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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제15장 수의 독단론Le dogmatisme du nombre 344
제16장 산술학의 유명론Le nominalisme arithmétique 354
제6권 수리[논리]계산의 운동 L’mouvement de logistique 369
제17장 수학들의 수리[논리]계산 철학의 형성 Forma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des mathématiques 370
제18장 수리[논리]계산적 철학의 붕괴 Dissolu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394 §234
제19장 절대적 연역의 관념 L’idée de la déduction absolue 411
제7권 수학적 지성과 진리 L’intelligence mathématique et la vérité 427
제20장 직관의 근대적 용어 La notion modern d’intuition 427
단원 A. 용어의 형성 Formation de la notion 430
[1절] 종교적 선입견들 Préoccupations religieuses 430 §259 §260
[2절] 형이상학적 직관 L’intuition métaphysique 433 §261
[3절] 과학들 속에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sciences 434 §262 §263 §264
단원 B. 근대 수학들의 방향정립 L’orientation des mathématiques modernes 437 §265
[1절] 고전적 수학들 속에서 직관L’intuition dans les mathématiques classiques 437 §266 §267
[2절] “선천적” 원리들의 비판 Critique des principes “a priori” 440 §268 §269 §270
[3절] 현대수학자들에게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mathématiens contemporains 443 §271 §272
단원 C. 수학들에서 직관주의 운동의 해석L’interprétation du mouvement intuitioniste dans les mathématiques 447 §273
[1절] 심리학에 도움(의뢰) Recours à la psychologie 449 §274 §275
[2절] 물리학에 도움(의뢰) Recours à la physique 449 §276 §277 §278
[3절] 수학 철학의 문제 Le probleme de la philosophie mathematique 456 §279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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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권 수학적 지성과 진리 L’intelligence mathématique et la vérité 427
제20장 직관의 근대 용어 La notion modern d’intuition 427
[왜 유클리드의 직관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빠뜨렸을까? 퓌타고라스를 기하학적 직관의 기원으로 보았기에? 퓌타고라스의 직관에 이원성이 있지 수와 비례(음악)에서 (58WKH)]
§257. [경험주의란 단순히 영국 경험론을 의미를 넘어서, 자연의 발생과 진행과정을 포함하는 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경험이다. 벩송과 들뢰즈가 경험주의를 무매개적 자료들이라 한 것도 이런 의미이다. 여기서, 나는 427쪽에 이르러서야 무매개적 자료들이란 용어의 설명을 처음 보았다. (59SKD)]
우리는 논리학 진화의 내적 논리 속에서, 이중 운동을 따라가고자 시도했다. 이중운동에 의해 산술학자들과 논리계산학자들은 선천적형식들의 그물망 속에 근대 수학들의 체계를 포함하기를 시도했다. 만일 우리의 해석이 정확하다면, 일어났거나 또는 마치 일어났어야만 했다. 즉, 방법 속에서 가정된 형식주의는 어느 정도로는 그것의 내속적 진리의 과학을 비우게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은 형식주의를 경험으로, 즉 형식주의에게 내용을 보내줄 수 있는 경험으로만, 되돌려 보낸다. 사실상 어떤 헬름홀쯔 같은 이의 산술적 선천주의, 어떤 러셀같은 이의 논리적 선천주의는 경험주의 신앙의 공표[선언]을 동반한다. (427)
경험주의는, 수학주의의 또는 논리계산의 형식주의적 국면 하에서 고려해 보았던, 합리주의의 약화(la défaillance)가 남긴 빈 유산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427)
