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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을 받아서 주를 꼭 읽어보시라.
우리가 얼마나 앵글로색슨에 경도되어 있는지를 생각 할때이다.
일제와 미제를 벗어나는 사유, 달리 살기, 달리 말하기, 들뢰즈 표현으로 달리 되기이다.
부일자, 종일자를 친일파라 부르지 말자, 숭미파, 종미파를 친미파라 부르지 말자.
무한자비(아가페)는 인내하는 것이다. 아가페를 사랑이라 전도하는 자들을 사기꾼으로 보자.
에밀 브레이어 그 작업을 철학사 속에서 하고 있다. (57MLC)
제8장, 라이프니츠 Leibniz 202-239
1절 라이프니츠에 앞서 독일 철학 – La philosophie allemande avant Leibniz 202
일반과학의 새벽 또는 시작(Aurora seu initia scientiae generalis)이란 제목으로 된 소책자에서 라이프니츠는 나무조각들을 비벼서 불을 지피는 야만적이고 원초적인 실천을 불을 태양 광선에서 빌려오는 과학적 실천에 대립시키고 있다. “한편으로, 처음에 두텁고 토지의 물질, 그리고 열, 그리고 빛;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에 빛, 그리고 열. 결국 열에 의해 가장 단단한 물질들의 융합.” 소책자의 제목은 마치 불과 빛의 상징주의처럼, 야콥 뵈메(Jakob Böhme, 1575–1624)에게서 빌려온다. 여기서 우리는 데카르트와 말브랑쉬의 사유 세계와는 아주 다른 사유의 세계 속에 있게 된다. 사람들은 라이프니츠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들의 사유로부터 추상작업 할 수 없다. (202)
독일은 에크하르트(Eckhart, 1260경-1327경)와 쿠자누스(Nicolas de Cues, 1401-1464)와 더불어, 마치 라틴 국가들의 종교적 또는 관조적 신비주의에 대립되는 사변적 신비주의 나라로서, 우리에게 이미 알려졌다. 이 신비주의는 대중적 언어로 표현되며, 16세기 말에 발렌틴 바이겔(Valentin Weigel, 1533–1588)에 의해 대표된다. 그의 작품들은 1618년에 출판되었다. 그리고 17세기의 초에 뵈메(1575–1624)도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독일의 모든 신비가들 중에서, 최근 역사가에 의해 뵈메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뵈메가 탐구했던 것은 신지(la gnose)가 아니라, 구원이다. 인식은 단지 증가에 의해서만 주어졌을 것인데, 심지어 그는 이에 대해 크게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우선 구원되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구원의 문제가 제시되는 조건들이 그들을 형이상학적인 거대한 구축작업들로 이끌었다. 이 작업들 속에서 낭만주의자들이 나중에 자기들의 모델을 다룰 것이다. 왜냐하면 바이겔과 뵈메는 둘 다 신앙에 의한 구원에 대해. 말하자면 크리스트의 공덕들 위에 근거하는 구원에 대해 루터파의 주제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 구원은 우리에게 밖에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인간이 구원에 도달하는 것은 내밀하고 효과적인 변형에 의해 즉 진실한 새로 태어남[재탄생]에 의해서 이다. 이런 재탄생은 진실한 신지학을 구성하는 신의 표상과 인간적인 자연의 표상을 함축하고 있다. (203)
이런 신지학은 바이겔에게서 신이 원초적으로 행동 없이, 의지 없이, 인격성 없이 있다는 생각[관념]에, 그리고 신은 창조하면서 어느 정도 빛의 계시를 받고 자기의 모든 속성들을 드러낸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피조물은, 그것이 무를 포함하고 있는 한에서, 신으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그의 의지를 의지 자체에 굴복하게 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추락[타락]이며, 루시퍼의 즉 아담의 타락이며, 추락한 각 인간의 내부에 있는 진실한 지옥이다. 바이겔의 독창성은 상응하는 인식의 두 양태들의 묘사 속에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타락한 피조물의 상태이며, 다른 하나는 그의 기원(초자연적 인식)으로 끌려서 구원된 피조물의 상태이다. 첫째에서 대상(objet, Gegenwurf)은 그것을 아는 인간에 견주어서 수동적이다. “인식과 판단은 대상 속에 있지 않고, 오히려 자신 앞에 무엇이 있다고 판단하는 인간 속에 있다.” 외적 대상은 단지 이 판단의 기회이다.그러나“어떤 대상도 그 자체로 판단될 수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지혜도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초자연적 인식 속에 세계(l’univers)가 있다. 여기서 신이라는 대상은 전적으로 능동적이다. 그리고 인간은 침묵 속에서 기다리는 것 이외에 행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인식은 또한 내부에 있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 속에 있기 때문이며, 이런 인식은 단지 신이 그 자신으로부터 다루는 인식이며, 인간을 마치 기관처럼 이용하면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작동(l’acte)의 마지막 단계와 같다. 그 작동에서 신은 스스로 인식한다. 초자연적 인식은 존재의 변형작용(une transformation)이다. (203)
