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16구간(작점고개-큰재)
1. 산이름 : 용문산(708.3m), 웅이산 국수봉(795m)
2. 소재지 : 경북 김천시, 상주시, 충북 영동군
3. 산행 코스 : 작점고개 → 1.14km → 무좌골산(01:00) → 3.83km → 용문산(02:20)→ 2.3km →
웅이산 국수봉(03:50)→ 3km → 큰재(05:30)
4.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10km, 5시간 30분
5. 산행 인증 : 작점고개 표지석(340m), 용문산 정상석(710m), 큰재 분수령 표지판(300m) 인증
6. 산행 안내 : 추풍령 모텔 숙박-산행-큰재-택시-공성면-시내버스-상주-경부고속-서울도착
큰재-공성면택시 – 054-532-4414, 010-3535-4230,
큰재-화령 : 문화식당 숙박:054-533-0046,010-3535-5699-승용차 대기
○ 교통 : 작점고개-추풍령(5km) 택시 이용 (추풍령 개인택시 043-742-1810)
작점고개-큰재 구간
용문산(멧돌봉)
멧돌봉으로 지명이 빠뀌었으나 아직 여긴 용문산으로 표기, 1800년 무렵 박생이란 유생이 산세를 보고 龍門山이라 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1940년경 나운몽 목사가 입산하여 근처에 기도원(애향숙)을 세운 뒤, 일명 용문산 운동을 전개해 나갔던 곳이다.
서울과 부산 사이 바로 중간에 위치하고, 영남과 호남의 분계선이며, 서북쪽으로 낙동강이 흘러 남북 양대 강의 분수령이 되는 산의 특성으로, 남한 중신에 위치한 소위 “성산”으로 파악한 것이다.
초창기 애향숙은 신앙적인 목적보다 일제하의 설움에서 오는 계몽운동의 일환으로서 출발하였다가 이후 애향숙이 재건되는 과정에서 기도원 운동으로 면모를 바꾼 것이라 한다.
현재 전국 3만여 명의 신도가 연중행사로 기도대집회를 열고 있다.
웅이산
경북 상주시 공성면(면장 황도섭)은 21일 오전 백두대간 상주시 관문인 웅이산(일명 국수봉) 정상에 표석을 설치했다.
이 산은 상주시 공성면과 김천시 어모면, 영동군 추풍령면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795m의 주봉으로 곰살뫼·용문산·국수봉 등으로 불려왔다.
지난 2012년 5월18일 국가지명위원회에서 "웅이산(熊耳山)"으로 확정·고시했다. 표석의 무게는 약 2톤으로 가로 100cm, 세로 50cm, 높이 50cm 규모이다. 화강암으로 된 좌대와 가로, 세로 약 90cm 규모의 오석(烏石)에 "백두대간 웅이석, 795m, 상주시 공성면"을 새겼다.
황도섭 공성면장은 "웅이산 표석 설치는 백두대간을 산행하는 등산객들의 이정표가 되는 계기가 마련돼 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고장을 널리 알리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큰재] 320m
해발 300m가 겨우 되는 영동군 모동면에서 상주시 공성면으로 넘어가는 2차선 아스팔트 고갯길이다.
공성면의 3번 국도와 모동면의 977번 지방도로를 연결하는 920번 지방도로가 백두대간의 주능선을 가로지르는 곳이다.
예전에 고갯마루에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고 폐교(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와 민가 한 채가 마주보고 있었다.
지금은 백두대간 숲 생태원이 들어서 백두대간 생태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늘은 집으로 가는 날이라서 기분이 좋다. 5일 정도 외박을 하니 아내 생각도 나고.ㅋㅋ 추풍령 모텔에서 자고 일찍 택시를 타고 작점고개로 갔다. 중화지구에 속한 구간으로 높은 산이 없다.
따라서 산과 숲을 느끼며 산길 걷기에 참으로 좋은 구간이지만, 폭염으로 인해 서서히 숲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햇살도 점차 뜨거워져 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
작점고개에서 무좌골산까지 가는 길은 고도를 계속 높인다. 길이란 때로 고행이 따르기도 하지만 걷는 자들에게 주어진 은총이다. 걷는다는 것은 내 몸, 내 감각으로 자연과 만나는 것으로, 자연과 홀로, 온 몸과 마음으로 만나는 행위가 바로 걷기다. 자연을 따라 제 멋에 못 이겨 울어대는 매미들의 슬픈 소리를 들으며 무좌골산에 올랐다.
없던 바람도 불어오는 곳!
도시의 열기로 가득한 오늘, 여기서는 자연의 소리를 들어가며 하늘의 움직임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갈현고개까지 고도를 낮추고는 서서히 용문산 전위봉인 687봉까지 고도를 서서히 높인다. 오르다가 또 내리는 등로를 따르다 보면 더위로 인해 갈증을 동반한다.
둘이 산행을 하면 최고의 단점은 자신의 신체리듬을 사전에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으니 혹여 객기를 부리다 낭패를 당할 수도 있음이다. 하여 여름이라 가능하면 물을 많이 지고 다니며 탈수증세를 막기 위해 틈만 나면 물을 마시고, 초콜릿을 먹는 등 탈진에 미리 대비해야 즐거움을 동반한 산행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수지도 않고 용문산에 도찯하였다.
