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바라보는 절'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망해사를 다녀왔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던 느낌을 안고 찾았던 발길... 바닷가 어느 절벽 위에 작은 절이라는 상상.... 그러나 직접 찾아가 보았을 때 그 상상력이 너무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곳 망해사는 약간은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상상했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쓸쓸함...
이 절은 바로 바닷가에 있어 서해의 낙조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망해사란 절보다 서해의 낙조로 더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망해사 앞으로 섬 하나 없는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그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지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나 새만금사업으로 그 망망대해 바다는 사라지고 드넓은 담수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한낮에 찾아갔기에 낙조를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그대로 받았던 절이었다.
들어가는 입구에 벌써 가을을 알리는 낙엽길을 걸어볼 수 있었다. 왠지 쓸쓸한 가을이 시작됨을 알리려는 듯 뒹구는 낙엽이 눈에 들어왔다 또 절 앞에 있는 작은 종각이 있는 풍경과 바다가 그림 같다는데, 하필 가는 날에 그 종각을 새로 만들고 마무리하는 작업 중이었다. 종각 작업이 종일 이어진다고 하여 아쉽지만, 망해사 마당을 오래 서성였다. 또 망해사 뒷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었다 낙조대에 올라 그 주변을 바라보는 느낌이 아름다워 마음에 남은 가을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만경강 하류 서해에 접하여 멀리 고군산 열도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는 망해사는 오랜 역사에 걸맞지 않게 규모가 초라한 편이다 백제 때인 642년 (의자왕2)에 부설거사가 이곳에 와 사찰을 지어 수도한 것이 시초이다 그 뒤 중국 당나라 승려 중도법사가 중창하였으나 절터가 무너져 바다에 잠겼다 조선시대인 1589년(선조 22) 진묵대사가 망해사 낙서전(전북 문화재자료 제128호)을 세웠고 1933년 김정희 화상이 보광전과 칠성각을 중수했다 망해사 낙서전은 1933년과 1977년에 중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ㄱ 자형의 이 건물은 팔작지붕이며 앞으로 한 칸 나온 부분에는 마루가 놓여 있고, 그 뒤에 근래에 만든 종이 걸려있다 진봉산 고개 넘어 망망대해를 내려다보며 서 있어 이름 그대로 망해사이다. 묘화, 심월 등의 고승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이 가을, 계절이 뿌려놓은 빛이다 낙엽은.... 가슴으로 안겨오는 가을을 카메라에 얼른 담았다 조용히 불어오는 바람에 뺏길까 봐....
올가을 처음으로 낙엽을 밟았다 인적없는 망해사로 가는 길목에 낙엽이 누워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내 목덜미를 스쳐 가고, 누워있는 낙엽 위로 달려가는 바람을 만나며 절집으로 향하는 발길에 가을이 사그락 거렸다. 그냥 눈물 한 방울 찔끔거릴 만큼 쓸쓸함을 맛보며....
망해사로 내려가는 길목에 내려다보이는 새만금 담수호 풍경이 멋스럽다 이곳이 바다였다는데....
절 입구에서 만나는 부도가 있는 풍경도 쓸쓸한 가을을 연출하고....
정말 작고 아담한 절이다. 아마도 이 절이 크고 찬란했으면 어울리지 않을 풍경이었을 것이다.
망해사의 절 마당은 원래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팽나무 사이로 보이는 담수호 풍경이 나름 아름다운데 차츰 이런 풍경도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들고... 바다였다가... 담수호가 차츰 메워지고 있으므로....
그 오래전 번창했던 절은 그 터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바다에 절을 뺏기게 되었고 조선 중. 후기 연간 다시 조금씩 불사가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주불전인 극락전과, 낙서전, 요사채로 이루어진 작은 사찰의 모습으로 퇴락한 것이란다 바다를 바라보는 이런 공간에 거대한 사찰은 오히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지금의 모습이 더 아담하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
바닷가였을 때가 아름다웠을까? 작은 배롱나무 한그루 서 있고...
산신각에 올라 바라본 망해사 전경...
담 너머로 담아본 낙서전
낙서(樂西)는 서해 바다를 보는 즐거움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리라. 지금은 아쉽게도 새만금 방조제로 그 앞바다는 모래톱이 쌓여 또 다른 풍경이 되었지만 그 오래전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풍경은 일품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건물은 진묵대사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진묵은 이곳에서 많은 이적을 남겼으며 지금까지 그 일화들이 전해진다. 그 후 묘화(妙花), 심월(心月)대사가 수도했으며 1933년과 1977년에 두 차례 중수하였단다.
바람에 이끌려 풍경소리는 처량하고... 낙서전 앞 팽나무 사이로 보이는 담수호가 고즈넉한 운치를 더하고... 낙서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지만, 담 너머로 바라본 풍경 앞에 발길이 멈추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 내가 선 이 자리에 가을이 흘러 저 풍경으로 건너가는 느낌.... 그래 분명 가을이다.....
절 주변 나뭇잎이 떨어져 가을 냄새가 가득했다. 몇 채의 전각 사이로 펼쳐진 적당한 여백이 좋았고... 앞으로 펼쳐진 담수호 풍경이 나름 멋스러워 맘에 들었던 절이었다.
망해사를 돌아보고 돌아서 나오다가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는데, 주지 스님이 서 있는 풍경에 숨을 멈추게 하였다. '멈춤' ... 오늘 하루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멈춘 듯한... 이런 느낌이 가을이다.....
다시 낙엽길을 걸어 망해사 뒤로 난 산책길을 따라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로 향하는 길목에 애국지사 곽경렬 선생 추모비가 있어서 돌아보고... 이 추모비가 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라 적혀 있었다.
애국지사 곽경렬(1901~1968)선생은 1901년(고종28) 김제시 진봉면 남상마을에서 태어나 15세의 어린 나이에 박상진, 채기중등이 항일 비밀결사대인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이에 가담해 활동한 인물이며, 전라도의 친일부호를 처단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또 상해임시정부로 군자금을 보낸 사실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2년여의 모진 고문과 전주비방법원에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가 있는 풍경...
전망대에 오르면 저 멀리 펼쳐진 서해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새만금방조제로 하여금 그 바다는 사라지고 모래톱이 쌓인 담수호 풍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사방이 탁 트인 풍경이 정말 멋졌다.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는 마음이 시원해졌다 땅과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북쪽의 만경강과 남쪽의 동진강 사이에 전개된 광활한 평야가 김제평야다.
이곳 망해사 전망대는 우리나라에서 너른 들판이 펼쳐지는 지평선과 바다가 펼쳐진 수평선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바다가 메꿔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점차 메말라가는 느낌이 들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 담수호도 서서히 바다 모습을 잃어갈 것이라는....
오래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행하면서 자주 느끼는 바다 인간의 욕심은 무조건 새롭고, 거대하고, 대단하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채워가는 것은 아닐까? 이번 망해사를 돌아보고, 전망대에서 사방을 바라보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절 망해사가 바다를 잃어가는 망해사로 남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름다운 망해사의 낙조도 그 빛깔을 잃어가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
담수호를 오래 바라보다 만나게 된 풍경들...작은 배가 지나간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담수호에 고기를 잡으러 작은 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른 가을을 만나보고 싶었다
나는 올해도 역시 가을을 탈 모양이다. 여행하는 동안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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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내 영혼이 아름다운 날들... 원문보기 글쓴이: 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