그 유명한 야콥 뵈메는 목사들의 전례대로 가고자 시도하는 대중 설교자도 아니고, 도처에서 경쟁하는 종파의 지도자도 아니다. 그 자신이 말하기를 “나는 기층의 인민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서 루자스(Lusace) 지방의 풍족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괴를리츠(Görlitz)에서 구둣가게 주인이 되었으며, 친구들로서는 파라켈수스(Paracelse, Paracelsus, 1493-1541)의 제자들인 의사들을 가졌으며 이들에게서 그는 과학을 빌려왔다. 그리고 친구들로서 지식있는 귀족들을 가졌다. 그는 “그의 재능, 그의 인식, 그의 경험을 보고하기 위하여” 글쓰기를 죽 이어갔으며, 어떠한 비판적 정신도 없고, 선전도 하지 않았다. (204)
뵈메의 출발점은 잘못[악]의 경험, 우울과 슬픔이다. 그는 그것에 대해 경건만큼이나 행복한 불경건을 보면서 그가 알았다. 그의 도착점은 “정신이 승리하는 환희”이며, 진실한 재탄생이다. 이것은 그에게 신의 의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또한 자신의 슬픔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빛계시를 따르는 것이다. (204)
이런 해방적 빛계시는, 이 계시가 학설을 정식화하는 것 이상의 학설을 암시한다. 그는 아주 습관적으로 관념들 속에서 보다 더 많은 이미지에서 표현된다고 한다. 성문경전의 열렬한 독자인 그는 이로부터 루터주의에서 매우 잘 전개되었던 많은 이미지들을, 그의 복수하고 파괴하는 불과 함께하는 구약경전의 성난 신을, 복음서에서 사랑의 신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는 또한 신비가들에게 표현할 수 없고, 감춰진 신을 인식한다. 연금술사들의 친구인 그는 고열처리에 의해 금속들의 금으로 변질작용의 탐구에서, 이런 순수화의 이미지를 본다. 이 순수화에 의해 타락된 영혼이 자기의 구원을 얻는다. (204)
이러한 이미지들에 젖어 있는 정신은 많은 다른 이미지 이후에 이런 주제에 관한 반성하기에 이른다. 바닥없는(sans fond, Ungrund) 심연, 영원한 온무(le Rien), 절대적 자유이라는 본질 없는 절대자, 구체적이고 인격적이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알고 창조하는 신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가? 바닥없음(l’Ungrund)과 더불어 스스로 드러내고,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계시하는 의지를 가정해야 한다.이러한 [자기] 표명의 조건들에 관하여, 뵈메는 조건들을 성난 신과 사랑의 신 사이에 동일성에 관해 성찰하면서 발견한다. 통합하는 사랑은 증오에게 승리함으로써만이 현존할 뿐이고, 빛은 물질을 파괴하고 흡수함으로써만이, 금은 불순한 요소들을 고열처리함으로써만이 현존할 뿐이다. 동일한 도식을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이미지들이 있으며, 그 도식으로부터 추상된 정식이 나온다. “예(oui)는 아니오(non)을 가정한다. 뵈메는 도식을 사용하는데, 신의 내적인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큼이나 신의 창조적 작동과 피조물들의 생명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지치지[싫증내지] 않는다. (204)
이 도식은 잘못의 문제 해결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창조된 세계는 신적 자연을 표현하기 때문인데, 세계 속에 모호한 바닥이, 충돌하는 힘들이, 이기적 욕망이 그러나 그 위에 승리하는 욕망이, 이기적 욕망을 정복하는 질서와 조화의 의지가 틀림없이 있다. 잘못은 정복되기 위해 만들어지며, 그런데 그것은 필연적으로 현존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에 이것과 다른 해결책이 대립된다. 그의 영혼의 바닥에서 모호한 욕망과 무질서를 갖고 있는 인간은 충만한 자유를 소유하고 있다. 한편 인간은 신을 모방할 수 있고, 욕망의 불을 정신의 빛에 종속 시킬 수 있다. 또는 다른 한편 인간은 무질서로 되는 힘들에게 승리를 넘길 수도 있는데, 그것은 구원자로서 신의 새로운 표출에 이르게 하는 타락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선의 필연적 조건으로서 잘못(악) 즉 자연 속에서 신의 성냄의 이미지 와인간에 의한 덧없고 우연적 악의 도입 사이에 근본적인 애매성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인간은 신의 이미지가 되도록 숙명적으로 주어졌기도 하고, 또한 신의 위격으로서 이미지의 특징들을 자유롭게 지워버렸다. 이런 애매성을 라이프니츠에게서도 19세기의 독일 형이상학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5) (57LMA)
2절 라이프니츠의 생애와 작품들. – Vie et oeuvres de Leibniz 205.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토마지우스(Thomasius, 1622-1684)와 더불어 옛 철학을 연구했고, 예나 대학에서 바이겔(Erhard Weigel, 1625–1699)과 함께 수학을, 알트도르프에서 법률학을 공부했다. [1666년경] 뉘른베르크에 머물면서 장미십자단에 가입했다. 1670년에, 쿠르마인쯔(L’électorat de Mayence, en all. Kurmainz) 선거후의 옛 개인 자문관이었던보이네부르크 남작(baron de Boyneburg, 1622-1672) 덕분에, 쇤보른(Jean-Philippe de Schönborn, en all. Johann Philipp von Schönborn, 1605-1673) 선거후의 최고 궁정의 자문관이 되었다. 1672년 파리에서 외교적 임무를 맡았다. 그는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오트만제국의 권력을 무너뜨리도록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에 제안하는 논문을 썼다.프랑스에 있으면서, 그는 아르노(Arnauld, 1612-1694)를 자주 만났고, 파스칼(Pascal, 1623-1662)의 수학적 작업들을 연구했다. 프랑스에 1676년까지 체류했다(단지 1673년에만 영국을 여행했는데. 