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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77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21: 사랑의 세레나데......3 04/28 20:26 174 line
사실 추억은 항상 내용물없이 떠오르는 법입니다.
그런 추억을 윤색하여 지금 이렇게 나불나불대고 있는 한,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추억이 아니라 낙서일 뿐입니다.
시간속에 묻혀 잃어버린 것을 찾기에는 지금 너무 여유가 없습니다.
단지 잃어 버려야 할 것들을 점검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정도의 시간은 허락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어제 하이얏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한 달동안 준비했던 행사를 무사히
끝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가스폭발사고, 다리절단사고, 독개스 살포
사고가 일어나며, 어떤 때는 준비한 음식이 상해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사고, 공연히 잔치에 다니러 갔다가 당하는 교통사고, 음주운전 단속
등 그 어느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이(?) 무사히 일이 끝내게 된 것이 다행스러웠습니다.
행사를 모두 끝내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과 제이제이 마호니엘
갔었습니다. 정말 곤죽이 되도록 취해 보고 싶었습니다. 쓸데없이
폭탄주 3배를 하고, 잘 취하지가 않아서 거꾸로 뿅가리주를 역시
3배를 하였습니다.(여기에서 뿅가리주란 양주 큰 컵으로 하나에 포카리
스웨트 작은 잔 하나를 섞어서 들이 붓는 기타제조주의 일종입니다.)
그래도 취하자고 작정하고 마시는 술에는 잘 취하지 않는가 봅니다.
안돌아가는 허리를 있는대로 비틀면서 춤(?)이라는 것을 추어 보기도
하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서 소리를 질러대기도 하고, 또 병나발 음주
방식을 시도하기도 하고, 그래도 여전히 정신은 말똥말똥하더군요.
시간이 늦었다고 두 분이 먼저 가시고, 한 분이 쓰러지고, 또 다른 분이
고꾸라지고, 이번에는 두 분이 단체로 퍼질러 주무시고, 한 분은
아예 테이블 밑으로 기어 들어가고, 이 분 저 분 챙겨서 집에 보내고
결국 챙길 수 없었던 한 인간을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포장마차에서 오뎅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마셨지만 여전히 술은 취하지
않았습니다. 신사동에서 양재역까지 터덜터덜 걸어 오던 그 길엔
왜 그렇게 놀다 가세요, 쉬다 가세요, 이쁜 여자 많아요 하는 삐끼들이
많던지...... 정말 취하고 싶었던 날이었습니다.
자, 우리 또 다시 사랑의 세레나데나 불러 봅시다.
사 개월여에 걸친 그 친구의 끈덕진 잠복근무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껀수를 올리지 못한 실패의 원인은 바로 녀석이 자신의 존재를 그녀에게
알리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쫓아만 다니고
먼발치에서 째려만 보았지, 그밖에 한 게 도대체 무엇이었단 말입니까?
미인은 용감한 자만이 쟁취할 수 있다는 플루타아크 영웅전 오십페이지
셋째 줄을 인용하면서 저는 친구에게 쇽킹하게, 우아하게, 감미롭게,
고즈넉하게, 야리야리하게, 호탕하게, 섹시하게, 정말로 아싸 가오리하게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것을 권유하였고, 그 방법으로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그녀의 창가에서 불러 볼 것을 명령(?)하였던
것입니다.
물론 친구도 귀가 솔깃하고, 눈이 휘둥그레해지고, 등골이 오싹해지고,
코가 벌름벌름거리는 기똥찬 생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것입니다.
노래 부르는 일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음치라는 사실이 그를 또
다시 주저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무신 소리!!!!!
안되면 되는 방법을 찾아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솔로가 안되면 떼거지로 불러대면 되는 것을,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는 것을, 친구여 잔을 들어라!!! 오오오오오...황제를 위하여.
우선 그 놈은 노래부르는 것에 관한 한, 일생에 도움이 안되는
인간이었구, 저는 생각나는대로 이 놈 저 놈에게 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쌩노래만으로는 문제가 있었기에 어려서부터 지미 핸드릭스, 허비 행콕과
나이롱 뽕 친구이며, 신중현, 김수철과 고스톱 친구를 먹는다는 두현이
를 불러 내기로 하였습니다. 혹시라도 그 날, 초콜렛을 준다고 할 여자가
있을지 모르니 곤란하다는 두현이에게 너한테 초콜렛 주겠다고 나서는
여자가 있다면 필시 제정신이 아닌 여자일테니 애저녁에 포기하라고
목소리를 깔고 이야기함으로서 여의도에 나올 것을 약속받았습니다.