고전적 경험주의가 중요한지를 묻는 질문은 전혀 제기되지 않는다. 그 고전적 경험주의에서 경험은 무매개적 자료(la donnée immédiate) 더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자료는 마치 감관들과 상상작용에서 현재[표현]하는 대로 있는 것과 같다. 이 무매개적 자료들은 정확성(exacitude)와 정밀성(précision)의 어떠한 특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 이것들 없이는 양적인 과학의 요소들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말이다. 기하학의 가장 단순한 도형들이 그것들의 이론적 완전함의 이유[근거]로써 도형들일 뿐만 아니라, - 자연의 관찰은 우리에게 그것들 중의 예들을 가장 어렵게 제공했을 것이다. - 또한 통용되는 경험에서 주어진 수학적 단위들의 자격으로 대상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것들[대상들]을 서로서로 따로 파악하게 하는 차이들을 추상해야 하기 때문이고, 그것들[대상들]에게 그것들의 개별적 실재성과 대조를 이루는 개념적 동질성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술학과 기하학이 경험의 지평 위에서 구성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명증성 자체로서 나타난다. 그렇다고 그것들[산술과 기하]이 경험으로 파생한다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경험이 어떤 조건에서 만족하게 되는 지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것은] 수학적 추론작업들의 거대한 발전이 마치 자연의 관찰에 의해 무매개적으로 현재 소개[제시]된 현상들의 단순한 재생산처럼 고려되기 위해서 이다. (428)
전통적 경험주의의 비판은 – 또는 만일 사람들이 원한다면 근대 경험주의의 발전은 – 과학적 경험 자체 속에 정신이 경험의 무매개적 자료들에게 충분히 기여했다고 것을 모두 제시하는데 있고, 또한 추상과 발명의 수 천가지의 우회로를 나열하는데 있다. 추상과 발명에 의해 과학자의 천재적 재능은 자연이 그 자체 스스로 폭로되도록 강요되었다. 경험과학이 구성되었던 절차들의 분석은 거대한 활동성의 지대(une zone)[영역]을 규정하는 데로 인도되었고, 그럼에도 그 활동성의 지대는 순수하게 논리적 추론작업의 선천적 틀들 속에 되돌아가지 못하였다. 그 지대가 직관의 지대일 것이다. (428)
§258. [직관의 역사적 이해, 퓌타고라스의 천문학과 음향,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 데카르트의 기하학에서 지성의 직관, 파스칼에서 심장의 직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직관, 칸트의 선천적 판단들의 직관, 벩송의 기억 직관, 레비브륄의 심성의 직관, 쁘왕까레의 협약의 직관, 브라우베르의 수학적 직관주의 등장하게 되리라.]
이 직관이란 용어 주위에, 수많은 반성들이 방낮처럼 밝혀지게 되었고, 이것은 우리에게 과학적 철학의 심장을 꿰뚫게 하였다. 그러나 직관의 용어에 내재하는 유동성을 이유 때문에, 마치 직관이 과학의 해석작업에 도입할 수 있었던 새로운 난점들처럼, 직관에 힘입었던 정복들의 정확한 명세표를 세우는 데 불편했다. 산술주의와 논리계산의 철학들을 특성화하는 직선의 발전에는, 역사를 관통하여 미묘하고 복잡한 진행이 대립된다. (428)
이미 의심할 바 없이, 수학적 사유의 결정적 각 단계에서 우리는 직관의 이런 용어를 만났다. 심지어 철학들의 기원의 형식하에서, 산술학을 토대로 하는 그리고 논리학을 토대로 하는 철학들은 직관들 위에 근거하는데, 즉 퓌타고라스와 더불어 기하학적 직관(또한 아마도 천문학을 포함하여) 위에,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더불어 생물학적 직관 위에 근거한다. 데카르트의 기하학은 직관의 철학을 함축한다. 이런 데카르트의 직관에 대해, 파스칼의 독창적 해석은 대립된다. 파스칼의 해석은, 여러 측면의 고려에서 동시대 철학의 가장 깊은(심층)의 개념작업을 알린다. 결국에는 산술학과 기하학의 선천적 판단들 속에 직관의 재총합에 의해서, 칸트는 라이프니츠의 독단론과 단절을 표시한다. (429)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사람들이 의미를 정확하게 고려하고자 원하여, 그런 의미에서 동시대 철학이 직관이란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역사]를 길게 나열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직관적 방법들에게 회귀에 의해 예를 들어 근대 기하학의 확장을 상기하면서, 또는 분석학의 가장 추상적인 사색들을 위하여 공간적 도형화들의 영속적 도움을 강조하면서, 그 이야기를 완전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퓌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 전통들에게 수세기의 특권을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만일 사람들이 19세기 제작기술에 의해 완성된 진보들에게 오로지 관련되어 있었다면, 사람들은 산술학 또는 논리계산의 발생과 성공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리라. 