거기서 보일(Robert Boyle, 1627-1691)과 수학자 올덴부르크(Oldenburg, c.1619–1677)를 만났다.) 1676년에 미분 계산을 발명했다(1665년부터, 뉴턴은 유율들의 방법을 사용했다). 1676년에 영국과 홀란드를(여기서 그는 스피노자(Spinoza, 1632-1677) 를 만났다) 거쳐서 그는 독일로 되돌아왔다. 요한 프리드리히(Johann Friedrich, 1625–1679) 하노버 공작의 사서였다가 자문관이 되었다. 그는 브룬슈빜(Brunswick) 가문의 역사를 기원들을 모으는데 그의 생애 일부를 썼다. 그리고 1701년에 브룬슈비크의 재산들의 기록물들: 유비적 용도에 따른(Scriptores rerum brunswicensium illustrationi inservientes)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학자들의 기록물들(Acta eruditorum, 1682)를 창설했다. 그리고 1700년에 베를린 과학들의 학회가 창설되어 첫 의장이 되었다. 이것을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1세(Frédéric I, 1657-1713)는 아카데미로 변형하게 된다. 그는 동방에 반대하여 크리스트교 민족들을 통합하는 그의 생각을 포기 하지 않았다. 루이 14세 주위에서 신임을 잃어서, 그는 스웨덴 왕인 칼 12세(Karl XII, 1682-1718)에게 조언했다. 그 후로, 1711년에 풀타바(Pultava, 현 우크라라이나 도시)에서 칼 12세는 러시아의 짜르 1세에게 패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비엔나에서 체류한다. 거기서 러시아 짜르 표트르 1세(Piotr Alekseïevitch Romanov, 1672-1725 재위: 1682-1725) 와 황제 레오폴드 1세(Léopold de Habsbourg, dit Léopold Ier, 1640-1705) 사이에 동맹을 결론 짓도록 시도하였다. 그는 1716년에 죽었다. (206)
1685년에 라이프니츠는 자기 철학을 구성했다. 이 시기에 앞서 저술들은, 즉 「조합의 기술(De Arte Combinatoria (Über die Kunst der Kombinatorik), fr. La Dissertatio de arte combinatoria 1666)」과 구체(현실) 운동과 추상운동(Theoria motus concreti et abstrati, Théorie du mouvement concret et du mouvement abstrait, 1671)은 개별적 실체에 대한 근본적 학설을 아직은 몰랐다. 그 학설의 완전한 진술은 형이상학 서설(Discours de métaphysique, 1686)로 나온다.
라이프니츠 작품은 수많은 작은 소논문들과 더불어 두터운 숲과 같다. 이 소논문들 각각은 체계의 전반적 진술을 거의 전적으로 다시 다루고 있다. 또한 전체 계획들과 더불어 같은 숲을 이루는 데, 보편과학의 계획, 인식의 백과사전적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회상들로 기록된 그의 모든 실천적 기획들과 더불어 마찬가지의 숲을 이루는 데, 종교와 정치, 크리스트교 민족들과 지상의 종교적 조직화 사이의 화해를 위해서이다. 또한 굉장히 풍부한 서신왕래를 보태어야 하는데, 그와 당대의 과학자들, 철학자들, 신학자들, 법률학자들 사이에서 서신들이다. 그리고 그의 노후에 나온 두 작품, 인간 오성 신론(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출판 1765)과 변신론(Théodicée, 원제Essais de Théodicée sur la bonté de Dieu, la liberté de l'homme et l'origine du mal, 1710-14)(프랑스어로)도 있는데, 전자는 1701에서 1709년 사이에 썼으며 1765년에야 출판되었으며, 이 저술에서 그는 로크의 시론을 구절 대 구절로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후자에서 그는 자신의 낙관주의를 진술하면서, 벨(Pierre Bayle, 1647-1706)의 역사와 비평(Dictionnaire Historique et Critique)의 로라리우스(Georg Rörer, lat. Georgius Rorarius, 1492-1557)의 항목 속에 있는 벨의 반대들을 참조하고 있다. (206)
이러한 작품들에서 그는 한편으로 로크의 경험주의에 반대하고 다른 한편 섭리를 옹호하는 신학자들 편에 선다. 이 작품들은 그의 체계의 진술들이 아니다. 그의 체계를 아주 간략하게 쓴 것들 속에서, 즉 아르노와 서신에 의해 채워지는 형이상학 서설(Discours de métaphysique, 1686), 실체들의 본성과 소통에 대한 새로운 체계(Système nouveau de la nature et de la communication des substances, 1695), 으젠 드 사브와(Eugène de Savoie, 1663-1736) 공의 청탁으로 쓴 단자론(Principes de la philosophie ou Monadologie, 1714) 등에서 찾아야 한다. (206) (57LMB)
3절 라이프니츠의 초기의 입장: 일반과학. - Position initiale de Leibniz: la science générale 206
만일 사람들은 그를 데카르트, 스피노자, 말브랑쉬에 비교한다면, 사람들은 연이어서 그들에게 나타나는 특징들을 본다. 그들처럼 라이프니츠도 수학자이며, 그들처럼 그도 역학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연이어서 대조들이 나타난다. 이 수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원리들을 발견하고, 그는 원리들로부터 형이상학을 끌어낼 것이다. 이 역학자는 스콜라철학의 실체적 형상들을 그리고 물리학에서 목적인의 사용을 재확립한다. 그러나 특히 사유의 박자(리듬)은 다르다. 데카르트는 철학의 질서를 뒤엎었는데, 반성에 의한 신과 자기자신의 인식에 관하여 물리학의 명증성을 토대로 하면서 이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를 넘어서 전통적 질서로 되돌아온다. 사람들은, 진실에 속하는 인식 이론인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에 응답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그[라이프니츠]에게서 헛되이 찾을 것이다. 반대로 그가 형이상학과 신에게 도달하는 것은 물질과 기계주의에서 출발하면서 이다. 또한 문제들이 이전되었다. 데카르트에게서 예비적인 것이 라이프니츠에게서는 마지막이 된다.그가 말하기를 “우리 관념들의 기원의 문제는 철학에서 예비적이 아니다. 그래서 잘 해결하기 위하여 거대한 진행을 실행해야만 한다. (207)