제가 앨토를 하기로 하고 소프라노할 친구를 수배했습니다.
(니들이 카스트라토냐? 파리날려냐? 원 제 정신 아닌 놈들...)
마침 술만 마시면 신 카나리아 여사의 "나는 열일곱살이에요"만 불러대는
정신연령 17세의 성근이가 군소리없이 나와주기로 했습니다.
젓가락 두 짝만 있다면 중모리, 휘모리, 리듬 앤 블루스에 레게까지
어느 장단도 맞춰 댈 수 있다는 상훈이도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끝나면 술사주냐구 해서, 별 걱정을 다한다구 했습니다. 그러자 녀석은
하모니카까지 가지고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하모니카말구 스포츠카는
안되겠냐구 했더니 그것은 안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두 조금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제 고등학교 동창 두 놈두 부르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저와 함께 남성 복사중창을 했던
친구들이었습니다.(물론 니가 그런 짓을 했단 마리냐? 하고 의심하시는
분 못믿겠다면 마십시오. 이래뵈두 시민회관 무대 위에 서 봤습니다.
이입상은 못했어두 박수갈채 받았습니다. 이제부터 제 노래를 시작할까
합니다. 으│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발렌타인
데이냐구 난색을 표하더군요. "야 니들 많이 컸다! 손본지 조금 됐네,
안오구 맞을래, 와서 맞을래" 그랬더니 당연히 "가구 안맞을래"
하더군요. 짜식들이....한번에 오라면 오지 개기구 있어!
어영부영 세레나데를 부를 팀이 구성되었습니다. 곡목은 순발력에
맡기기로 하고, 우리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기 위하여 보무도 당당히
여의도 그 찬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한강 한 가운데 달랑 떠있는
섬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 우리의 우정을 축하해 주기
위하여 그 날, 그 아름답기 짝이 없는 198*년의 발렌타인날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소복이 나리고 있었습니다.
(짠짜라 짠짠... 짠짠!)
날은 이미 캄캄해지고 있었습니다. 노란 가스등(?)의 불빛이 흰눈에
반사되어 마지막 겨울의 아름다움을 감싸주는 여의도 대교아파트,
연인들은 날이 날인지라, 한 손에 초콜렛 뭉치를 껴안고 추운 발걸음을
재촉하여 어디론가 따스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저희는 그 녀가
사는 아파트 뒷베란다 근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녀의 집은
5층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친구가 4개월을 쫓아다닌 끝에 얻어낸 귀중한
정보였습니다. 재수없게 그녀가 14층 정도에 살았다면 우리는 망할 뻔
했습니다. 일단 조짐이 좋았습니다.
"차아아아앙문을 여어러다우, 내 구여운 마리아, 어쩌구 저쩌구"
하는 고전적인 세레나데는 안하기루 하였습니다. 이 추운 날 연탄가스를
맡지 않은 다음에야 창문을 열 택두 없었구, 그 녀의 이름이 마리안지
코리안지 알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불행히도 그 노래의 가사를 전부
아는 수준있는(?) 친구들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작, 창문이
열리고 물한바가지 날라 오구 나면, 에에취! 하면서 재채기를 하고,
기침, 코감기에는 판피린 에스! 정도가 우리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입
니다.
우리는 첫 곡을 그 유명한 로미오와 쥬리엣의 테마곡 "A Time For Us"
를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그 노래는 우리가 복사중창할때 여러번
불러 보았던 노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 날의 주인공이었던 친구는 고맙다구 눈물콧물을 흘리며 거금을 투자
하여 쏘주 다섯병과 쥐포, 왕오징어, 땅콩 등을 준비하였습니다. 우선
추운 속을 달래기 위하여 한 잔의 소주를 마신 후 우리는 드디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대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어 타임 포라스...웬유델비....(좌우지 장지지지 좌우지장지!)"
노래가 다 끝나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다시소주 한잔씩
을 나누어 마셨습니다. 두번째 노래는 정태춘, 박은옥이 부른 사랑하는
이에게, 세번째 노래는 사이몬, 가펑클이 불러 준 금세기 최고의 명곡,
험한 세상에 다리나 되어볼까? 저멀리 마포대교를 바라보며 웬유아웨어리
필린스몰 쿵다라닥닥 삐약삐약!....