마찬가지로만일 사람들이 19세기 전체를 통해 발전되었던 사유의 광활한 흐름을 주의하지 않았다면, 또 그 사유의 흐름으로부터 수학들의 적용이 마지막 허용이었던 것으로 나타나는 것을 주의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직관적 관념이 허용하는 넓이[폭]와 풍부함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는 위험에 처했을 것이다. (429)
심지어 아마도 저기에서처럼 여기에서도, 근본적 관념의 범위를 평가하기 위하여, 관념들에 대해서 규정했던 것만큼이나 잡다한 기원들을 가능한 만큼 완전하게 규정하는 것이 소용없지 않을 것이다. 수학적 지평 바깥에서 태어난, 직관이라는 근대 관념은 수학의 고유한 성격들에 단번에 완전하게 적응되지 못햇다. 수학이 행했던 봉사들에도 불구하고, 수학은 몇 가지 질문들에의 의미화[기호화]작업을, 그 질문들을 수학의 언어가 아닌 언어로 옮기면서, 모호하게 했을 수 있다. 이어서 현실과학의 구성작업에 더 이상 연결하지 않는 선천적틀들에 대해 동시대 수학 철학을 넘어선 후에, 우리는 실행할 새로운 노력을 가질 것인데, 현실과학을 수학들의 분과학에게 조차도 낯선 선입견들로부터 분간하기 위해서, 그리고 과학의 특수성에 알맞은 항목들 안에서 수학적 철학의 고유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기 위해서 이다. (429)
단원 A. 용어의 형성 Formation de la notion 430
1절, 종교적 선입견들Préoccupations religieuses 430
§259. [직관에 대한 종교적 접근과 형이상학적 접근.] ,
19세기 철학의 중심 문제는 칸트에 의해 정의되었다. 일단 과학적 가치들이 경험적 자료들에게 선천적 형식들의 적용에 의해 위로 받았다면, 칸트의 순비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질서의 가치들로부터 자유롭고자 애썼다. 비판론은, 왜냐하면 현존(l’existence)은 가치들로부터 이론적 인식의 제한작업 위에 토대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치들이 합법적이었다는 것과 동시에 왜냐하면 자연은 그것들[가치들]로부터 순수 논리학의 추론들에 연관하여 초월적(transcendante)이었기 때문에, 가치들이 불가사의하게 남아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명석한-흐릿한” 영역에서 교회 당국에 의해 신성시된 신앙들과 자유로운 형이상학의 주장들은 상호지지를 서로 빌려주는 것 같았다. 전자에서 종교철학, 즉 변신론(la théodicée)은 호교론(l’apologétique)의 단순한 입문이었다. 후자에서 세기들 마다의 독단론들의 문자는 소위 말하는 추론적 진리들의 상상적 이동이었다. (430)
이로부터 학파들 내부에 잠재적 충돌이 나온다. 이 학파들은, 독일에서 후기 칸트학파, 프랑스에서 절충학파, 영국에서 네오헤겔학파와 더불어, 이법과 전통 사이에 일시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학파들은 지배적인 견해의 소유를 거의 공식적으로 장악했다. 이 학파들 안에서 충돌은 소위 말하는 철학을 희생시켜서 해소되어야만 한다. 아마도 이 기획은 종교 의식의 진보를 추구하기를 원하는 것이 쓸데없다는 것도 아니고, 마치 사람들이 과학의식의 또는 도덕적 의식의 진보를 추구하는 것처럼, 진리의 또는 정의의 관계들이 도출되는 통일성에 제거작업에 의해 또는 깊이작업에 의해 도달하는 것이 쓸데없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획은 모든 타협들(les compromis)의 바깥에 그리고 그 위에 있다. 철학자가 문을 열기를, 또 사회적 잔존자들에게 그것들의 견해[몫]을 알리기를 받아들이자마자, 철학자는 그 자신이 무장해제 되고, 그리고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19세기 과정에서 철학자는, 비판적 정신이 거기에서 더 많이 요구됨에 따라서, 형이상학적 증명의 내용이 가늘어지고 빈약해지는 것을, 그리고 합리론의 논증과 종교적 신앙의 생생한 근원 사이에 틈이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윌리엄 제임스가 쓰기를, “마치 에머슨의 개념작업처럼 관념론의 개념작업에서 신은 추상적 이상으로 증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431)
