 건 비행기에서였다. 누군가가 “카스피해다”라고 소리쳐 내려다보니 흰빛의 해안선이 날개를 편 듯 눈부셨다. 그것은 논쟁에 휘말린, 인간의 욕심으로 얼룩진 바다가 아니었다. 높은 곳에서 통째로 본 바다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지구를 품어 안은 어머니 같았다. 6000만 년 전, 대서양 태평양과 이어지던 카스피해! 한없이 작아진 나는 무한히 넓고 유구한 존재에 압도당했다. 울컥!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이 광경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행복했다. 콩팥 하나만 기증해도 평생 은인인데 눈 코 입 귀에, 팔다리 오장육부를 주신 부모님이 생각났다. 부모님 덕에 먹고 자고 여행을 하지만 고마운 줄 몰랐다. 바다에 무한한 빚을 지고도 석유마저 달라고 아우성치는 인간처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기적이었다. 방언이 터지듯 나는 비행기 창에 이마를 대고 울었다.
니코 피로스마니는 조지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 화가다. 가난했던 그는 공연 온 프랑스 여배우 마르가리타를 사랑해 집과 그림을 팔고 나중엔 피까지 팔아 날마다 꽃을 바쳤다고 한다. 그녀의 집과 뜰은 물론 거리까지 장미 향기가 흘러넘쳤지만 결국 여자는 떠나고 화가는 영양실조로 죽는다. 그가 그린 그녀의 모습은 조지아 시그나기 박물관에 있다. 그녀는 90이 되어서야 전시회를 찾아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사연을 배경으로 만든 노래가 ‘백만 송이 장미’다.
심수봉은 노래한다. 진실한 사랑을 할 때 꽃은 핀다고! 그러나 사랑을 받아들일 때 피는지도 모른다. 천만번 사랑해도 상대가 깨닫지 못하면 꽃은 피지 않을 테니까. 뒤늦은 나의 눈물로 먼 나라 부모님 뜰에 장미 한 송이 피어나길 빈다.
출처 : 한국4-H신문(http://www.4hnews.kr)
첫댓글 산문 원고, 고맙습니다.
사진은 바다독수리 같네요~ㅎ
트빌리시 거리에서 피로스마니 화집을 봤지요. 살까 망설이다가 짐이 부담스러워 그냥 뒀어요. 피로스마니 그림은 어두운 색조에 스며드는 듯 마음을 가라앉게 합디다. 이렇게 그를 다시 만나는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