노래 한곡에 소주 한잔, 또 한 곡에 소주 한잔, 이윽고 소주가 다
떨어지자 친구는 술을 사러 나갔구, 우리는 담배 한 대씩을 꼬나 물었습
니다. 너무나 신통찮은 반응이었습니다. 과연 그녀가 우리의 노래를 듣고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였습니다. 어쨌거나 목표는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를 알리자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우리는 노래의 종목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친구는 날씨가 점점 더
추워진다면서 캡틴 큐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우리는 점점 더 힘이
났습니다. 친구를 위하는 살신성인의 마음, 아, 우리는 죽어서도 천당에
갈꺼야, 아, 너희들이 천당엘 간다면 난 때려죽여두 거긴 안갈꺼야...
이젠 노래가 바뀌었습니다.
그녀가 여의도 섬처녀, 매일같이 한강을 넘나드는 여인이었던 관계로
우리는 소양강 처녀, 낙동강 처녀, 백마강 달밤에, 혜은이의 제3한강교
바이 더 리버스오브 바빌론(바빌론강가에서?), 강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에 급기야는 강강수월래까지 불러 댔습니다....
낙서라구 휘갈기다 문화일보 석간을 보니 또 황당무계한 사건이
터졌군요. 아무리 낙서라지만 더이상 글쓸 맛이 안납니다.
언제까지 인재지변이 계속되고 얼마나 무고한 인명이 더 살상되어야
정신들을 차릴까요? 시도때도 없이 사람들은 죽어나가는데,
그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사회, 제가 바로 그런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두 OECD에 가입한다고,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겠다고,
꼴에 대외원조를 늘리겠다고, 같잖게 경수로 건설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방방거리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며칠 지나면 또 세계화가 어쩌니, 문민정부가 어쩌니 하면서 헷소리를
해대겠죠....
에구 그만둡시다.
지금 열받으니 다음에 또 뵙죠.
#9160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22: 사랑의 세레나데......4 05/01 21:36 114 line
제가 살던 집에는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두 그루 있었습니다.
동네에서는 우리집을 가리켜 라일락집이라고 부르곤 하였습니다.
(강남 팔레스 호텔 뒷편의 그 유명한 보신탕집 이름도 라일락집입디다)
그 꽃향기가 너무 강해서 어떤 때는 창문을 제대로 열어 놓지도
못하고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오월은 그렇게 라일락꽃향기로 시작해서
아카시아꽃 냄새가 번질때쯤 해서 끝나가곤 하였었죠.
그러나 우리들의 오월은 라일락의 향기보다는 언제나 매캐한 최루탄 냄새
와 함께 시작되곤 하였습니다. 메이데이, 오월의 첫날 노동절을 되찾기
위한 험한 싸움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4십여년만에 되찾은
노동절입니다. 그래도 어느 한편에서는 이악물고 <근로자의 날>을 고집
하는군요. 하기사 People이라는 단어를 하마 인민으로 번역하지 못하고
사는 그런 나라에 내 삶의 첫울음을 울려댄 잘못이야 어쩌면 전적으로
제게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죠.
오늘 저는 이 말을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I see the world verbally. You say truth...justice...democracy...
development...faith...hope.... Words don't create them, but if
they do not exist in words, they will never exist.
"말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 세계를 한 번 봅시다.당신은 진리를, 정의를,
민주주의를, 발전과 믿음과 그리고 희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다면서요. 물론 말만으로 그러한 가치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게요. (그러나 나는 믿고 있수.) 만약 이 소중한 것들이
말로써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가치들 또한 결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임을 말이요..."
카를로스 후앙떼스의 <말>입니다. 노동절이 아직도 제 이름을 찾지
못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아직은 끝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말도 안되는 세상, <사랑의 세레나데>나 불러 봅시다.
강강수월래를 불르면서 우리는 빙글빙글 맴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애당초
강강수월래는 한국판 댄스곡이었으므로 노래분위기에 충실하자는 뜻도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발이 시려워 견딜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갑자기 "손이 시려워..."를 선창하였고,
우리는 다같이 "꽁"으로 화답하였습니다.
"발이 시려워"가 나왔을 때도 "꽁"이 나왔습니다.
"어디서 이 바람은 불어 오는지?"하고 묻는 분, 겨울바람은 한강에서
㉤나게 불어 옵디다.
분위기 정말로 좋더군요. "야야, 야야야야..."하는 연대곤조가도 나오고
질세라 고려대의 막걸리 찬가도 울려 퍼졌습니다.