따라서 종교가 구출되기 위하여, 종교가 철학의 우회로에 의해서 통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빠스깔은 신앙자와 도박꾼을 비교했다. 개연성 계산으로부터 끌어내 추론들, 통계학의 교육들, 거대한 수들의 법칙들과 비교 등을 믿는다는 도박꾼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는 도박판에 있고, 그는 운수가 어떤 개인을 집요하게 박해하는지를, 운수가 어떤 다른 이에게는 연이어서 우호적인지를 본다. 그는 운수의 직관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신의 현존의 증거들(les preuves)의 토론은 인간들을 장악하지 못하며. 인간들은 보이지 않는 힘들과 영속적인 접촉이 있다고 느끼고 있고, 이 접속에 자신들의 실천적 태도를 길어 올리며, 종종 외적 사건들의 추진[력]에 직접적으로 반대한다. 삶의 시련들이 더욱 곤란하게하고 더욱 불안하게 이루어지는 정도에 따라, 신을 향한 환희와 재인식은 증가한다. 반면에 눈에 띄는 성공은 내적인 겸손과 절망을 이중화한다. 종교적 심리학을 위하여 종교의 실재성은 정확하게 이 틈 안에, 즉 방향의 전도(l‘inversion de sens, 의미의 전도) 속에 있다. 현상들의 정확한 관찰은, 자연의 일상적 메카니즘이 확립하기를 허락했던 귀결들에 연관하여 이 방향의 전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지성은 이 틈을 채울 수 없고, 이 틈은 구성된 습관들에게 모순되게 말하고, 또는 직관의 역할을 드러낸다. (431)
§260. [직관에 대한 사회학적 접근과 종교적 접근에서 논리적 직관과 다른 직관이 있음을 안다.] ,
비슷한 결론이 종교적 사회학의 항목에 나타난다. 1864년 뗀(Taine, 1828-1893)은 사회학이 인간 현상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루는 용어들을 나열했다. 용어들이란, “그 안에서 원동력[본능적 힘]” 즉 종족(race), “바깥에서 압력” 즉 환경(milieu), “이미 획득된 충동” 즉 찰나(moment). 그런데 우리 근대 문명의 “공개할 수 있는” 현상은 아리안족 서방인이 유대 종족(la race)으로부터 받아들인 크리스트교의 집요함이다. 서방인은 아직도 이런 크리스트교의 집요함으로 각인되어 있다. [한편] 정치적 지배에 관한, 경제적 투쟁에 관한, 사회적 조직화에 관한 선입견들에 관여하는 환경의 근본적 변형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 성경에서 폭로된 본문들이 지지하는 우주론적 모든 개념작업들을 조금씩 파괴하는 과학적 진보의 찰나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431)
이리하여 종교의 사회적 현상 속에는 역학적 전형의 분석에 의해 한정되어 있는 무매개적 조건들에 환원할 수 어떤 것이 아직도 발견된다. 그것은 일종의 집단적 본능 또는 일종의 직관이며, 이것은 마치 정신적 권위의 필요(besoin, 수요)처럼 드러난다. 사람들은 안다. 이 필요에 객관적 지지를 부여하기 위하여 꽁뜨는 종교적 사유의 “자발적이 되었던” 그리고 미발달된 형식들에 거슬러 올라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꽁트가 1854년에 쓰기를 “이론적 편견들로부터 해방된 실증주의자들은 물신주의자들이 발전살 수 있는 것보다 더욱더 물신성(la fétichité)을 발전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실증주의자들은 물신주의자들이 물체들에게 경계를 긋는 경향성을 현상들에게 확장할 것이다.”이 시대에 소란의 국면을 다루어야만 했던 파라독사, 그러나 그 이후로 원시인에게로 회귀(retour au primitif)에 대한 증가하는 선호에서 정당화를 발견하는 파라독사, [등이 증거이다.] 제임스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꽁뜨의 사회학적 문제와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재현들의 체계를 종교적 삶의 강도성에 상응하게 하는 것이고, 이 체계를 비판적 반성의 은신처에 보호하는 것이다. 해결도 비슷하였다.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1906]으로부터 충성스럽게 고백된 결론과 같은“조잡한 초자연주의”는 꽁뜨의 실증 정치학이 도달한 네오-페티시즘(le néo-fétichisme)의 모델이 된 것 같다. (432)