대간의 전 구간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최고봉이 795m인 웅이산(국수봉)으로 다른 지역의 고개에 불과한 높이이며, 가장 낮은 곳은 추풍령으로 해발 220m로 매우 낮다.
지대가 낮은 만큼 교통망도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역사적으로 동서 혹은 남북 정치세력의 상충지역이었으며, 현대에 들어서는 한국전쟁의 격전장이기도 했다.
평야지대가 아니면서도 논농사와 밭농사, 과일농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전통적으로 감이 많이 나고 양잠과 목화농사가 성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용문산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때로 격렬하게 때로 고요하게 굽이쳐 흐르는 백두대간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다가 숨을 고르고 있는 쉼터가 마련된 웅북리갈림길에서 지친 몸을 잠시 내려놓는다.
경북도계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던 웅북마을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반갑다.
여기에서 부터 웅이산까지는 계속되는 오름길이라 물과 간식을 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다보면 김천시 어모면, 상주시 공성면, 영동군 추풍령면과 접하는 삼면계이면서 기양지맥 분기봉인 734m봉을 만난다.
분기봉을 지나 고도를 높이며 로프를 잡고 올라, 뒤 돌아 보면 조망이 환하게 터지지만 그늘이 없어 잠시지만 뜨거운 햇살을 견디지 못하게 한다.
경북도계 탐사를 할 때 웅북고개에서 된비알을 맛보며 바로 여기 낡은 로프 사이로 오른 기억이 생생한 곳이다. 여기에서 경북도계와 대간은 갈라진다. 한동안 함께했던 도계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다시 속리산 형제봉에서 도계와 대간은 함께할 것이다.
한동안 국수봉으로 정상의 이름을 함께했지만 최근 웅이산으로 이름을 바꾼 정상에서 상주의 너른 들판과 지나온 황악산 그리고 민주지산 등 주변의 산들이 첩첩이 전개된다.
또한 상주 문경구간의 시원한 백두대간 마루금과 소백산도 조망되지만 뜨거운 열기는 정상에서 한가하게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대간은 금강과 낙동강의 수계가 갈리는 분수령이기도 하고, 충북과 경북의 경계이기도 한 웅이산에서 큰재로 이어진다.
웅이산에서 큰재로 가는 하산 길은 정화사업으로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지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한참을 내렸다가 다시 올라서면 삼각점이 있는 684봉이다. 민영봉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데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자의적으로 산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평화로워 보이는 신곡리마을을 보며 햇살이 뜨겁다 못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 같은 큰재에 도착하며 산행은 끝이 났다.
해발 300m가 겨우 되는 영동군 모동면에서 상주시 공성면으로 넘어가는 2차선 아스팔트 고갯길인 큰재는 예전 고갯마루에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고 폐교(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와 민가 한 채가 마주보고 있었다.
지금은 백두대간 숲 생태원이 들어서 백두대간 생태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흘린 땀을 씻기 위해 수도를 찾으니 수량이 모자란다고 단수조치를 하고 있었다.
이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이곳의 수돗물 마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늘 구간은 다른 구간 대간의 산들처럼 장엄하거나 화려하지도 않고 겹겹이 쌓이고 쌓인 사연들도 없는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산길은 찾는 이들이 원래가 적었는지는 몰라도 오늘 산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전무했다.
백두대간을 걷는 나만 바람 지나간 길을 따라 걸을 뿐이다. 어쩌면 백두대간을 걷는 이들조차 이런 구간을 밋밋하다 해서 마땅치 않아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구간이야 말로 백두대간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화려함에 눈을 빼앗기지 않고 겹겹이 쌓인 사연에 마음 적시지 않고 나 자신을 느끼며 오롯이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산길에는 오로지 백두대간과 나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큰재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공성면으로 가서 시내버스로 상주에 도착하여 고속버스로 서울에 갔다.
[중화지구]
백두대간을 넘어온 경상도 여섯 고을, 즉 화서, 화북 ,화동, 화남 이 네 개 면은 본래 화령현이고, 모동면과 모서면은 옛날의 중모현이다.
중화란 바로 이 상주목을 따르던 화령현과 중모현을 이르는 말이다. 황악산과 속리산 사이, 1,000미터 이상의 산이 없는 대간의 기세가 미약한 곳으로 추풍령에서 화령재까지 약 5-60km에 해당한다.
이 중화지구는 충북 사투리와 경북 사투리가 섞인 형태의 말씨를 쓰고 있으며, 표고가 낮으면서 기온이 3-5도 차이가 나는 고원지대의 특성으로 포도, 배, 사과 등의 과일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중화 지구가 경상도 땅으로 뻗은 것은 신라와 백제의 마지막 국경에서 연유된 것으로 낮은 산줄기로 이어진 두 곳(화령縣, 중모縣)은 백두대간이 천연의 국경 역할을 상실했기 때문에 힘이 센 어느 한 쪽이 깊숙이 쳐들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이러한 분쟁은 최근의 문장대 온천의 개발을 둘러싸고 충북과 경북이 첨예하게 대립한 사건 즉, 돈벌이는 경상도에서 하지만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수질 오염의 대가는 충북에서 치르는 탓에 개발 포기를 한 예가 있다. 이는 백두대간을 따르지 않았던 탓에 일어난 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