또한 아마도 특히 (왜냐하면 그것이 거기에서 그의 출발점이자 그의 완고한 생각이기 때문인데) 라이프니츠는 한 덩어리(bloc)를 생각하고 그리고 철학의 부분들을 마치 동시적인 것들처럼 생각한다. 데카르트에게서 부분들은 서로서로 지배하고 있다. 연구된 물질이 어떤 것일 지라도 이 부분들 전체는 증명작업을 인정한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이런 증명 작업들을 기하학에서 뿐만 아니라 논리학에서, 형이상학에서(특히 플라톤과 신학자들에게서), 그리고 도덕론에서(특히 법률학에서)도 좋은 형식으로 만난다. 라이프니츠는 에르하르트 바이겔(Erhard Weigel, 1625–1699)의 노력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바이겔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론들에서 유클리트의 방법의 사용을(1658) 제시했고, 유크리드 윤리학(Ethica euclidea)를 썼으며, 라이프니츠는 토마지우스에게 편지 속에서(1663) 이를 인용한다. 그 자신은 다. 그는 초기 논문들 중의 하나인 「조합의 기술1666)」에서, 조합들의 다양한 정리들을 증명한 후에서 과학들의 전체 세계에서, 특히 논리학에서, 또한 법률학에서, 이것[조합]들의 사용을 보게 하려고 애쓴다. (207)
따라서 수학들은 증명작업 기술의 적용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증명기술은 많은 다른 주제들에로 확장될 수 있다. 그의 꿈들 중의 하나는, 보편 기호(caractéristique universelle) 불렀던 일반적 상징(수학적 기호)에게 자기의 재량권을 갖고서 일반과학(une science générale)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 보편 기호는 모든 문제[재료]에서 상징주의 역을 수학적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문제[질문]에서 “토론하자” 대신에 “계산하자”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만일 우리가, 내가 과학을 생각했던 대로, 이 과학을 가졌다면, 우리는 형이상학적으로 그리고 도덕론적으로 추리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그 기호들이 이런 문제들에서 너무나 모호하고 너무나 가변적인 우리 사유를 고정시킬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사유에서 상상작용은 우리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1677)” 이 과학은 데카르트의 이상과 아주 다른 이상을 갖는다. 우리는 과학의 출발점과 그 과정에서 데카르트의 이상을 과학이라고 고려했을 것이다. 과학을 위해 증명하는 것, 그것은 주어진 명제들을 주어가 속성과 같은 것인 동일한 명제들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환원은 명제들 사이에 들어가는 용어들이, 이런 동일성을 명증하게 하기 위하여, 이것들로 조성되어 있는 단순한 요소들 안에서 분석될 수 있는 경우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또한 사람들이 이 요소들을 위하여 상징들을 선택하는 경우에서만 가능한데, 조성된 용어는 단순한 것들의 용어들과 같은 상징들로부터 필연적으로 연역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추론은 단지 특성들[기호들]의 연결 또는 대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대체는 어떤 등치(équipollence)로부터 태어난다. 따라서 그것은 특성들[기호들]의 조합이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1+2=3을 엄격하게 증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서 수적인 상징들이 단순한 1과 +(더하기)의 용어들로부터 정의된 전적으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명증한 명제들로부터 출발하기를 권장하면서도, 목표에 전혀 도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명증성은 정신들에 따라서 주관적이고 변할 수 있는, 그리고 공상괴물만을 생산할 수 있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대부분의 시간에, 분석에 필요할 것 같은 용어들에, 또한 너비와 같은 용어들에 멈추었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방법에 충분히 엄격할 정도는 아니었다. 데카르트가 효과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게 했던 방법을, 라이프니츠는 그 방법이 기하학에서 그의 장점으로까지 여기지만 생산력이 없는 것 은 것들이라고 의심하였다. 그 작품에서 데카르트는, 라이프니츠가 무한소 계산에 의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인간의 정신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라이프니츠는 반대로 생각했다. 그의 환원적 분석과 그의 조합계산(une combinatoire)은 “발명과 판단에 쓰여야만 하는” 상징들을 사용한다. 만일 새로운 용어들이, 마치 사람들이 수학적 분석에서 그렇다고 보는 것처럼, 이미 획득된 용어들의 조합들(de combinaisons)일 뿐이라는 것이 진실이라면 말이다. 결국 이런 방법의 가장 큰 장점들 중의 하나는, 라이프니츠의 눈에는, 심의(une délibération, 깊은 숙고)에서 장점들과 감점들의 무게를 다는 것이고 또한 개연성들을 추정하는 것이다. (208)