고등학교 동창놈들이 고대 학생이었다는 것은 그 날의 이벤트가 비극으로
끝나는데 분명히 일조를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이 놈의 연대생과 고대생이 어울리는 자리는 항상 아사리판(?)으로 종결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법.
막걸리 찬가에 이어 "생맥주가 부른다, 막걸리가 부른다, 소주병이 나를
부른다...(좌우지 장지지지 좌우지 장지)"하는 <연대생의 로맨스>가
뒤를 이었고, "이십년 동안 키워온 연세, 불쌍해서 못보겠네"하는
고대의 그지동냥해주는 응원가가 지지않고 나왔습니다. 노래를 부르다
목이 아프면 캡틴 큐를 나발로 불어댔구, 발이 시리거나 흥이 오르면
광란의 춤파티가 이어졌으며, 쓰레기통을 두들기는 놈, 기타를 뒤집어
부셔대는 놈, 목소리 큰 놈이 장땡이라고 목에 핏줄 세우는 놈...
점입가경.
지랄발광.
경거망동.
죽음자초.
이윽고 아무런 반응이 없던 베란다의 창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열린
문은 그녀가 살고 있다는 5층의 창문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 창문은
3층의 문이었습니다.
"어떤 자식들이 오밤중에 지랄들이야...."
요즘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여의도에 사시는 분, 아니 여의도 대교
아파트에 사시는 분, 아니 여의도 대교아파트 *동 3**호에 사시는 분,
음악을 이해 못하시고, 사랑을 이해 못하시고, 그 삭막한 서울 생활을
어찌 버텨내겠습니까?
그런데 웬걸? 3층 문이 열리더니 곧바로 7층 문이 열리고, 1층에서도
아저씨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그런 식으로 온 아파트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런 몰상식한 놈들은 잡아 죽여야 돼!"
"삼청교육은 저런 놈들 잡아다 시켜야지, 나 원..."
"뉘집 애새끼들인지 저런 놈들 낳구도 미역국 먹었겠지..."
저희는 저런 몰상식하고 살기등등한 말들이 우리에게 한 욕지꺼리였는지
는 정말로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국민의례는 아니었지만 식순에 의해 아카라카가 나오고, 입실렌트가
나오고, 그 영원한 명곡, 가슴을 적시지 않고는 듣지도 부르지도 못할
그 아름다운 노래 "연세찬가"가 막 시작될 쯤...
두터운 경비잠바를 입으신 분들 서넛이 회중전등을 들고 저희에게로
걸어 오시더군요. 파자마에 파카를 걸쳐 입으신 지긋하신 아저씨 몇 분도
씩씩거리며 뛰어 나오셨습니다. 그 뒤를 이어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번쩍번쩍 경고등을 밝히며 경찰백차 두 대가 들이 닥칩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까요?
조회수가 2000을 넘어섰다는군요. 험하지 않은 세상에서 옛날 그 험했던
시절의 이야기나 해 볼까 싶어 시작했던 지랄인데, 어째 험하기는
그제나 이제나 별 차이가 없네요...
관심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저 끄적거려대는 낙서에 왜 이렇게 많은 분들이
호응을 해주시는지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구요...
굳이 축하쇼야 있겠습니까? 언제든 불러만 주시면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즐거운 자리, 술마시는 자리는 만들어 보겠습니다.
(한 4천 5백원 정도면 소주 한 박스에 두부김치 두 접시에 해물잡탕
하나 시키구 담배두 한 다섯갑 시켜 놓구 밤새 마실 수 있을래나?
그렇다면 4천 5백원 한도 내에서는 물쓰듯 돈쓸 용의가 있음.)
밑에 김민경님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의 영광은 다 니 덕입니다.
#9351 이성한 (neopol )
이대단상23: 사랑의 세레나데......끝 05/09 19:12 174 line
여태두 오월입니까?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들의 의미는 묻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나역시 아직은 살아 숨쉬고 있는한 세월의 의미를 묻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설레임보다
지나버린 일들을 그리는 시간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저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잘린 늙은 나무올시다.
여러분들에겐 축제의 게절이군요.
제게는 뭐랄까, 글쎄 폭음의 계절, 과로의 게절이라고나 할까요?
조금 여유를 가져볼까 해서 오페라 관람권을 구입하였습니다.
공연날짜가 바로 오늘입니다.
그런데 피치못할 사정이 생겼습니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그것도 감히 로얄석(에구 두장이면 14만원)
환불은 안된다고 하구, 에라 너나 가져라...
사는게 뭔지, 열받는데 그동안 미뤄왔던 사랑의 세레나데나 끝내봅시다.