두 사상가들의 마지막 접근에 대해, 종교적 관점들은 게다가 가능한 한 만큼 반대되어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이런 접근은 19세기에 직관론의 흐름의 힘과 독창성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하는 현상이다. 합리주의는 역사적 경험 또는 심리학적 관찰의 도움으로 인간적 조건들을 규정했다고 함으로써, 18세기의 합리주의는 종교적 전통의 백지를 만든다고 믿었다. 반대로 19세기는 종교의 심리학과 사회학 구성했고, 이 두 학문은 이것들의 대상을 해결하거나 또 제거하기는 커녕, 그것들의 방법의 원리들 자체에 의해서 그것들의 객관적 실재성을 가정한다. 이리하여 플루느와(Théodore Flournoy, 1854-1920)는 “마치 부차적이고 파생적인 것 같은” 배경(l’arrière-plan)에게 사변적인 사유의 생산물들을 거부할 것을, 그리고 내적인 생생한 감정들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서 간주할 것을, 종교적 심리학에게 규정한다. 이 감정들의 깨어남을 준비할 수 있는 무의식적 과정과 더불어 이 생생한 감정들은 영혼을 채우고 또 의지를 작동하게 한다.이리하여 뒤르껭은 어떤 테일러(Tylor, 1832-1917)의 정령[숭배]론(l’animisme)에 그리고 어떤 뮐러(Müller, 1823- 1900)의 자연주의(le naturalisme)에 반대는데, 종교가 이들의 이론들의 진리에 따를 수 없다고, 그리고 종교가 환각적 재현작용들의 논리가, 즉 오류들의 체계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의 자체상으로, “과학은 그것을 생각하는 어떤 방식에서 주어진 실재성에 항상 적용되는 학문이다. 과학의 중요한 발견이 과학 자신이 취급한 대상 자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라면, 과학은 무엇인가?” (433)
종교의 고유함이란, 신비적 성찰들의 분석이 또는 집단적 숭배의 묘사가 증거하는 어느 정도로는 강도성(l’intensité)을 갖추고 있어서, 심리학적 삶 또는 사회적 삶이 대상을 삶 자체에서 창조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이때에서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33)
2절 형이상학적 직관L’intuition métaphysique 433
§261. [벩송의 직관: 저자는 자신의 저술이 나올 때(1912), 이미 창진(EC, 1907)이 나왔다. 그럼에도 인용이 1901년 이전 작품을 인용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벩송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러셀이 벩송을 오해했던 것도 같은 궤도였을 것이다. 적어도 구조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기 전까지(1967년)도 논리주의자들은 직관주의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59RKH)]
종교적 신앙의 생명성 속에서, 그런데 이법에서는 매우 낯설다고 하더라도, 표출되는 이런 직관의 자연, 이 자연을 벩송은 예술의 분석에 의하여 충분히 밝혔다. 예술가는 실천이 우리에게 부과한 인위적이고 일상적 지평의 바깥에서움직이고 있다. 예술가는 통상적 삶의 습관들과 단절한다. “그러나 감관 또는 의식의 구조에 자연적인 타고난 이런 분리(ce détachement)”는 사물들을 그것들의 기원적 순수성 속에 재결합하는 것을 효과로서 삼는다. “예술은 확실하게 실재성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통찰(une vision)이다.”능동감각(le sentant)의 상위 성질에 대해, 어느 정도에는 보다 깊고 보다 진실한 수동감각(le senti)이 상응하다. (433)
심지어 벩송에 따르면, “반성의 작품과 철학의 작품이라는 것은 원했고, 추론했고, 체계화하는 이런 분리와”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우선 자신을 향한 집중화와 꼬임의 노력이며, 여기에서 정신은 “스스로 억제되고(se violente)”그리고 인간 조건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그러나 만일 주체가 그 자신에만 지지를 받는다면, 마치 주체가 빈 것 속에 깊이 파고 들게 되는 숙명이었던 것처럼, 이러한 노력은 절대적으로 헛될 것이다. 그 철학자의 후천적[획득된] 독창성은, 마치 예술가의 자연적 독창성처럼, 보상으로 객관성을 얻을 것이다. 그 독창성은 “근원에서 경험을, 오히려 결정적 전환(ce tournant)을 저 넘어서 경험을 파악할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의 유용성의 의미에서 굴절되면서도, 독창성은 소위 말해서 인간적경험(l’experience humaine)이 된다.”이 독창성은 지적인 공감(sympathie intellectuelle), 즉 직관일 것이다. (433)
3절 과학들 속에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sciences 434
§262. [벩송의 직관, 꽁트의 직관. - 직관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은 부트루가 말하는 세계와 사실들에서 우연성의 확증에 있다.]
