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시문학관
최근 우리나라에도 전국적으로 약 50여개의 문학관이 곳곳에 건립되었다. 약 250개의 지방자치단체수와 비교하면 5개 지자체 중 하나 꼴인 셈이다. 그것도 시 단위로 생각한다면 어지간한 시에는 하나씩 있는 셈일 것이다. 전북만 하더라고 남원의 혼불문학관, 전주의 최명희문학관, 김제의 아리랑문학관, 군산의 채만식문학관, 고창의 서정주문학관이 있고, 부안의 신석정문학관이 건립 중이다. 여기다 얼마 전에 장수군 계북면 양악리에 정인승기념관을 세웠고, 익산시 여산면에 가람시조문학관을 세우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전북지역에 문학관의 수가 적은 편이 아닌 듯하다. 아, 이렇게 많았구나 하여 뿌듯하다.
그런데 일본은 어떨까? 일본에는 무려 650여개의 문학관이 있다고 한다. 일본의 면적이 남북한의 약 1.5배 크기를 감안한다고 해도 650개면 적지 않은 수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에 50개가 있고, 만약 북한에 50개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면적을 고려하여) 우리는 100여개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남북한의 면적이 21만㎢(인구 약 7000만), 일본은 37만㎢(인구 1억 3000만)이다. 일본의 면적은 우리의 약 1.5배이고, 인구는 2배 정도 된다. 면적과 인구수를 비교한다 해도 문학관의 수가 100개와 650개면 엄청 차이가 난다.
문학관의 운영과 관리에서도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문학관은 엄숙한 기념관이다. 유물과 작품을 전시하고, 이것들을 둘러보는 곳이다. 우리는 둘러보고 구경하는 문학관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생활문화공간으로 정착된 듯하다. 일본 도쿄의 세다가야문학관을 둘러보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세다가야문학관은 1995년 4월에 개관한 문학관으로 지하주차장을 포함 지상 3층, 현대적 유선형의 건물로 문학 분야뿐만 아니라 세다가야구의 문화생활 정보센터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소장자료는 7만 3천여점이라고 하는데 주로 세다가야구 출신 문인, 거주 문인에 관련된 문학 자료들이라고 하였다. 근대문학관의 자료와 달리 이곳에는 영화와 만화를 비롯한 영상자료와 탐정·추리작가의 관계 자료까지 수집 보관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사실 순수문학 자료만을 수집 대상으로 하고 있는 우리 문학관과는 대조적이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또 한편의 글에서 읽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다수 문학관이 행사나 전시 위주의 사업과 자료의 수집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 근대문학관은 자료의 수집과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수집된 자료를 정리, 출판하여 얻은 수익으로 재정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귀중한 자료들은 연구 목적으로 열람하게 함으로써 연구가들의 손에 의해 전혀 새로운 결과물로 탄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었다. 행사 역시 저명한 작가의 강좌, 강연회 중심으로 펼쳐진다.”
우리나라의 문학관과 일본의 문학관이 서로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관광버스를 이용하여 쉽게 후쿠오카시문학관을 찾았다. 후쿠오카시 주오구(덴진)에 있는 곳으로 덴진역(天神駅)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이다. 우리나라에서 후쿠오카시문학관에 관한 자료를 검색해보았지만 특별한 것을 볼 수 없었다. 한두 사람의 글에서 건물 사진만 올려놓고는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보지 못했다고만 되어 있는 정도였다. 후쿠오카시 관광 정보를 검색해봐도 문학관은 잘 보이지 않았다. 후쿠오카시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안내가 되어 있는데 문학관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관광지이지만 문학관은 관광지가 아닌 자기네들의 생활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가이드인 오야꼬상에게 물어보았다. 오야꼬상도 일본 가이드로 8-9년 근무한 전문가이었다. 그런데 자기도 그곳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지나가면서 건물이 붉은 벽돌로 되어 있어서 특이한 곳이라고만 생각했었단다. 그래서 이번에 처음으로 한번 가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관광은 눈으로 보는 관광에만 치우쳐 있고, 그들의 생활을 보고 느끼고 접촉하는 관광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후쿠오카시 문학관(福岡文學館)은 아카렌카문학관이라고도 한다. 건물이 붉은 벽돌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붉은 벽돌 문학관이란 의미이다. 시내 중심가에 붉은 벽돌 건물이라 다른 곳과 비교되어 그냥 눈에 들어왔다. 아카렌카문학관은 그 기능보다는 건물의 외형적 특징으로 더 유명한지도 모르겠다.
메이지시대의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다쓰노 긴고(辰野金吾)’와 ‘가타오카 야스시(片岡安)’의 설계로 일본생명보험주식회사 규슈지점으로 1909년에 준공되었다. 붉은 벽돌과 흰 화강암으로 된 외벽은 19세기 말의 영국 양식이며, 정면 양측의 스코틀랜드 양식의 원탑 등이 중후한 건물이다.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우아하게 장식했는데, 메이지 최후의 본격 서양풍 건축물로 현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일본인이 영국식으로, 스코틀랜드식으로 설계를 했다는 설명인데, 서양문물을 일찍 접했던 설계사인가 보다. 그 저간까지는 미처 확인할 수 없었다.
1990년까지 시의 역사자료관으로 사용된 이후 2002년에 문화재 정보발신의 중심 기지의 역할을 하는 ‘후쿠오카시 문학관’로 개설되어 문학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 제공하고 있다. 1층은 후쿠오카와 관련 깊은 문학가의 작품 전시 공간과 8명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2층에는 유료 회의실 3곳이 준비되어 있다. 1층 벽면의 한쪽에는 벽날로로 사용되었던 것이 그대로 있다. 다만 앞에 의자가 놓여져 있어서 벽난로의 흔적만 알려준다. 2층에 8명 정원의 회의실이 있는데 토요일 오후 4시간 사용료가 1000엔이란다.
우리가 간 날은 2층의 넓은 회의실 2곳에서 회의, 모임 중이었다. 1층 현관 입구에는 예쁜 여자분이 안내를 하고 있었고, 그곳을 지나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종 자료와 안내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곳의 더 안쪽에는 사무실이 있는데 또다른 여자분이 있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곳, 이곳이 예전에 은행과 같은 보험회사 건물이었다니, 요즘같으면 좁다고 아우성이었을 것 같다.
2층으로 올라서는 계단은 상당히 가팔랐다. 좁은 건물의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었으니 숨가쁘게 올랄갈 수밖에 없었겠죠. 2층 좌우측의 화의실에는 '회의중'이란 안내글이 있다. 시내 중심지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만나 회의하고,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생활공간이 아닌가 싶다. 좀더 여유있게 속속들이를 살펴보고, 이곳의 근무자들과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특이했던 것은 후쿠오카시 문학인 지도가 있었다. 후쿠오카시 출신자, 거주자인 문학인들의 지도이다. 남원의 혼불문학관에도 남원 문인지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 문인들이 지역의 문학관에 넘인 건만 같아, 힘들다. 우리나라의 실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문학관, 문학관의 작품을 알면 작품의 아름다운 문장이 보인다. 그런데 작품을 모르면서 문학관에 오면 건물의 아름다움만 보인다. 그렇다. 혼불을 모르면서, 혼불을 읽지 않고서 혼불문학관에 오면 혼불의 문장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혼불문학관의 건물만 보일 뿐이다. 오직 아소, 님하의 장승과 비탈길의 마을 풍경과 청호저수지와 문학관 건물만 눈에 어른거릴 것이다.
사진 참조 - 혼불국외문화답사의 5번 사진 - 후쿠오카문학관(사진 올린이 : 이훈정)