하두 오랜만이라 잘 감은 안잡히지만 어쨌거나 전편의 마지막 장면은
두대의 경찰백차가 등장하였고,
"모두 꼼짝마라, 움직이면 쏜다!" <----아, 이건 아니군요.
"바로 저 노므시키들입니까? 역시 신고받은대로 파렴치한 자식들이군요"
아마 그 날의 대사는 이거였을 겁니다. 대뜸 욕지꺼리에 게다가 파렴치한
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단어에, 나중에는 가정교육까지 들먹이더군요.
그래도 되는건지, 어㎎거나 모두들 귀한 집 자식들, 아니 보통 집 귀한
자식들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백차를 타고 출동한 민중의 지팡이들께서는 저희들이 귀한 집
귀한 자식인지, 귀한 집 보통 자식인지, 보통집 귀한 자식인지, 보통집
포기한 자식인지, 아예 관심들이 없었습니다. 다만 저희들을 굴비두름
꿰듯 줄줄이 꿰어 백차에 실어가는 것만이 관심이었을 뿐입니다.
쪽수가 쪽수인지라 백차 두대가지고는 모자랐습니다.
자리가 없었던 저는 대교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오토바이를 타고 파출소에
따라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팔자가 드센 놈은 거기서도 티가 나나 봅니다. 똑같이 노래부르고,
똑같이 지랄발광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언놈들은 뜨뜻한 히터바람에
푹신한 쿳션이 장착된 백차에 탑승하여 파출소로 가고, 언놈은 그 추위에
오토바이 뒤에 실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를
웅얼거리며 끌려가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좌우간에 엄청 춥더군요)
눈내린 여의도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기분..
피터 폰다가 주연한 이지 라이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구요?
아니면 제가 소위 오토바이 폭주족의 선구가 아니냐구요?
에구, 저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닙니다.(북치고 장구치는군)
좌우간 한 발 늦게 당도한 파출소에는 저희 친구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마치 범죄인들 모양 얼굴을 푹 숙이고들 서있더군요.
손들고 서있으라면 손들고 서있고, 오강들고 서있으라면 오강들고
서있을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나이 자존심에 차마 그 짓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저는 일렬횡대로 늘어서는 그 비참한 짓거리를 과감히 거부하고
고 뒤에 가서 서버렸습니다.
서슬퍼렇던 5공시절에 정말로 목숨건 용감한 행동이었습니다.
친구들도 제 용기에 감탄한 듯 하였습니다.
한 손에 기타를 들고 서있던 두현이가 제게 부러운 시선을 던지더니
이윽고 한 마디 했습니다.
"성한아, 니가 오라고 해서 왔는데 너는 왜 뒤로 빠지냐?"
에라, 이 쁘락치같은 녀석아! 그래 내가 전부 홀라당 뒤집어 써 주마.
저는 과감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파출소의 순경아저씨께서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학생이 주동자야?"
잠깐만. 주동자라니? 그럼 우리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를
지금 덤태기 쓰고 있는 겁니까? 갑자기 이거 장난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구는 이런 상황에 봉착하면 갑자기 술기운이 사라지고 정신
이 번쩍 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날, 저는 왜 하필이면 정신이 번쩍
드는 대신 오바이트가 불쑥하고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좌우간 그랬습니다. "학생들, 지금 도대체 시국이 어느땐데, 남의 아파트
에서 그렇게 술마시고 고성방가하고 안면방해하며, 후안무치하여,
주민편의를 침해할 수 있는거야"하고 일장의 훈계를 늘어 놓으시던
여의파출소(? 맞나?) 부소장님 구둣발 위에 한바탕의 오바이트를 쏟아
부었습니다. 먹은게 없어서 그저 물인지 술인지 위액인지가 주종을
이루는 토사곽란의 내용물이었지만 좌우간 황당하였습니다.
라면먹구 술안마신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얼핏 들기는 하였지만, 고기먹고
오바이트했더라면 폼이라도 잡았을걸 하는 아쉬운 느낌도 없지는 않았습
니다. 그 와중에도 전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한마디 말씀은
꼭 드려야 했습니다.
"저는 아닌데요...."
아무러면 어떻단 말입니까? 제가 주동을 했으면 어쩌구, 아니었으면
어쩌구. 그저 이왕에 팔린쪽, 최후의 자존심이라도 지킬 것을...