따라서 라이프니츠의 초기의 입장은 데카르트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더 가깝다. 그는 인간 정신이 진리에 - 또는 의심에, 명증성의 반성 등등에 - 도달하는 자유로운 정신적 진행방식을 서술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명제에서 다른 명제로 이행하게 하는 정신을 강하게 하는 필연적인 관계들을 규정하려고 애썼다. 그에게는 철학적인 모든 기획을 무로 만들기에 충분한 데카르트의 의심보다 더 반감을 가지게 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제시되면, 그것을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신의 현존이 아니었다.” 특히 인간의 오류가능성은 [원]죄에 기인한다면 말이다. 동일하게 되어 있는 명제들의 해결은 어떠한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제들과 공리들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즉시 정신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은 왜냐하면 그것들이 무한한 경험들에 의해 증빙되기 때문인 한에서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증명했던 것은 과학의 완전성에 중요하다.” 라이프니츠는 논리계산(logistique, 명제계산)과 비유클리드 기하학들에로 이끄는 길 위에 있었다. 이 학문들은 19세기에 전제들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으로부터 태어날 것이다. (209)
따라서 라이프니츠의 조합론(La combinatoire)은 본질적인 것을 위하여 가능한 모든 연결들을, 말하자면 주어진 초기의 항들 사이에 무모순적 연결들을 형성하는데 있다. 사람들은 이리하여 있는 그대로의 개념의 실재성을 선천적으로(apriori) 증거 한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대부분의 시간에는 인간 정신에 접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정신]은, 만일 수의 용어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떠한 용어가 아니다. 우리는 그 용어에 대해 분석에 의해 마지막 필요조건들(les derniers réquisits)을 규정하기에 도달할 수 있다. 관념의 명석과 판면은 충분하지 않다. 관념이 명석해야(claire)할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한 관념이 다른 관념(마치 색깔과 같은)과 혼동될 가능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관념이 판명해야(distincte)하며, 말하자면 우리는 특성들에 대한 명석한 인식을 갖듯이 판명해야 하며, 판명한 인식에 의해 관념은 다른 관념들(마치 너비가 사유와 연관해서)과 구별된다.또한 관념이 적합해야(adéquat) 하는데,말하자면 특성들 그 자체들은 그것들의 마지막 요소들로 분석되어야 한다. (209)
선천적(a priori) 방법이 없다면, 한 개념의 가능성은 경험에 의해서 후천적으로(a posteriori) 증거된다. 심지어 과학들 중에서 가장 명석한 과학에서, 즉 수들의 과학에서, 우리는 거기서 우리를 멈추게 하도록 종종 강요된다. 라이프니츠는 예를 들어 소수(素數)들에 관하여[정수론에 관하여] 페르마(Fermat, 1607-1665)의 정리를 인용한다. 사람들은, 시도하였다면 증명되었겠지만 그러나 증명되지 않았던(1736년에 오일러(Euler, 1707-1783)에 의해 증명되는데), 그것을 구체적인 모든 증거들에서 검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자료들에는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데 이용할 경험들을 교육하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209) (57LMC)
4절 무한주의 – L’infinitisme 210
개념들의 논리학은 전통적으로 유한주의에 연결되어 있다. 유한주의란, 류들로부터 형성되고 한정된 수로 차이를 지닌 종들로 고정된 수이다. 종에서 유한한 세계이며, 종들이 개체들의 변화 속에서 고정된 채 있는 방식으로 구성된 세계가 있다. 그것은 그 틀 속에 들어가는데, 실재성 속에서, 거부되지 않는 모든 것이다. 연속되고 무한한 개채성은 마치 질서의 배제로서 그리고 무질서의 알 수 없는 원리에 의존하는 것으로서 고려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 수학과 자연학의 모든 영역들에서 사유를 물들게 한 무한주의와 더불어 보편자들의 논리학이 동시에 무너졌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정열적인 무한주의자이다. 정의된 모든 용어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무한을 감싸지 않는 용어는 모두다 추상적이고 불충만한 용어이다. 다 길어 올릴 수 없는(inexhaustible, 무진장한) 것만이 실재적인 것이다.이러한 조건들에서 어떻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정신에, 그리고 어떤 점에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의 정신에, 충실할 수 있고 충실하게 남아있을 수 있는가? 논리학과 자연학은 본질적으로 유한주의와 같은데 말이다. 그가 매우 자주 사용하는 표현, 즉 무한히 분석(analyse de l‘infini)은 그에게서는 철학의 두 국면들의 본질적인 통합(l‘union)을 제시한다. 그 통합은 실재적인 것과 연관있는 한에서 알 수 있는 것 속에 침투하기 위하여 분석적 통합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츠의 기획은 무한의 논리학을 창조하는데 있다. 이에 대한 그의 모든 학설들, 즉 수학, 물리학, 형이상학, 신학, 도덕학은 다양한 국면들일 뿐이다. (210)