앞선 지표들이 아주 신속함에도 불구하고, 그 지표들은 직관의 첫째 개념작업을 정의하는데 충분하다. 이 직관의 첫 개념작업은 종교와 예술의 영역에서 또는 선험적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형성되었고, 그리고 그것은 “지성의 습관적 작업의 전복(un renversement)에 의해 정의되었으며 … 철학한다는 것은 사유 작업의 습관적 방향을 전도하는(invertir)데 있다.”(434)
이런 정식은 이번에는 출발점이다. 이 정식이 상위 과학의 영역들 안에서 증거하는 풍부성의 덕분에, 직관의 학설은 소위 말하는 과학적 범위(la sphère) 안으로 침투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거기서 설명적 절차들로 이루어졌던 매우 좁은 개념작업들에서, 여러 다른 분과학문들의 모습을 계속적으로 변형하면서, 작동하였다. (434)
여기서 한번 더 말하면 오귀스트 꽁트는 선구자이다. 그는 가장 복잡한 대상들의 과학적 인식을 요소적인 현상들의 과학으로 환원하는 학설 속에서 유물론으로부터 정신을 분간해냈다. 이 학설이란 사회학에서 생물학으로, 생물학에서 물리학으로, 물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환원하는 학설이다. 지금 유명한 것으로 남아있는 분석에 의하면, 메카니즘이 뛰어넘는다고 주장하는 정도 차들의 각각에게 어떻게 필연성의 연쇄가 효과적으로 풀려날 것인지를, 또한 항상 보다 생생하고 보다 자유로운 힘의 작용에 자리를 남겨줄 것인지를 부뜨루(E. Boutroux, 1845-1921)가 제시했다.우연성의 이런 확증에게 또는 적어도 잡다한 결정론들의 특수성의 확증에게, 직관의 학설은 각각의 과학에게 개별적으로 방향정립의 원리를 생성하면서 실증적 형식을 가져다준다. (434)
§263. [사회학의 직관 대 심리학의 직관: 경험으로부터 무매개적 자료의 용어 등장, 사회에서 그리고 무의식에서 무매개적 자료의 의미(?)를 기억과 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보았다.]