저와 함께 광란의 질주를 했던 노땅폭주족 경비아저씨께서 대충의 상황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그 아저씨는 그 날, 그 불행함, 그
비참함의 원인을 제공했던 제 친구를 지목해 주더군요. 침까지 튀겨가며
말입니다.
"좌우간 저 놈이 요즘 계속해서 저희 아파트 근처를 왔다갔다
하더라구요. 생긴 것두 드럽게 생겼구, 아무래도 의심이 가서 저희가
계속 감시를 했었는데, 오늘 아예 떼거지로 몰려와서 이 지랄들을
떤거에요, 이 지랄들을..."
허허허.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자, 어찌 사랑의 세레나데를 이해할
것이며,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 어찌 흥나면 눈에 뵈는게 없어지는
그 젊음을 어찌 이해할 것이란 말입니까?
이윽고 그 친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잘못하면 이거 도둑놈으로
몰릴지도 모르는 판이구, 까딱하면 폭력조직 결성혐의로 15년을 받게
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 도래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엇비슷하게
폭력조직 결성혐의로 들어 갔던 양은이파의 조양은이 얼마전에 모래시계
의 후광을 업고 당당히 출소했었던 모습을 여러분은 기억하시겠지요.
저도 그 때 잘만 했으면(?) 그런 스타가 될 수도 있었을까요?
저희는 그 날 순경아저씨들이 보는 앞에서 각자 집에 전화를 걸어야
했고, 부모님들이 몰려와 한 놈 두 놈 데리고 나갈 때까지 거기서 대기
해야 했으며, 풀려 나올때는 차후에 다시는 이런 몰상식한 행동을
벌이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지장을 찍어야 했으며, 여의도에서
장위동까지 오는 길에 온갖 쪽팔림을 피를 나눈 가족들로부터 들어야
했으며, 집에 들어 와서는 왕년의 배구선수 출신이셨던 아버님이
조성하신 공포분위기에서 그저 '때리시면 맞아 드리겠습니다'의 각오로
무릎꿇고 한시간여를 건들거려야 했으며, 그 와중에서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오바이트를 이악물고 도로 삼켜야 했던 것입니다.
오 해피 데이? 오 해피 유어 발렌타인 데이! 낫 마이 데이!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저마다 어제 여자친구에게 받은 초콜렛
을 질겅이며 사랑의 기쁨을 이야기하고들 있더군요.
그러나 후기 한편.
그 날, 그 지랄이 전혀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주일을 집에서
두문불출하던 그 한심했던 친구는 이윽고 결심을 굳히고는 다시 종로
시사영어학원에서 그녀에게 과감히 대시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날의 그 멤버들을 다시 모아 술자리를 만들었고, 그 자리에
여의도 대교아파트에 사는 그 섬처녀를 초대하였던 것입니다.
"누나, 바로 얘들이에요. 그 날 누나네 집앞에서 그 소란을 떨었던
애들이요."
"호호호... 너희들 정말 재미있는 친구들이더라."
어쩔시구리. 누나? 그리고 니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 반말은?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저희는 그 누님께서 후배들을
소개시켜주겠다는 그 한 마디에 그저 잘 보이는 것이 장땡이라고
알랑방구만 뀌어 댔으며, 그 녀가 호호호 웃으면 하하하 웃었고,
그녀가 낄낄거리면 깨득깨득거렸으며, 그녀가 어떤 타입의 여자가
좋으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누님같은신 분이요 하며 단체로 촐싹
거렸을 뿐입니다.
그녀는 이대대학원을 다니던 까마득한 연상의 여인이었고, 조만간
약혼자를 따라 미국유학을 떠날 여인이었으며, 좌우지간에 내 친구하고
는 인연의 실이 엉켜있을 수 없는 그런 남의 떡(?)이었을 뿐입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에 그녀는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떠나갔습
니다. 저희 친구들 중에 4명이 공항까지 그녀를 배웅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 네 놈의 인간은 그 와중에도 어쨌거나 그 누나가 소개시켜
준 여인네와 일이 잘 풀려가던 인간들이었습니다. 오는 길에 문주란의
눈물의 국제공항이 62번 공항 좌석버스에서 들렸다고 하더군요.
그 네 인간 중에 한 인간은 갈 때까지 가서 결국은 아들 새끼 하나
놓구 요즘도 이악물고 부부싸움하면서도 잘 살아 제끼고 있습니다.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 줄 수 있는 그런 로맨틱한 사랑,
요즘 어디 없을까요?
바빠서 그런지 자주 들어 오지 못하네요.
그저 여러분의 이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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