기하학적으로 무한의 분석은 불가능한 것 같다. 왜냐하면 기하학적 연속의 정의자체에 의해, 사람들은 요소들의 합이 연속을 재생산하리라는 하는 그 요소들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이유에서 사람들은 주어진 양보다 더 작은 양을, 게다가 그 양이 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생각할 수 있다. 이 무한히 작은 것(infiniment petit, 무한소)은 카발리에리(Cavalieri, 1598–1647)의 나눌 수 없는 것(l’indivisible)과 매우 다르다. 왜냐하면 이것[후자]은 유한한 크기와 동질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발리에리는 선을 마치 점들의 무한한 합처럼, 표면은 마치 선들의 무한한 합처 럼, 등등으로 생각한다. 반대로 라이프니츠에게서 선으로부터 무한히 작은 것은 무한소의 선[미분된 선]이다. 이때에 라이프니츠는 곡선들 위에 파스칼이 만들어놓은 부수적 표시(une remarque incidente)를 이용할 수 있다. 이 표시는 공간의 동질성에 근거한다. 그 성질에 따라서, 그것이 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주어진 도형과 비슷한 도형을 상상할 수 있다. 따라서 두 직선 사이의 연관(le rapport)은 직선들의 절대적 차원에 독립적이고, 연관은 동일한 것(le même)으로 남을 수 있으며, 이때는 직선들이 무한히 작게 될 때이다. 그런데 이 연관은 곡선이 이것[곡선]의 점들 중의 한 점으로 있는 방향은 이 연관의 규정작업에 오로지 의존하며, [이때는] 이 선들이 무한히 작을 때이다. 따라서 이 연관은 부득이한 경우에 무한의 분석을 허용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 연관 덕분에, 사람들이 [다음에] 원하려고 하는 점에서 곡선의 방향(말하자면 곡선의 접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의 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 상대적으로 얼마나 새로운 지를 보는 것은 너무 쉽다. 이 논리학은 이미 주어진 개념들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논리학은 그 다음으로 개념들의 연관들을 고찰한다. 왜냐하면 이 개념들이 요소들의 무한한 수들로 조성되어 있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학은 반대로 무한한 항들(곡선의 점들)의 생성인 연관으로부터 출발한다. (211)
라이프니츠의 철학 전체는 각 물음에서 일종의 연산(un algorithme)의 발견인데, 이 연산은 고칠 것은 고치고(mutatis mutandis)면서 무한 계산 속에서 무한소의 연산을 역할을 하는 것이다. (211)
역학에서, 힘의 보존의 법칙은 물체의 세계에 대해 기계적인 무한정한 변화의 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형이상학에서 개별적 실체의 용어는 그 실체의 변화의 일련의 법칙일 뿐이다. 예정 조화는 개별적 실체들 그 자체들 사이에서 일련의 변화들의 연관이 연결의 법칙이다. 신학에서 신적 속성들 중에서, 오성은 본질의 법칙과 같고, 의지 또는 최상의 선택은 현존의 법칙이며, 권능(puissance)은 본질에서 현존의 이행의 법칙과 같다. 이 모든 용어들은, 국면(aspect)과 기원이 매우 다르다고 할지라도, 무한소 계산이 기하학에서 기여하는 가지성(알 수 있음)을 도처에서 도입하는 역할을 한다. 각 경우에서 하나의 용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용어의 풍부성은 무궁무진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임의적인 방식으로 점들을 표면 위에다가 분배하는 것과 같다. 만일 사람들이 이 점들을 연속적 이음선에 의해 연결한다면, 방정식은 이점들의 분배의 법칙을 부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는 라이프니츠 사유의 전체를 관통하여 달리는 사유를 솟아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진리가 도출되는 법칙이 없다면 무한한 진리는 결코 없다. (211)
라이프니츠의 가장 유명한 학설들은, 동력학, 그의 생명의 이론, 그의 자유와 생명의 이론 등이다. 이 학설들은 유일한 사유의 파생 학설들이다. 이 사유 없이는 학설들이 아주 뒤틀리는 국면을 소개하는 위험에 가끔은 처하기도 한다. 게다가 만일 이 용어들이 동일한 사유의 열매이라면, 용어들이 이어지는 체계 속에서 병합된다고 믿지 않아야 했을 것이다. 한 체계 속에서 용어들을 서로 서로 연결하고 또한 용어들을 서로 서로 연역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그의 동역학과 실체의 이론 사이에, 사람들이 모나드의 용어를 힘의 용어의 파생물처럼 고려하면서 거기에서 가끔 보듯이, 연결점이 없다. 진실로 두 용어들의 각각은 독립적인 고려들 속에서 각자의 기원을 갖는다. 비록 동일한 사유에 복종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것들을 이것들의 체계의 정교화를 과장함이 없이 차례로 연구해보자. (212)