이리하여 종교 사회학의 영감작용에 또는 종교적 심리학의 영감작용에 부합하여, 사회학과 심리학은, 자신들에게 알맞는 대상을 그리고 경험론의 분석의 요소들에게 환원할 수 없는 대상을 정의하면서, 이것들의 일반성 안에서 곧 구성될 것이다. (434)
무엇보다 먼저, 그 자료 그 자체들로부터 관찰로 자신을 드러내는 무매개적인 자료들은 재현작업들 또는 이런저런 개체의 작동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인 의식들의 상태들을 첨가하면서, 사람들은 종교적 축제 또는 국가적 축제를 위해 많은 대중을 생기있게 하는 감정들을, 그리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신앙들과 대중이 다루는 해결책들을, 이해하는데 서로 동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진실이다.전체는 부분들과 다른 것이다. 만일 사회학(la sociologie)이 직접적으로 도덕론에 끌린다면, 만일 사회(la société)가, 개별적인 자의성과 세속성으로부터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에 의해서 분리되어있는, 강제 의무와 성스러움으로 일어날 수 있다면, 이런 조건 하에서, 사회는 마치 사회를 조성하는 개별적인 인격성들로부터 질적으로 다른 것처럼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그것[사회학]의 대상에 대한 정의 자체에 의해, 사회학은, 개체초과적실재성(la réalité transindividuelle)의 발전을 표출하는, 표상들에 대한, 감정들에 대한, 집단적 질서의 의지들에 대한, 본래적인(sui generis) 인식을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인식은 직관의 모든 특성들을 제공할 것이다. (435)
기억(la mémoire)과 같은 심리학적 기능의 연구에서, 사람들은 살아있는 물질의 경험적 성질에 연관있는 두뇌 속에서 위치화된 사실들만을 손가락으로 건드릴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신체가 장치할 수 있는 메카니즘의 분석에 만족해 했을 때, 사람들은 기억의 특성이라는 것을 회피한 체 내버려 두었다. 신체적 습관은 시간이 지나가는 감관들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신체는 현재 작용에 채택되었고, 신체는 추억들의 연쇄를 끊임없이 변형하면서 이것들(감관과 작용)을 이용한다.그러나 만일 추억들이 추억들의 내속적이고 순수한 실재성 속에서 존속에 의해서 시작했더라면, 어떻게 추억들이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신체의 피상적 작용 뒤에 정신의 깊은 현존이 있다. 직관은 생리학적 경험의 의미와는 반대 의미에서 노력에 방향을 정하면서 이런 현존을 파악하도록 허락할 것이다. 생명 보존을 향하여 유기체의 운동들을 따르는 대신에, 직관은 시간의 영향에 저항한다. 직관은 이런 기록에 의해서 순수 지속을 구성한다. 그 순수 지속에서 과거인 한에서, 특권적 상태들 속에서 자기의 기원적 리듬에 따라서 전개될 준비가 되어있는 과거는 남아있다. 이는 마치 신체적 작용의 장애가 중단된 채 머물게 했던 꿈과 같다. (435)
§264. [생명에 대한 생물학적 직관은 물질적인 것을 넘어선다. 벩송에서 생명의 노력은 물질의 운동과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학적 직관은 심리학적 자료들과 반대로 형성되었다. 심리학적 직관은 생리학적 자료들과 반대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직관적 방법의 풍부성은 살아있는 물질의 현상들 앞에서 갑작스럽게 멈추지 않는다. 살아있는 물질은 물질과 생명으로 분해되고, 이것은 한편으로 필연적 운동과 다른 한편으로 자연적 활동성 사이에 방향의 도치(une inversion de sens)에 관한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의 전체는 기계론적 분석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그러한 것은 물리화학이 생명 부분들의 각각에게 할당한 기능들을 생명이 넘어선다고 할뿐만 아니라, 또한 생명은 부분들을 반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벩송이 창조적 진화(1907)을 쓰기를 “모든 분석들은 우리에게 … 물질이 내려가는 경사를 거슬러 올라가기 위하여 생명 안에서 노력을 제시한다.”살아있는 것의 몸[생명체]은 물질초과적(transmatérielle)이라는 힘의 운반도구이다. 그런데 이 힘은 시간의 간격과 너비의 수평선을 넘쳐난다. 생명체의 고유한 현존이 이 양자(시간과 너비)에 제한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현존은 그 자체로서 생성작용들을 통하여 존재의 연속성을, 또한 개체들을 통하여 존재의 연대성을 함축하고 있다. 하나이자 보편적인 도약의 직관은, - 이 도약에서 생명은 마치 포탄의 폭발처럼 파생되었고, - 진실한 생물학의 원리일 것이다. (436)
생물학적 직관은 비유기적 물질의 영역에서 지배한다고 가정된 메카니즘과 더불어 대조에 의해서 정의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직관적 방법이 물리화학적 과학들을 침투하기에 이른다. 메카니즘은 지성의 선천적도식으로 진행한다. 이 도식은 물체들을 동질적이고 미분화된(indifférenciés) 요소들로 나누고, 자연의 일반적 법칙들에게 수학적인 동등성의 형식을 부과하며, 이는 마치 물질 또는 운동에 대한 모든 변형론들[진화론들]은 이것들이 생산되는 시간에 무차별적(indifferentes)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런데 한번 더 말하자면, 그것[시간]은 반대 방향으로 방향 잡힌 직관에 나타난다. 직관의 역할은, 그것이[역할]이 과학들이 준비해왔던 틀들을 회피하는 한에서, 또 그것이 직관의 저항에 의해 가역성의 법칙들에 표출되는 한에서, 실재적인 것을 파악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직관의 역할은 시간의 효과적 현존을 이렇게 재확립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만일 메카니즘이 모순 없이 완성될 수 있다면, 시간 밖에다가 메카니즘은 우주를 놓을 것이다. 벩송의 표현에 따르면, “순수지속의 측심추(coup de sonde dans la durée pure)”인 물리학적 직관은, 까르노 원리의 발견을 불러올 것이고, 동시에 근대 과학의 모습(physionomie)를 변형할 것이다. 이에 따라서 보존 법칙들은 종교적 방정식들에 의해 번역되고, 또한 그것들의 일반적 방정식 속에서 선천적으로진술될 수 있었다. [물리학적] 직관은, 수학적 장치 아래에 순수하게 질적인 실재성을, 사물들의 심층에서 진행을 표현하는 실재성을, 연속적인 변이작용을, 아마도 심지어는 우주의 최종적 숙명을 다시 덮고[감추고]자 하는 하나의 기능[함수]을 분간해 낼 것이다.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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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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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23 빠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박학다식(un polymathe),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도덕론자, 신학자.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96 카르노(Nicolas Léonard Sadi Carnot, 1796-1832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그는 열은 높은 온도로부터 낮은 온도로 옮겨질 때에만 힘을 얻을 수 있고, 그와 반대의 경우에는 밖으로부터 힘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이것은 오늘날의 “열역학 제2법칙”과 같은 것이다.
1798 꽁트(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실증주의 창시자.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1842) Catéchisme positiviste (1852) Système de Politique positive (1851-1854) Synthèse subjective (1856)
1803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 미국 수필가, 철학자, 시인, 초월주의 운동(le mouvement transcendantaliste).
1821 헬름홀쯔(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 프러시아 생리학자, 물리학자. 유체 동 역학, 소리와 열의 지각이론과 열역학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1823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 1900) 독일 문헌학자, 동방학자. naturalisme
1828 뗀(Hippolyte Taine, 1828-1893), 프랑스 철학자, 역사가, 아카데미 회원. 1828 뗀(Hippolyte Taine, 1828-1893), 프랑스 철학자, 역사가, 아카데미 회원. L'Idéalisme anglais: étude sur Carlyle, 1864), Le Positivisme anglais: étude sur Stuart Mill, 1864), Histoire de la littérature anglaise, 1864).
1832 테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 영국 인류학자, 옥스퍼드 대학 첫 인류학 교수. animisme
1842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미국 심리학자, 철학자. 종교적 경험(Expérience religieuse)[1906].
1845 부뜨루(Étienne Émile Marie Boutroux, 1845-1921),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가. De la contingence des lois de la nature, 1874[박사학위논문]
1854 플루느와(Théodore Flournoy, 1854-1920), 스위스 의사, 심리학자 심령주의(le spiritisme), 의사심리학적 능력(les pouvoirs parapsychiques).
1858 뒤르껭(Émile Durkheim, 1858-1917) 프랑스 사회학자,
1859 벩송(Henri Bergson, 1859-1941), 프랑스 철학자.
1859 메이에르손(Émile Ezryel Meyerson, 1859-1933), 폴란드 출신 프랑스인 철학자, 과학철학자, 화학자.
1867 부륀에스(Antoine Joseph Bernard Brunhes, 1867-1910), 툴루즈 추신, 프랑스 물리학자, 물리학으로 교수자격. 열전도 저하, 지구자기장의 반대 방향 발견. La dégradation de l'énergie, en 1909, Bernard Brunhes[중국은 일찍이 자석과 지남철을 발견하여 상방된 두 힘의 교대와 균형으로 이해했을 것 같다.
1872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 영국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12:27, 59SKI) (10:14, 59SL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