이 용어들의 (일종의 연산 용어들의) 공통 특성은, 데카르트의 명석 판명한 관념들과는 달라서, 이 용어들이 직관의 대상이 전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사물의 진실한 보편적 두 원리들의 분석에 의해 끌어낸 결론들로서 소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데카르트주의자들이 이 원리들의 생식능력을 부정하는 잘못을 범했다는 것이다. 이 두 거대한 원리는 동일성의 원리(le principe d’identité)와 충분이유율의 원리(le principe de raison suffisante)이다. 전자에서 A는 A이다, 여기에서 A는 어떤 항이다. 후자에서, 모든 사물에는 이유(raison)가 있다. 그 이유 때문에 사물은 달리가 오히려 이렇게 있다. 또는 원인은 결과와 동등하다. 또는 며, 또는 자기에 의해 알려지지 않는 모든 진실한 명제는 선천적으로(a priori) 증거를 받아들인다. 여기에 연속성의 원리(le principe de continuité)를 첨가해야 한다. 이 원리는 다양성이 어떤 것이든 간에 실재적인 다양성에 공통하는 성질을 진술한다. 즉 자연은 도약들(sauts)을 행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물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무한한 매개들이 없이는 통과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주목할 만한 무엇은 그것이 아닌 부분들에 의해 조성되어야(composer)만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단번에 태어하게 하지 못하는데, 사유에서도 운동에서도 태어나게 하지 못한다. 따라서 실재성은 마치 우리가 다 길어올릴 수 없는 부분들의 연속성처럼, 항상 우리에게 폭로된다. (212) (57LMF)
5절 정역학[기계론]과 동력학[역동론] – Mécanisme et Dynamisme 212
라이프니츠는 매우 일찍부터 충만(plein)의 기계론자이자 그 찬성자였으며, 항상 그렇게 남아있었다. 1669년[스물셋]부터 그는 근대인들의 견해를 “마치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접근하는 견해”처럼 또한 마치 가장 잘 받아들이는 견해처럼 고려했다. 근대인들은 모든 현상들을 크기, 도형, 운동에 의해 설명하고 있었다. 1670년[스물넷]에 그는 자신의 추상 운동의 이론(Theoria motus abstrati)(Théorie du mouvement abstait)에서 기계론을진술했는데, 그 기계론에서 홉스(1588-1679)에게서 빌려온 코나투스(conatus, 말하자면 무한히 작은 운동)는 가장 중요한 것(au premier plan 제1평면)에 속한다. 보다 나중에서 어떻게 운동이 충만 속에서 충력에 의해 이동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는 고체인 물체들이 흐름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고 상상해야만 했다. 그 흐름[액체]은 물체들에 저항으로 대립되지 않고 고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만 흐르는 것이다.그리고 이 흐름은 흐름 그 자체보다 더 섬세한 흐름 속에서 헤엄치는 굳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무한히 계속되어, 흐름들의 섬세성은 어떠한 한계도 가지 않는다. 그러한 기계론은 데카르트에서와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에게서 동일한 이유들 때문에, 갈릴레이, 파스칼, 뉴턴의 의미에서, 모든 수학적 물리학을 불가능하게 한다. 반면에 유율들의 계산은 뉴턴에게 언어를 제공하며, 그의 물리학은 언어를 필요로 한다. 라이프니츠는 그의 무한소 계산을 자연의 법칙들을 표현하기 위해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213)
그럼에도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의 물리학에 대해 거대한 비난들을 행했다. 이 비난들은 그 밑바탕에서 단 하나로 환원된다. 데카르트에 의해서 인정된 원리들, 실체의 너비, 운동의 보존, 운동보존으로부터 파생된 자연의 법칙들, 이것들은 어느 정도에서도 무한히 다양한 사물들의 이유(raison,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통일성(l’unité, 단위)의 원리들이 아니다. 우선 너비(l’étendue)를 보자, 너비는 실체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둠에 의해 존재, 그리고 이런 류적 존재 전체는 단순한 존재들을 가정하며, 이런 류적 존재는 단순한 존재들의 실재성을 유지하며, 따라서 류적 존재는 존재들의 전체가 결코 아니다. 만일 류적 존재가 조성하는 각각의 존재는 아직 모둠에 의한 존재일 뿐일지라도 말이다.” 너비의 경우라는 것은 무한히 나누어질 수 있다. 따라서 “너비이거나 또는 연속적인 어떤 것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물체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여기[연속적인 어떤 것] 물체 자체 속에서 이다. 여기의 반복은(그것이 어떤 것일 지라도) 외연(l’extension)이다.” 외연은 빈 것[허공]과 다르지 않다.따라서 외연은 저항의 근거(raison, 이유)도 운동성의 근거도 포함하지 있지 않다. 외연은 다양성을, 즉 다양성을 채우고 있는 사물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운동에 관해서이다. 시간에서도 아니듯이 “운동도 현존하지 않으며, 이때 운동은 자기의 공현존하는 부분을 갖지 않는다.” 운동의 보존 법칙은 이유의 원리[이유율], 즉 효과의 적합한 원인(causa adoequat effectum)에 상처를 입힌다. 그 법칙은 운동이 힘을 측정한다고 잘 못 가정한다. 왜냐하면 4미터 떨어진 책의 무게는, 1미터 떨어진 4킬로의 무게와 동일한 힘을 분명하게 획득한다. 그런데 갈릴레이의 법칙들에 따르면, 전자운동이 후자운동의 연관이 마치 2가 4에 속하는 연관처럼 계산하는 것은 쉽다.사람들은 두 무게 속에 동일한 것이 속도의 자승에 의해 덩어리의 생산물이라는 것(mv2)을, 이리하여 힘이 데카르트에 의해 탐구되었던 진실한 상수라는 것을, 그래도 쉽게 계산한다. 그의 충돌의 법칙들은 법칙들의 순서대로 연속성의 원리에 반대이다. 우선 왜냐하면 데카르트는 충돌에서 양에서든지, 이것들의 만남의 순간에 물체들의 운동 방향에서든지, 순간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을 자주 가정했기 때문이다. 연속성의 원리는, 자연 속에서는 탄성있는 물체들이 있을 수 있다고 변화를 예고했어야 했을 것이다. 만일 탄성있는 물체들이 예를 들어 다른 물체와 만남에서 솟아난다면, 그것들은 그것들의 운동을 점진적으로 상실하며(그러기 위해 그것들의 힘을 상실함이 없이). 그리고 그것들의 부분들의 내적 동요에 기인하는 그것들의 탄성 덕분에 가정된 방향에서 운동을 새로이 다시 획득한다. 따라서 탄성(l’élaticité)은 각 물체에게 내재하며 내생적인 힘을 표현하며, 각 물체의 내적 힘은 외적 물체들에 의해 작용 양태 속에서 규정되지만, 물체들에 의해 전혀 생산되지 않는다. 따라서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가 요소들이라고 하는 완전하게 동질적 물체들을 인정할 수 없고, 게다가 원자들을 인정할 수도 없다. 탄성의 현존과 내적 힘들의 현존은 물체들의 무한히 현실적인 분할가능성을 가정하는데, 이 물체들은 이리하여 어떠한 정확한 도형도 어떠한 멈춰진[부동의] 도형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자연 속에, 그것이 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훨씬 더 작은 부분들로 조성되지(composer) 않는 물질의 어떠한 부분도 없다.그것의 각 부분은 연속적인 동요 속에 있다.한 물체는, 크기와 도형에 의해서가 아니라 물체가 드러내는 내적인 힘에 의해서, 다른 물체와 다르다. (214)
데카르트는 그의 규칙들의 세부사항 속에서, 연속성의 원리를 그래도 오해했다. 연속성의 원리가, 자료들 사이의 차이가 매우 작게 되었을 때, 결과들 사이의 차이가 또한 매우 작을 것이리라 보았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동일한 덩어리[질량]이며 동일한 속도의 B와 C라는 두 물체가 서로 마주친다면, 이것들은 각각 동일한 속도로 다시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B가 C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의 적은 양으로 더 크다면, 그것의 방향은 동일한 채 남아야만 한다. (214)
이런 귀결로서 만일 모든 것이 자연 속에서 기계적으로 설명된다면, 기계주의 동일한 원리들은, 힘들과 작용들에서, 형이상학적이 된다. 그리고 데카르트주의는, 마치 운동의 원인과 운동의 보존의 원인처럼 외부의 기계적인 신(Deus ex machina)의 임의적 의지를 개입하게 하면서, 물체 자체 속에서 물체들보다 우월한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에서 사람들이 만들어야만 할 것을 개입하게 하면서, 그것[기계주의]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런 이유로 라이프니츠가 힘을 생각했던 것과 같은 그 힘은, 한 물체 속에서, 그래도 물체가 행할 수 있는 모든 능동작용들의 그리고 물체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수동작용들의 영속적인 원인이다. 그 힘은 “제1의 현실태(entéléchie)”이며, “영혼에게 응답하거나 또는 실적인 것을 형성한다.” 힘의 상수(la constance, 항상성), (mv2)을 발견하면서, 그는 그것에다가 부명제로서 진행 양(quantité de progrès)의 보존의 법칙(한 축 위에 속도들의 투사작업에 대한 대수학적 합계의 항상성)을 결부시켰다. 라이프니츠는 진실한 실재성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215)
라이프니츠에게서, 우리에게 물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이행하도록 강요하게 될 동역학의 의미 또는 힘의 실재론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가? 특히 주의를 끌만한 것, 그것은 이 동력학과 중심적인 힘들의 동력학 사이의 대조이다. 후자의 동력학은 동일한 시기에 로베르발(Roberval, 1602-1675), 호이겐스(Huyghens, 1629–1695), 뉴턴(1643-1727)과 더불어 전개되었다. 뉴턴은 충만을 인정하지 않았고, 무게의 인력 속에서 힘의 전형[중력, 무게중심]을 보았다. 그의 탐구들[연구작업들] 이후에 이 힘[인력]은 특별한 경우에 만유인력(la gravitation universelle)이 된다. 사람들은 뉴턴의 유명한 말에 따르면 얼마나 “물리학이 형이상학을 경계하는 지를” 안다. 즉 갈릴레이에서 뉴턴으로 가는 과학적 흐름의 논리학에 따르면, 중력의 정식에 대한 중요성은 많은 수의 현상을 계산하고 예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실재적인 끄는 힘과 같은 감춰진 어떤 본질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전혀 반대로, 라이프니츠는 그의 정식 mv2을 마치 깊은 실재성을 분간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그것으로부터 현상들의 정확한 계산을 위해 아무것도 끌어 낼 수 없었다. 우리는 거기서 아마도 처음으로 부딪힌 두 가지 다른 정신들을 안다. 그런데 우선 파라독사 같은 방식으로, 라이프니츠가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에게 보낸 편지에서 뉴턴에게 행한 비난은 그가 데카르트에게 행한 것과 동일한 비난이며, 물리학에서 외부의 기계적인 신(Deus ex machina) 없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력으로부터 이어진 작용 덕분에, 신이 그것의 톱니바퀴를 수선해주지 않는다면, 마치 나쁜 공예가가 자기 작품을 만든 것처럼, 태양계와 같은 체계가 조금씩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이런 적대적 만남에 의해서, 사람들은 더 잘 파악할 수 있는데, 어떻게 라이프니츠가 자기 물리학의 형이상학적 상위 구조를 필수불가결하게 판단했는지를 안다. 그는 좋건 싫건 간에 데카르트와 뉴턴이 이들의 물리학에 보태었던 이런 임의적 형이상학을 회피했다. 그는 모든 역학적 변화들을 이유있게 했던 실재성(réalité)을 힘 속에서 보았다. (216) (57L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